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심는데 최저임금? 농촌에 싸움났습니다

이주노동자 노동력 의존 큰 농촌... 최저임금·근로조건 관련 잡음 끊이지 않아

등록 2011.06.16 08:37수정 2011.06.1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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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무더워지면서 점점 바빠지는 곳이 있다.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 구할 수 있는 일손이라곤 고령의 어르신들과 새내기 결혼이주여성, 이주노동자뿐인 농촌이다. 구제역이 뜸해지고, 작물이 자라기에 좋은 계절이 되면서 농촌은 일손이 모자란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 모자란 일손은 누가 채울까.

농어촌 전체 결혼의 40%를 넘는 국제결혼을 통해 입국한 결혼이주여성과 '귀한 일손'인 이주노동자들은 전통적인 농번기엔 들판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농한기로 치부하던 겨울엔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한다.

'큰 일꾼' 이주노동자, 끊이지 않는 잡음

어느 사회나 농촌은 가장 보수적이다. 그런데 우리 농촌은 인적 구성만 놓고 보면 우리사회에선 가장 국제화된 공동체가 되어 속 터지는 갈등을 겪고 있다. 그 갈등 속에서 상처를 입고, 입히는 이들은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적 배경 속에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서로 원망하고 손가락질한다.

고용주들은 부지런함과 성실을 미덕으로 여기며 밤낮으로 일해도 불평 한마디 않는 한국의 농부들을 떠올리며, 이주노동자들이 게으르고 태업을 일삼는다고 욕을 한다. 반면 이주노동자들은 고용주들이 욕을 일삼고, 근로계약을 지키지 않는다고 원망한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는 영국 속담이 있다. 이주노동자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엎친 데 덮친 격인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가령, 폭행을 당했다며 상담을 의뢰한 사람의 형편을 살피다 보면 폭행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폭언과 열악한 근로조건은 공통사항이고 최저임금, 근로계약 위반 등이 추가된다.

반면 그들을 고용한 고용주들은 근로계약을 위반한 적도 없고, 폭행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는 대개 쌍방폭행이었으며, 그 폭행은 이주노동자가 유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쌍방의 주장이 상이하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만한 협의를 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감정이 격해질 대로 격해진 이들은 쌍방 고소나 고용노동부 진정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상당 부분 예방이 가능한데도 이를 지도 감독해야 할 기관들이 수수방관하거나 조장한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경기도 여주에 소재한 시설원예업체에서 일을 하던 베트남인 꾸엔(20)은 지난 8일 같이 일을 하던 사장이 갑자기 거름포대를 자신의 얼굴에 집어던지고 목울대를 움켜쥐며 욕설을 하자, 112에 전화해 도움을 호소했다. 그러자 사장은 자신도 폭행을 당했다며 맞고소했다.

사장은 꾸엔이 부추를 심기 위해 들고 있던 호미를 집어던져서 자신이 맞았고, 자기가 화를 낸 것은 꾸엔이 일부러 부추를 가지런하게 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폭행 부분은 일방 폭행과 쌍방 폭행이라는 양측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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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 피해 사진 사장이 목울대를 움켜줬던 흔적이 보인다. ⓒ 고기복


반면 꾸엔의 근로계약서를 보면, 고용노동부 고용센터가 발급한 표준근로계약서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최저임금이 월 226시간-97만 6320원인데, 꾸엔의 경우 월 280시간-97만 6320원을 받고 있었다.

시골에 최저임금이 어디 있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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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이하의 근로계약 "연장, 야간, 휴일근로에 대해서는 시간외 근로수당 지급"이라고 표준근로계약서에 기재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280시간 근무에 최저임금으로 계약이 돼 있고, 꾸엔은 실제 280시간 이상을 일을 했다. ⓒ 고기복


명백한 최저임금법 위반 사실을 기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관할 고용센터 직원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근로기준법 제63조에 의하면 농축수산업의 경우,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시간과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고용허가제 농업분야의 경우 근로시간·휴일·휴게 적용배제 대상이다. 그러나 이는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하고 44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조항과(49조 근로시간)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조항(53조 휴게, 54조 휴일) 등의 적용이 배제되는 것을 의미하지,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또 야간근로에 대한 가산수당 지급 규정이나 연월차 유급휴가 규정을 배제한다는 것도 아니다. 고용허가제 농업분야 표준근로계약서에도 "연장, 야간, 휴일근로에 대해서는 시간외 근로수당 지급"이라고 분명히 명시돼 있다.

그 외에도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시간과 휴게와 휴일에 관한 예외 규정에 대한 해석이라 할 수 있는 대법원 판례는 1993년에 나온 바 있고, 이주노동자와 관련해서도 2009년 판례가 있다.

2003년 대법원은 "근로자가 현실로 작업에 종사하지 않는 대기시간이나 휴식·수면시간이더라도 그것이 휴게시간으로서 근로자에게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것이 아니고, 실질적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놓여있는 시간이라면 이는 근로시간에 포함된다"고 해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를 엄격하게 적용할 것을 판결한 바 있다. 2009년에는 태국 출신 이주노동자의 연장근로 소송에서 임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두 판결에 비춰보면, 꾸엔은 근로계약서상의 280시간 이상을 일했지만, 최저임금으로 급여를 지급받고 있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셈이 된다.

이에 대해 고용주는 "농업의 경우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고용센터에서 말을 해 줬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일을 하면 많이 주고, 게으르면 적게 준다. 근로계약은 큰 의미가 없고, 자신은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꾸엔은 "사장이 근로계약서에서 정한 휴게시간도 지키지 않았고, 급여도 일한 것보다 적게 주고 있다"고 했다. 결국 양측 갈등의 골을 더 깊게 만든 것은 갈등을 예방해야 할 고용센터인 셈이다.

이같은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 조항은 사건을 개별화하지 않는 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입법기관이 나설 필요가 있다.

고용센터 표준근로계약서에 "연장, 야간, 휴일근로에 대해서는 시간외 근로수당 지급"이라고 기재돼 있긴 하다. 하지만 10시간을 일하고도 8시간 임금만 지급 받을 경우에는 개별적으로 문제삼지 않는 이상 해결할 수가 없다.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좀 더 명확한 법 해석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주노동자랑 싸우면 한해 농사 망칩니다

이주노동자와 농업종사자들이 갈등을 겪게 되면 피해자는 일방인 경우보다 양측일 때가 많다. 특정시기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망치는 농업의 특성상, 수확기나 파종기에 낮은 급여와 근로계약 위반을 이유로 이주노동자들이 태업 혹은 파업을 할 경우, 그 피해는 불 보듯 뻔하다. 요즘 농촌에서 인력 구하기는 하늘에서 별 따기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양측 피해를 사전 예방하는 차원에서라도 관련 법규를 개정하고, 근로기준법 준수를 고용주들을 대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농촌 현실을 보면 상처투성이다. 농사라는 것이 어떤가? 풍작이면 금배추네, 금무네 언론이 난리법석을 피우며 가계 부담이 어쩌고 가계 주름 어쩌고 한다. 반면 흉년이면 중국산이라도 빨리 수입해서 소비자들에게 안정적인 공급을 해야 한다고 도시 소비자들 입장을 우선 대변한다. FTA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집단은 농축어업 등 1차 산업 종사자들이다. 가장 큰 고통과 소외를 받는 집단이, 또 다른 사회적 약자인 이주노동자의 희생을 강제하는 현실은 못된 시어머니 밑의 못된 며느리 꼴이다.

단순히 이주노동자를 값싼 노동력이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해선 안 된다. 필요에 의해 데리고 들어온 노동력에 대해서는 차별 없는 처우, 따뜻한 정감을 전해주어야 한다. 또 이주노동자를 도입하는 측에서도 국내 농촌현실에 대한 충분한 사전교육과 안내를 통해 제조업과 다른, 독특한 문화와 근로여건이 있음을 충분히 인지시켜 서로 이해하는 가운데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그들의 삶의 배경이 쌀농사를 짓는 농촌인 경우가 많다. 우리와 정서적 밀착성이 강할 수 있다는 말이다. 비록 말은 잘 통하지 않더라도 흙을 밟고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통할 수 있는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입법, 행정기관, 고용주, 이주노동자, 지역공동체가 함께 노력한다면 농촌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과 공존을 모색하는 노력이 결코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표준근로계약서 #최저임금 #근로기준법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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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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