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세요? 동해 '바다열차' 강추합니다

[삼척여행①] 강릉에서 삼척 오가는 세 칸 열차

등록 2011.07.01 18:46수정 2011.07.0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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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열차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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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열차 ⓒ 유혜준


동해바다를 따라 해안도로를 걷다보면 심심치 않게 철길 위를 힘차게 달리는 열차를 볼 수 있다. 서울에서 출발해 정동진을 거쳐 강릉으로 가는 열차도 있지만, 그것 말고도 눈에 확 띄는 열차가 있다. 차량은 고작 3개지만, 차량에 알록달록한 그림을 그려 넣었다. 좌석은 모두 한쪽 방향이다. 바다를 보면서 달릴 수 있게. 바로 바다열차다.

정동진부터 삼척까지 걸었을 때, 이 바다열차를 못 타서 아쉬움이 길게 그리고 오래 남았더랬다. 그래서 삼척으로 도보여행을 떠나면서 직접 삼척으로 가지 않고, 강릉에 들러 바다열차를 타고 삼척으로 가기로 했다. 아주 괜찮은 선택이었다.


바다열차는 강릉역에서 삼척역까지 하루에 왕복 두 차례 운행된다. 5월과 8월에는 세 차례 운행된다. 자세한 운행시간은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바다열차를 타려면 예약은 필수. 안 그러면 자리가 없을 확률이 99%. 토요일에 탈 바다열차를 월요일 오후에 예약을 했는데도 앞좌석은 딱 두 자리만 남아 있었다. 그것도 특실은 없고 일반실에만.

일반실보다 특실 이용료가 3000원 비싸지만, 타 보니 일반실이 더 괜찮았던 것 같다. 단, 부부나 연인이 같이 간다면 두 사람씩 안게 되어 있는 특실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커플만 달랑 탈 수 있는 칸도 따로 있다니, 특별한 이벤트가 필요한 커플이라면 고려해봄직하다. 지난 여행 때 이 커플석만 남았다고 해서 발길을 돌렸더랬다. 혼자 이벤트 할 일 있나,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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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역 ⓒ 유혜준


지난 6월 18일부터 20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삼척여행을 떠났다. 이번 여행에도 동생이 동행했다. 대관령바우길을 걸으면서 숲이 주는 아름다움을 만끽했으니, 이번에는 바다를 보면서 걸어보자, 하고 떠난 여행이다. 서울은 폭염으로 들끓었다고 하나, 삼척은 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더운 열기를 식혀주어 더위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올 여름 휴가지로 삼척을 '강추'하는 이유다.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오전 8시 40분에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향했다. 강릉까지 걸린 시간은 세 시간 남짓. 토요일이지만 고속도로는 막히지 않았다. 혹시라도 고속도로가 막혀 강릉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져 바다열차를 놓칠 수도 있어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출발했다. 강릉고속버스터미널에서 강릉역까지 택시로 이동, 역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바다열차 출발시간은 오후 1시 55분.

처음 도착했을 때는 한산하던 강릉역이 바다열차가 출발할 시간이 되자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한다. 알록달록한 그림이 그려진 열차에 올라 자리를 찾아가려니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살짝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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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역 ⓒ 유혜준


강릉을 출발한 바다열차가 가장 먼저 정차한 곳은 <모래시계>로 유명해진 정동진역. 이곳에서 7분간 정차하므로 내려서 바다를 감상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다. 이후 정차하는 역은 승객이 내릴 시간만 주고 곧바로 출발한다.

바다열차의 유리창을 통해 내다보는 바다는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들 정도로 푸르렀다.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맑았다. 묵호역을 지나고 동해역을 지난 바다열차는 추암역에 도착했다. 왕복표를 구입한 승객이라면 추암에서 내려 한껏 여유를 부리다가 삼척역에서 출발해 강릉역으로 돌아가는 바다열차를 다시 탈 수 있다. 그건 삼척해변역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열차 안에서 조용히 바다를 감상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열차 내에서 승무원이 열차 관광객을 위한 방송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 방송이 즐거운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음악소리마저 묻힐 정도로 시끄럽게 울려대는 승무원의 안내방송이 너무 소란스럽게 느껴져서 진짜 방송이라면 스위치를 눌러 끄고 싶은 심정이었다. 방송을 원하는 승객과 그렇지 않은 승객을 나눠 태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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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해변 ⓒ 유혜준


우리는 삼척해변역에서 내렸다. 삼척해변부터 호산까지 바다를 따라 해안도로를 걸을 예정이다. 삼척해변역은 간이역이라 역사가 없다. 역에서 바다까지 거리는 아주 가깝다.

확실히 기온이 올라가니 사람들이 바다를 많이 찾는다. 5월까지만 해도 동해에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는데, 지금은 가족 단위로 혹은 연인끼리 바다를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날이 더 더워지면 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바다로, 동해로 향하리라.

삼척해변에 잠시 머물러 바다를 구경하고 해안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길은 바다를 끼고 꿈틀거리면서 기어가는 뱀처럼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에서는 열기가 뿜어져 올라오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무척이나 시원했다. 그래도 걸으면 땀이 쏟아진다. 게다가 태양은 동해 하늘에서 신나게 이글거리고 있지 않나. 바람에서 짠내와 더불어 생선 비린내가 살짝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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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도로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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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도로 ⓒ 유혜준


삼척해수욕장에서 동해를 따라 삼척항으로 이어지는 해변도로의 이름은 새천년도로. 새천년을 맞이하는 2000년에 만들어졌다 해서 그리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거리는 4km 남짓. 이 길, 지도에는 굵고 단순하게 표기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구불거리면서 이어진다. 이 길은 드라이브 명소로 유명하지만, 드라이브보다 걷기 좋은 구간이 아닐까 싶다. 직접 걸어보니 길옆으로 펼쳐지는 바다의 풍광이 감탄사를 꿀꺽 입안으로 삼킬 정도로 아름답다. 바다만 아름다운가. 길옆에 소리 없이 무리지어 피어난 해당화 또한 그에 못지않다.

그 길에 비치조각공원이 있다. 다양한 모양의 조각품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한껏 폼을 잡은 채 서 있다. 조각상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또 이 길에는 삼척시에서 매년 해맞이 축제를 연다는 소망의 탑이 바다를 배경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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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펠리스호텔을 지나 한참을 걷다보니 퇴락한 티가 팍팍 나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배용준, 손예진 주연의 영화 <외출> 촬영지란다, 이곳이. 배경이 삼척이었다, 그 영화. 배용준에 기대어 제작된 영화였지만,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는 오래전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건만 표지판은 남아 저 혼자 쓸쓸히 지난 영화를 추억하고 있었다.

삼척항으로 들어서니 대게를 파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삼척은 대게로 유명하다. 저녁을 먹기에는 너무 일러 그냥 대게전문 식당들을 지나치려니 어째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여기도 대게, 저기도 대게, 대게 판이로구나.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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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꽃 ⓒ 유혜준


길은 바다에서 벗어나 삼척시내 쪽으로 접어든다. 삼척교를 건넜다. 길옆에 큼지막한 접시꽃들이 무리지어 피어 있다. 붉은 꽃, 분홍 꽃, 하얀 꽃. 색깔이 어쩌면 저리도 선명할까, 감탄을 하다가 도종환의 시 <접시꽃 당신>을 생각했다.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멀리 삼척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까 걸어서 지나온 곳이다. 걷다보면 가끔은 내가 축지법을 쓰면서 걷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눈썹이 휘날릴 정도로 빠르게 걷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구불거리면서 길게 펼쳐진 길을 보면서 걸을 때는 저 길을 언제 다 걷나 싶어 막막한 심정이 되는데, 어느 사이엔가 그 길을 지나쳐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벌써 계절이 바뀌었는가? 길옆을 장식하듯이 피어 있는 꽃들이 달라져 있었다. 두어 주 전만해도 민들레가 지천이었는데 지금은 황금빛 꽃잎을 빛내고 있는 금국이 잔뜩 피어있다. 루드베키아도 보인다. 계절이 여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실감이 팍팍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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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방 해변. ⓒ 유혜준


한재밑 해변을 지나 다다른 곳은 맹방해변. 강원도의 명사십리라는 맹방해수욕장은 이 이름이 무색하지 않았다. 모래밭이 길고 아름답고 완만하게 이어져 있다. 이곳 모래밭의 길이는 800미터. 모래밭이 길고도 넓은 맹방해수욕장은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해 해수욕을 즐기기 좋은 곳이라고 한다. 직접 눈으로 보니, 바닷물 또한 무척이나 맑다.

모래밭을 따라 이어지는 해안도로 옆에는 데크를 깔아 산책하기 좋게 해놓았다. 산책하기만 좋은가, 쉬었다 가기에도 좋다. 배낭을 내려놓고 바다를 향해 앉았다. 신발을 벗고, 양말까지 벗은 뒤 발가락을 꼬물거리면서 석양이 물들기 시작하는 바다를 바라보는 느낌, 끝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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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풍경은 아무리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놀고 싶지만, 해가 지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걸음을 재촉해야 할 것 같아 단념했다. 배낭을 지고 다시 길 위로 나선다. 해질녘이 되니 바람이 점점 더 차가워지더니 아예 한기가 느껴질 지경이 된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는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덕산해수욕장이 있는 덕산항은 길에서 볼 때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다. 삼사십 분만 걸으면 될 것 같았는데, 길이 해안을 따라 굽이치면서 돌아서 한 시간 이상을 걸어야 했다. 바로 저기인데, 왜 이리 먼 거야, 하면서 투덜거렸다.
#도보여행 #강원도 #삼척 #바다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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