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조 선수 집은 어디일까요?

[삼척여행 2] 낭만가도에는 낭만이 넘친다

등록 2011.07.07 15:21수정 2011.07.0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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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맹꽁이가 시끄럽게 우는 밤이었다. 마을은 고즈넉했다. 해변이 있는 시골마을이라도 해수욕철이 아니니 조용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했다. 그런 마을을 해가 완전히 진 뒤에도 배회하듯 돌아다닌 것은 숙박할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찾아낸 펜션에서 짐을 풀었다. 펜션이라기보다는 깨끗한 민박집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집이었는데, 쥔 할머니가 깔끔하신 듯 방이며, 욕실이 아주 깨끗했다.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새집인 것 같았다.

바닷가에 오면 가급적이면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자려고 하는데, 덕산마을에는 그럴 만한 곳이 없었다. 우리가 묵은 펜션은 마을 한가운데에 있었다. 하루 종일 걷느라 흘린 땀을 씻어낸 뒤 자리를 펴고 누웠는데, 어둠을 뚫고 맹꽁이들의 합창소리가 들려왔다.


다음날, 밥을 해먹을 수 있는 시설이 갖춰진 펜션이지만, 식재료를 준비하지 않은 우리는 아침을 굶은 채 길을 나섰다. 아침부터 햇볕이 심상치 않았다. 하루 종일 땡볕 아래를 걸어야할 지 모른다. 선크림을 바르길 잘했다. 모자를 꾹 눌러썼다. 아침식사는 길을 걷다가 적당한 식당을 만나면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결국 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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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원전 백지화 기념탑 ⓒ 유혜준


삼척에 원전백지화 기념탑이 세워질까?

덕산마을을 벗어나기 직전 길에서 마주친 비석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저게 무엇이지? 원전백지화 기념탑이었다. 1982년 1월, 덕산마을이 원전예정부지로 고시되면서 시작된 원전백지화 투쟁은 1998년 12월 말에 후보예정지에서 제외되면서 끝났다, 는 설명이 들어있는 기념비가 기념탑 옆에 같이 세워져 있었다.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근덕면민은 결사의 투쟁으로 덕산 원전건설계획을 백지화하였다. 애향의 열정과 살신의 각오로 청정해역과 수려한 강산을 지켰다 - 기념비 내용에서

기념탑과 기념비가 세워진 것은 1999년. 한데 끝난 줄 알았던 원전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삼척에서. 백지화를 이뤄낸 역사가 있는 곳이 다시 원전예정지로 거론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찬성 여론이 거셌지만, 후쿠시마 원전사태로 인해 여론은 반대쪽으로 확 기울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백지화 된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삼척에 다시 원전 백지화 기념탑이 세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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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숲에 숨은 산딸기 ⓒ 유혜준


노란 금국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길을 지났다. 부남을 거쳐 대진으로 가는 해안도로 옆에는 루드베키아 역시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크고 작은 황금빛 꽃송이들이 햇볕을 받아 진짜 황금처럼 빛나고 있었다. 꽃을 보면서 걷는 걸음은 가볍다. 햇볕이 뜨겁다 못해 따겁더라도.

어, 산딸기다. 길옆에 빨간 열매가 여기저기 매달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주 잘 익었다. 며칠 지나면 시들어버릴 것처럼 농익었다. 걸음을 멈추고 딸기를 따기 시작했다. 작년 이맘때 바우길을 걸으면서 산딸기를 따먹었던 기억이 났다. 그 전 해에는 제주도를 걸으면서 산딸기를 따먹었더랬다. 길에서 먹는 산딸기 맛은 각별하다.

산딸기를 따서 동생에게 내밀었더니 신기하다는 듯이 받아먹는다. 이거 먹어도 괜찮을 거야, 물으면서. 그럼, 괜찮고말고. 걸으면 이런 재미도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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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동해 '낭만가도', 바다 구경하기 딱 좋아!

동해를 따라 걷다보면 '낭만가도' 표지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강원도 고성군부터 삼척시까지 이어지는 동해 해안도로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이 길, 드라이브를 하면서 바다를 구경하기 딱 좋다.

동해를 따라 이어지는 강원도 지역은 고성군, 속초시, 양양군, 강릉시, 동해시, 삼척시 이렇게 6개 시·군이다. 이 6개 시·군을 서로 이으면서 바다를 따라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푸르디푸른 동해를 품에 안은 것처럼 보인다. 가끔은 바다에서 멀어지는 구간도 있지만 구불거리는 해안도로는 바다를 조망하기 아주 좋다. 그래서 걷다가도 걸음을 멈추고 바다를 구경하기 좋다. 이 길, 어떤 구간은 버스를 타고 가기도 했는데(걷고 난 뒤 돌아가려고)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스릴을 느낄 수 있다.

눈 오는 날에 차를 타고 이 길을 달리면 차가 눈길에 미끄러질까봐 숨도 못 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낭만가도의 가장 위쪽에 속하는 곳은 고성군 대진, 가장 아래쪽은 삼척시 원덕. 낭만가도 지도에는 18개 지명이 번호를 붙인 채 새겨져 있다.

1. 대진, 2. 거진, 3. 간성, 4. 오호, 5. 천진, 6. 속초, 7. 낙산, 8. 하광정, 9. 인구, 10. 경포, 11. 정동진, 12. 금진, 13. 발한, 14. 북평, 15. 정라, 16. 근덕, 17. 임원, 18. 원덕.

이 길을 나는 양양 물치항부터 걷기 시작해 지금 삼척을 걷고 있는 것이다. 계속 이어서 걸은 것은 아니고, 며칠씩 나눠서 걸었다. 덕분에 동해를 보고 또 볼 수 있었다. 동해를 보고 서울로 돌아가면 동해가 눈에 밟혀서 다시 동해를 찾아가기를 반복하고 있는 중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동해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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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쉼터 ⓒ 유혜준


궁촌리 못 미처 해안도로에 낭만쉼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바다 풍경을 조망하기 좋은 자리였다. 팔각정 정자가 있기에 올라가서 쉴까, 했더니 미리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있었다. 멀리서 보니 연인인 듯 두 사람은 사이좋게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그래서 눈으로만 보고 돌아나왔다.

궁촌리에는 레일바이크 정거장이 있다. 궁촌리부터 용화리까지 이어지는 철길은 바다를 따라 이어지는 환상의 레일바이크 코스다. 레일바이크도 타고 바다도 볼 수 있는 곳이라 기왕에 여기까지 온 것, 한 번 타보자 했지만, 못 탔다. 주말에는 무엇이든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표가 없다는 매몰찬 대답만 매표소에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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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바이크, 바다를 따라 달린다. ⓒ 유혜준


걸어서 하는 여행인데 언제 어느 곳에 도착할 줄 알고 미리 표를 예매한단 말인가. 다음에는 레일바이크만 타러 와야지, 다짐했다.

궁촌리에 갔다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 무덤이다. 역사는 승자만을 기린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 무덤이었다. 쓸쓸하고 한적하고 고즈넉했기 때문이다, 공양왕 무덤은. 이곳에는 공양왕과 그의 두 아들이 묻혀 있다고 했다. 집안이 기우는 것도 막기 어려운데 하물며 나라가 기우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었을까.

망한 나라의 왕은 살려두기가 찜찜한 존재인 거야 두말 하면 잔소리요, 세말하면 긴 소리. 이성계에게 공양왕의 죽음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이곳 궁촌리로 공양왕과 두 아들 왕우와 왕석이 귀양을 온 것은 1394년 3월 14일. 조선 건국 2년 뒤였다. 한 달 뒤인 4월 17일, 그들 3부자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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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왕릉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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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궁촌리 공양왕릉에는 무덤이 3개가 아닌 4개가 있는데, 공양왕 3부자의 무덤 외에 왕의 시녀 또는 왕이 타던 말의 무덤이라고 전해진단다. 공양왕릉은 이곳 말고도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에도 있다. 그곳에는 공양왕의 부인인 순비가 공양왕과 함께 묻혀 있다고 한다. 공양왕의 무덤이 둘이지만 어느 곳에 진짜로 공양왕이 묻혀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단다.

하지만 궁촌리에 묻혔다가 경기도로 옮겨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 보아,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에 있는 공양왕릉에 묻혀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곳에는 문인석도 있고, 장명등도 있고, 비석도 있으니 더더욱 그럴 것으로 여겨진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공양왕릉은 사적 191호이며, 삼척시의 공양왕릉은 강원도 기념물 71호로 지정되어 있다.

후백제를 세웠다가 결국은 자신의 손으로 멸망시켜야 했던 견훤의 무덤도 이렇게 쓸쓸했는데, 공양왕의 무덤도 쓸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날씨가 맑아서 스산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공양왕이 재위에 머무른 기간은 고작 3년. 그는 왕이 되었을 때, 이런 결말을 예상했을까? 설마 마지막 왕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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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암해변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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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암해변 ⓒ 유혜준


얼음물처럼 차가웠던 바닷물,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동해를 따라 걷고 있는데 바닷물에 발을 한 번이라도 담가야 할 것 아닌가. 우리가 걸음을 멈춘 곳은 문암해변이었다. 레일바이크가 달리는 철길 아래 자리 잡은 해변이다. 모래밭으로 내려가 그늘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파도가 큰 소리를 내면서 밀려왔다가 사라진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수면은 쉼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돗자리를 깔았다.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맨발로 바닷물에 들어가자마자 비명을 내질렀다. 바닷물이 계곡물도 아니건만 얼음물처럼 차가웠던 것이다. 발이 시렸다. 동생은 도망치듯이 바닷물에서 발을 빼고 모래밭으로 올라섰고, 나는 오기로 버텼다.

걷느라 흘린 땀이 순식간에 식어 선뜩한 한기마저 느껴진다. 햇볕은 뜨거운데 바닷물은 이토록 차갑다니, 놀라웠다. 동해는 해수욕을 하기에는 아직 이르구나, 싶었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서서 내려다보니 물이 어찌나 맑은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바닷물이 투명한 유리 같았다. 물이 맑고 깨끗해, 여름에 해수욕을 하고 싶다고 이곳을 찾으라고 추천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알려지지 않았으니, 사람들도 덜 와서 덜 번잡할 것 같다.

한 시간쯤 문암해변에서 놀았다. 돗자리에 앉아 바다를 멀거니 보기도 하고, 레일바이크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돌아보기도 하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면서. 한가롭게 즐길 때는 시간마저도 한가롭게 흘러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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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조 선수 집 찾기 하는 곳.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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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조 선수 집은 어디에? ⓒ 유혜준


황영조 선수 집은 어디일까요? 황영조 기념관에 들렀다가 황영조 선수 집 찾기를 할 줄은 몰랐다. 궁촌리를 지나 길은 황영조 기념관으로 이어진 것이다. 집 모양의 구조물에 둥근 구멍이 뚫려 있어, 그 곳을 통해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삼척시 근덕면 초곡리. 어느 게 황 선수 집이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니, 찾을 수가 있나. 투덜거렸더니 동생이 옆에서 한 마디 한다. 저기, 오륜기가 붙어 있는 집이야. 아하, 그렇구나.

황영조 기념관에서는 그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던 순간의 감흥을 다시 느껴볼 수 있다. 그 때가 1992년이니, 세월이 참으로 빨리 흐른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도보여행 #강원도 #삼척 #황영조 #공양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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