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두리봉의 아름다운 물소리

가끔씩 비 올 때만 들리는 아름다운 소리

등록 2011.07.03 10:17수정 2011.07.0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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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두리봉 물소리(2011.06.27) 태풍 메아리가 물러 간 후 북한산 족두리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를 촬영했다. 아기 노래소리 같은 예쁜 물소리. ⓒ 정민숙

▲ 족두리봉 물소리(2011.06.27) 태풍 메아리가 물러 간 후 북한산 족두리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를 촬영했다. 아기 노래소리 같은 예쁜 물소리. ⓒ 정민숙

비 오는 날 산에 가면 평소에 볼 수 없는 소리들과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지나갈 때면 나는 나무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생명이 자라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그 시기를 놓칠 수 없다. 봄이 휘익 지나가버려 언제 다녀가는지 잘 모를 때가 있지만, 나무의 새 잎을 바라보면 매일 봄을 느낄 수 있다. 그 것처럼, 비오는 날 북한산에 가면, 평소 보지 못한 소리들을 들을 수 있는데, 그 소리는 마치 음악소리 같다. 농악소리 같기도 하고, 웅장한 오케스트라 소리 같기도 하다. 그 순간만 들을 수 있는 소리들.

 

바위가 많은 북한산에는 물이 졸졸졸 흘러가는 소리를 듣기가 힘들다.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서나 들을 수 있지만, 그 소리도 평소에는 조용조용하다. 불광중학교 쪽으로 해서 올라가는 북한산둘레길은 족두리 봉으로 이어진다. 족두리봉은 맑은 날 아니면 오를 수 없다. 대신 향로봉 방향으로 해서 아랫길로 내려가면, 족두리 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개울물소리처럼 아기자기한 소리가 난다. 바람에 나부끼는 바람개비에서 나는 소리 같기도 하다. 그 고운 소리를 듣기 위해, 나는 가만 바위 위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바위에는 지렁이만한 민달팽이가 기어 다닌다. 그저 빗물이 흐르는 소리일 뿐인데도, 날카롭지 않고, 무섭지 않고, 부드럽고 예쁘다.

 

바위의 줄을 잡고 내려가면 그 소리를 들리지 않는다. 비봉과 향로봉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 올라가면 그 때부터는 바람이 좀 세 진다. 나뭇잎소리도 비명 같다. 그 길에선 가만 있을 수가 없다. 걸음을 옮기며 앞으로 움직여야 한다. 우리의 휴식장소, 약수가 나오는 곳의 너럭바위가 있는 곳까지 쉬지 않고 간다. 너럭바위가 있는 곳은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언제나 그늘이 지는 곳인데, 이번 태풍 메아리에 자연가지치기가 되어 떨어져 나간 나뭇가지와 잎들로 하늘이 너무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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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둘레길 치마폭포1 바위를 타고 떨어지는 물이 마치 치마같다고 해서 언니가 붙인 이름<치마폭포> ⓒ 정민숙

▲ 북한산 둘레길 치마폭포1 바위를 타고 떨어지는 물이 마치 치마같다고 해서 언니가 붙인 이름<치마폭포> ⓒ 정민숙

 

그 곳에서 우산을 쓰고 앉아 차를 한 잔 마신다. 그 곳에서 듣는 소리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기분을 좋게 한다. 동행한 언니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는 스승님의 가르침이다. 혈육으로 만났어도 언제나 앞서 살아가는 윗사람인지라, 아랫사람의 어려움과 괴로움을 미리 알고 지혜를 나누어 주고, 삶의 방법이 미숙할 때는 따끔한 회초리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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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둘레길 치마폭포2 치마폭포1이 바로 위에서 떨어지면, 그 물줄기들을 고스란히 받아 더 예쁘게 펼치며 폭포를 만들고 있는 <치마폭포2>. 비 올 때만 나타나는 치마폭포들. 언니의 작명이 제법 어울린다. ⓒ 정민숙

▲ 북한산 둘레길 치마폭포2 치마폭포1이 바로 위에서 떨어지면, 그 물줄기들을 고스란히 받아 더 예쁘게 펼치며 폭포를 만들고 있는 <치마폭포2>. 비 올 때만 나타나는 치마폭포들. 언니의 작명이 제법 어울린다. ⓒ 정민숙

그 너럭바위에는 엄마와 언니와 교감을 나누는 새 식구가 있다. 맑은 날 갔을 때 갑자기 지저귀는 소리가 커지기도 하고, 우리 옆으로 제트기처럼 날아가며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기도 한다. 그러면 엄마와 언니는 화답하면서 씨앗들과 가지고 온 음식 중에서 새가 먹을 수 있도록 잘게 잘라 바위 위에 놓아주고 온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 가 보면 빗자루로 청소한 것처럼 깨끗해져 있다.

 

그런데 비가 오는 날에도 이 새가 우리 주변에서 큰 소리로 울었다. 언니는 아주 기분 좋게 대답해 주면서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새들이 먹을 정도로만 빵을 잘게 잘라 바위 위에 놓아주었다. 새와 나누는 교감. 산 속에 들어와도 그 산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는 것. 많은 등산객들이 그렇게 하고 있기에, 다람쥐, 새들과도 이런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이리라.

 

그 바위 아래쪽에는 약수터가 있는데, 그 옆 도랑물은 갑자기 세차게 흐르는 폭포가 된다. 폭포는 아주 작은 것부터 조금 큰 것까지 갖가지 모양을 만들어 내며 소리를 낸다. 바람이 불면서 흔들리는 잎사귀와 빗방울이 떨어지며 내는 소리. 도랑에 흐르는 물소리, 작은 폭포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 우리 자매는 그 소리를 들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휴식을 취한다.

 

휴식을 마치고 내려가는 길에 들리는 소리는 우레처럼 크고,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 무척 공격적이다. 그 소리는 이제 우리에게 물 가까이 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 같다. 참 친절한 경고. 그 경고를 받아들이며, 발을 내딛을 곳과 내딛으면 안 되는 곳을 가려서 걸어간다. 안개가 피어올라 산은 꿈속처럼 느껴지고, 사람들의 발자국을 흔적도 없이 쓸어버려 깨끗하게 청소된 소나무 샛길을 걸어 내려간다.

 

속세로 내려와 점심을 먹으며 술 한 잔을 하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각은 오후 2시. 족두리봉의 물소리를 담아 집으로 가져가는 길. 맑아진 내가 들어가는 우리 집은 잠시 물소리로 가득 찬다. 

#북한산 둘레길 #비 오는 날 북한산 #작은 폭포들 #치마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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