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묻은 당신 떠나라'... 무식한 대학생, 왜관을 찾다

진상이 밝혀지지 않아 답답한 사람들... "문제는 꼭 해결될 것이다"

등록 2011.08.09 18:14수정 2011.08.30 14:33
0
원고료로 응원

왜관 미군 기지 앞에서 집회 중인 참가자들 ⓒ 박의연


지난 7일 왜관역 앞에서 '주한미군 캠프캐럴 기지 고엽제 매립 진상규명 미국 사과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는 왜관 주민들을 포함해 민주노총 중앙통일선봉대, 한국대학생연합 통일대행진, 대학생 시대여행 등이 참여했다. 고엽제 매립에 대한 정확한 진상 규명 촉구와 불평등한 SOFA 개정이 이 대회의 핵심 골자였다.

방학을 맞아 희망버스부터 시작해 엠티다 뭐다 버스라면 이제 신물이 난 대학생 새내기였지만 이번에도 기꺼이 왜관 행 버스에 올랐다. 왜? 진실이 궁금하니까. 모 연예인의 말처럼 함께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사실 필자는 무식했다.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일련의 고엽제 사건들에 관해 처음 찾아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죽하면 집회 도중 나온 '미제 반대' 구호에서 미제가 미국 제품인줄 알았겠는가.(미제는 미국 제국주의의 줄임말이다) '미국 제품 반대!'라고 하는 줄 알고 언행일치를 보이고자 쓰고 있던 '미제' 선글라스를 슬그머니 내려놓은 대학생이었다.

'미제'가 미국 제품인 줄 알았던 나... 왜관을 찾다

베트남전이 끝난 1975년, 미국은 암암리에 '페이서 호(Pacer Ho)' 작전을 실시한다. 1960년대 중반부터 고엽제에 대한 심각한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1964년 미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고엽제 사용을 중지했다. 이에 따라 베트남 전쟁이 끝나면서 미국은 전쟁에서 다 사용하지 못한 고엽제를 자국 밖에서 처리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 '페이서 호' 작전이다.

녹색연합 자문위원 한광용 박사에 따르면 작전의 내용은 약 222만 갤런(약 840만 리터)이 되는 양의 남은 고엽제를 태평양의 존스턴(Johnston)섬에 쌓아 놓고 베트남, 인도 등 여러 나라에 고엽제를 내다 버린 것이라고 한다. 한 박사는 지난 5월 라디오 방송에서 왜 "칠곡에서는 그거(고엽제)를 그쪽(존스턴섬)으로 보내지 않고 거기에다 묻었"는지 의문을 표시했다.

왜관 캠프캐럴에 대해 잠시 설명하자면 이곳은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약 90여 개의 미군 군사 기지에 군사 물품을 제공하는 곳이다. 미군 기지에 물품이 들어가기 전에 우선적으로 거쳐야 하는 곳인 것이다.
때문에 한국으로 들어온 고엽제들은 왜관을 통해 유입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지금의 고엽제 논란은 지난 5월 19일 한 퇴역 주한미군 할아버지의 양심 고백에서 시작되었다. 1978년 왜관 캠프캐럴 기지의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던 스티브 하우스씨와 필 스튜어트씨는 애리조나 지역 신문사와 등의 인터뷰에서 '고엽제 약 200리터 들이 드럼통 250여 개를 2주에 걸쳐 묻었고, 총 600여 통을 묻었다'고 증언했다.

이에 따라 5월 23일 민관조사관에 의한 현장 조사가 이루어 졌고 6월 1일 구성된 한미공동조사단에 의해 현재까지 조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소극적인 대처 방식과 석연치 않은 조사 내용으로 관련 단체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왜관 주민은 아니지만, 이렇게 오염시키고... 화가 난다"

a

7일 왜관에서 열렸던 집회의 안내 표지판 ⓒ 박의연

이번 결의대회 역시 이러한 한미공동조사단 조사결과에 대해 비판하고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고엽제 관련 모든 자료 공개 요구, 피해 주민들 보상, 책임자 처벌, 미국의 사과 나아가 불평등한 한미 SOFA 개정을 요구하는 대회였다.

7일 오후 2시 30분경 대회가 시작되었고 아메리카NO 황선 대표(아메리카NO는 왜관 평화 농성단의 이름이다), 민주노총 노동자 행진단 대표를 비롯한 발언들과 문화 공연이 있었다. 그 후 왜관 역에서 미군기지 앞 정문까지 행진이 진행되었다.

대구에서 온 박아무개씨는 "왜관 주민은 아니지만 이 땅에 살고 있는 국민으로서 이 땅의 생명에 대한 걱정으로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미국인들은 세입자인데, 자기 것도 아닌 땅을 이렇게 오염시키고 사과조차 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난다. 우리들이 이렇게 연대하고 있고 대학생들이 관심을 가지니 문제는 꼭 해결되고 바뀔 것이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미국은 사과하라', '한미SOFA 개정하라' 등의 구호들이 행진에서 사용되었다. 행진 도중 눈에 띄는 것은 대학생들의 재기발랄한 피켓이었다. 'SOFA가 니들 편하라고 만든 소파냐?' '주한미군 GO엽제', '고엽제 묻은 당신 떠나라', '니가 내라 주둔비' 등의 재밌지만 심오한 내용의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대학생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정문 앞에서도 집회는 계속되었다. 한미공동조사단이 엉뚱한 곳에 삽질을 하고 있다고 풍자하는 상황극과 정문 앞 피켓 붙이기, 기지 안으로 계란 던지기 등의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보내는 주민들도 없지 않았다. 한 주민은 "외부 민간단체들이 우리 지역(왜관)에 들어와서 시끄럽게 하는 것이 동네 주민으로서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해결은 정부에서 해야지 이런 식의 집회는 옳지 않다"는 의견을 전했다.

왜관 기지에서 평생 일한 아저씨... "놀이동산이나 생겨 아이들 행복했으면"

왜관역 앞에서 피켓을 들고 집회 중인 참가자들 ⓒ 박의연


             한 아버지            
                                        황선

그들은 방마다 정수기를 두고
낙동강 상류의 청정수를 정수해 먹었고
마을 사람들은 지하수로 밥을 지었다.

그래도 원망은 않고 싶단다.
다만 이제 그만
떠나주었으면 좋겠단다.
깨끗이 치운 자리에
놀이동산이나 만들었으면
좋겠단다.

황선 아메리카NO대표가 농성 중에 왜관 지역 주민의 사연을 듣고 쓴 시이다. 지난 7월 26일부터 왜관에 내려와 오는 8월 15일까지 농성을 계속 할 것이라는 황 대표는 지역에 절절한 사연을 가진 동네 주민들이 많다고 전했다.

농성단을 위해 직접 키운 오이 4개를 손수 따다 주신 할머니의 미안해 하시는 표정, 할머니는 '왜관 땅에서 키운 오이가 미안해서' 전해 주시면서도 망설이셨다고 한다. 한 평생 땅을 믿고 그 땅에서 삶을 꾸려왔던 사람들. 그들은 믿었던 땅에게서 배신을 당한 것이다.

왜관 기지에서 일하며 월급 받고 살아온 한 아저씨. 그래도 평생 일한 직장인데 하며 원망은 않으시겠단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 떠나주었으면, 그 넓은 부지에 대도시에만 있다는 놀이동산이나 들어왔으면 그래서 우리 아이들 행복해졌으면 하신단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객관적으로 사건의 진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한편 한미조사단은 5일 중간조사결과 발표에서 "캠프캐럴에서 고엽제 징후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지역에선 분명 타 지역 평균 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암으로 인해 사망했다. 그렇지만 이것이 고엽제와 연관되었다는 객관적인 팩트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면 사실이다.

사람들은 무엇 하나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일들이 왜관에서 일어났는지 알 수 없음에 더욱 분노하고 있다. 자식을 두고 농성단에 참여하기 위해 왜관으로 뛰어 온 사람들, 휴일을 버리고 왜관으로 집회로 참여하는 사람들, 스펙 쌓기, 등록금 벌기만으로도 방학이 짧지만 그럼에도 왜관으로 내려온 대학생들. 

미제가 미국제품이라고 알고 있었던 무식한 대학생은 궁금하다. 진실은 무엇인가. 매주 목요일 늦은 7시 청계광장에선 고엽제 관련 진상규명 요구 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박의연 기자는 대학생 기자단 '오마이 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박의연 기자는 대학생 기자단 '오마이 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고엽제 #왜관 #캠프캐럴 #미국 #아메리카NO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니, 소파가 왜 강가에... 섬진강 갔다 놀랐습니다
  2. 2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3. 3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4. 4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