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의무 아닌 권리

헌법이 보장한 교사의 권리...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것은 교사 아닌 권력

등록 2011.08.08 16:51수정 2011.08.0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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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1 : 이승만 자유당 정권 시절 3·15 부정선거 직전 민주당 장면 후보의 유세에 학생들과 교사들이 참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요일에 학생들을 등교시키는 사태가 발생했다. 당연히 학생들은 이에 반대하여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 장면2 : 박정희 정권 시절 "유신만이 살 길이다"라는 유신 옹호 노래를 만들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부르게 하고, 교사가 각 가정을 방문하여 학부모와 국민들에게 "삼권분립은 18세기적 생각이며 우리나라는 유신체제가 맞는 체제다"라고 유신을 홍보하도록 하였다.

# 장면3 : 전두환 5공 군사독재 시절 교실에서 교장과 교감이 교무실에서 민정당 입당 원서 또는 선거운동원 등록원서 들고 다니면서 "아무 것도 아니니 그냥 서명만 하면 된다"고 교사들 사인을 받고 다녔다.

정치적 중립성 훼손에 관한 가슴 아픈 기억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해 교사들이, 우리 교육계가 가지고 있는 슬픈 역사적 경험들의 한 사례들이다. 공무원들이 노조를 만들면서 "정권의 공무원이 아니라 국민의 공무원이고 싶습니다"라는 구호를 내걸었던 것도 이런 아픈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 얻은 교훈이다.

현재 쟁점 중의 하나는 교사 또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어떤 의미인가, 즉 그것이 의무이냐 권리이냐 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교사들이 정권과 상관없이 신분을 유지하고, 동시에 정권의 홍보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을 수 있는 권리, 즉 권력으로부터 교육의 중립성이 바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고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현재 '교사가 어떤 정치적 입장도 가질 수 없다'는 의미로 왜곡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280여명의 교사들이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다시 1700여 명의 교사들이 추가로 기소됐고, 수많은 교사들이 해임 등 징계를 당했거나 징계를 앞두고 있는 것이 이런 왜곡된 정치적 중립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2011년 지금은 교육과 교사를 권력으로부터 보호해 주자는 의미의 권리였던 정치적 중립성이 거꾸로 권력으로부터 박해 당하는 근거가 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지금도, 예전 군사독재시절에도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것은 교사들이 아니라 권력, 정치권력이다. 아직도 권력은 역사로부터 배운 것이 아무 것도 없나 보다.

헌법은 정치적 중립을 '권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로 보장

※대한민국 헌법의 정치적 중립성 
제11조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제31조 ④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제7조 ②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우리 헌법에는 교사(공무원) 또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서 3개의 조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의 법 앞에 평등을 선언하면서, 사회적 신분에 따라 정치적 영역에 있어서 차별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말은 교사 또는 공무원이라는 의미로 정치적 영역에서 차별받지 아니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헌법 제31조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자주성, 전문성, 대학의 자율성과 함께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헌법 제7조 역시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11조, 제31조, 제7조가 모두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교사/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을 의무가 아닌 권리로 선언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장한다"는 서술어이다. 우리 헌법에 "보장"이라는 용어는 총 24번이 나오며, '안전보장'과 '사회보장'을 제외하면 제8조 "①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와 제23조 "①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등과 같이 국민의 권리에 사용된다. 국민의 의무를 부과하면서 "보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사례는 한 번도 없다.

그러면 우리 헌법에서 국민의 의무에는 어떤 술어를 사용할까? 우리 헌법에 "의무"라는 단어는 총 20회 등장하는데 서술어는 모두 "진다" 또는 "수행한다" 등을 사용하고 있으며 "보장한다"를 사용한 경우는 없다.

우리 헌법에 사용된 "의무"의 부담

제2조 ②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제5조 ②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제26조 ②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
제31조 ②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

이와 같이 우리 헌법은 "의무"에 대해서는 '진다' 또는 '준수한다'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권리에 대해서는 '보장한다, 보장된다'라고 사용하고 있다. 어느 면으로 보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교육의 권리임이 분명해 보인다.

한편, 8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는 민주당 천정배, 정동영 의원, 민주노동당 이정희, 권영길 의원,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등이 공동주최한 '교사/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 어떻게 볼 것인가?' 공청회가 200명이 훨씬 넘는 인원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민주당 백원우 의원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등은 교사의 정치적 권리를 보호하는 법률 개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여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8월 국회에서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적 권리 보장 입법이 이루어질지 주목된다.
#정치적 중립 #교사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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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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