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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공원에 있는 무려 46기의 공덕비, 알고 보니

등록 2011.07.22 13:31수정 2011.07.2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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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시 명륜여자중학교 앞에는 안성(낙원)공원이 있다. 이곳은 한때 사람들이 모이는 공원이라 하여 공원거리로 불리다 후에 낙원동으로 바뀌었다. 대한제국 말기에 조성된 이 공원은 규모는 작지만 눈여겨볼 만한 석물들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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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46기의 공덕비 등이 늘어서 있는 안성공원 ⓒ 김종길


공원 곳곳에 있는 문화재들만 찬찬히 살펴봐도 두어 시간은 족히 걸릴 정도다. 석불좌상(향토유적 제8호), 석조광배(향토유적 제9호), 3층 석탑(향토유적 제18호), 오명항 선생 토적 송공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9호) 등 공원 내에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건 역대 군수들의 공덕비이다. 한 줄로 길게 늘어선 것도 모자라 골목의 끝에서 꺾이면서 늘어선 만큼 다시 열 지어 있다. 무려 46기의 공덕비, 선정비 등이 있다. 간혹 문인석, 하마석 등도 끼여 있다. 전국 어디를 가도 한 곳에 이렇게 많은 공덕비가 모여 있는 것은 좀처럼 본 적이 없다. 정말 장관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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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공원 ⓒ 김종길

이렇게 많은 공덕비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뭘까? 이렇게 공덕비가 많다는 것은 분명 백성을 위했던 수령들이 많았다는 증표가 아니겠는가. 공덕비대로라면 안성은 예부터 살기 좋은 고장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연을 알고 나면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다. 안성하면 누구나 안성유기를 대번 떠올린다.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유기는 안성의 특산품이었다. 그 유명세만큼이나 이곳의 유기그릇은 고을 수령들에게도 탐나는 물건이었던 모양이다.

 

궁궐이나 상부에서 이 고을 수령을 통해 유기그릇을 주문해오면 수령은 늘 여러 벌의 그릇을 덧붙여 제몫을 챙기곤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안성장은 대구장, 전주장과 더불어 조선 3대장으로 흥청대었으니 탐욕에 빠진 벼슬아치들이 토색질을 하고도 남았음이라.

 

이러한 수령들의 횡포에 이골이 난 백성들이 십시일반 추렴하여 수령이 새로 부임해 오면 그날로 공덕비를 세우곤 했다고 한다. 정무도 보기 전에 이미 공덕비를 세워줬으니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나쁜 짓을 하지 말라는 일종의 시위였던 셈이다. 실제 이런 묘수가 먹혀들었다고도 하니 옛 안성 사람들의 재치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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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공원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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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공원의 문인석 ⓒ 김종길

공덕비를 보다 문득 4대강이 떠올랐다. 4대강도 공사를 하기 전에, 아니 처음 4대강 이야기가 나왔을 때 청와대 앞,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 멋진 오석 공덕비를 세워줬다면 공사를 강행했을까. '국토의 젖줄, 4대강을 살리려는 그대의 마음에 하늘마저 감동했으니 이제 만족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며 여기에 새기노라'라고 큼직하게 썼다면 말이다. 혼자 피식 웃었다. 그러곤 금세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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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항 선생 토적 송공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9호) ⓒ 김종길

이곳의 공덕비가 모두 수령들의 횡포에 못 이겨 세워진 건 아니다. 열 지어 있는 공덕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오명항 선생 토적 송공비'가 있다. 조선 후기의 문신 오명항 선생이 영조 4년(1728)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을 토벌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안성의 군관민이 영조20년(1744)에 세운 송공비이다.

 

오명항은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경기·충청·전라·경상 4도의 도순무사로 임명되어 난을 진압하였다. 그 공로로 분무공신 1등이 되고 해은부원군에 올랐다. 송공비는 당시 종사관이었던 우의정 조현명이 짓고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가 썼다고 전해진다. 원래 동본동에 있던 것을 1969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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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석탑(향토유적 제18호) ⓒ 김종길

공원 안에는 불교 유적들도 많이 있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 석남사 주변에서 출토된 것을 옮겨 놓은 석조광배와 연화대석, 시내주변에 흩어져 있던 좌대·불상·광배들을 모아 만든 석불좌상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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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광배(향토유적 제9호)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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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좌상(향토유적 제8호) ⓒ 김종길

특히 광배는 그 솜씨가 뛰어나 한동안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석불좌상은 제짝이 아닌데도 그 예쁘장한 자태에 절로 눈길이 간다. 시멘트로 깁스한 석불의 오른팔이 다소 안쓰러웠지만 돌조각 하나도 함부로 하지 않고 문화재를 정성스럽게 모아둔 안성사람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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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봉구 문학비 ⓒ 김종길

46기에 달하는 공덕비 끝에 하마석이 있다. 하마석 옆에 작은 문학비가 하나 있다. 안성 출신인 소설가 이봉구의 비다. '소설가 이봉구의 고향'. 이봉구는 일제하에 농촌계몽운동을 펼친 인물로 작품으로는 실명소설<명동 에레지><방가로>등을 남겼으며, 안성을 무대로 한 <안성장날>이 있다고 비에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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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공원 ⓒ 김종길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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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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