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맹 백태웅 "'박노해 전향' 운운은 잘못된 시각"

<한겨례>와 인터뷰서 "정치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등록 2011.08.01 16:16수정 2011.08.0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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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의 주역인 백태웅(49) 하와이대 로스쿨 객원교수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지 12년 만에 입을 열었다.

최근 한달간 한국에 머물렀던 백 교수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1일자 게재)에서 "정치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며 "나는 오래 (외국에) 나가 있어서 준비가 없는 사람"이라고 일각의 '내년 총선 참여설'을 일축했다.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PK(부산·경남)지역을 공략하기 위해 부산이 고향인 조국·안철수 서울대 교수뿐만 아니라 백 교수의 영입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보도에 그가 내놓은 첫 답변인 셈이다. 백 교수는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으나 부산에서 자랐다.

백 교수는 "정치적 활동보다는 동아시아공동체가 구체화될 때를 대비하는 국제적 네트워크의 형성에 기여하고 싶다"며 "좀더 길고 넓은 전망을 가지고 현실 속에서 고투하는 사람들의 고민을 배우고 싶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민주화 과정에 맞는 실천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

또한 백 교수는 지난 98년 석방된 박노해 시인을 두고 운동권 진영에서 '전향했다'고 비난했던 일을 두고는 "전향 운운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당시)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사회가 민주화되어 가는 과정에 맞는 실천의 방식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며 "그런 판단을 전향이라고 하는 이름표를 붙이면서까지 문제삼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백 교수는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결성 혐의로 1심 무기징역, 2심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김대중 출범 직후인 98년 특별가석방됐다. 그는 가석방되기 전 '대한민국 헌법에 바탕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향해왔고, 앞으로도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겠다'는 요지의 준법서약서를 제출했다.

백 교수는 "그때 감옥 안에서 여러 입장이 있었지만 박 시인과 나는 준법서약서의 본질적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현실적으로 어렵게 들어선 민주정부에도 양심수 문제를 풀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다만 백 교수는 "요식절차에 대한 요식적인 답변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마저도 거부하면서 끝까지 감옥에 남은 분들의 결단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백 교수는 "(사노맹이 내세운) 당시의 사회주의는 이념이라기보다는 냉전논리와 군사독재에 맞서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의 공통된 코드였다"며 "사회주의라는 금기어에는 비타협적인 싸움을 결사적으로 하겠다는 자기결의의 측면이 컸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사노맹이 토지무상분배나 재벌기업 몰수 등을 내세웠는데) 내용적으로 미숙한 점이 많아 우리의 준비 부족에 대한 반성과 회의도 많았다"며 "시대의 한계였고 우리 자신의 한계였다"고 털어놓았다.

"한국은 식민지시대부터 기적 같은 역사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백 교수는 "군사독재라는 폭압적인 현실과 법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문제를 연결시켜 그 속에서 세상을 바꾸고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가르쳐준 사람이 내게는 아무도 없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 누군가가 사회정의, 법이라는 것이 단지 지배자의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친 것처럼, 법을 민중의 것으로 만들고 그 속에서 능동적으로 정의의 수단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해주었더라면…. 그때는 80년대였다. 시대의 한계였고, 나의 한계였다."

인터뷰 끝부분에 백 교수는 '한국 현대사의 위대성'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비교해볼 때 새삼 우리나라가 대단한 나라라는 것을 실감한다"며 "한국은 식민지 시대로부터 기적 같은 역사의 길을 걸어왔다"고 평가했다.

백 교수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룩한 경제와 민주주의의 성과를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만들 수 있을까"라고 물은 뒤, "우선 경제적 민주화와 정의를 더욱 밀고 나가야 하고, 동시에 국내적 시각을 넘어 국제적인 연대와 실천을 통해 우리 현대사의 위대성을 나누어야 할 때"라고 답했다. 

81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백 교수는 '학원프락치사건'(84년)에 연루돼 구속됐다가 석방된 뒤 현장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89년 박노해 시인 등과 함께 '자생적 남한 사회주의 혁명조직'인 사노맹을 결성했지만 91년 검거됐다. 항소심에서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98년 광복절 때 특별 가석방됐다.

이후 99년 김수환 추기경과 조국 교수 등의 도움과 조언으로 미국 노터데임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고, 국제인권법 박사학위와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이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교수를 거쳐 현재 미국 하와이대 로스클 객원교수로 재직중이다. 조만간 한국으로 들어와 대학에서 동아시아 공동체 결성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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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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