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e사람16화

"반값등록금은 6월항쟁 같은 사회개혁 동력
20대 자녀 고난 막으려면 학부모가 나서야"

[e사람] 20대와 손잡은 '486세대' 정명수 반값등록금실현학부모모임 대표

등록 2011.06.10 09:37수정 2011.06.1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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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 앞에서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촛불집회'에 참석한 대학생들이 시민들로부터 건네받은 장미꽃과 손피켓을 들어보이며 반값등록금과 청년실업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어머니~ 어머니~"

지난 주말(4일) 저녁 광화문 KT 앞에서 열린 여섯 번째 '반값 등록금' 촛불 집회. 대학생 1천여 명이 애타게 부른 주인공은 '아버지' 정명수(45)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학부모 모임' 대표였다. 사회자가 정 대표를 여성으로 착각해 벌어진 해프닝이었지만, 그 외침에는 그동안 값비싼 등록금을 감당해온 부모 세대들을 향한 미안함과 동참 염원이 담겨 있었다.  

486세대들이 '반값 등록금' 발벗고 나선 까닭

"이제 5부 능선을 넘었습니다. 6월 안에 국회에서 반값등록금 법안을 만들도록 하고 여의치 않으면 2학기 등록금을 내는 8월, 나아가 내년 선거로 이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야 합니다."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학부모 모임(공동대표 정명수·최헌국, 아래 학부모모임)' 공식 출범을 하루 앞둔 8일 오후 마포구 연남동 사무실에서 정 대표를 다시 만났다. 병원 등에 의료용 모니터를 납품하는 중소업체에서 일하는 정씨는 요즘 생업도 잊은 채 자식뻘 되는 대학생들과 '반값등록금' 투쟁에 여념이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 심각해진 양극화 문제가 폭발한 거예요. 대학생들이 불을 붙이긴 했지만 가계에서 더는 등록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거죠. 또 사학 재단들이 재정 건전화 문제로 비판을 받아왔는데 양극화와 교육개혁 문제가 겹치는 게 바로 '반값 등록금'이에요."

연세대 85학번으로 87년 6월 항쟁을 겪은 정 대표는 연세대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부의장을 지낸 전형적인 '486세대(4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다. 그런 정씨가 대학생들의 등록금 투쟁에 뛰어든 건 어쩌면 '필연'이었다.


"전대협 동우회 회원 600여 명에게 반값 등록금 투쟁에 동참해달라고 메일을 보냈는데 반응이 뜨거웠어요. 어느새 486세대 자녀들이 대학생이거나 대입을 앞둔 시점과 맞아떨어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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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수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학부모 모임 대표 ⓒ 김시연


학부모 모임은 지난 4월 21일 '등록금 걱정에 잠 못 이루는 학부모' 10여 명이 참여연대 1층 카페에 모이면서 출발했다. 당시 안호덕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쓴 기사('7년 뒤 두 아이 대학 등록금 1억2천만원?')가 결정적 계기였다.

등록금이 매년 5% 정도 오른다고 가정하고 현재 초등학생인 두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는 시점의 4년 등록금을 계산해 봤더니 1인당 6000만 원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오자 비슷한 처지의 학부모들이 큰 충격에 받은 것이다. 안호덕 시민기자 역시 이 모임에 참여해 현재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이후 지난 5월 4일 교육과학기술부가 있는 광화문 정부중앙청사에서 연 반값등록금 촉구 집회를 시작으로 등록금넷, 대학생들과 함께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등록금을 걱정하는 학부모 모임' 인터넷 카페에는 8일 현재 학부모 50여 명이 동참했다.

"처음엔 1인 시위에 대학생들과 결합하자는 정도였는데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 '반값 등록금' 발언으로 일이 커졌어요. 아쉬운 건 아직 학부모 참여도가 떨어져요. 학자금 대출 때문에 피해 본 학부모들은 많은데 생업이나 자식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나서기가 쉽지 않아요. 일단 10일 촛불 집회에 가능한 많은 학부모들이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있어요. 오늘도 50명에게 전화 돌렸어요."

"등록금은 7배 올랐는데 과외 수입은 제 자리"

인터뷰 도중 한 일간지 기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등록금 관련된 절절한 사연을 가진 학부모를 소개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정씨 입에선 첫째가 대학에 들어간 쌍둥이 아빠, 아직 대학생은 아니지만 자녀를 넷이나 둔 부모, 등록금 때문에 대출을 많이 받았는데 둘째 입학 시점이 되자 첫째를 학비가 싼 태국으로 유학시킨 학부모 등 후보가 줄줄이 이어졌다.

"취업 후 등록금 상환제는 자녀 이름으로 대출 받아야 하는데 어차피 연대 보증인으로 부모를 세워야 해요. 3개월만 연체해도 자녀가 신용불량자가 되는데 그럴 바에야 부모 이름으로 대출받게 해달라는 요구가 많아요. 한 학기는 자녀 이름을 대출하고 다음 학기는 부모가 따로 대출받기도 하고."

실제 이날 국회 대정부질의에선 대학생과 대학원생 학자금 대출자 가운데 신용불량자가 3만 명에 이른다는 자료가 공개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사실 87년까지 대학에서 '등투(등록금 투쟁)' 안 했어요. 그런데 88년 올림픽 이후 물가가 오르고 등록금 인상률도 높아지면서 등록금 투쟁이 시작된 거죠. 85년까지만 해도 사립대 한 학기 등록금이 60만 원 정도였는데 당시 대학생 과외비가 과목당 15-20만 원 정도여서 2-3개만 해도 대학생 스스로 학비를 해결할 수 있었거든요. 지금은 그때보다 등록금은 7배가 올랐는데 과외비는 20-30만 원 수준으로 1.5배 정도 올라 겨우 생활비 버는 수준이에요."

2011년 현재 사립대 등록금은 1년 평균 767만7000원, 국공립대도 425만6000원에 이른다. 웬만한 직장인 두세 달 월급으론 어림없는 데다 대학생 자녀가 둘 이상이면 대출은 불가피하다. 어쩌다 등록금이 학부모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을까.

"대학 진학률이 80년대 중반만 해도 25%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82% 수준으로 올랐어요. 예전에는 대학 안 가는 자녀도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자녀가 대학을 가는 셈이죠. 특히 김영삼 정부 이후 사립대 등록금을 자율화하면서 과도하게 오른 데다 요즘 청년 실업과도 연결돼요. 대학생 300만 명이 넘었는데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고 등록금 마련하려 휴학하면서 6-7년 다니다 졸업하는 게 대세에요. 그만큼 가계 부담도 높아진 거죠."

"반값등록금 해결되면 교육개혁-양극화 문제도 풀려"

'반값 등록금'엔 진보 보수를 떠나 찬반양론이 뜨겁다. 진보세력 가운데도 대학 서열화, 대학 구조조정 등 근본적인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상태에서 국민 세금을 대학에 쏟아 붓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굳이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취학 전 아동 의무교육, 고교 의무교육, 그 다음이 대학이지만 지금은 선후를 따지기 앞서 사람들 피부에 와 닿고 출혈이 가장 큰 등록금 문제가 먼저 폭발한 거예요."

"대학 서열화 문제와 입시 문제는 더 근본적인 문제고 등록금은 서민 대중 문제에요. 지금 대중적 관심사로 떠오른 등록금 문제를 풀면 여러 문제가 꼬리를 물고 나올 거예요. 국가가 대학을 통해 등록금을 지원하면 사립대 재정 문제에 간섭할 수 있게 되고 대학 재정을 건전화시켜 등록금을 더 낮출 수도 있어요."

정 대표는 '반값 등록금'이 하나의 상징이 돼 대학뿐 아니라 전반적 교육 개혁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사회 양극화 해소와 사회-경제 민주화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값 등록금을 계기로 먼저 대학 교육을 개혁해야 해요. 반값 등록금 공약이 사학법 개정을 반대했던 한나라당에서 처음 시작됐다는 것도 더 의미가 있죠. 80년대 '호헌철폐 독재타도'가 '직선제' 논쟁으로 전환해 성공했듯이 대학 교육과 양극화 문제도 '반값 등록금'으로 풀어야 해요."

"20대가 문제 제기하고 나선 것도 바람직해요. 이번 일을 계기로 20대 자식 세대와 부모 세대 간에 대화 통로가 생겼어요. 중요 선거 국면에서 486세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그 자녀들이 투표권을 갖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어요. 적어도 다음 선거에선 큰 영향력을 가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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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학부모 모임 발족식 및 학부모, 등록금 투쟁 동참 선포 기자회견'이 9일 낮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가운데, 참석자들이 '반쪽 사과'그림과 "미안하다 사랑한다 반값등록금 쟁취하자!"는 구호가 적힌 스티커를 옷에 붙이고 나왔다.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학부모 모임(공동대표 정명수, 최헌국)은 6.10 반값등록금 국민촛불대회 적극 참여하기, 등록금넷 무기한 1인 시위 참여하기, 대학생 촛불집회에 간식 사서 지지방문하기, '사랑의 반쪽 사과' 나누기 캠페인 등의 활동을 할 것이라 밝혔다. ⓒ 권우성


"부끄러운 486세대, 20대 자녀에게 짐 안겨선 안돼"

정 대표가 반값 등록금 투쟁에 뛰어든 건 무엇보다 자기 자녀, 나아가 20대 세대를 향한 안타까움과 부끄러움 때문이다. 정 대표는 대학교 2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인 두 자녀를 두고 있다. 부인 역시 대학원 박사 과정을 밟고 있어 이미 두 사람 몫의 등록금을 감당해야 하는 처지다.

"지금 첫째 모습을 보면서도 카이스트 학생의 자살이 남 얘기가 아니라 느껴요. 자연대 다니는데 이공계 장학금 쿼터 채우느라 애쓰는 게 안쓰러워요. 첫째가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어 교양과목을 신청했더니 이미 프랑스어를 잘 아는 학생이 대부분이었다는 거예요. 교양보다 학점 때문에 듣는 학생이 더 많더라는 거죠. 지금 대학은 학점 전쟁이에요. 취업과 학비 부담이 크다 보니 20대가 사회에서 제 역할을 못해요. 등록금 문제가 해결되면 지금 대학생들 모습도 달라질 거예요."

학부모 모임 상징은 '반쪽 사과'다. 여기에는 '반값 등록금'과 함께 부모세대가 자녀세대에게 그동안 함께하지 못해 '사과'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외국의 오렌지 혁명, 재스민 혁명처럼 '학부모의 애플 혁명'을 시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 486세대는 사교육 붐을 일으키고 기러기 아빠를 만든 부끄러운 세대에요. 부동산 값이 올라 나름 여유로운 세대이기도 하죠. 그만큼 지금 20대에게 어려운 사회구조를 만들었어요. 지금 20대는 고난의 길이 눈에 보여요. 지금 우리 세대가 해결하지 못하면 다가올 초고령화사회의 짐을 지금 20대가 다 지고 가야 해요. 당장 등록금, 취업 뿐 아니라 미래 사회 문제인 거죠."
#정명수 #반값등록금 #학부모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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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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