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바닷가에서 만난 정자와 마을 이야기

[한국의 최북단 강원도 고성 답사기 ①] 천학정과 왕곡마을

등록 2011.07.08 16:31수정 2011.09.05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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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간정 보다 더 좋다는 천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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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학정 ⓒ 이상기


강원도 고성으로의 7월 답사가 잡혔다. 답사지는 화암사, 청간정, 어명기 가옥, 화진포, 건봉사다. 그런데 현지 문화관광 해설사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화암사가 빠졌고, 청간정이 천학정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어명기 가옥이 왕곡마을로 바뀌었고, 라벤더 체험마을이 추가되었다. 오전 7시에 출발한 차가 미시령을 넘어 10시 40분 고성군 토성면 교암리에 있는 천학정에 도착했다.


우리를 안내할 최점석 해설사가 나와 있다. 수염을 기르고 삿갓을 쓰고 개량한복을 입은 도사풍의 모습이다. 그는 우리를 천학정으로 안내한다. 천학정은 이 지방 유지인 한치용, 최순문, 김성운 등의 발의로 1931년 세워졌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바다 풍경이 청간정 보다 낫다고 한다. 산 쪽으로 나 있는 출입구 위에 천학정(天鶴亭)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한자를 보니 하늘나라 학이 머물던 정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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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학정기 ⓒ 이상기


정자에 오르니 안에 천학정이라는 시판과 천학정기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천학정 높아 하늘에 가깝고(天鶴亭高近上天)'로 시작하는 시는 천학정에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했다. 이에 비해 1931년(辛未) 오봉 한치용(韓致龍)이 쓴 기는 천학정의 역사와 유래를 적고 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칠언절구 시로 마무리하고 있다.

"양양 북쪽 67리에 한 마을이 있으니 교암(橋岩)이라 부른다. 마을의 남쪽에는 작은 산이 하나 있어 성황산이라 한다. 산자락을 돌아가면 바다 쪽으로 절벽이 있고, 그 위로 돌을 쌓아 누대를 만들었으니 망월대(望月臺)라 부르게 되었다. 이 망월대 동쪽이 동해바다로 활을 쏘아 도달할 수 있을 정도 거리에 가도(駕島)가 있다. 가도의 정상부가 솟아오른 모양이 학의 정수리처럼 생겨, 구름이 끼었을 때 망월대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기가 막혔다.
그렇지만 시인묵객들이 놀고 쉴 수 있는 장소를 찾지 못해 많이들 아쉬워했다. 내가 깊이 생각하다 무진년(1928) 봄 마을 유지들의 의견을 들어 망월대 오른쪽에 조그만 정자를 짓게 되었다. 이것이 학정암과 더불어 높이를 다투니 그 이름을 천학정이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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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학정 뒷산의 소나무 ⓒ 이상기


천학정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는 풍경은 한 마디로 시원하다. 왼쪽으로 모래톱을 따라 방갈로와 교암항이 있고, 앞쪽으로는 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천학정은 최근 일출명소로 알려져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그런데 천학정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원래는 달을 바라보는 망월의 명소였다. 천학정을 보고 나니 청간정을 보고 싶어진다. 관동팔경 중 하나인 청간정과 천학정을 비교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청간정은 어떤 모습일까?
 
천학정 뒤로는 송림이 울창하게 펼쳐져 있다. 우리는 산길을 따라 성황산을 오른다. 바위 사이로 굵은 소나무들이 그 위용을 자랑한다. 그중 가장 잘 생긴 소나무로 간다. 우리 일행은 소나무를 만져보기도 하고 끌어 안아보기도 하면서 교감을 나눈다. 요즘 자연과 나누는 대화나 교감이 여행의 한 방법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소나무도 아마 우리의 마음을 알아줄 것이다.

왕곡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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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곡 마을 약도 ⓒ 왕곡마을 보존회


바닷가에 있는 천학정을 보고 찾아갈 곳은 죽왕면 오봉리에 있는 왕곡 마을이다. 문암천을 건너고 송지호를 돌아가면서 보니 송지호 철새 관망타워도 보이고, 해양심층수 연구센터도 보인다. 최근 고성군은 해양 심층수 개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해양 심층수는 요즘 많이 팔리는 생수의 블루오션이다. 이곳 바닷가를 지나 내륙으로 1.5㎞쯤 들어가니 왕곡 마을이 나타난다. 농업을 주로 하는 전통 한옥 마을이다. 19세기 민가와 북방식 전통가옥이 원형대로 잘 보존되고 있어 중요 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되었다.

강릉함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데, 그 뿌리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말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인 함부열이 조선왕조의 건국에 반대하여 이곳 간성 땅으로 들어온 데서 연유한다. 왕곡마을은 조선시대 간성군 왕곡면의 중심마을이었다. 19세기를 전후해 북방식 전통가옥이 형성되었고, 그때의 모습이 현재까지도 잘 유지․보존되고 있다.

왕곡면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죽도면과 합쳐져 죽왕면이 되었고, 왕곡마을도 오봉리라는 행정명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 왕곡마을의 공식 행정명은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이다. 왕곡 마을은 해발 200m 내외의 다섯 개 야산에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중앙의 개울을 따라 마을 안길이 나 있고, 그 좌우로 집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집들 사이로는 비교적 넓은 텃밭이 있어 따로 담이 없다.

왕곡마을 가옥 구조와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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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곡 마을 ⓒ 이상기


왕곡 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개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다 보면, 개울 건너 왼쪽으로 왕곡마을 보존회 건물이 보인다. 문이 세 개인 단아한 초가집이다. 여기서 다시 개울을 따라 가면 왕곡마을을 대표하는 가옥인 함정균 가옥과 큰상나말집이 나온다. 함정균 가옥은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78호로, 입향조인 함부열의 21대손 함정균 씨가 살고 있다.
   
함정균 가옥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전면에 2칸 마루가 있고 그 뒤에 안방을 두었으며, 옆면에 사랑방과 창고방이 있는 영동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가옥구조이다. 본채 오른쪽에 있는 사랑채는 사랑방 옆면에 아궁이가 있다. 또한 창고방과 사랑방 사이의 벽을 바깥쪽으로 연결한 후 지붕을 덧달아 헛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안채 뒤에는 장독대가 있는데, 2층으로 단을 쌓고 그 위에 장항아리를 가지런하게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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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균 가옥 ⓒ 이상기


큰상나말집은 ㄱ자형 기와집으로 함경도식 가옥구조를 지니고 있다. 안방, 도장방, 마루, 부엌이 한 건물 내에 자리 잡고, 부엌에 가축우리가 붙어 있는 겹집구조이다. 외양간이 부엌에 붙어 있는 형태로, 동물들이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러나 동물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함으로 해서 위생상 문제가 많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부엌 지붕의 들보와 서까래는 촘촘하게 연결되어 튼튼한 느낌을 준다. 이들 목재와 지붕 기와 사이에는 새끼로 묶은 가는 목재를 설치해 기와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마루에는 큰 뒤주가 있는데, 이를 통해 큰상나말집이 부잣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채는 안채와 분리되어 집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사랑채는 세 칸으로 되어 있으며, 북쪽에 불을 넣는 아궁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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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상나말집 ⓒ 이상기


왕곡마을의 가옥은 앞쪽은 개방적이고 뒤쪽은 폐쇄적인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 마을 안길과 바로 연결되는 앞마당은 가족의 공동작업 공간이면서 동시에 타인과의 교류 공간이었다. 그래서 개방적이다. 그렇지만 뒷마당 쪽은 비교적 높은 담을 둘러 외부와 차단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개방적이지 않다. 그것은 뒷마당이 여인들에게만 허용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장독대는 대부분 뒷마당에 있다.

함희석 효자비와 동학사적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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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희석 효자비 ⓒ 이상기


이들 집을 보고 나오다 보니 왼쪽으로 효자각 팻말이 보인다. 바깥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효자각이 나타난다. 효자각 전면 기둥 상단부를 보니 '강릉함씨 효자지려'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효자각 안에는 비석이 하나 서 있는데 '효자 통정대부 행돈녕부 도정 강릉 함희석지려'라고 쓰여 있다. 통정대부 돈녕부 도정을 지낸 효자 함희석을 추모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 비석은 함희석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69년에 세워졌다. 함희석은 부모가 병환으로 눕게 되자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아 봉양하였다. 그리고 집에 큰 불이 나 부모가 화상을 입었으나 이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였다. 부모가 돌아가신 연후에도 그는 3년간 시묘살이를 하며 남은 효도를 다했다고 한다. 내용으로 봐서는 당시 자식들이 일반적으로 하던 효행으로 특별한 것은 없어 보인다.

이 마을에는 이 효자비 외에도 1820년에 새겨진 양근함씨 4세 효자각이 있다. 그리고 동학사적 기념비가 있다. 동학사적 기념비에는 '동학의 빛 왕곡마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1889년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이 이 마을에 머물며 포교한 것을 기념하는 비이다. 최시형은 왕곡마을에서 세력을 키워 1894년 동학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다고 한다.
#강원도 고성 #천학정 #왕곡마을 #함정균 가옥 #큰상나말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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