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단어 잘못 썼다가는 전과자 됩니다

[요즘판결 19] 대머리, MBC 인사발령 무효, 아이폰 집단소송 등

등록 2011.07.19 14:49수정 2011.07.1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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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대머리 골룸. '대머리'라고 하는 것도 명예훼손일 수 있다. ⓒ 워너브라더스

[사례 1] 유명 온라인 게임에 빠진 A씨. 그는 '촉'이라는 닉네임으로 같은 게임을 즐기던 B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A씨는 어느날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온라인 채팅창에서 B씨를 향해 이런 글을 올렸다.

"촉 뻐꺼, 대머리"

실제 대머리가 아니었던 B씨는 화가 났다. 그는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며 A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대머리'라는 말을 써서 전과자가 되는 사례가 없지는 않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대머리 XX야!" "대머리 까진 ○○"등과 같이 욕설을 하는 경우다. 이처럼 욕설의 수단으로 혹은 욕설과 함께 사용하는 경우 모욕죄로 처벌되는 데 별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이 사건은 (사이버)명예훼손죄로 기소되었다(참고로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를 침해할 만한 행위가 욕설 등 의견표명 수준에 그쳤을 때는 모욕죄가, 구체적인 사실을 담고 있을 때에는 명예훼손이 성립된다).   

'촉 뻐꺼, 대머리'는 '촉이란 닉네임을 쓰는 사람은 머리가 벗겨진 대머리'라는 뜻이다. 법원의 판단은 어떻게 되었을까. 1심 법원은 죄가 아니라고 했다. 이유를 정리하면 이렇다.

'대머리는 머리털이 많이 빠져서 벗어진 머리 또는 사람을 뜻하는 표준어이다. 단어 자체에 경멸이나 비하의 뜻을 담고 있다고 보기 어렵고 신체적 특징은 개인 취향과 유행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더구나 이런 사건을 유죄라고 하면 처벌이 무분별하게 확장될 수도 있다.'


이에 검사는 "A씨가 B씨를 비방할 목적으로 게시물을 올렸으니 무죄가 아니다"며 항소했다. 2심은 검사의 손을 들어줬다. 2심 판결문을 보자.

"대머리는 외모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인 동시에 가치평가적인 요소도 담고 있다. 방송이나 문학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묘사되기도 한다. 특히 당사자는 스트레스와 외모 콤플렉스를 느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대머리는 사회적 가치평가를 저하시키는 표현이다."   

항소심(수원지법 형사4부)은 지난달 23일 1심 판결(무죄)을 뒤집고, A씨에게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허위사실에 따른 명예훼손)으로 벌금 30만 원 형을 선고했다. 이번엔 A씨가 상고해 사건은 대법원으로 갔다. 대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과연 대머리는 사회적 가치를 떨어뜨리는 말일까 아니면 가치중립적인 표준어에 불과할까.

시사프로 PD를 드라마 세트장으로 발령낸 MBC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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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한학수 PD. ⓒ 양호근

[사례 2] 이우환·한학수 PD는 MBC 시사교양국 소속으로 'PD수첩'을 맡고 있었다. 이PD는 올 5월 부서 회의를 거쳐 '남북경협 중단, 그 후 1년'이라는 주제를 잡고 취재를 하던 중 국장으로부터 취재중단 지시를 받았다. "시청률이 안 나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에 이 PD는 평피디협의회 대표인 한 PD와 함께 시청률에 대한 추측만으로 취재중단을 지시한 것은 부당하다고 항의하였다.

그러자 MBC는 이들을 방송제작과 전혀 관계없는 자리로 인사조치했다. 이 PD는 MBC 용인부지 개발을 담당하는 용인드라미아개발단으로, 한 PD는 서울경인지사로 발령을 내버린 것이다. 'PD수첩' 제작부서인 시사교양2부로 발령받은 지 불과 두달 여만이었다. 

두 사람은 "부당인사로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본 재판에 앞서 우선 인사발령을 정지해 달라며 전보발령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법원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서울남부지법은 15일 "MBC의 전보발령은 정당한 이유가 없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무효"라고 결정했다.

법원은 "두 PD는 MBC 특별기획 갠지즈, 아프리카의 눈물, 황우석 3부작 등 주요한 시사프로를 제작, 시사교양국에서 상당히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그런데도 "MBC는 두 사람을 용인드라미아개발단과 서울경인지사로 전보해야 할 업무상 필요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명하지 못하고 있고 납득할 만한 사정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원은 또한 MBC의 인사조치가 ▲ 시사 프로 제작을 해왔던 두 사람의 기존 업무내용과 현저히 달라 업무상, 생활상 불이익이 현저히 크고 ▲ 6개월 내 전보발령할 수 없다는 인사규정을 위반하였으며 ▲ 인사발령 전 사전협의절차 등도 어겼다고 밝혔다.

부당인사인지 아닌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본 재판을 거쳐봐야 결론이 날 것이다. 하지만 법원으로부터 이번 인사발령이 "정당한 이유가 없다"는 지적을 받은 MBC로서는 이미 한 방 얻어맞은 셈이다. 굴욕당한 MBC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나오길 기대한다. 

아이폰 사용자 집단소송 승소가능할까

애플코리아로부터 아이폰의 위치정보 수집에 따른 위자료 100만원을 받아낸 김형석(36) 변호사가 지난 14일 경남 창원시 법무법인 미래로 사무실에서 "아이폰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소송 참가자를 모아 이달말 서울이나 창원지역 법원을 통해 1명당 100만원씩 위자료 청구소송을 내겠다"고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아이폰 사용자들의 위치정보 수집 위자료 집단소송은 승소할 수 있을까.
아이폰의 제조사 애플이 사용자들의 동의 없이 위치정보를 수집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집단소송 참가자가 2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집단소송의 계기가 된 건 지난 4월 창원지법에서 나온 지급명령이다.

[사례 3] 법무법인 미래로의 김형석 변호사는 개인 자격으로 창원지법에 애플을 채무자로 하여 지급명령신청을 냈다. 요지인즉 "애플사가 아이폰 사용자의 동의없이 위치정보수집을 하는 바람에 정신적 피해를 보았으니 위자료 100만 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이었다. 법원이 보낸 지급명령을 받은 애플사는 이의신청 기간(2주)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서 재판은 확정되었고 김 변호사는 지난달 100만 원을 받게 되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18일 현재 2만 명이 넘는 아이폰 사용자가 집단소송에 참여할 뜻을 내비쳤다.

그런데 이 사람들도 모두 100만 원의 위자료를 받을 수 있을까.

지급명령이란
법원이 채권자의 신청에 따라 채무자를 심문하지 않고 채권자에게 금전 등의 지급을 명하는 법원의 결정을 지급명령이라고 한다. 민사재판의 일종으로 법정에 출석할 필요가 없는 서류재판으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을 독촉절차라고 한다.

독촉절차는 법정에 나갈 필요가 없고 소송비용(인지대)이 일반 소송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이점이 있다. 채권자가 지급명령신청서(소장과 비슷한 양식의 서류)를 제출하면 법원은 채무자에게 채권자가 청구한 돈을 지급하라는 결정(지급명령)을 내리게 된다.

채무자가 결정문을 받고도 2주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확정 판결과 같은 효력이 생겨 강제집행할 수 있다. 만일 상대방이 결정문을 받지 못한 상황이거나 2주내에 이의신청을 하면 정식 재판절차로 넘어가게 된다.
냉정하게 따져보자.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조심히 말한다면, 쉽지 않아 보인다. 첫째 지급명령의 특수성 때문이다. 지급명령은 판결과 달리 기판력이 없다. 기판력이란 이미 확정된 판결이 있으면 이와 모순되는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구속력을 말한다. 애플사가 지급명령에 왜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정식재판도 아닌 지급명령이라서, 그것도 100만 원짜리 소액 사건이라 의도적으로 방치했을 수도 있다. 더구나 지급명령은 엄격한 증거조사 없는 서면재판에 불과하므로 애플사로서는 별다른 부담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따라서 정식 소송이 제기된다면 애플사는 본격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2만 명이 100만 원씩 청구한다면 총액은 자그마치 200억 원이다. 돈도 돈이지만 애플사로서는 회사의 자존심과 사활이 걸린 문제로 보고 소송에 임할 것이다. 따라서 지급명령 결과를 토대로 섣불리 승소를 점치기는 어렵다.

셋째, 그동안 판례를 볼 때 입증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위자료나 손해배상은 주장하는 쪽에서 입증책임을 지게 된다. 집단소송을 한 사용자 쪽에서 적극적으로 손해발생을 입증해야 한다는 말이다. 법원은 개인정보유출에 따른 손해발생을 비교적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다.

최근 서울고법은 "개인정보가 유출돼 자기정보결정권이 침해됐다는 것만으로 바로 정신적 손해가 발생했다고 할 수 없다"며 "개인정보의 종류나 성격, 유출정도 등을 고려해 손해 여부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같은 사정으로 볼 때 결과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소비자들이 대기업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집단소송이 어떤 효력을 발휘할지 짚어볼 호기임에 틀림없다.

덧붙이는 글 |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법률책인 <생활법률 상식사전>(2010), <생활법률 해법사전>을 썼습니다.


덧붙이는 글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법률책인 <생활법률 상식사전>(2010), <생활법률 해법사전>을 썼습니다.
#대머리 #아이폰 #집단소송 #피디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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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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