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불안... 돌 지난 손자 외갓집 보냈다"
낙동강서 1.5km 떨어진 곳 '독극물'...식수 걱정

경북 왜관 미군기지 인근 주민 불안 고조... 환경단체 "충격적인 일"

등록 2011.05.22 18:15수정 2011.05.22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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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미군기지. 석전리 인근 담벼락 모습. ⓒ 최지용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미군기지. 석전리 인근 담벼락 모습. ⓒ 최지용

지난 1978년 왜관 일대 미군기지(캠프 캐럴)에서 중장비 기사로 근무했던 스티브 하우스가 미국 언론을 통해 기지 내에 대량의 고엽제를 묻었다는 충격적인 증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보도 직후 환경부와 경상북도, 칠곡군 등이 기지 주변 조사에 나서는 등 신속하게 대처하고 있지만, 주민들의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불안해하는 상황이다.

 

"여기서 더 살지 말지 고민하는 심정"

 

"이제 돌이 막 지난 손자가 있는데 외가에 보냈습니다. 아무래도 그게 제일 불안하죠. 고엽제가 암도 유발한다는데... 이런 문제로 반미감정이 높아질까 봐 걱정입니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 아곡리 주민 김한흥(55)씨는 22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아주 황당한 일이고, 아직 사실인지 확인이 안 됐지만 주민들은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와 민간에서 빠르게 조사를 할 수 있게 미군이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반미감정'을 걱정할 정도로 미군에 대해 우호적이었지만, 이번 고엽제 매립 문제에는 불안감을 감추지 않았다.

 

김씨는 "만약 사실이라면 우리는 40년 동안 그걸 모르고 지하수를 마시고 바로 그 옆에서 살았다"라며 "계속 몰랐으면 모를까 알고 나니 걱정이 많다, 정확하게 진상을 조사해서 명백하게 밝히고 주민들이 안전할 수 있게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가 사는 아곡리는 미군기지와 도로를 경계로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마을 길을 지나던 이은숙(66)씨도 "나도 몸이 아프고 마을에 아픈 사람들이 많은데, 고엽제를 묻었다는 소리가 나오니까 아픈 게 그것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걱정은 되지만 우리가 무슨 힘이 있느냐, 정부가 나서서 주민들 불안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석전1리 주민 김아무개씨가 미군기지와 맞닿아 있는 텃밭을 정리하고 있다. ⓒ 최지용

석전1리 주민 김아무개씨가 미군기지와 맞닿아 있는 텃밭을 정리하고 있다. ⓒ 최지용

아곡리와 같이 기지와 담벼락을 맞대고 있는 석전리 마을 주민들도 마찬가지고 불안에 떨고 있었다. 미군기지 담벼락 바로 인근 텃밭을 정리하던 석전1리 김아무개(여, 65)씨는 "며칠 전부터 뉴스에 나와 알고 있다"며 "걱정되고 불안하지만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라고 말했다. 김씨는 "1993년부터 상수도를 썼지만, 그 전에는 지하수를 마셨다" "그것 때문에 더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논란으로 가장 큰 우려를 낳는 것이 바로 식수 문제이다. 왜관 일대에 상수도가 들어온 것은 1990년대로, 일부 마을은 그보다 더 늦게 수돗물이 공급됐다. 석전1리보다 높은 지대에 위치한 석전3리(고지마을)가 그 가운데 하나다.

 

석전3리 이장 문병무(66)씨는 "여기는 지대가 높아서 수도가 못 들어 오고 2009년 7월에서야 수도를 썼다"며 "그전까지는 모두 지하수를 마셨다"고 말했다. 문씨는 "평생 농사를 지었는데 농토도 오염이 되지 않았을까 걱정"이라며 "마을이 미군기지와 딱 붙어 있어 그동안 피해를 많이 봤는데 여기에 더 살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심정"이라고 우려했다.

 

문씨 역시 2주일에 한 번씩 주말이면 집에 찾아오는 자녀와 손자들을 이날은 오지 못하게 했다. 그는 "우리야 살날이 얼마 안 남았지만 자식들에게까지 안 좋은 영향이 갔을까 봐 제일 걱정"이라며 "당분간 아이들에게 오지 말라고 말했다"고 말했다. 문씨에 따르면 왜관읍 이장협의회는 오는 6월 2일 정기적으로 열리는 전체 회의에서 고엽제 매립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문씨는 고엽제 매립지로 유력한 기지 내 헬기장의 위치를 마을에서 "서남쪽으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라고 말했다. 문씨가 말한 지점은 석전3리보다는 석전1리에 가까운 담장 근처로 보인다.

 

헬기장 유력 지점에서 낙동강까지는 불과 1.5km

 

위성지도 상 경북 칠곡군 왜관읍 위치(붉은 색 범위). 지도에는 기지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지만 산 전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고엽제 매립 유력지인 헬기장(붉은 원)은 기지 북쪽 석전3리에서 서남쪽으로 1km떨어진 곳으로 알려졌으며, 이곳은 낙동강 본류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이다. 또한 남쪽으로는 낙동강 지류인 동정천이 흐르고 이곳으로 미군기지에서 사용한 하수 등이 유입된다. ⓒ 최지용

위성지도 상 경북 칠곡군 왜관읍 위치(붉은 색 범위). 지도에는 기지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지만 산 전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고엽제 매립 유력지인 헬기장(붉은 원)은 기지 북쪽 석전3리에서 서남쪽으로 1km떨어진 곳으로 알려졌으며, 이곳은 낙동강 본류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이다. 또한 남쪽으로는 낙동강 지류인 동정천이 흐르고 이곳으로 미군기지에서 사용한 하수 등이 유입된다. ⓒ 최지용

문씨가 증언한 고엽제 매립 유력 지점인 미군기지 내 헬기장의 위치는 낙동강 본류에서 직선거리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고엽제를 담은 드럼통이 부식되는 등 외부 유출이 있었다면 지하수를 통한 낙동강 본류 오염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또한 기지와 불과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낙동강 지류인 동정천이 있다. 기지의 하수가 실개천을 따라 이곳으로 유입된다. 스티븐 하우스의 증언을 따르면 1970년대 묻힌 고엽제의 양이 약 10만 리터로 예상되는 가운데, 왜관 일대뿐 아니라 낙동강을 따라 오염이 하류 쪽으로 번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지역 시민사회도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지난 20일 기지 정문 앞에서는 대구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 20여 명이 철저한 오염 조사와 고엽제 매립 경위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공정옥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21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이라며 "민간단체가 포함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를 실시하고 모든 미군부대에 대한 오염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 처장은 이어 "23일부터 오전 11시에서1시까지 기지 앞에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시작하고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대책회의를 구성하기 위한 회의를 열 것"이라며 "지역주민과 함께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환경부 또한 23일부터 시민단체와 합동으로 기지 주변 지하수와 하천수를 채취해 검사하는 등 본격적인 환경영향 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진상을 확인하기 위한 기지내 조사는 언제 가능할지 불투명하다.

 

"이명박 대통령 일본 갔으니 여기도 와야"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미군기지 정문(GATE 1). 미군기지 캠프 캐럴은 왜관읍 일대 야산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 최지용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미군기지 정문(GATE 1). 미군기지 캠프 캐럴은 왜관읍 일대 야산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 최지용

한편, 왜관읍에서 만난 전아무개(52, 남)씨는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진 피해 지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씨는 "미군기지 내에 고엽제를 묻었다는 소식이 나오고 기지에서 일하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거의 확실한 사실이라는 말을 들었다"라며 "대통령이 지금 원전 피해를 입은 일본에 가 있는데, 주민들 불안감을 씻어 주기 위해서라도 미군기지를 방문해 사실확인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22일 개최되는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일본을 방문 중이다. 이 대통령은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함께 원전 사태로 고통받는 후쿠시마 지역을 이날 방문해 주민들을 위로했다.

#고엽제 #캠프 캐럴 #이명박 #왜관 #미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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