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굶어 죽지 마... 그냥 밥 먹어"

[장윤선의 톡톡! 정치카페] 강상구 진보신당 대변인의 이유 있는 '단식'

등록 2011.06.23 16:08수정 2011.06.2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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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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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2인분에 참치김밥, 김치김밥 그리고 라면 2인분.

 

아따, 많이도 먹네! 하셨죠? 지난 21일 기사마감에 쫓기던 저는 국회 후생관 분식점에서 가장 빠른 점심 메뉴를 골랐습니다. 우연히 진보신당 박은지 부대변인 등과 합석하는 바람에 메뉴가 많이 늘었습니다. 제가 다 먹진 않았다는 얘기죠. 후후.

 

한데 박 부대변인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왜 안 먹느냐고 물으니 속이 안 좋다고 하더군요. 스트레스받으며 과로에 시달려 속이 탈 난 모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이나 커피는 어떠냐고 했더니 그것도 개인 사정으로 어렵다고 하더군요. 살짝 이상했지만, 위가 단단히 화난 모양이라고 치부했죠. 건강하시라 당부하고 헤어졌습니다.

 

22일 오전 권영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은 19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누군가는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아야 통합진보정당의 견인차 노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적임자가 본인이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3선의 민주노동당 출신 국회의원. 참 탐나는 역사적 평가였을 텐데, 그는 툭 내려놓더군요. 아니, 2007년엔 기어코 대선 출마를 결행하더니 왜?

 

더 급한 게 있다고 했습니다. 통합진보정당 건설이죠. 26일 진보신당 대의원대회에서 진보통합 합의안이 깨지면 정말 큰 일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내년 총선은 진보정치 역사를 또 한 번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이걸 엎어트려서는 안 된다고 절규했습니다. 제발 기사를 '권영길 19대 총선 불출마' 이렇게 쓰지 말고, 통합진보정당의 필요성을 강조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절박한 호소로 들렸습니다.

 

식빵에 계란, 오미자 효소 그리고 '죽지마'

 

진보신당에도 권영길과 같은 마음으로 밥까지 굶으며 자신의 간절한 호소가 당원들에게 전달되기 바라는 이가 있습니다. 누구냐고요? 강상구 진보신당 대변인입니다. 그는 보름 전쯤 '진보신당 하나로' 운동을 제안하고, 당내 통합파와 독자파가 '하나의 길'을 가자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20일부터 사흘째 단식 중인 그는 진보신당 당원게시판에 '단식일기'를 연재 중이기도 한데요. 기자들에겐 "부끄럽고 초라한 단식"이라며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알면? 쓰는 거죠.

 

그러나 전 그의 단식일기를 읽다가 울컥했습니다. 올해 여섯 살 난 그의 아들 미루 때문입니다. 시간대별로 마치 트윗을 하듯 올린 그의 일기 중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단식 둘째날 같습니다.

 

오전 5시 : 왼쪽 종아리에 쥐가 나서 깼습니다. "으..." 소리만 겨우 내다가 한참 뒤 풀려서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문득 예전에 단식할 때도 이랬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오전 7시 30분 : 와이셔츠를 다렸습니다. 아이가 "아빠~"하고 부릅니다. 잠에서 깬 모양입니다.

 

오전 8시 : "아빠 그냥 밥 먹으면 안 돼?"라고 아이가 물어서 "며칠 있다 먹을게" 했습니다. 아이와 아이 엄마는 식빵에 계란을 넣어서 쩝쩝 먹었습니다. 강한 정신력만이 살길입니다.

 

오후 4시 : 충남 이재기 동지가 오미자 원액을 두 병 가져오셨습니다. 특별히 저를 주려고 가져오신 건 아닙니다. 효소 단식할 때 이런 것도 먹는다면서 한 잔 타 주셨는데, 우와 아주 좋습니다. 며칠 이걸로 때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중앙당 냉장고를 열어 보니 벌써 반병이 사라졌습니다. 탐욕스러운 동지들입니다.

 

오후 10시 : 당원협의회 사무국장님이 제 차를 몰고, 아이를 데리러 갔습니다. 제가 집중력이 떨어져서 운전을 하면 안 될 것 같아 부탁한 겁니다. 아이를 찾았는데, 차를 타더니 엉엉 웁니다. "아빠, 굶어 죽지 마. 그냥 밥 먹어…." 다시 밥 먹게 되면 더 튼튼해질 거니까 걱정 말라고 했습니다. 사무국장님은 늘 저 때문에 고생입니다.

 

22일 오후 강 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역시 26일 진보신당 대의원대회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이날 통합안이 부결되면 어떻게 하나, 무엇이 됐든 '진보신당은 하나로 가자'고 하더군요. 그리고 말했습니다. 단식은 하지만, 단식투쟁은 아니다. 판때기 깔고 피켓 세우고 남에게 보여주는 그런 건 아니다. 그냥 당원들에게 통합에 대한 동의와 지지를 얻고자 호소하려는 몸짓이라고 말이지요.

 

햄버거가 먹고 싶다는 대변인

 

강상구 진보신당 대변인(자료사진) ⓒ 연합뉴스

강상구 진보신당 대변인(자료사진) ⓒ 연합뉴스

그래서 밥은 굶지만 입이 바싹 마를 때 물은 되는 대로 먹고 있고, 죽염이라기보다는 그냥 집에 있는 소금을 조금씩 입에 털어 넣는 수준이라고. 노상 걸려오는 기자들의 전화는 받고 있고, 현안 논평도 계속 쓰고 있으며, 무엇보다 육아는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업무 중 하나라고 소개했습니다.

 

그의 호소가 먹히고 있는 걸까요? 단식 사흘 만에 '진보신당 하나로 운동'에 서명한 당원이 108명, 대의원이 34명입니다. '진보신당 하나로 운동'이 무엇이냐고요? 첫째, 자기 입장보다 진보신당이 단결해 함께 가는 게 더 중요한 가치다. 둘, 창당목표인 진보의 재구성을 이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셋, 당협과 부문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넷, 민주적 절차로 결정된 당의 진로에 함께 한다.

 

이렇게 되니까 점점 26일 진보신당 대의원대회가 궁금해지죠? 진보신당 당원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요? 이제 만 나흘 남았는데 그 기간 강 대변인은 계속 밥을 굶고 호소하겠지요? 그의 아들이 아빠 걱정을 해도, 아마 그는 앙상해진 쇠골뼈를 드러내며 진보신당 중앙당사에 얼굴을 내비칠 것 같습니다. 그래야 효과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박은지 부대변인은 왜 밥을 안 먹었을까요? 알고 보니 강 대변인 때문이래요. 대장이 밥을 굶는데 쫄따구가 어떻게 밥을 먹느냐고. 강 대변인이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둘 다 세트로 밥 굶다 나중에 손 떨려 논평 못 쓰면 그땐 어쩌려고."

 

그렇지만 후배의 결단을 몹시 고마워하는 눈치였습니다. 소수정당 진보신당 대변인실에는 많지 않은 상근자가 일하고 있는데, 그래서일까요? 참 끈끈해 보였습니다.

 

단식 한 번쯤 해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사흘째가 가장 힘들다는 것을. 그도 슬쩍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지금 왜 이렇게 햄버거가 먹고 싶죠?"

 

26일 대의원대회 끝나고 동시에 그의 단식도 끝나면 제가 그에게 햄버거를 쏘기로 했습니다. 그 정도의 돈은 제게도 있거든요. 음하하하하하하!

#진보신당 #강상구 #대의원대회 #햄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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