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돋고, 착잡하게 만드는 16권의 명저 탐색

[서평] 박찬운 교수의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버트란트 러셀에서 노암 촘스키까지

등록 2011.08.02 10:19수정 2011.08.0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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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 이 시대에 읽어야 할 명저 강의> 겉그림 ⓒ 한울아카데미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한울아카데미)의 저자 박찬운은 지난 5년 동안 약 500여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것도 아주 치열하게 희열을 느끼며 읽었노라고 밝히고 있다. 5년에 500권이면 1년에 100권, 사흘이 멀다 하고 한 권씩의 책을 해치운 셈이다. 그는 오로지 책을 읽기 위해서 '사람 만나는 일도 자제했고 음주가무도 삼가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 기간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대학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한 저자는 20여 년 동안 현장 변호사로 일했다. 그는 1972년 춘천 파출소장 딸 강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5년 간 억울한 감옥살이를 한 정원섭씨가 36년 만에 무죄판결을 얻어내도록 한 재심(2008년)의 1차공판 변호인이기도 했다. 그는 한때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사형제 폐지와 양심적 병역거부 등의 인권 관련 정책 입안에 앞장섰다.

이런 이력은 그가 사회적 약자나 소수의 인권을 위해서 한국 사회에 적잖이 유용한 법조인이었음을 말해준다. 셰익스피어는 <헨리 6세>에서 법률가는 모리배와 다름없다고 하면서, 섬뜩하게도 '모든 법률가는 죽여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반면 '모든 변호사는 인권변호사가 되어야 한다'는 순진한 말도 있다. 최소한 박찬운은 전자가 아닌 후자의 삶을 실천해온 법률가라는 점은 틀림없어 보인다.

'교양적 삶'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변호사 박찬운

박찬운이 중년을 넘어선 나이에 홀연히 변호사 직을 그만두고 학인(學人)의 길로 방향을 튼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는 지나치게 기능적이고 기술적인 법학에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법학이란 '세상의 질서를 회복시키는 규범학'인데, 그는 그 '규범'의 이면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로이 준엄하게 공부를 시작하면서 기왕의 전공인 법학보다는 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교양서들을 주로 탐독했다.

'교양적 삶'이란 개인의 자아실현이자 적극적인 행동성을 말한다. 나아가 세상을 더 낫게 만들고 자연의 사려 깊은 교훈을 읽어내는 데 이성과 의지를 한껏 활용하는 삶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변호사라는 '세속적 삶'에서 '교양적 삶'으로 변화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바로 그 성공의 비결이 비범한 양과 질의 '책읽기'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최근 발간된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는 그의 삶을 전환시킨 수백 권의 교양서 중에서도 정선된 명저 16권을 소개하는 '서평서'의 성격을 띤다. 그는 이 글들을 지난 6월까지 반 년 남짓 '이 시대에 읽어야 할 명저'라는 제목으로 <오마이뉴스>에 게재했다. 나는 작년 12월 첫 번째 글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 서평을 읽고는 내심 대견하고 흡족했던 기억이 있다. 저널리즘의 글로서는 이례적이다 싶을 정도로 진지하고 건강한 글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독자로 하여금 책을 꼭 읽게 만들고 싶어 하는 필자의 가식 없는 원망(願望)이 배어 있다. 책 곳곳에 '독자들이여, 시간이 없고 어렵더라도 제발 한 번 도전해 보시라'는 투의 간곡한 독서 전도문(?)을 만날 수가 있다. 자기가 향유했던 경험을 타인에게도 누리도록 해보고 싶어 하는 것은 선량한 이타심과 선의의 계몽정신이 있을 때 나타난다.

그는 지금 한양대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는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짐작건대 그는 매우 '선량하고 교화적인 선생님'의 유형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을 읽으면 마치 그의 강의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나기도 한다. 실제로 이 책은 1강, 2강, 3강… 등의 항목을 두어 강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버트란트 러셀에서 노암 촘스키까지, 대가와 만나는 16번의 강의

버트런드 러셀. ⓒ nobelprize.org

1강에서는 버트란트 러셀의 <자서전>을 텍스트로 하여 훌륭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를 말한다. 러셀에게는 세 가지 열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사랑'과 '진리'와 '연민'이었다. 저자는 귀족 출신인 러셀은 요즘 한국 사회에 회자되는 '강남좌파'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2강에서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의 불복종>이 소개된다. 소로는 부도덕한 국가에 저항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말한다. 소로는 동양적인 미국인이다. 이 책에서 소로는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부귀하게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한 공자를 언급하기도 했다. 소로의 불복종 사상은 맹자의 정치사상과 맥락을 같이 한다.

3강에서는 피터 왓슨의 방대한 저서 <생각의 역사>를 다룬다. 1, 2권 합쳐 2500쪽이나 되는 이 책을 저자는 '오기와 끈기'로 읽었다고 솔직히 토로한다. <생각의 역사>에서 말하는 '생각'이란 종교. 기술, 과학, 정신 등을 망라한다. 이 책은 서구 중심의 박학다식한 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4강에서는 존 롤스의 <정의론>이 소개된다. 이 책은 마이클 샌델의 최근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보다 단연 충실하고 날카로운 저작물이다. 롤스의 <정의론>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나는 서평보다도 저자 박찬운이 롤스의 정의론에 입각하여 무상급식의 정당성을 논증하는 대목을 한결 인상 깊게 읽었다.

유명한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을 작금 자살공화국의 오명을 쓰고 있는 한국 사회에 적용시키는 글이 5강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뒤르켐은 자살을 사회적 현상으로 분석했으며, 그 유형을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그리고 아노미적 자살 등 세 가지로 분류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를 쓴 경제학자 장하준은 칼 폴라니의 제자 격이다. 6강에서는 장하준의 스승격인 '신자유주의의 저격수'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 소개된다. 이 담론은 신랄한 예지로 점철되어 있다. 현대 경제학은 역시 시장(market)과 국가(state)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가 핵심임을 보여준다.

소름이 돋도록 하는 명저, 착잡하게 하는 명저

우리를 무섭고 불쾌하게 만드는 책, 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소개하고 이를 근거로 한국인에게 강요된 국민체조의 속성을 파헤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7강이다. 푸코는 근대 이후의 교육은 통제된 인간을 양산할 뿐이라고 했으며, 합리적으로 위장된 지식은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본 냉소적인 사람이었다.

우리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드는 책,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을 소개하는 것이 8강이다. 이 책은 인간은 셋 중 두 명이 합리적이건 비합리적이건 권위에 무조건 복종한다는 점을 논증한다. 그것은 권위자와의 최초의 약속을 깨기 싫어서, 그리고 권위에 복종함으로써 갈등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용어가 제시된다. 하기야 아우슈비츠에서 가스실 밸브를 돌린 사람들은 게슈타포가 아니라 평범한 게르만 아저씨들이었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박정희와 박근혜 부녀를 대하는 한국인들의 심리적 저변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9강에는 어떤 권위도 심지어는 너의 부모도 믿지 말라고 말하는 존 베리의 <사상의 자유의 역사>가, 10강에는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을 소개하면서 구제역 동물 집단 학살을 규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죽어간 동물들을 위해 천도재라도 올리자는 저자의 제안은 참으로 신선하고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11강에서는 나일문명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C.W. 세람의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이, 12강에서는 '공감'으로 엔트로피를 단축 또는 연장할 수도 있다는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가 다뤄진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소개된 16권의 담론 중 가장 논리가 불분명한 책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13강에서는 데카르트, 뉴턴의 결정론적 인과율을 비판하는 프리초프 카프라의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을 소개하면서 근대화 지상주의에 함몰되어 있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신랄히 비판한다.

책 <지식인의 책무>(노암 촘스키 저/강주헌 역) 겉그림. ⓒ 황소걸음

낙태 문제의 기준을 제시한 로널드 드위킨의 <생명의 지배영역>은 14강에서(내가 보기에 이것은 소개된 16권 중 가장 평이하고 단순한 담론을 담고 있다.), 김홍도의 동물화 '송하맹호도'와 작자 미상의 초상화 '이재초상'을 극찬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은 15강에서 다뤄진다.

그리고 마지막 16강에서는 모두(冒頭) 1강에서 소개된 버트란트 러셀의 세 가지 열정을 삶의 좌우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생존학자 노암 촘스키의 <지식인의 책무>로 대미를 장식한다.

촘스키는 '지식인의 책무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지난 5월 7일 그는 빈 라덴을 제거하고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던 미국 사회를 향해 진실의 돌멩이를 던졌다.

"만약 이라크 특공대가 조지 부시의 집에 침투해 부시를 암살하고 그 시신을 대서양에 버렸다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우리는 자문해야 할지도 모른다."

미국은 파키스탄 영토를 무단 침범했고 비무장의 대상을 생포할 수도 있었는데 기어이 사살했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명백히 국제법을 위반한 처사였다. 하지만 이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소수였다.

서평서를 서평한 글, 그대는 원문을 읽으시라

플라톤은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을 '이데아(Idea)'라고 하고 이를 모방하는 것이 '세상'이라고 했다. 그런데 '시(詩, 비극)'는 또 한 차례 세상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니 가장 열등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견 허무맹랑하기도 한 플라톤의 방식을 책에 대입한다면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은 단연 원전이다. 그런데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는 원전에 대한 서평서이다. 그리고 내가 쓴 이 글은 서평서에 대한 또 한 차례의 서평이 되니 가장 열등할 수밖에 없을 터이다.

현명한 독자라면 이 글보다는 박찬운의 책을 읽어 볼 것이다. 나아가 그가 제시한 16권의 명저를 찾아 읽는다면 독자에게 유용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뿐 아니라 저자 역시 큰 보람을 가질 것이다. 저자가 소개한 16권의 책은 우리를 인간다운 삶으로 이끄는 데 소금처럼 긴요한 담론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확인되는 것은 '명저는 하나같이 진보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격동하는 한국 사회에서 진보적 신념을 가지고 살기란 참으로 지난하다. 교양과 논리가 없는 진보란 기실 선동이거나 슬로건에 불과할 수가 있다. 박찬운의 책이 가지는 강점은 명저가 담고 있는 교양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책에서 말하는 진보적 교양을 어떻게 실천적인 삶으로 적용시키느냐에 역점을 두었다는 데에 있다.

평소 나는 책에는 네 단계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첫째는 책도 안 좋고 저자도 마음에 안 드는 책, 둘째 책에 비해 저자가 마음에 안 드는 책, 셋째 책은 출중하지 않아도 저자가 마음에 드는 책, 그리고 최상급은 물론 책도 좋고 저자도 마음에 드는 책이다. 박찬운의 책은 최소한 세 번째, 아니면 네 번째에 해당한다. 읽고 나면 불현듯 저자를 만나보고 싶어지도록 만드는 책이 바로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이다. 모처럼 자신 있게 일독을 권할 수 있는 책을 만나 즐겁다.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 이 시대에 읽어야 할 명저 강의

박찬운 지음,
한울(한울아카데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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