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꿈

사람이 문명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등록 2011.08.05 11:38수정 2011.08.0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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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문명의 편리함만 추구하는 동안 나비의 꿈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 유신준


당직 날 퇴근길. 밤 9시에 방범장치를 세팅하고 면사무소 앞길을 걷기 시작했다. 집까지는 3km남짓이니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그믐이라 하늘에 달도 없는 어두운 밤, 군데군데 가로등을 의지삼아 천천히 걷는다. 밤길을 걸어본 게 얼마만인가. 뺨을 스치는 밤바람이 청량하다.

요즘 들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편이다.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이용하고 여유가 있으면 걷는다. 계기가 있었다. 얼마 전 집 하수구가 문제가 생겨 연립 삼층을 여러 번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숨이 차고 몸이 예전같지 않다. 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깨달은 바 있어 적극적으로 생활을 바꿔보기로 했다. 오늘 밤길도 새로운 시도 중의 하나다.

최근 새로 만든 인도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보도블럭이 매끄럽고 철제가드가 든든하다. 유사시 자동차를 막아 줄 정도의 튼튼한 구조물은 아닐지라도 심리적 안도감이 드는 보호장치다. 예산이 부족했던지 군데군데 공사가 안 된 구간도 눈에 띈다. 차를 타고 다닐 때는 잘 몰랐는데 자동차들 달리는 속도가 대단히 위협적이다. 밤이라 더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헤드라이트는 또 얼마나 눈이 부신지 정면을 응시하기조차 어렵다. 자동차가 점령해버린 세상. 사람을 위한 갓길은 없다.

어디 자동차뿐이랴. 언젠가 휴대폰을 분실한 적이 있었는데 전화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당황했던 적이 있다. 늘 메모기능에 의존하니 기억할 필요가 없어 저절로 잊혀지는 것이다. 간단한 전화번호하나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현실이 됐다. 또 있다. 회식 때 가끔 드나드는 노래방에서도 같은 사태에 직면한다. 전에는 좋아하는 노래를 당연히 외워 불렀는데 요즘은 아는 노래조차 자막에 의존하게 된다. 이제 자막이 없으면 노래 한 소절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멀쩡한 사람 길치로 만들어 버리는 네비게이션은 또 어떤가. 머지않아 인간은 기계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서운 시대가 도래할 지도 모른다. 인간이 만든 문명의 이기들을 통해 삶은 편리해졌지만, 기계들의 세상에 오히려 인간이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물질문명이 발전할수록 사람이 할 일은 별로 없다.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첨단 문명시대에 인간은 과연 진보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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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쌍의 날개를 얻기 위해서는 살을 찢는 우화의 아픔을 견뎌야 한다 ⓒ 유신준


트리나 폴러스가 쓴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우화. 줄무늬 애벌레가 기를 쓰고 올랐던 벌레기둥이 떠오른다. 뭔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모두들 필사적으로 기어올랐지만 결국 그 끝엔 아무것도 없었다. 길을 잘못 든 애벌레들의 공허한 결말이었다.

애벌레에게는 꿈이 있었다. 몸에서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들고, 번데기가 되어야 비로소 이룰 수 있는 나비의 꿈이다. 화려한 나비의 꿈은 거저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한 쌍의 날개를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 살을 찢는 우화의 아픔을 견뎌야 한다. 어두운 고치 속에서 성충이 되기 위한 과정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비로소 푸른 하늘을 날 수 있다.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문명의 편리함만 추구하는 동안 나비의 꿈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길을 잘못 든 애벌레처럼 다른 애벌레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벌레 기둥을 오르고 있는 건 아닌지. 허망한 결말도 모르고 하루하루 금쪽같은 삶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편리함만이 능사가 아니다. 넘치는 문명 속에서 사람이 문명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어둠속에서 화려한 나비의 꿈을 위해 온몸으로 고치를 짓는 애벌레처럼.

덧붙이는 글 | 동양일보에도 송고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동양일보에도 송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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