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비밀접촉에 불쾌해진 미국
 스스로 운전석 앉겠다고 선언한 것"

[인터뷰] 박선원 미래발전연구원 부원장... "한국 정부, 더이상 발목잡기 말아야"

등록 2011.08.01 16:42수정 2011.08.0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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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때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을 지낸 박선원 미래발전연구원 부원장. 그는 "미국은 이제 북한과의 본회담을 위한 과정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 남소연


"미국은 북한과의 본회담으로 가기 위한 과정을 이미 시작했다. 미국은 이제 '우리가 운전석에 앉겠다. 우리 프로젝트를 한국 정부가 지나치게 가로막으려 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동안 북핵협상 과정에 브레이크만 걸어온 한국 정부는 이제 더이상 '원칙있는 대화'와 같은 말장난으로 발목 잡을 생각하지 말고 비핵화를 진전시키는 데 협력하면서 평화회담을 준비하는게 좋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으로 일했던 박선원 미래발전연구원 부원장은 최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최근 갑작스럽게 재개된 북미 대화에 대해, "(미국이) 이명박 정부에게 대북정책 주도권을 맡겨두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박 부원장은 그 이유로 북한의 농축우라늄계획(UEP) 의혹 확산과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미국이 정세를 재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그간 북미접촉을 만류해온 이명박 정부가 베이징 비밀접촉을 통해 3차례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에 대해서 불쾌감이 컸을 것이라고 봤다.

"(한국 정부의 정책을 따랐다가) 남북관계가 경색됐고 결국은 군사적인 위기까지 경험했는데, 난데 없이 남북이 접촉하고 이명박 정부의 가장 강경파인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까지 비밀접촉에 나선 상황을 보면서 미국이 상당히 언짢았다고 알고 있다."

그는 이번 뉴욕에서 열린 북미접촉에서 "김계관 제1부상은 그간 미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가졌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미 국무부가 '예비회담'이란 용어를 쓴 만큼 본회담이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회담이 언제 어디서 열릴지가 단기적 관심사"라며 앞으로 북미간의 '터프'한 비공개 대화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한편 억지로 떠밀려 남북대화를 시작한 꼴이 돼 버린 한국 정부도 북한과의 2차 회담을 추진하겠지만 지난번 발리에서 이뤄졌던 수준의 회담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남북비핵화회담이 절대 북미회담으로 가는 통과의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미 북미회담이 열린 상황에서 겨우 자존심만 유지하려고 할 것이란 말이다.

참여정부 시절 6자회담과 북핵해결을 위해 주력했던 박 부원장은 "9·19공동선언 이후 터진 BDA(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 사건이 가장 아쉽다"며 "이 사건이 없었으면 지금쯤 최대 북이 신고한 핵물질을 외부로 반출하는 단계까지로 진전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부원장은 참여정부 임기를 마친 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초빙연구원으로 지내다가 최근 2년 10개월만에 귀국, 미래발전연구원으로 복귀했다. 그는 향후 연구원내에 '진취적 국가안보전략센터'를 세워 노무현 정부가 추진해 왔던 국가안보전략을 재정리하고 업그레이드해서 다음 정부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할 계획이다.

다음은 그와 가진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미, 베이징 남북 비밀접촉에 불쾌하고 당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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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관 등 북한 대표단 일행이 북미 고위급대화 참석을 위해 지난 29일(현지시간) 오전 뉴욕 맨해튼 밀레니엄유엔플라자 호텔을 나서고 있다. 뒤쪽은 최선희 부국장. ⓒ 연합뉴스


- 최근 남북한이 무려 2년 7개월 만에 발리에서 비핵화회담을 가진 데 이어 북한과 미국도 1년 7개월 만에 뉴욕에서 접촉을 가졌다. 오랫동안 열리지 않은 6자회담도 곧 재개될 것이란 전망이 커지고 있다. 최근 한반도 주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작년 말 연평도 포격 바로 직전인 11월에 북한이 지그프리드 헥커 전 로스앨러모스 핵 연구소 박사팀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농축 우라늄 시설을 보여주면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해 갈 것이고 핵물질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때문에 당신들이 우리에게 군사적 수단을 쓸 수 없을 거다. 그러니까 어차피 군사적으로 갈 수 없으면 대화로 가야 하지 않느냐'하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 직후에 터진 게 연평도 포격 사건이다. 그런 점을 보면서 미국이 정세를 재판단한 것 같다. 이명박 정부에게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맡겨두는 게 대단히 위험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 미국은 최근까지도 이명박 정부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표명해 오지 않았나.
"지난번 베이징 비밀접촉 폭로 이후 미국이 놀란 것 같다. 한국이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 그것도 아주 짧은 간격으로 6개월에 3번 이상이나 만나자고 한 데다 돈 문제까지 나온 것에 대해 미국이 불쾌하고 당혹스러웠던 것 같다.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2009년 12월 평양에 다녀온 뒤로 미국이 예상과 달리 강석주 외무상을 초청하지 않은 이유는 한국 정부가 '이제 막 제재의 효과가 나타나는데 대화를 시작하면 어떡하느냐, 조금 천천히 가자'는 요구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됐고 결국은 군사적인 위기까지 경험한 것이다.

그런데 난데 없이 남북이 접촉하고 이명박 정부의 가장 강경파인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까지 비밀접촉에 나선 상황을 보면서 미국이 상당히 언짢았다고 알고 있다. 직후 한국 정부 인사가 미국에 가서 해명하는 자리에서, 미국 측은 '이제는 남북대화나 북미대화를 병행해야 한다. 그게 싫다면 당신들이 어떤 식으로든 남북대화에 나서라. 우리로선 7월 하순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 계기에 고위급 북미접촉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알고 반드시 중단시켜야 겠다는 긴박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대로 가다가 제2의 연평도 포격사태가 날 수 있다는 우려와 무엇보다도 북한이 협상을 할 의지가 있는지 고위급에서 직접 확인해야 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한 가지 추가한다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비핵화협상이 오히려 후퇴했고 북한 핵능력은 강화됐다는 비난을 받는 것만은 막아야 겠다는 의지가 작용했을 것이다."

"3단계 회담, 북미대화 위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

-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남북 접촉을 하기 싫은데 미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하게 된 상황인 건가?
"그렇다. 원래 3단계 회담이라고 하는 것은 남북회담→북미회담→6자회담 식으로 하자는 것인데, 이것이 각각 상당히 내용있는 회담이고 하나의 회담이 어느 정도 진전되면 다음 단계로 진행되는 단계적 회담으로 이해됐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전체가 하나의 과정으로 되어버린 것이다. 남북은 대화의 문은 연 채 진전은 없는 상태로 머무를 것이고, 6자회담은 거의 형식적인 틀로만 남아있게 될 것이므로, 제일 중요한 것은 북미 접촉에서 어느 정도 깊이 있는 대화가 오고 가느냐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미 대화 위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 한국 정부는 그간 남북회담이 절대 통과의례가 되지는 않을 것이고 거기서 무언가가 나오지 않으면 다음 북미회담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해 왔는데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 아닌가.
"그렇다. 최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남북접촉이 있었다고 해서 남북 관계의 진전이 보장된 건 아니라는 글이 나오기까지 한 것은, 결국 이명박 정권과 대화해서 실질적인 진전과 성과를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북한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일단 협의가 시작되었고, 이를 지속시키고 싶어하는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 줄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이 요구하는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과는 충족시켜줄 수 없다. 왜냐하면 천안함은 북한이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남북비핵화 회담에 기대를 전혀 걸지 않고 접촉에 나섰다.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 판단을 내리고 나왔다."

"북, 천안함-연평도 사과할 이유가 없어졌다"

- 정부가 오랫동안 천안함-연평도 사과를 내걸었기 때문에 지금 와서 쉽게 주워담을 수도 없지 않겠나.
"그래서 어렵게 됐는데 방법은 있다. 합의도출 목적이 아닌 '회의기록용(for the record)' 발언을 서로 교환하는 수준으로 천안함-연평도 문제를 거론만 하고, 비핵화 등 다른 핵심의제로 협의의 중심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할 이야기를 하고 저쪽은 저쪽대로 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어차피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베이징 비밀접촉에서 하려던 게 '북이 보면 사과가 아니고, 남이 보면 사과로 보이는' 바로 이런 방식을 시도하려다가 퇴짜를 맞은 거 아닌가?
"북측은 그걸 못하겠다고 한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 북측이 남북회담을 북미회담으로 넘어가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생각한다면, 이 방식을 남한 당국자들의 뒤통수를 쳐가면서까지 거부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애매하지만 약간의 추론을 해보겠다. 5월 상순으로 기억하는데 힐러리 클린턴 국무부장관이 '천안함 문제는 6자 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 '이제 그만 하면 됐다(enough is enough). 더 이상 이 문제로 6자 회담 재개에 브레이크를 걸지 말라는 불평을 공개적으로 털어놓은 것이다. 그걸 본 북한으로선 천안함-연평도 문제에 사과할 외교적 근거가 없어졌다고 판단하게 되어 있다. 북한이 남북회담을 통과의례로 볼 수 있겠다고 판단한 건 당연한 것 아닌가.

또 작년 12월과 금년 1월 김숙 국정원 차장-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 교차 방문 때 이미 (천안함-연평도에 대한) 낮은 정도의 의견 교환이 있었는데, 베이징(비밀접촉)에서 북측은 남측이 암묵적 양해의 선을 넘어서 지나치게 밀고 들어온다고 느꼈을 것이다."

"뉴욕에 간 김계관, 미국의 오해 불식시키려 노력할 것"

- 김계관 북한 제1부상이 지난주 뉴욕에서 미국과 협상을 가졌다. 무슨 논의를 했을까.
"첫 번째 그간 미국이 가지고 있는 오해를 불식 시키기 위해 설명을 했을 것이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대남 전면대결 태세를 선포한 것과 2009년 3월 보즈워스의 방북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 그 다음에 미사일 실험과 핵 실험. 그 전 과정에서 오바마 정부에서 느끼고 있는 불쾌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상당히 장시간 설명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연평도 포격사태 직후 평양을 방문하고 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북한쪽 사람들은 '우리가 조금 너무 멀리 나간 것 같다. 너무 멀리 나가서 미국이 불쾌해 하는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UN 북한대표부에서 나온 이야기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비정치적인 이벤트를 추진하려 했으나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의사들을 평양으로 불러들인다든지 애틀란타에서 1.5 트랙 민관 합동회의를 추진하려 해도 미 국무부가 굉장히 단호하게 거부하는 건 미국이 '전략적 인내'라는 정책의 차원이 아닌 북한에 대한 불쾌감 때문이라고 보더라. 그래서 북한의 아주 낮은 수준의 접촉이나 인도적 협조 요구에 대해서도 미국이 응하지 않는 데 상당히 깊은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이번 뉴욕 회담에서 김계관은 일단 오해를 누그러뜨리고 자신들은 9·19 공동성명과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케에 따른 문제 해결을 희망하며 그것이 바로 북미 양국이 가야 할 미래라고 확신한다는 주장을 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이야기하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필요한 조치'에 대해서는 돌아가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이미 평양을 출발할 때부터 김계관의 머릿속에는 무엇을 미국에 내줄 수 있을지 다 정리해 두었다. 하지만 대화를 한 번 더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에 다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주지 않으면 다음에 대화를 못하니까 미국의 요구에 대해 '어느 부분까지는 가능할 텐데 평양에 돌아가서 확인하고 통보할 테니 다음에 또 만나자' 이렇게 나올 것이다."

- 구체적으로 북한이 당장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첫 번째 2·13 합의와 10·3 합의에 따른 불능화 조치 복원은 가능하겠다. 그 다음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과 미 국무부의 현장 모니터링팀은 각각 영변과 고려호텔로 복귀할 수 있다. 우라늄 시설 문제에 대해서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측면에서 추진하고 있지만, 미국이 와서 보고 싶다면 보여줄 수 있다고 했을 것이다. 농축 중단 여부는 회담이 진행되는 데에 따라 달려있지 않겠느냐는 정도까지 힌트를 줄 것이다. 힌트는 주면서도 당장 그렇게 행동에 옮기기는 어렵다면서 반대급부 목록을 주욱 늘어놓는다. 미국측에선 그런 조치 가운데 비가역적인 것은 없으니 안되겠다고 밀어부친다. 특히 우라늄 활동 중단과 대남도발 자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요구했을 것이다. 북한은 고개를 끄덕이는 선에서 대응하지 않았겠나."

"북, 고개 숙이지 않으면 3년내 붕괴한다"는 MB정부 사람들

- 정부에서 북핵 협상을 담당하는 고위 당국자가 기자들과 이야기하면서 '6자회담만 가면 뭐가 나올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라, 6자회담하고 나온 게 뭐냐, 9·19 공동성명 얘기 자꾸하지만 거기 보면 원론적인 얘기만 쓰여있다'며 폄훼하던데.
"9·19 공동선언에 아무 것도 없다는 주장은 지극히 잘못됐다. 참여정부는 2007년 2·13합의와 10·3합의에 따라 북한이 핵활동을 중단하고 영변 핵시설 불능화 조치를 취하게 만들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5메가와트 원자로 냉각탑도 폭파됐고 과거 핵활동에 대해 신고서도 제출했다. 남은 것은 기술적 검증이었다. 거기서 계속 나갔어야 했다. 신고한 것을 어떻게 검증하느냐 하는 것은 기술적인 문제로 남겨두고 거기서 바로 불능화에서 폐기단계, 핵물질을 외부로 반출하는 단계로 속도를 내서 협상에 들어갔어야 했다. 그 협상은 못 들어가고 검증이라고 하는 단계, 그 함정에 한미가 스스로 빠진 것이다.

검증 문제는 전문가 그룹에 맡기고 고위 핵협상가들은 핵 불능화과정을 핵폐기 단계로 높여가야 했다. 거기에 한국의 책임이 있다. 계속 검증 가지고 시비 걸 듯한 것이 잘못이다. 이게 2008년 6월 이후부터 2008년 11월까지의 상황이다. 한국이 미국에게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 행위가 초래한 결과가 남북-북미 간 불신과 긴장 등 관계 악화다. 대화를 하지 말자든지 성과가 없다든지 하는 것은 자신들의 정책적 실패를 호도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확실한 것은 협상을 하지 않으면 얻은 게 없다는 것이다."

- 정부는 '조금만 기다려봐라, 뭔가 있을 것이다'라고 계속 이야기해왔다.
"이명박 정권 사람들은 정권 출범 초기 북한이 앞으로 1년 반 내에 고개 숙이고 들어오게 되어 있으니 기다리면 된다고 말했다. 고개 숙이고 안 들어오면 어떡하느냐는 질문에는 '3년 내에 고개 숙이지 않으면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것이 현 정권 안보 지휘부의 틀에 박힌 사고다. 그것이 계속  발언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미, 북한이 여기자들 유인해 잡아간 걸로 이해한다"

- 오바마 대통령은 정권 출범 초기만 해도 평양에 가서 직접 담판을 할 수도 있다고 말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략적 인내' 발언이 나오게 된 데에는 북한의 책임도 큰 것 같다.
"미국은 북한이 미사일이나 핵실험한 것뿐만 아니라, 두 여성 기자의 납치를 유인한 것으로 보며 문제 삼고 있다. 실수로 넘어간 게 아니라 두 기자를 안내했던 중국인이 북쪽 고위부 끄나풀로 '저쪽까지는 갈 수 있다'고 함정을 파서 잡아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기자들을 석방시켜야 하기 때문에 클린턴 대통령까지 보내 인도적으로 데리고 나온 것이다. 국가 대 국가로서의 도전뿐만 아니라 기자들에 대한 유인 납치 등 모든 것이 결합돼서 굉장히 불쾌하고, 도대체 북한과 협상한다 한들 지켜지겠는가란 의문이 든 듯하다. 미국 측에선 북한과의 대화가 무의미하고, 비현실적이며, 그런 걸 알면서 협상하는 건 정치적으로도 위험한 행위라고 보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김계관 제1부상은 미국에 가서 해명성 발언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해명을 충분히 요구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 국내가 설득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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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7일 북이 오후 5시5분. 높이 20여미터, 600톤에 달하는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다. 폭파비용은 미국이 부담했으며, 한국과 일본은 참관하지 못했다. ⓒ CNN


- 북한이 오바마 정권 초반에 초강경으로 나온 것은 협상력을 높이려는 계산이었을까?
"그건 아니다. 북한은 2008년 6월 영변 냉각탑을 파괴했다. 10·3 합의에는 그 다음에 미국이 '테러지원국'을 해제하기로 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다 마침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로 인해 내부 검열이 강화되고 대외협상파가 위기에 몰렸다. 북한 사회가 전반적으로 강경기조가 됐다. 북한은 냉각탑을 폭파한 걸 미국에게 잘해준 걸로 판단한다. 자기 기준에서 의무를 다 했는데 미국이 틀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각 부문별로 재점검에 들어갔다. '왜 이런 일이 나타나는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각 분야가 강경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2차 회담 언제 어디서 열릴지 관심... 한국은 답답하게 됐다"

- 앞으로 북핵회담은 어떻게 진행될까.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해명성 발언이나 필요 조치를 한다고 해서 당장 고위급으로 북한에 누굴 보내고 이러긴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얼마나 확실하게 비핵화를 할 용의가 있는가에 대해 계속 타진하고 때론 흔들어보고 그러면서 북한이 확실히 바뀌었다는 판단이 설 때 비로소 6자회담으로 갈 것 같다. 그 때까지 협상은 외부에 있는 그대로 드러나진 않지만 아주 터프하고 격렬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큰 그림이 그려질 듯하다. 이미 2009년 11월 보즈워스가 평양에 가기 전에 오바마 정권의 로드맵이 완성돼 있었고 가서 이미 설명 다 했다. 뭘 주고 받을지, 평화체제 문제는 어떤 식으로 논의할지 다 얘기됐기 때문에 진행 속도가 붙을 것이다. 3-4개월 정도 문턱을 넘는 터프한 협상이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에게 공개하지 않은 채 진행될 거라 예상한다.

한국은 2차 남북비핵화회담을 추진하겠지만 협상이 잘 안 될 것이다. 그냥 지난 번 발리에서처럼 했던 식으로 갈 것이다. 자기 하고 싶은 얘기만 할 것이다. 그거라도 해서 남북간에도 뭔가 진행되고 있다는 외양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우리 정부에겐 그것 외엔 방법이 없다. 북미대화를 지켜만 보고 있자니 자존심 상하고 천안함을 버릴 순 없고. 북은 그게 편리하다. 중국은 관전자로 빠져 있을 것이다. 중국은 어차피 이 판이 자기 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남중국해 문제도 있고. 미국 입장으로선 6자회담 들어가면 중국 역할만 키워주는 것이기 때문에 북미대화로 갈 것이다. 그사이 일본은 북일대화를 재개해서 북한하고 대화할 것이다. 일본도 몸이 달아올라 있다.

관전 포인트는 이렇다. 미국은 '의미있는 회담이었다'고 말할 것이고, 김계관은 '성과가 컸다'고 이야기를 할 것이다. 미국은 약간 여전히 신중한 모습을 보일 테지만, 북한은 되는 쪽으로 끌고 가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다만 2차 회담이 언제 어디서 열릴지가 단기적 관심사다. 겉으로는 많은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북한측의 설명이나 조치내용은 공개되지 않을 것이다."

- 북미간 2차회담이 곧 열릴 것 같나.
"힐러리 클린턴 장관이 김계관 초청을 직접 꺼낸 이유도 그냥 '끝내지 않겠다'는 뜻이다. 클린턴 장관은 '탐색적(exploratory)인 회담'이란 표현을 썼다. 그런데 이틀 후 국무부 대변인은 '예비(preliminary) 회담'이란 표현을 썼다. 예비회담은 본회담 가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탐색'은 한 번 보고 말지만 '예비'는 본회담을 위해서 계속적으로 만나겠다는 뜻이다.

북미 본회담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클린턴이 김계관 초청을 밝히는 것은 '본회담 준비에 나서겠다, 우리가 운전석에 앉았다, 더 이상 한국 정부는 내 프로젝트에 왈가왈부 하지마라'는 뜻이다."

- 이제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은 그동안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 결과 남북한 간 긴장만 고조됐다. 북미회담의 성과가 나오게 되면, 미국은 한국에게 비용분담을 요구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공평과 균등의 원칙에 따라 마땅히 져야 할 경제적 부담을 기꺼이 지겠다고 맘먹고 비핵화 협상의 적극적인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한다. 평화체제 논의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만약 평화체제 논의를 회피한다면 한국이 북핵 문제의 직접 당사자로서 해결과정에 치고 들어갈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게 된다.

더 이상 발목잡기도 그만둬야 한다. 더 이상 '원칙있는 대화' 같은 수사, 말장난은 그만해야 한다. 실질적 비핵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실현 가능성도 없는 남북정상회담 대신 비핵화를 진전시키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국가관계도 인간관계와 별 다를 게 없다. 그간 서로 너무 많이 상처받았고 증오와 적대감이 쌓여있기 때문에 정상회담이 될 수 없고, 되더라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초점을 비핵화 협상과 평화체제 구축 방향에 맞춰야 한다.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안보팀도 바꿔야 할 것이다."

-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현 정권에도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이 있을까.
"예를 들자면 통일부 장관과 국정원장에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류우익 전 중국 대사 등 덜 이념적인 사람을 써야 한다. 이들은 안보문제를 이념적으로 싸운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실용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정부에는 안보전문가는 없고 안보이데올로그만 있다. 거기에 공무원들도 다 감염됐다. 자기만족적이며 동시에 책임회피성 말만 한다."

"BDA 사건 가장 아쉽다, 그 일만 없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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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원 미래발전연구원 부원장은 "6자회담 과정에서 BDA사건이 가장 아쉬웠다"고 소회를 밝혔다" ⓒ 남소연

- 참여정부 때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끝을 맺지 못했고, 결국 이렇게 시간만 흘렀다. 지금와서 당시를 회고할때 가장 아쉬운 점은?
"BDA사건(미국은 2005년 미국은 북한이 BDA(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을 통해 돈세탁을 했다며 북한의 자금을 동결했었다)이다. 2005년 9·19공동성명을 채택할 때 베이징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쪽 사람들을 밤마다 1-2시간씩 만났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이 별도로 뭔가 추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레터(편지)를 써서 크리스토퍼 힐 수석대표, 빅터 차 NSC 국장, 윌리암 토비 백악관 비핵확산 담당 국장 등에게 조어대 1층 회의장을 오가며 각각 전달했다. '제재와 징계·징벌은 언제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명분과 조건이 필요하다. 합의를 위해 징계를 해서는 안 된다. 일단 합의하자. 징계는 이후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그때 공동으로 논의하자'고 했다. 그러나 결국 BDA가 터졌다. 그래서 굉장히 불쾌했다."

- BDA 사건은 재무성이 벌인 일 아닌가.
"재무성에서 했지만 독자적으로 그런 일 못 한다. 그건 법무부, 국방부, 백악관의 비확산 파트와 연계돼서 하는 거다. 재무성이 백악관의 승인 없이 하는 게 아니다. 존 볼턴 등 네오콘들이 합의를 깨기 위해 벌인 것이다. 그게 제일 아쉽다. 그거 때문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도 했다. 핵실험 하기 전 하고 후는 다르다. 협상할 때 저쪽의 입지가 더 강해지니까. 만약 BDA카드를 쥐고 있으면서 저쪽이 합의를 깨려고 할 때 보여주고 하지 말라, 따라와라 하면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결국 북한은 핵실험까지 하고 미국은 BDA 자금동결을 풀어줄 수밖에 없지 않았나."

- 그때 BDA 사건이 없었으면 지금쯤 북핵문제는 해결됐을까?
"최소한 북한 핵물질에 대한 관찰 가능한 모니터링 상태까진 갔을 것이다. 최대로는 플루토늄 핵물질의 신고한 분량(검증된 분량이 아니라)에 대한 외부반출까지 가능했을 것으로 본다."
#북미회담 #김계관 #보즈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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