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차 앞에 튀어나온 노루, 나보다 더 놀라다

[속초 자전거여행] 청초호에서 영랑호까지

등록 2011.07.02 19:25수정 2011.07.04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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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해변 풍경. 멀리 보이는 섬은 조도. ⓒ 성낙선


강원도에서 자전거여행을 하는데 동해안의 해안가 도로와 마을을 빼놓을 수 없다. 동해시에서 고성군의 통일전망대 출입국관리소까지 가는 길은 그 자체 자전거여행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은 거침이 없고, 풍경은 막힘이 없다.

바닷가 도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시야에 다 들어오지 않는 넓은 바다와 바닷가 한쪽 우묵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은 그냥 가만히 바라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하다. 그곳을 한 번이라도 다녀온 사람들은 그 풍경과 감동을 쉽게 잊지 못한다.

도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자전거는 바닷가로 나 있는 좁은 길을 이리저리 비집고 들어간다. 마을에서 포구로 이어지는 길, 바다에서 막 건져올린 물고기를 그물에서 떼어내는 주민들. 바닷가 하늘 높이 솟은 해송 숲, 그 사이로 언뜻 언뜻 비치는 하얀 모래밭과 짙푸른 바다. 동해안에서 마주치는 풍경은 매순간 색다른 모습,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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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초호 자전거도로. ⓒ 성낙선

이런 감동은 동해안의 자동차전용도로나 7번 국도 같이 차량의 소통이 빈번한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여행자들은 좀처럼 맛보기 힘든 것들이다. 그런 까닭에 해메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해안으로 자전거여행을 떠난다.
강릉시는 자전거 특구답게 해안선을 따라 길게 자전거도로가 놓여 있다. 상당히 잘 만들어진 자전거도로다.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꼭 가볼 만한 곳이다. 바닷가 자전거도로가 한강이나 여의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재미를 맛보게 해준다.

강릉 이외의 지역 역시 대부분 자전거 타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해안에서 벗어날 경우 가끔 7번 국도 같이 차량 소통이 빈번한 도로 위로 올라서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도로를 벗어나면 대체로 차량 소통이 드문 편이다. 해안도로와 같은 경우엔 지나다니는 차들이 많지 않아 편한 마음으로 자전거를 탈 수 있다.

물론 자전거도로가 아닌 곳에서는 언제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니, 긴장의 끈을 늦춰서는 안 된다. 차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길이라고 해서 방심했다가 오히려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으므로, 자전거를 탈 때는 도로가 아닌 곳이라고 해도 매사 주의를 기울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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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기 직전의 청초호. 호수 너머로 구름이 내려앉은 설악산과 울산바위가 보인다. ⓒ 성낙선


속초에서 색다른 여행을 하는 방법

속초 역시 편하게 자전거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 중에 하나다. 특히 속초를 여행하면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 중에 하나가 청초호와 영랑호를 잇는 자전거여행 코스다. 이 여행 코스는 3, 4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속초 해안에 붙어 있는 두 개의 거대 석호를 한꺼번에 돌아보는 길이다.

속초에 가서 호숫가 여행을 하는 게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 여행 코스 중간에는 백사장도 있고, 항구도 있다. 단순한 호수 여행이 아니다. 그리고 호수 주변에 속초해변과 아바이마을 그리고 동명항과 장사항 같은 여행 명소가 이어져 있어 이 여행코스는 사실상 속초 여행의 백미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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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탑. 탑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다. ⓒ 성낙선

볼거리는 물론이고 먹을거리 또한 풍부하다. 바다와 호수 여행을 겸한 곳인 만큼 그 풍경이 매우 다채롭다. 속초에서 색다른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자전거를 타고 한 번쯤 이 여행 코스를 따라가볼 필요가 있다.
자전거를 가져가는 일이 부담스럽다면 맨손으로 가도 좋다. 호숫가에서 자전거를 빌려 탈 수도 있다. 청초호에서는 엑스포탑이 서 있는 공원 매점에서, 영랑호에서는 카누경기장 근처에서 다양한 종류의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청초호와 영랑호, 두 곳 모두 호숫가에 자전거도로가 놓여 있다. 청초호는 일부 구간, 영랑호는 전 구간이 자전거도로다. 자전거도로가 아닌 구간이라 하더라도 자전거를 타는 데는 별다른 무리가 없다. 그리고 청초호와 영랑호를 잇는 바닷가 길 역시 자전거 타는 데 아무런 부담이 없다. 자동차들이 지나다니는 길이긴 하지만, 차들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데다 속도를 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여행에 앞서 버스터미널을 어디로 정할지부터 결정한다. 속초에는 버스터미널이 두 군데다.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게 되면 동명항 근처 시외버스터미널에,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면 속초해변 근처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리게 된다. 시외버스터미널은 영랑호와 청초호 중간에 있고, 고속버스터미널은 청초호 남쪽에 있다. 여행을 동명항에서 시작할지, 아니면 속초해변에서 시작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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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초호 부둣가에 정박해 있는 어선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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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초호 부둣가, 배에서 홍게를 내리는 어부들. ⓒ 성낙선


절반은 호수, 절반은 바다인 청초호

청초호는 겉보기엔 다소 평면적이다. 호수 형태가 매우 단순하다. 사각형에 가깝다. 호수가 있고, 그 둘레로 공원이 있다. 호수 절반이 아파트 같은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경기도 일산에서 보는 호수공원과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풍경이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호수 주위를 돌다 보면, 의외의 풍경과 마주친다.

남쪽 호숫가에 요트와 유람선 같은 놀이용 배들이 정박해 있다. 그리고 동쪽 호숫가에는 집어등이나 통발 같은 고기잡이 어구들을 잔뜩 실은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호숫가 한쪽에서는 뱃바닥에 녹이 잔뜩 슨 선박들을 수리하는 작은 조선소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배들이 정박해 있는 부둣가에서는 어부들이 그물을 손질하느라 분주하게 손을 놀리고 있다. 바닷가 항구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풍경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청초호는 반은 호수고, 그 나머지 반은 바다다. 청초호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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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의 명물, 갯배. ⓒ 성낙선

동쪽 부둣가를 지나면 '아바이마을'이 나오고, 이어서 바로 '갯배 타는 곳'이 나온다. 아바이마을은 '아바이순대'와 '갯배'로 이미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곳이다. 최근에는 '생선구이'로 또 한 번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아바이마을에서 속초시내로 계속 여행을 하려면 청호대교 밑에서 갯배를 타고 호수 아닌 호수, 바다 아닌 바다를 건너야 한다. 그 다음부터는 영랑호까지 해안도로를 달린다. 가능한 한 바닷가 쪽에 붙어 있는 길로 들어서는 게 좋다. 그렇게 하면, 굳이 자동차들이 많이 달리는 도로로 들어서지 않고도 영랑호까지 달려갈 수 있다.

그 길 중간에 동명항과 영금정, 속초등대 같은 관광지들이 나온다.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쉬어가기 좋은 곳들이다. 영금정 앞에서 개발 이전의 동명항을 찍어놓은 사진들을 보면서 잠시 격세지감을 느낀다. 불과 20~30년 만에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변했다. 예전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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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금정.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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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초호에서 영랑호로 가는 길, 바닷가 풍경. ⓒ 성낙선


자연이 살아 있는 영랑호 자전거도로

영랑호는 청초호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영랑호는 완벽한 호수다. 바닷가 쪽에 모래가 쌓이면서 바다와는 완전히 분리가 되어 있다. 청초호가 사람의 손때를 많이 탄 것과는 달리 영랑호는 비교적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호수 주변에 리조트가 들어서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 자체 하나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숲으로 둘러싸인 호수에 새소리가 요란하다. 가끔씩 리조트를 드나드는 자동차들이 아니었다면, 어느 호숫가 나무 울창한 숲 속에 들어앉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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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호 도로 위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노루. ⓒ 성낙선

영랑호는 호수 형태에서도 청초호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호수가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형태다. 그래서 그런지 영랑호에서 자전거여행을 할 때는 훨씬 더 안온한 느낌을 받는다.
이곳은 호수 형태만 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이곳에서 사는 동물들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보다 더 호수와 친숙해 있는 모양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오른쪽 수풀 속에서 노루 한 마리가 뛰어나온다. 그 길을 가던 여행자들도 놀랐지만, 노루 역시 몹시 놀란 표정이다. 다다다다… 자전거도로 위로 노루 발굽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진다.

노루는 한동안 도로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더니, 사람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야 겨우 멈춰선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멀찍이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흘깃 뒤돌아보더니 이내 다시 수풀 속으로 사라진다. 도로 위에서 살아 있는 짐승을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른다. 호수로 민물이 밀려들어오는 곳에서는 잉어떼들이 한 데 몰려 우글거리는 것이 보인다. 이곳의 호수는 분명히 살아 있다.

중간 지점에 '범바위'가 있다. 영랑호 호숫가에 시선을 잡아끄는 바위가 여러 개지만, 그 중에 범바위가 으뜸이다. 호수와 주변 풍경을 내려다 보기 좋은 곳이다. 범바위 위에 '영랑정'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있고, 그 옆으로 정자와 같은 크기의 바위들이 여러 개다. 넓적한 바위 위에 둥글둥글한 바위들이 올라서 있는 광경이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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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바위 위 영랑정. ⓒ 성낙선


범바위에서 내려오면 이 여행도 서서히 마무리를 지을 단계에 들어선다. 영랑호에서 장사항이 지척이다. 장사항은 어부들이 직접 잡아다 파는 자연산 회로 유명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만, 자전거여행에는 '경후식'이 제격이다. 더운 땀을 흘리고 난 뒤에 맛보는 차가운 회 한 점은 평소 맛보기 힘든 것이다.

사실 속초로 자전거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굳이 그 먼 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데는 그곳에서 맛보는 회 한 점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속초에서의 자전거여행은 호수에서 시작해 바다에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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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비가 내릴 듯 잔뜩 찌푸린 하늘의 영랑호. 오른쪽으로 울산바위가 구름 속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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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호, 자전거여행자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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