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시장통서 맛본 감자탕, '보양식' 됐어요

[공모 - 이 여름을 건강하게 나만의 보양식] 우리집 감자탕 끓이는 비법은...

등록 2011.06.27 11:36수정 2011.06.2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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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마당이 있는 고향집을 떠나 온 가족이 도시의 변두리 단칸방으로 이사를 했다. 낯설고 물설은 타향에서 궁핍한 살림살이에 많이 힘들어하며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날이 길어지자 아버지는 시장통의 어느 허름한 식당으로 어머니와 나를 데려갔다. 주먹만한 뼈에 살이 붙어있는 뚝배기 한 그릇이 어머니 앞에 놓였다.


"어이, 뼈를 푹 고은것이네 이것 좀 먹고 힘 좀 내소. 어찌것는가 이렇게 된 이상 새끼들이랑 먹고 살라면 자네가 기운을 내야제."
"엠병할 놈의 인간땜시 내가 별롬의 꼴을 다 보고산다. 아이고 내 팔자야."

아버지의 빚보증 때문에 전 재산을 모두 넘기고 숟가락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채 동네사람들의 눈을 피해 야반도주 하듯이 고향을 떠난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다. 억장이 무너질듯한 화가 가슴에 맺혀있는데 밥 한술 온전히 뜨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으리라. 어쩌다 밥한술 뜨더라도 체하는 날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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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과 고추장을 똑같은 비율로 넣어주고 배추우거지가 들어간다. ⓒ 오창균


결혼 후, 어머니와 외식을 하러 갈 때면 가장 무난한 것이 감자탕이었고, 어머니도 입맛에 맞는다고 했다. 때로는 아들이 오는 날에는 한 솥 가득 감자탕을 끓여놓기도 했다. 감자탕을 먹을때면 아버지를 따라 시장에서 처음 먹어본 그때가 떠오르곤 하는데 어머니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시절의 기억이리라.

"어서오세요 사장님, 오랜만에 오셨는데 뭘 드릴까요."
"돼지등뼈 있으면 한 마리만 줘요."

가끔씩 가는 동네근처의 시장에 갈때마다 들려보는 정육점의 직원 말을 빌리자면 일부러 살을 많이 남겨두고 손질을 하기 때문에 먹을 것이 많다고 한다. 기다란 등뼈를 저울에 달아보니 7700원이 찍힌다. 우수리는 띠어버리고 7천 원에 흥정을 넣었더니 돼짓값이 너무 올라 마진이 적다며 7500원만 달라고 한다.


처음 집에서 감자탕을 할 때는 전문식당에서 먹던 그 맛을 찾아내려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는데 번번히 실패하다 지금의 맛에 이르게 된 것은 완전한 핏물제거와 고추장과 된장의 비율을 똑같이 맞추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원한 국물맛을 위해서 배추우거지가 들어가야 한다. 김장철이면 밭에 버려진 배추잎을 모아다가 푹 삶아서 냉동실에 꽉꽉 채워놓고 일년내내 국거리에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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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에 걸쳐 푹 삶아낸 감자탕 한 솥이면 우리가족이 세끼에 걸쳐서 넉넉히 먹을 수 있다. ⓒ 오창균


땀을 많이 흘리고 기운이 풀리는 여름철에는 뼈를 푹 고와낸 진한 국물이 담긴 고깃국을 먹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당시 부모님을 따라 처음 맛본 감자탕의 기억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한 솥 푹 끓여낸 감자탕은 가족들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이며 별다른 반찬이 없더라도 국물에 밥을 말아서 싹싹 그릇을 비워낸다. 밥을 볶거나 칼국수를 넣고 국물을 자박자박 끓여서 먹는 맛도 일품이다.

아이들 그릇에는 먹기 좋게 뼈에서 발라낸 고기만 담아주고 남은 뼈는 내 그릇에 담는다. 처음 맛을 본 시장통의 그 식당에서 어머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자식사랑에 대한 숙명을 나도 거역하지 못한다.

우리집 감자탕 이렇게 만들어요
1.찬물을 서너번 갈아내며 뼛속의 핏물까지 깨끗하게 제거하는데 반나절 이상 시간을 넉넉히 두고 한다.
두 번째 핏물제거는 팔팔 끓는 물에서 살짝 끓여내면 뼛속까지 남아 있던 핏물이 모두 빠진다.

2.삶아낸 뼈는 찬물로 몇 번 헹궈주고 물은 넉넉히 담아서 생강을 한 개 정도 넣고, 배추우거지와 함께 푹 삶아내는데 처음 센불에서 끓이다가 약한불에서 은근하게 한 시간 정도 삶아낸 다음, 된장과 고추장을 똑같은 비율로 넣은 후에 한 시간 정도 약한불에서 은근하게 끓여준다.

3.간을 맞추는 양념으로는 굵은소금과 청양고추, 고춧가루, 후춧가루, 마늘을 사용하고 대파는 넉넉하게 넣어 주면 시원한 맛을 더 낼 수 있다. 감자, 깻잎은 식성에 따라 넣어주고 걸쭉한 국물을 원하면 들깻가루는 먹을 때 따로 넣어준다.

#감자탕 #돼지등뼈 #보양식 #어머니 #배추우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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