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보다 더 재밌는 '교사회'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 ⑤] 서울형 혁신학교 첫번째 원칙 '민주적인 학교 운영'

등록 2011.06.27 09:10수정 2011.06.2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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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 3월부터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된 신설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재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과 우리가 꿈꾸던 꿈의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는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입니다.
<기자말>

지난 3월부터 시작한 서울형 혁신학교는 초·중등 모두 23개 학교입니다. 이 중에서 초등학교는 열 군데입니다. 2학기에 몇 군데 학교가 새로운 혁신학교로 지정된다고 합니다. 혁신학교를 시작한 지 사개월이 되가니 학교마다 나타나는 그림들이 보입니다.

아직 출발점에서 몇 발자국 떼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온 우리 학교 모습을 스스로 평가해 보자면, 그래도 첫발자국을 잘 떼어서 방향을 잘 잡아 잘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앞으로도 잘 갈 것이라는 예감이 듭니다.

부족한 점 투성이지만 우리 학교의 '나름 성공사례'가 알려지면서 최근 우리 학교를 둘러보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교사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우리 학교에 오는 모습을 보고, 문득 예전에 좋은 학교, 좋은 교육을 배우려고 뜻을 같이 하는 교사들과 스위스·핀란드·스웨덴·벨기에·프랑스·미국 같은 머나먼 나라를 돌아다니던 생각이 나면서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특별히 내세우는 교육이 따로 없는 학교

언론에서도 취재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장 먼저 물어보는 말이 '그 학교의 특색 교육이 무엇입니까?'입니다. 그래서 '어떤 특색교육을 말하는 건가요?' 하니 다른 학교들처럼 '체험학습이니, 영어교육이니, 독서교육같은 것' 같은 특색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학교는 한 가지 특색교육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대신에 기본 수업을 충실하게 해서 모든 교육을 수업시간에 다 녹여서 진행하지요'하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학교는 특별히 내세우는 교육이 없습니다. 내세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연구시범학교들이 한 가지 특색교육을 진행한다고 기본수업을 못하게 되는 상황을 너무나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모든 교육은 '특별하게' 진행할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 속에 녹여서 기본교육에 충실하자는 것이 처음 우리 학교 교사들이 합의한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학교운영을 위해 세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번째 원칙은 학교운영을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전체 교사의 충분한 논의와 협의로 진행하기입니다.

서른 해째 맞는 교직경력으로 봤을 때 우리 나라 학교사회에는 민주주의가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아니 확실하게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민주적인 절차는 형식만 있을 뿐, 내용을 보면 지시와 전달만 있고, 다른 생각을 논의할 자리가 없습니다.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가르치지만, 정작 교사 스스로는 학교에서 자신의 소신있는 발언을 할 기회를 갖기 힘듭니다. 아마 정년퇴직 때까지 회의시간에 손을 들고 자신의 얘기를 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습니다.

교사의 의견수렴은 말뿐이고, 대부분 학교운영은 관리자의 뜻에 따라 좌지우지됩니다. '어린이를 위한다'는 말로 포장한 채 관리자의 업적을 세우는 일만 하게 되고, 비민주적, 비교육적인 일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 솔직한 우리 나라 학교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 교사들은 혁신학교를 만드는 첫 번째 원칙으로 '민주적인 학교 운영'을 꼽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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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교사회의 모습 우리 학교 모든 학교운영은 ‘전체 교사회’에서 논의해서 결정합니다.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도 경력이 많은 교사도 올해 갓 발령을 받은 신규교사도 모두 1/n로 참여합니다. ⓒ 이부영


교사회만 하면 힘들고 어려운 일도 다 해결됩니다

우리 학교 모든 학교운영은 관리자의 일방적인 지시와 전달이 전혀없고 모두 '전체 교사회'에서 논의해서 결정합니다.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도 경력이 많은 교사도 올해 갓 발령을 받은 신규교사도 모두 1/n로 참여합니다.
   
교사회는 기본으로 일주일에 한번 하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더 하기도 합니다. '교사회'에서는 그 어떤 주제도 누구라도 안건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안건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충분히 얘기하고 듣습니다. 얘기하다가 더 이상 반대 의견이 없을 때 자연스럽게 의견이 결정이 됩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결정된 사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다시 또 회의를 엽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봤을 때 충분하게 논의한 일은 문제가 없지만, 급해서 논의가 부족하거나 논의를 하지 않은 일들은 반드시 문제가 생기곤 했습니다. 그래서 충분하게 논의를 하기 위해 퇴근 시간을 넘길 때가 많습니다.

생각해보니 교사들조차도 살아오면서 회의다운 회의를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들 회의를 힘들어했습니다. 아주 작은 사안을 두고 한없이 길어지는 회의를 못견뎌하면서 '회의를 좀 더 효율적으로 진행하자', '주제를 벗어난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말자', '퇴근시간을 지키자' 같은 불만섞인 이야기도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회의를 거듭할 수록 회의시간에 나온 얘기는 어느 얘기도 쓸데없는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회의하는 동안 철학이 공유되면서 회의가 점점 빨라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혹시 망신을 당할까 의견을 내는 일을 조심스러워 하거나,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을 불쾌하게 여기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얼마든지 '다른 생각'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의견을 내 놔도 괜찮은 분위기여서 처음 회의를 시작할 때보다 점점 의견을 말하는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회의내내 의견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은 지루할 법도 한데 우리 학교 교사회에서는 회의를 지루해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봐도 참 신기합니다.

어렵고 힘든 일도 교사회에서 의논하면 쉽게 해결되기 때문에 교사들은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거 교사회 하면 돼!'하면서 교사회를 기다립니다. 교사회가 엄숙하고 따분할 거라는 생각과 달리 우리 학교 회의는 아주 재밌습니다. 웃음소리가 자주 들려서 '개콘'보다 더 재밌다고 합니다. 회의를 끝내고 나면 가슴이 후련하고 해야할 일과 갈 방향이 보입니다.

교사회의를 하면 업무경감이 저절로 됩니다

교사회의에서 모든 얘기가 충분히 다 논의되어서 결정되기 때문에 일반학교에서 지시전달 체계로 운영되는 부장회의를 따로 열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학교는 부장회의같은 성격의 기획회의는 있지만, 전체 교사회의에서 모든 것이 논의되고 결정되다보니 기획회의를 따로 할 일이 없어져서 안합니다.

회의 때 결정된 사항을 모든 교사들과 공유하게 되니 별도의 기안 조정 작업이 없어져서 업무추진이 쉽고 업무를 진행하는 시간이 단축되었습니다. 따로 업무경감 방법을 찾지 않아도 교사회의를 잘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업무경감이 저절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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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회 모습 어렵고 힘든 일도 교사회에서 의논하면 쉽게 해결되기 때문에 교사들은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거 교사회 하면 돼!’하면서 교사회를 기다립니다. ⓒ 이부영


또한 오랜 시간 논의하다보니 다른 사람의 얘기 속에서 교육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듣고 모르던 사실도 알게 되어 저절로 연수가 되면서 교사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교육관을 새로 정립하게 되고 교육철학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시와 전달이 아닌 회의를 통해 학교를 운영하다보니 교사들이 자존감과 자긍심이 높아지면서 주인의식과 책임감이 높아졌습니다.

전에는 학교의 주인은 '어린이'라고 하는 것이 말뿐이었지 한번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이제는 학교가 모두 '우리 학교'라는 생각이 들어서 학교 모든 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의견들을 듣는 회의를 통해 아이들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수업방법도 저절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동안에 형식적으로 운영하던 학급회의도 교사회에서 배운 방법대로 운영하니 이제야 진짜 민주적인 학급회의를 진행하게 되었고, 아이들의 말이 이제야 제대로 들린다고 합니다.

회의를 하면서 그동안  배우자와 자녀와의 대화모습을 곰곰히 반성해보면서 상대방의 말을 듣게 되고, 대화방법이 저절로 바뀌어서 관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혁신학교에서 그 무엇보다 가장 먼저 이루어야 가장 중요한 일이 교사회를 활성화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교사회에서 그야말로 민주적으로 학교운영전반을 의논하고 결정하면 혁신학교의 98%는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교사회를 통한 민주적인 학교 운영은 혁신학교 뿐만 아니라, 교사들이 자존감을 잃고 있는 우리 나라 모든 일반학교에서도 하루빨리 이루어야 할 일입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에는 혁신학교 만들기 두번째 원칙 '혁신학교는 새로운 것 만들기 전에 아닌 것부터 없애기부터' 라는 글을 올립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에는 혁신학교 만들기 두번째 원칙 '혁신학교는 새로운 것 만들기 전에 아닌 것부터 없애기부터' 라는 글을 올립니다.
#서울형혁신학교 #민주적학교운영 #교사회 #초등교육 #서울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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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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