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e사람13화

"아이폰을 사는 게 진정한 애국이다"

[e사람⑬] 'IT 애국주의'에 반기 든 '글 쓰는 엔지니어' 김인성씨

등록 2011.05.20 14:21수정 2011.05.2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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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사람'은 우리 경제의 각 분야에서 독자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현장 노동자부터 학자, 관료, CEO, 사회단체 등 그 누구도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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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IT 산업의 멸망> 쓴 IT 칼럼니스트 김인성씨 ⓒ 김시연


지난 수십 년 국내 IT 산업을 지탱해온 '애국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TGIF(트위터·구글·아이폰·페이스북)'에 맞서 삼성·네이버·다음 등 국내 IT 기업들이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하고 있지만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개방과 표준에 맞서 폐쇄와 독점으로 자신들 배만 불려 온 국내 IT기업들을 꼬집은 <한국 IT 산업의 멸망>(북하우스)이란 책이 요즘 화제다. IT 분야에선 드물게 초판 5000부를 낸 지 한 달여 만에 2쇄를 찍었다. 이 책을 쓴 김인성씨는 리눅스 시스템을 개발하는 엔지니어이면서 평범한 사람도 IT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쓰는 일을 10년 가까이해온 '글쟁이'이기도 하다.

김씨는 '국산 스마트폰 대신 아이폰을 사는 게 진정한 애국'이고 '구글 검색 점유율이 네이버보다 커져야 한국 인터넷이 산다'고 역설한다. 기존 애국주의 관점을 뒤집는 '역발상'이다. 지난 16일 오전 서울 방배동 커피전문점에서 만난 김씨는 이달 초 농협 전산망 마비 사태를 북한이 저지른 '사이버 테러'로 규정한 검찰 발표부터 뒤집었다.

"농협 해킹이 북한 소행이란 게 뭐가 중요하죠? 보안이 뚫렸다는 게 문제 아닌가요? 농협 쪽 보안 책임을 따져야 할 검찰이, 북한 해커가 7개월 동안 준비했는데 이 정도로 막은 건 선방했다고 칭찬하는 꼴이죠. 결국 북한 범행을 강조하는 건 지휘자 문책을 피하게 하려는 것밖에 안 돼요."

김씨가 이처럼 검찰 발표를 '불신'하는 데는 나름 사연이 있다. 2008년 9월부터 2년여에 걸쳐 진행된 최열 전 환경재단 대표 횡령 사건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 쪽 자문을 맡아 검찰 디지털수사팀의 '증거 조작' 과정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관련기사 : 최열 잡을 뻔한 디지털수사팀 '이상한 보고서').

"당시 환경운동연합에선 횡령 혐의 무죄를 입증할 하드디스크 회계자료를 제출했는데 검찰은 마치 자료가 조작된 것처럼 몰아갔어요. 사실 하드디스크 자료는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어요. 문제는 조작했다는 증거가 필요한데 디지털수사팀은 검찰 입맛에 맞춰 하드디스크와 백업 CD에 담긴 같은 파일을 비교하지 않고 이름만 같은 다른 파일을 비교해 마치 조작한 것처럼 보이도록 보고서를 만들었어요."


결국 재판부도 이를 간파했고 지난 1월 28일 1심에서 최 전 대표가 집행유예 선고를 받긴 했지만 금품 수수와 횡령 혐의는 벗을 수 있었다.

구글-애플이 살아야 한국 IT 산업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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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IT 산업의 멸망> 쓴 김인성씨 ⓒ 김시연

"애플-구글 위치추적 비판할 때는 미국 수준에서 얘기하면서 우리 얘기할 때는 눈이 낮아져요. 회원 가입할 때 주민번호까지 다 깔아주면서 말이죠."

김인성씨는 '애플빠-갤스빠', '구글 대 토종 검색' 논쟁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애국주의'도 경계했다. 보기에 따라 구글·애플 등 글로벌 기업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확히는 '구글-애플' 활용론에 가깝다.

김씨는 책이 한창 화제가 되던 지난달 중순 구글코리아 사무실로 초대를 받기도 했다. 한국 인터넷의 미래를 위해서는 구글 검색 점유율이 높아져야 한다는 주장이 관심을 끈 탓이다.

"왜 래리 페이지(구글 CEO)는 한국에 안 오느냐고 물었어요. 마이크로소프트나 IBM처럼 가끔 한국에 와서 정부 실력자 만나 악수하면 대접도 받고 압수수색도 안 받을 텐데, 하고 말이죠.(웃음) 구글은 자기 정책을 타협하지 않으려 해요. 우린 경찰에서 전화만 해도 (회원정보) 갖다 주는데 해외업체는 적어도 고민은 하거든요. 심각한 유출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IT는 진보"라고 믿는 김인성씨는 지금 우리 IT 산업이 후퇴하는 이유로 사회의 보수화를 꼽는다. 90년대 후반 민주화와 벤처붐으로 꽃을 피운 IT 산업이 보수 세력들이 힘을 되찾으며 '멸망'을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걸림돌이 인터넷의 자유로운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다.

구글은 지난 2009년 '인터넷 실명제'를 거부하고 유튜브에서 한국 계정 글쓰기를 차단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앞서 김씨는 방송통신위원회 고위 관료 부탁으로 제출한 '한국 IT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이란 보고서에서도 이 문제를 거론했다.  

"첫 줄에 '인터넷 실명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했어요. 아마 첫 줄부터 불가능한 요구 조건이 적힌 걸 보고 그 분도 무척 난감했을 거예요."

김씨가 구글이 필요하다고 보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나라에도 '공정한 검색 전용 사이트'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네이버의 경우 외부에서 지식인 등 자사 콘텐츠를 검색하는 건 막으면서도 이용자들의 '불법복제'를 조장해 콘텐츠를 자기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는 반면 구글은 '애드센스' 등을 통해 콘텐츠 제공자들과 수익을 나누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렇듯 '애국주의'에서 벗어나 '개방과 표준이냐, 폐쇄와 독점이냐'란 관점에서 국내 IT 산업을 바라봐야 우리도 희망이 있다고 보고 있다. 김씨가 애플 아이폰과 국산 스마트폰 경쟁 구도에서 "아이폰을 사는 게 진정한 애국"이라고 강변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지난 수십 년간 애국심에 호소해온 국내 기업들을 밀어준 결과가 와이파이(무선랜), GPS(위성항법장치) 등을 뺀 이른바 '스펙 다운' 휴대폰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KT에서 아이폰을 도입하면서 값비싼 무선 데이터 요금, 악성코드 온상인 MS '액티브 엑스' 등 국내 IT 산업 발전을 가로막아왔던 장벽들이 하나둘 허물어지고 있다(관련기사: 아이폰 구입하면 '매국노', 국산폰 사면 '애국자'?).    

"지금 우리 상황에서 애플이 도움이 된다는 것뿐이에요. '액티브 엑스' 사라지게 만든 게 애플인데 아직 멀었어요. 소프트웨어·동영상 등 콘텐츠 마켓 분업 문제도 애플이 확립해줘야 해요."

단문 시대 장문이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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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IT 산업의 멸망> 책 표지(왼쪽). 김인성씨 글에선 사진이나 그림 설명이 본문에 녹아들어가 부연 설명 역할을 하고 있다. ⓒ 북하우스


"이 책을 쓴 건 일반 소비자들도 IT를 좀 알고 제품도 성능 보고 구입하자는 거예요. 성능이 똑같아도 사줄까 말까인데 '애국심'이란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현명한 소비자들이 목소리를 내자는 거죠."

이 책의 매력은 이렇듯 복잡한 IT 현안을 일반 독자들도 쉽게 접근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사진 설명을 본문에 자연스럽게 녹인 것도 부연 설명으로 활용해 글의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도 독자의 이해를 돕겠다는 의도다.

또 한 장을 마무리할 때마다 다음 장에서 어떤 이야기를 전개할지 '떡밥'을 던져 흥미를 유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오마이뉴스>에 올리는 IT 칼럼도 보통 A4 용지 100장을 넘나들지만 독자들 호응이 유별난 것도 이처럼 글의 구성이나 문체에서 나름 흡인력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쓴 글로 기억되는 게 모든 글쓴이의 바람이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그게 불가능해요. 단문이나 UCC는 내용은 기억해도 작가는 기억하지 않거든요. 대신 긴 글은 알아봐주는 사람만 남지만 작가를 기억하게 만들죠."

김씨의 눈높이 글쓰기에는 가족들도 한몫했다. 특히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첫째 딸은 중3 시절부터 아빠 원고를 교정해주고 있다. 김씨가 사진으로 보여준 이 책 교정본에도 딸은 빨간 펜으로 "이 부분 전체적으로 잘 안 읽힘"이라고 적었다. 

"대학시절 돌 던지다 졸업도 늦게 했는데 IMF 이후 리눅스가 뜨면서 유명해졌어요. 리눅스는 곧 '자유'예요. 소스를 자유롭게 고칠 수 있어 한 번 확보된 사용자는 없어지지 않죠. 요즘 인터넷 서버 시장에서 유닉스가 죽고 리눅스 세상이 된 것도 그 때문이죠."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김씨는 리눅스원 개발이사를 맡아 검색사이트 엠파스 시스템을 리눅스로 개발하는 등 시스템 개발자로 활약했다.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꿨던 그는 2002년부터 유즈넷, 하이텔 게시판과 IT전문잡지 <마이크로소프트>를 시작으로 IT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고 자신의 블로그 '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를 통해 소설을 비롯한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안티'만으로는 힘이 없어요. 제가 이 책에서 하고 싶은 얘기도 우리 젊은이들이 구글 같은 공정한 검색 사이트나 페이스북을 능가하는 걸 만들자는 거예요. 사는 게 달라지려면 먼저 개인이 바뀌어야 해요."
#김인성 #IT #아이폰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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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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