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문재인 이사장님께 묻습니다

[주장] 책의 일부 내용에 객관적 사실 확인이 필요합니다

등록 2011.07.31 16:27수정 2011.07.3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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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사장님께서 정리하신, '함께 쓰는 회고록'- '운명' 감명 깊게 잘 읽었습니다.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많은 책들을 앞에 두고도 왠지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진정성'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물게 '운명'은 국민들 마음속 '아픔, 그리움 그리고 희망'을 어루만져 주는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농사꾼입니다. 부안에 정착해서 농사를 업으로 삼은 지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유기농으로 짓고 있는 얼마 안 되는 논농사와 더불어 '에너지 농사'를 하고 있습니다. 태양광과 같은 재생가능 에너지 농사 말입니다. 주민들이 출자하신 태양광발전으로 에너지 자립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7월 9일 부안에서는 의미 있는 주민집회가 열렸습니다. '에너지 정책 전환을 위한 촛불집회'였습니다. 만 8년 만에 민주광장에 주민들이 모여서 손에, 손에 촛불을 들었습니다. 2003년 부안 방폐장 반대운동이 처음으로 열렸던 날을 기념하며,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였습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주민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원전도 방폐장도 없는 지역임에도 말입니다. 위험천만한 원자력이 아니라 태양과 바람의 에너지, 죽음과의 거래가 아닌 생명과 평화의 세상을 향한 바람 때문입니다. 일본에서의 방사능 사고는 어쩌면 인간을 향한 마지막 경고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책의 내용 중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공개적으로 글을 띄우는 이유인즉, 책의 내용 중에 몇 가지 부분을 지적하고자 해서입니다. 베스트셀러로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 사실의 확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운명' 248~256쪽에는 '사회적 갈등관리'에 대한 내용이 실려있습니다. 2003년 당시 부안에서 일어났던 '부안 방폐장 반대운동'에 대한 평가가 들어 있더군요. 내용 중에 당시 직접 부안을 둘러보셨다는 대목이 있었는데, 특히 부안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환경에 대한 언급 감사합니다.

'부안 방폐장 문제로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많은 교훈을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잘못된 절차가 옳은 결과를 만들 수는 없을 터이니까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방폐장은 원전에서 나오는 작업복과 장갑, 장화 등 중저준위 폐기물만 저장하는 곳이다.'

나열하신 예는 저준위에 해당합니다. 중준위폐기물에는 수명을 다한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를 제외한, 수명을 다한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등 방사능 수치가 엄청나게 높은 폐기물 대부분이 해당됩니다. 또한 전국의 약 2500여 연구소, 병원 등에서 나오는 방사선 동위원소도 포함됩니다.

'살아있는 핵연료를 취급하고 고준위 폐기물인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하는 원전시설에 비하면 위험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는 언급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또한 당시 산업자원부의 공고에는 중저준위 폐기장뿐만 아니라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중간저장시설이란 전 세계에서 지금까지 단 한군데도 마련하고 있지 못하는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이 우리나라에 지어질 때까지 '사용후 핵연료'를 곁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이번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4호기는 가동이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핵연료봉을 교체하는 '정기 안전 점검기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폭발을 하고 엄청난 방사능이 누출되었습니다. '사용후 핵연료'때문이었습니다.

'기존의 원전시설이 있는 지역이나 근처지역 주민들은 원전에 익숙하고 방폐장에 대한 경계심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 반면 원전에 생소하고 자연환경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부안같은 지역에서는, 방폐장만 해도 펄쩍 뛸 수 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전남 영광 원전이 있는 홍동읍에 한 번 가셔서 민심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지역발전을 기대하며 원전을 유치하였던 주민들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원전 건설 당시 반짝 경기가 끝나고 난 뒤의 허탈감과 불신입니다. 김봉열 전 영광군수가 2005년에 발표한 '영광주민들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오죽하면 단체장이 '방폐장은 지역경제 성장을 담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간의 갈등만 심화시킨다'는 호소문을 발표하였겠습니까?

'방폐장도 국가가 십 수 년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엄청난 갈등사안이었다.(중략) 민심대책 홍보대책 환경단체 설득대책 등을 분담해 나갔으면 상황이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었다.'

홍보와 설득으로 해묵은 국책사업을 추진하고, 사회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저는 '합의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방폐장 정책의 검토와 지질의 안전성, 부지의 적정성이 먼저 검토되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위험천만한 방폐물을 다음 세대에게 전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책임한 짓입니다. 방사능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부모로서 너무나도 당연한 의무입니다. 방폐장이 그토록 오랜 세월 해결하지 못한 채 사회갈등을 일으킨 원인은 '절차의 투명성과 합리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없이 시민단체들 중재를 받아들여 주민투표로 판가름하게 됐다. 그리고 부안주민들의 압도적 반대에 따라 당초 계획을 포기했다'고 하신 내용은 사실이 아닙니다. 

2003년 10~11월에 부안 주민대표 및 사회단체와 정부 측의 '부안사태 해결을 위한 협의기구'가 구성되었습니다. 저도 일원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오랜 기간 논의와 합의를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핵심 쟁점이 바로 '주민투표의 실시여부'였습니다.

정부 측에서 먼저 주민투표의 실시를 제안하였음에도, 이듬해 8월 이내에는 불가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조속한 사태 해결보다는 시간끌기에 연연하였던 겁니다. 부안 주민들로서는 하루가 십 년 같은 세월이었음에도 말입니다.

결국 협상은 결렬되었고, 부안 주민들 자체의 주민투표가 실시되었습니다. 전국의 양심적인 법조계, 종교계, 시민사회가 주민투표 관리위원회를 구성하여 함께 하였습니다. 부안 주민투표야말로 참여민주주의의 소중한 경험이요,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투표 결과를 두고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폄하하였습니다. 주민투표법 상으로도 어차피 주민의 의사를 묻는 절차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갈등사안에 있어 주민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절차임에는 이사장님께서도 언급하고 계십니다.

결국 2003년 7월에 시작된 부안 방폐장 반대운동은 2005년 8월31일에야 일단락되었습니다. 그 시기동안 정부는 두 번이나 공고를 바꿔가며 추진하였고, 부안은 여전히 찬,반의 극심한 사회갈등에 휩싸여 지역 사회가 두 동강이 나있었습니다.

2005년 11월 2일 방폐장 주민투표 당시 저는 경주에 있었습니다. 참담한 심정으로 말입니다. 경주 유치가 확정되고 폭죽이 터지는 현장에서 아픈 상처를 마음 한 켠에 담아 두었습니다. 지금도 경주는 심각한 사회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아픈 상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깊어집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갈등을 조정하는 일이다. 정부가 정책에 확신을 갖고 있더라도, 반대의견이 있으면 귀 기울이고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말 공감이 가고 옳으신 말씀입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비문이 떠오릅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다른 두 분의 같은 뜻의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깨어있는 시민'과 '소통하는 정부',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이상적인 민주국가의 모습이 아닐까요?

부안 방폐장 반대운동이 있은 지 어느덧 8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름다운 고장 부안은 바뀌고 있습니다. 방폐장의 아픔을 딛고, 재생가능 에너지와 에너지 자립을 위한 실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환경과 생태의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안 주민들에게 남긴 상처가 너무 컸다. 참으로 송구스러운 일이다'라는 이사장님의 뜻, 기쁜 마음으로 감사히 받아들입니다. 언제 한 번 부안을 방문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8년 전처럼 누구에게 알리지도 않고 아무 협조도 받지 않은 채 휴일에 아내와 교대로 운전하면서 내려'오시지 마시고, 부안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을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착한 부안 사람들과 소주 한 잔 기울이시게 말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멀리서나마 이사장님의 건강과 평안을 빕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부안시민발전소 이현민 소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부안시민발전소 이현민 소장입니다.
#문재인 #운명 #부안 #방폐장 #방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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