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가 여자 문제로 괴로워했다고?

[리뷰] <삼국지>의 새로운 해석 <삼국지: 명장 관우>

등록 2011.05.31 14:10수정 2011.06.0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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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명장 관우> 포스터 ⓒ 조이앤컨텐츠


중국은 물론 일본과 한국에서도 널리 사랑받는 <삼국지연의>. 이른바 '4서 5경'보다 더 많이 읽히는 서책. <수호전> <금병매> <홍루몽>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4대 기서' 가운데 하나. 대개 <삼국지>로 알려져 있는 <삼국지연의>는 서진 시대의 진수(233~297)가 쓴 정사 <삼국지>를 저본으로 삼아 명나라 때 나관중(1330-1400)이 쓴 작품이다.

근자에 <삼국지>에 기초한 영화가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2008)과 <적벽대전: 최후의 결전>(2009), <삼국지: 용의 부활>(2008) 등이 그것이다. 오우삼 감독의 영화는 주유와 공명의 대결을 전면에 배치했다는 점에서, 이인항 감독의 영화는 조자룡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최후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맥조휘와 장문강 두 감독이 만든 <삼국지: 명장 관우>가 상영되고 있다. <무간도> 연작을 감독한 맥조휘와 시나리오를 쓴 장문강이 공동으로 <삼국지: 명장 관우>를 만들어냈다. '도원결의' 삼형제 이야기가 아니라, '오관돌파' 혹은 '오관참육장' 내지 '천리주단기'의 관운장이 주인공이다. 영화는 조조와 관우의 복잡한 흉중을 둘러싸고 진행된다. 

왜 그는 조조를 떠나가는가: 관우

"관우가 없는 중원은 쓸쓸하다!"

김동성 선생이 번역한 <삼국지>에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대목이다. 너무도 느닷없고 어이없는 관우의 죽음이 몰고 온 쓸쓸함에 대한 소회였다. 나관중 역시 관우의 죽음에 무게를 실었던 셈이다. 대체 왜 우리는 관우에게 그토록 많은 찬사를 보내는 것일까.

"공(公)이 없는 천하에서 이제 누가 '의(義)'를 실천한단 말이오?"


손권에게 죽임을 당한 관우의 목을 낙양에서 받아든 위나라 왕 조조가 한탄하면서 내뱉은 말이다. 향년 58세로 양아들 관평과 함께 목을 잘려나간 관우. <삼국지: 명장 관우>는 어째서 관우가 한사코 조조를 떠나려 하는지, 그 인과관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것은 물론 '의'를 실천하고자 함이다. '도원결의(桃園結義)'로 알려져 있는 바로 그 '의'.

'의'를 설명하면서 조조는 말한다. 양(羊)과 아(我)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글자가 '의'라고. 부드럽기가 양과 같은 자아를 가진 사람이 실천하는 도가 의라는 얘기. 그것은 다름 아닌 관우의 풍모를 두고 한 말이다. 조조의 포로로 잡혀 있으면서도 양민을 따뜻하게 보살피면서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관우. 동시에 의연함과 당당함을 잃지 않는 관우.

허울뿐인 군왕 '헌제' 앞에서 완전무장한 조조와 휘하 장료들에게 대갈일성 호령하는 관우. 군신의 예법을 어기고 있음을 칼날처럼 지적하는 대쪽 같은 관우. 조조는 그런 관우의 기상과 82근 청룡언월도로 대표되는 관우의 무공에 깊이 빠져든다. 하지만 관우는 유비의 거처를 아는 즉시 조조를 떠나기로 약조한다. 하여 그는 떠나간다. 의를 위하여!  

왜 그는 관우를 잡지 못하는가: 조조

<삼국지>에서 가장 다채로운 해석을 낳게 하는 영웅 조조. 그는 점쟁이가 한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치세지능신 (治世之能臣), 난세지간웅 (亂世之奸雄)."

"세상이 화평할 때에는 능력 있는 신하요, 세상이 어지러울 때에는 간사한 영웅이라."

우리가 아는 조조는 늘 악당이었다. 돼지를 잡아 자신을 대접하려던 여백사 일가를 참살하는 장면에 이르면 누구나 그의 사악한 인품에 치를 떨게 된다. 하지만 어쩌랴. 도망자 신분으로 오해 때문에 그랬다면. 더욱이 가족의 몰살을 알고 난 후 여백사가 겪어야 할 분노와 절망과 증오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라면. 누구의 말처럼 "이왕 이렇게 된 거…."

반면에 조조는 인재를 중용하고, 천하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백성들을 위해 '둔전제도'를 실시하는 등 개혁군주의 면모도 보인다. <삼국지: 명장 관우>는 그런 점에서 매우 돋보인다. 허도에서 낙양으로 천도한 조조가 황무지를 개간하여 보리를 수확하는 장면이 나온다. 백성들과 함께 나란히 보리를 베면서 조조와 헌제가 노동하는 장면.

헌제는 관우에게 말한다.

"내게 따뜻한 고깃국과 쌀밥을 준 이는 조조였소."

조조는 백성에게 인기 없는 지도자였지만, 어떻게 그들을 통솔할 것인지 잘 아는 명민한 인간이었다. 게다가 유비를 찾아 떠나려는 관우를 순순히 보내주라고 명령한다. 영화는 조조의 면모를 다각도로 드러낸다. 관우를 붙잡아두려고 미인계까지 동원하는 비열한 조조와 관우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끝내 버리지 못하는 속 깊은 사내 조조가 공존한다.

서두르지 않고 권력에 접근해가는 노련한 야심가 조조와 단칼에 헌제를 베어버릴 수 있는 간웅 조조가 함께 한다. 적장 출신 가운데 쓸 만한 인재는 모두 거두면서도 사적인 욕심 때문에 주인을 바꾸려는 '장합' 같은 장수에게 냉랭한 인간. 이렇듯 조조는 모순적이며 흥미로운 인간이다. <삼국지>는 어쩌면 조조의 내면탐사 여행기인지도 모른다.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버리게 하지는 못한다."

욕심 사나운 권력의 화신 조조의 주장이다. 언제나 자신을 중심에 두고 세상과 권력을 바라본 조조. 그래서 영화 속의 관우는 나직하지만 확고하게 조조에게 말한다.

"당신은 유비 형님의 사람 인도하는 방식을 절대 배우지 못할 것이오." 

휘하 장수들과 백성을 먼저 배려하는 유비와 정반대의 입지점을 고수하는 조조를 어찌 동렬에 놓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다. 조조가 끝내 관우를 잡지 못하는 까닭은.

고전의 재해석

<삼국지>의 주인공은 유비, 관우, 장비를 주축으로 하는 촉나라의 군왕과 장수들이다. 여기에 제갈량과 봉추, 조자룡, 위연과 성충, 마초와 한수 같은 인물들이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이들은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의 삼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오나라와 위나라의 군왕들과 장수들이 총동원되어야 <삼국지>는 비로소 가능하다.

<삼국지>의 중심이 유비냐, 조조냐 하는 문제는 개인의 세계관부터 각 시대와 국가관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우리는 오랜 세월 유비를 정의의 편에 두고, 조조와 손권을 변두리에 세우는 방식에 익숙하다. 유비에게 유방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 하나로! 하지만 이것은 너무 편파적이다. 무너진 사직을 두고 권력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천하쟁패에서 누가 정통이고 누가 사파인가. 한고조 유방이 뭐 그리 대단했던가!

<삼국지: 명장 관우>는 우리에게 다른 문제점을 시사한다. 그것은 관우에게 매우 인간적인 혹은 남성적인 문제의식을 부여한다는 사실이다. 원작에는 없던 인물 기란의 존재가 그것이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인간 관우가 늘 마음에 품고 멀리서 바라만 보았던 기란을 그의 불멸의 여인으로 등장시킨 것이다. 유비의 후처가 될 여인 기란을 말이다.

<적벽대전>에서 소교가 반전주의의 화신으로 등장한 것처럼 <삼국지: 명장 관우>에서 기란은 관우를 뒤흔드는 여인상으로 그려진다. 조조를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다채롭게 그려낸 점도 적잖게 흥미로워 보인다. 헌제를 조조의 자동인형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판단하고 실행능력까지 있는 군주로 그려낸 점 또한 파격적이다. 이런 해석은 고전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매너리즘에서 영화를 해방시킨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글을 마치면서

견자단이 연기하는 관우는 부드러우면서 견고하고, 용맹하되 자애롭다. 실권자 조조 앞에서도 조금도 굽힘이 없지만, 군왕 앞에서는 한사코 예의를 지키는 인물이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속내를 내보이지 못하는 수줍은 인간이지만, 유비와 맺은 약조를 지키려 사지를 찾아가는 강고한 인물이다. 이런 인간에게 끌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조조는 어떤가. 시종일관 관우 근처를 배회하는 스토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천하쟁패를 위한 원대한 구상을 잊지 않는 전략가다. 헌제도 그의 능력을 인정하는 뛰어난 인간이지만,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비열한 간웅이기도 하다. 백성이 알아주지 않아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실행하는 실천가의 면모도 약여하다.

같은 하늘을 이고 같은 시대를 살아간 조조와 관우. 그들이 꿈꾼 천하는 정의와 평화가 물처럼 흐르는 세상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들의 길은 사뭇 달랐고, 그 결과 삶의 행적뿐만 아니라, 후세의 평가도 엇갈린다. 하지만 21세기 세계로 웅비하는 중국은 조조의 긍정적인 재평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듯하다. 장예모가 <영웅>에서 진시황을 재평가한 것처럼. 조조와 관우가 오늘의 우리를 본다면 뭐라 할 것인지, 궁금하다.
#<삼국지> #관우 #조조 #기란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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