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했던 검찰, '자해용 칼'에 치명상

[주장] 검찰 수뇌부 줄사퇴, 무엇을 지키려는가

등록 2011.07.01 09:12수정 2011.07.0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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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30일 오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검찰과 경찰로서는 조직의 사활을 건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검찰로서는 치명상을 입은 셈이다.

 

검찰은 법이 통과되기 전인 29일부터 개정안에 반발하여 대검 고위 간부들의 줄사표가 이어진 데다 검찰총장의 거취 문제까지 거론돼 왔다. 검찰 고위직들이 조직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이라도 내놓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드러냈는데 법이 덜컥 통과됐으니 검찰로서는 비분강개할 만하다.  

 

그런데 왜 검찰 수뇌부의 줄사퇴를 보면서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을까. 검사들의 조직사수 투쟁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내막을 한 번 들여다보자.    

 

검경 수사권 조정, 달라진 건 없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문제가 전격 합의된 20일 김황식 총리가 이귀남 법무부장관과 맹형규 행정안전부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브리핑룸에서 수사권 조정 합의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문제가 전격 합의된 20일 김황식 총리가 이귀남 법무부장관과 맹형규 행정안전부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브리핑룸에서 수사권 조정 합의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수사권 조정문제로 갈등을 벌이던 검찰과 경찰은 청와대와 국무총리의 조율을 거쳐 지난 20일 합의안을 내놓는다. 골자는 이렇다.

 

① 경찰은 범죄의 혐의가 있을 때 수사를 개시한다.

② 사법경찰관은 모든 수사에 관해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

③ 검사의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은 법무부령으로 정한다.

 

잘 살펴보면 검찰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안이다. ①은 경찰의 수사개시권 인정으로 모양새를 갖추었으나 이제껏 경찰이 해오던 일이다. 경찰로서는 오히려 ②에서 '모든' 수사에 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 불만이었다. 게다가 검찰은 ③을 통해 법무부령으로 지휘에 관한 세부 사항까지 정할 수 있는 무기를 획득했다.

 

사실 말이 수사권 조정이었지 일반 국민에겐 별로 달라질 건 없었다. 특히나 수사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나 국민의 권리 보호를 위한 방안 등이 나오기를 기대했지만 헛된 기대에 불과했다. 그들만의 역할 분담이었고 그나마도 결과적으로 검찰의 권한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정부 쪽의 합의안에 불과했다. 법을 만드는 건 국회이기 때문이다. 국회 법사위를 거치면서 합의안은 다시 도마에 올랐다. 특히 논란이 됐던 부분은 '모든'과 '법무부령' 두 단어였다. 결국 법사위는 29일 '법무부령'을 '대통령령'으로 바꾸기로 의견을 정리한다.

 

이때부터다. 검찰의 극렬한 반발이 시작됐다. 줄사표가 이어지는가 하면 심지어 검사의 입에서 "현재 상황은 검찰의 존재 이유를 부정당하는 분위기"(연합뉴스 29일자 보도)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수사지휘 사항 '대통령령'으로... 검찰 반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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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수사개시권을 인정하는 동시에 검찰의 수사지휘권도 보장하는 내용의 '검·경 수사권 조정' 정부 합의안이 도출된 가운데 20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전체회의에 이귀남 법무부장관과 조현오 경찰청장이 나란히 출석하고 있다. ⓒ 남소연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인정하는 동시에 검찰의 수사지휘권도 보장하는 내용의 '검·경 수사권 조정' 정부 합의안이 도출된 가운데 20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전체회의에 이귀남 법무부장관과 조현오 경찰청장이 나란히 출석하고 있다. ⓒ 남소연

표면적으론 청와대와 검찰-경찰이 어렵게 합의한 사항을 국회가 깨뜨렸다는 주장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보다는 검찰로서는 수사지휘권 행사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걱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수사지휘에 관한 세부사항을 법무부령으로 정하게 되면 검찰의 이해가 대부분 반영될 수밖에 없다. 소관부서의 장인 법무부장관이 검찰과 한 편 아닌가.

 

하지만 대통령령으로 하게 되면 복잡해진다. 우선 정부 부처간 의견 조정을 거쳐야 하고 국무회의를 통해 의결된다. 대통령령 제정이나 개정 과정에서 법무부·검찰 뿐 아니라 경찰 소관 부서인 행정안전부 등의 의견도 반영될 수밖에 없다. 검찰로서는 그게 자존심이 상할 뿐만 아니라 권한이 침해될 수도 있다고 반발했던 것이다.

 

검찰은 청와대와 검경이 합의한 정신을 존중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국회는 합의사항을 존중할 필요는 있겠지만 따라야할 의무는 없다. 법을 만드는 건 국회의 고유 권한이다. 해당 법률의 이해당사자가 합의했다고 한들 국민의 입장에서 문제가 있다면 법률을 다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대검찰청은 공식 논평을 통해 이번 법안 통과가 "떼를 쓰면 통하는 나쁜 선례로 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는데, 과연 누가 떼를 쓰고 있는 것일까. 대검의 논평이야말로 입법권 침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의 입장을 선의로 정리해보면 이렇다.

 

'검찰이 10만이 넘는 경찰을 통제하는 유일한 수단은 수사지휘권이다. 그런데 수사지휘권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된다면 권한이 흔들리고 검찰의 존립 근거도 위태로우며 정치적 예속을 가져올 수도 있다. 수사권은 절충의 대상이 아니다. 잘못 하다간 수사지휘권이 훼손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검찰이 걱정하는 건 자유다. 하지만 현재 검찰의 막강한 권한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기우에 불과하다. 몇 가지만 나열해보자. 

 

경찰은 모든 수사에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경찰이 수사한 사건은 독자적으로 종결할 수 없고 모두 검찰로 보내야 한다. 법원에 영장 청구하는 것도 반드시 검찰을 거쳐야 하고 피의자를 법정에 세우는 것(기소)도 검찰만이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검사는 수사의 주재자이고 경찰은 보조자일 뿐이다. 

 

이게 다 법에 나와있는 내용들이다. 이걸 두고 서보학 교수(경희대법학전문대학원)는 <검찰공화국, 대한민국>이라는 책에서 "축구에서 열심히 드리블도 하고 크로스를 통해 골문 앞까지 공을 몰고 가더라도 공를 넣는 것은 언제나 부대장의 몫이어야 하는 엉터리 군대 축구와 꼭 닮아 있다"고 꼬집었다.

 

수사를 계속 할지 말지, 계속 한다면 구속할지 말지, 수사가 끝나면 기소할지 말지를 모두 검찰이 완전히 독점하고 있다. 바뀐 형사소송법이라고 해서 별로 달라질 게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수사지휘 사항을 법무부령에 두느니 대통령령에 두느니 하는 문제로 검찰 고위직들이 '검찰의 존재 부정' 운운하고 있다. 검찰의 항변은 수사와 기소라는 2가지 칼을 동시에 쥐고 있으면서도 "결코 아무것도 경찰에 내줄 수 없다"는 말과 다름없다.

 

검찰의 '칼'에 정의가 없다면

 

한편, 검찰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기로 한 걸 두고 "대통령이 수사범위를 정한다"는 식으로 여론을 몰고 가고 있는데 이것 역시 무리한 주장이다. 대통령령이란 국회가 만든 법률의 하위법령이다. 법률에서 다 담을 수 없는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에 대해서만 규정하는 것이다. 대통령령이라고 하여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말이다.     

 

막강한 검찰을 합법적으로 견제하는 장치로는 무엇이 있을까. 국회가 법률로써 권한을 제어하는 것, 법원이 재판으로써 기소권을 견제하는 것, 내가 알기론 이 정도다. 그 중 하나인 국회의 권한마저 무시해가면서 검찰 수뇌부들이 지키려는 검찰조직은 대체 어떤 조직일까.

 

한 마디로 검찰은 칼을 내줄 수 없다고 한다. 칼을 무디게 하거나(수사권 견제), 어설픈 칼잡이에게 칼을 주었다가는(경찰에 수사권 부여) 무고한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다고 강변한다. 오로지 자신들만 칼잡이로 적임자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검찰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검찰이 휘두르는 칼에 정의가 존재하지 않으면 그것은 폭력배가 휘두르는 회칼과 다름없다." (<검찰공화국, 대한민국> 76쪽에서)

#검찰 #형사소송법 #검찰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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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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