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쳐도, 죽어도 그냥 참아...알바니까

['알바'에게도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①] '알바'이기 때문에 다쳐도 말 못하는 청년노동자들

등록 2011.08.28 10:07수정 2011.08.3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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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 오후 3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 이마트 탄현점 앞에서 고 황승원군 등 사고 희생자 유가족들과 서울시립대 학생들이 신세계 이마트쪽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는 기자 회견을 열고 있다. ⓒ 김시연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어른들은 말한다. 또 "어른들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고도 했다. 젊어서 하는 고생, 그 고생이 젊은 날 한번 해봐야할 경험쯤을 말한다면 틀리지 않다. 노동의 가치와 돈의 소중함을 알기 위한 고생은 정말 '한번은' 해볼 법하다.

하지만 그것이 '생존'과 직결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반값이 된다던 등록금은 고지서가 무색해할 정도로 내리지 않았고, 생활비도 만만치 않다. 청년들은 젊은 날의 경험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사서 하는 고생' 그 이상을 경험하고 있다. 누구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누구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노동의 현장으로 나간다.

결국 그 고생을 사서 하다 사람이 죽었다. 지난 7월 2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이마트 탄현점 지하 1층 기계실에서 동료 3명과 함께 질식사한 서울시립대 학생 황승원(22)씨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일하던 청년이었다. 그는 냉동기 보수작업을 하다 새어나온 프레온가스에 질식해 사망했다.

그 안타까운 죽음 앞에, 그곳에 산소호흡기 한 대만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산소호흡기 비치문제를 따지기 전에 작업을 하기 전 공기상태가 어떠한지 측정하고 평가했다면, 혹은 비상시 취해야 할 응급조치 등에 대한 사전교육이 있었다면.

그저 잠깐 용돈이나 벌려고 하다마는 '알바'이기 때문에, '청년노동자'들의 노동은 '노동이 아닌 것'으로 쉽게 왜곡된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할 권리가 있다. 모두 휴가를 떠나는 여름방학에도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힘들게 일하다 다친 대학생들을 만나봤다.

치료비도 작업복도 자기 돈으로..."다시는 이런 일 안 할 것"

전북대학교 학생 이용규(20, 남)씨는 올 여름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수구 청소 알바를 했다. 색다른 일을 경험도 해보고 싶었고 돈도 벌어야 해서 지인의 소개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하수구를 청소하기 위해 맨홀 뚜껑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다 깊은 맨홀에 빠졌다. 다행히 많이 다치진 않았다. 하루 쉬고 다시 일을 나갔다. 그 뒤로도 일을 하며 조금씩 다쳤다.


"약국에서 직접 약을 사 발랐죠. 물론 제 돈으로요. 같이 일하던 누구는 맨홀 뚜껑을 열다가 발이 찍혀서 발가락이 으스러지기도 했거든요. 그런 사람들도 다 제 돈으로 병원을 갔어요. 제 경우는 나은 편이었어요. "

매일 다치던 이씨는 제 스스로 몸을 보호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안전장비 같은 건 없었어요. 기껏해야 안전화 정도? 발등 찍히지 말라고 줬어요. 하지만 그것 가지고는 부족했어요. 그래서 제 돈으로 작업복을 샀어요. 다리 안 까지려고요. 안전교육이요? 그런 게 어딨어요. 조금 큰 업체에서 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제가 일하던 곳은 조그마한 곳이었거든요. 그냥 '일하면서 배워라'였어요."

노동건강권에 대해 아는지 물었다. '그게 뭐냐'고 묻는 이씨에게 기자가 "한 달에 60시간 일할 경우 4대 보험 가입은 필수…" 하고 설명을 시작하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답한다.

"(4대 보험은) 당연히 안 되죠. 저는 지인 통해서 간 경우라 계약서도 없었어요. 아마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그냥 믿고 한다는 생각이었죠. 사실 믿는다기보단 그냥 잘 몰라서였겠지만요."

이씨는 다시는 하수구 청소 알바를 하지 않을 생각이란다. 자기도 직접 다쳤고, 주변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자주 다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많았다.

"정말로 위험한 일이구나 생각했어요.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 절대 이런 일 안 해야겠다. 이렇게 힘들고 위험한 일 안 하고 편한 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한다. 이씨가 이 일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이씨와 똑같이 매일 조금씩 다리를 까이며, 작업복을 직접 사고, 직접 약을 사서 연고를 발라야할 것이다. 내 일이 아니라고 해서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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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대학생 촛불집회가 6월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KT앞에서 열리는 가운데, 등록금을 벌기 위해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한 여학생이 "오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이곳에 왔다.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감정이 북바쳐 눈물이 난다"며 울먹이고 있다. ⓒ 권우성


일하기 싫어 변명하는 것처럼 보일까, 아파도 참고 일해

익명을 요구한 중앙대학교 학생 김아무개씨(22, 남)가 처음 알바를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라고 한다. '남자애들이 흔히 하는' 공사장 일을 했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근로장학생으로, 이곳저곳 수많은 어디의 알바생으로 일을 하고 있다. A씨는 등록금 외에 생활비까지 벌어야 한다.

김씨는 일을 하다가 크게 다친 적이 두 번 있다고 한다. 한 번은 멋모르고 일을 시작했던 고등학교 때고, 또 한 번은 지금의 대형마트 물류 알바를 하면서이다. 하필이면 허리를 다쳤다. 일을 하기에도, 일상생활을 하기에도 치명적이었다.

"마을의 읍사무소를 짓는 일을 했어요. 말하자면 노가다(건설현장 단순노무)죠. 철근 드는 일을 했는데 원래는 한두 개씩 옮겨야하는 것을 대여섯 개씩 들었어요. 그러다가 허리디스크에 걸렸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생활비를 버는 지금, 마트 알바를 하면서 또 허리를 다쳤다. MRI를 찍는 데만 50만 원 넘게 들었다는데, 만만치 않은 치료비를 업주로부터 받을 수 있었을까? 다행히도 김씨는 지금 일하고 있는 마트의 업주가 지인이었기 때문에 치료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김씨의 경우는 아주 특별한 경우다. 업주는 "원래 알바생이 다친 경우 치료비 지급을 해주지 않는다"고 했단다.

"원래는 보험 처리 같은 것도 없죠. 저에게도 처음에는 보험 처리가 안 된다고 했어요. 아르바이트생들이 다치면 산재보험 처리를 해주는 것이 원칙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거의 그런 것이 없다고 보면 됩니다."

같이 근무하는 대부분의 알바생들도 자신들이 4대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잘 모르는 친구들이 많지요. 혹 요구를 하더라도 사장이 '법적으로 내가 물어줄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면 대부분 그냥 포기합니다. 치료비를 받는 경우도 아주 드물어요.

일을 하기로 했으니까 해야 하는데, 아프다고 말하고 안 나가면 일을 하기 싫어서 변명을 대고 안 나가는 것으로 보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무리였지만 일을 계속 했어요. 일하다 다치는 것이 나뿐이 아닌데, 나만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나를 이상하게 만들 것 같아 참고 일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아파도 참는 사람이 많습니다."

실제로 2009년에 발표된 고용노동부의 '청소년아르바이트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알바 중 상해를 입은 경우의 대응으로 '그냥 일을 했다'는 응답이 57.1%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응답한 이유로는 '많이 다치지 않아서', '내 실수라서',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등의 의견이 나왔다.

허리디스크로 병원 다니면서도 생활비 때문에 알바 계속

그는 얼마 전 이마트에서 알바를 하다 목숨을 잃은 서울시립대 학생 황승원씨 사건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 학생이 등록금 때문에 일을 했다고 알고 있어요. 실제로 대학생들 중에서 과외나 학원 강사처럼 비교적 쉽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죠. 2, 3개월밖에 안 되는 방학 동안만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얻기도 힘들고요. 결국은 그 힘든 알바를 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안타깝습니다."

이어 그는 상해에 대한 보상문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전에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안전장치를 갖추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알바를 시작할 때 업주나 직원의 안전교육은 없었다. 마트 알바도 그랬으니 공사장 알바야 말할 나위가 없다.

그는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다니면서도 이번 방학이 끝날 때까지 지금 일하는 마트에서 알바를 한다. 자취를 하는 김씨는 허리가 아프다고 일을 쉴 수 없다. 다음 학기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친구가 알루미늄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적이 있는데, 처음 하루를 일했을 뿐인데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어요. 그 친구는 이건 아니다 싶어 하루치 임금만 받고 바로 그만두었죠."

김씨는 바로 일을 그만둘 자유(?)가 있었던 그 친구를 부러워했을까? 위험한 노동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청년들이 결코 적지 않다는 말 뒤에 덧붙인 김씨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남는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려낼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덧붙이는 글 | 강혜란·류소연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강혜란·류소연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노동건강권 #대학생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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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관심이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은 대학생입니다. 항상 여행을 꿈꾸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1기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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