북한 가족 만나려 간첩활동 60대 징역 3년6월

대법 "분단의 비극에서 비롯된 범행을 한 사람에게 책임 묻는 건 부적절"

등록 2011.04.28 20:41수정 2011.04.28 20:41
0
원고료로 응원

대법원 제1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28일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북한 공작원들과 접선해 기밀탐지 지령을 받고 정보를 제공하는 등 10년 넘게 간첩활동을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된 사업가 H(64)씨에게 징역 3년6월 및 자격정지 3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함경북도 출신인 H(64)씨는 1965년 북한 정찰국 공작원으로 선발돼 1969년 7월 남한 내 학생 데모 선동 등의 임무를 받고 조직원 1명과 함께 전북 고창군 해안으로 침투했다가 경찰에 검거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입건됐으나 남한사회에 전향해 이듬해 12월 검찰로부터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후 해운업체와 유명 건설업체에서 1997년까지 근무하다가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출국해 장기체류한 후 2002년 6월 귀국한 다음 건물임대업을 하며 상당한 부를 축적해 왔다.

 

그런데 H씨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 동포들의 국내 왕래가 빈번해지자 중국 동포 등을 통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소식을 수소문하던 중 1995년 5월 어머니와 형 등 가족의 소식을 접하게 됐다.

 

이후 H씨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1996년 6월부터 올해까지 수차례에 걸쳐 중국 북경 등지에서 북한 정찰국 공작원과 접선, 탈북자로 구성된 '하나원'의 정보를 알아보라는 지령을 받고 국내에 입국했고, 북한 보위사령부 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2008년과 지난해 북한군 출신 탈북자 등으로 구성된 비공개 탈북자단체의 기밀과 반북활동 탈북자들의 정보를 탐지했다.

 

또한 H씨는 유선전화를 이용해 보위사령부 해외처 과장 이영춘의 중국내 휴대전화로 빈번히 연락하는 한편 2006년 12월에는 자신의 '싸이월드'를 이용해 북한 공작원과 계속 연락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거주지 정보 등을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결국 붙잡힌 H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고, 1심인 서울중앙지법 제22형사부(재판장 김우진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 H씨에게 징역 5년 및 자격정지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북한 공작원으로 대남침투를 했다가 검거돼 대한민국에 전향했는데,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장기간에 걸쳐 북한 공작원들의 지령을 받아 탈북자단체, 탈북자 신상정보 등의 국가기밀을 탐지ㆍ수집했으며, 공작원들과 회합ㆍ통신하고, 공작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등 국가의 안보와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위험을 초래한 점에서 죄질이 매우 무겁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이 북한에 있는 어머니와 형제들을 만나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서 범행 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점, 피고인의 간첩활동이 국가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할 만큼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범행을 자백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고, 수사에도 협조한 점 등을 참작해 형량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H씨가 "형량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항소했고, 서울고법 제7형사부(재판장 김인욱 부장판사)는 지난 2월 H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징역 3년6월 및 자격정지 3년6월로 감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장기간 북한 공작원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국가기밀을 탐지해 보고해 왔고 4차례나 밀입북하기도 했던 점, 공작자금으로 활용됨을 알면서도 여러 차례 편의를 제공해 온 점, 피고인의 행위가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참작할 만한 여지가 있는 점은 분명하나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현재의 안보상황에서 그 행위의 한계를 명확히 해 위법성을 지적할 필요성이 큰 점 등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사정"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인의 범행은 북한에 두고 온 어머니와 형제, 자매들을 만나겠다는 일념에서 비롯된 바 크고, 범행기간이 장기간이지만 기밀탐지행위 등으로 국가안전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됐다고 할 수 없고, 오히려 피고인의 역정보로 북한 정보당국이 혼란을 빚기도 한 것으로 보이며, 범행이 발각되자 대부분의 범행내용을 인정하고 실정법을 위반한 사실에 대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피고인은 북한에서 중학교 교육도 마치지 못한 채 장기간 군사훈련을 받고 남파돼 귀순한 후 40여 년 간 대한민국과 미국에서 거주해 오면서 상당한 부를 축적하기도 했는데, 이런 피고인이 뒤늦게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고 있다고 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특히 "남파공작원으로 대한민국에 온 피고인이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는 마음과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생명의 위험도 마다하지 않았던 피고인의 고뇌를 법원이 감히 모두 헤아려 알기는 어렵지만, 한반도 분단의 비극에서 비롯된 이 사건 범행의 책임을 온전히 피고인 한 사람에게만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따라서 이런 사정들을 고려하면 1심 형은 다소 무거워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2011.04.28 20:41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북한공작원 #탈북자 #국가보안법위반 #황장엽 #간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4. 4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