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왕님이시여 우리에게 삼치를 주소서"

연도에서 가을의 전설 삼치잡이에 푹빠지다

등록 2011.08.23 19:16수정 2011.08.2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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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선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삼치를 낚고 있다. ⓒ 심명남


가을의 전설 삼치가 돌아왔다. 어느덧 무더위가 한풀 꺾이더니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가을의 문턱인 입추가 지나고 오늘(23일)이 바로 처서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을까? 올여름은 오지게도 비가 내렸다. 아직도 그칠 줄 모르는 비, 이제는 지쳤다. 오죽하면 가을장마가 다시 찾아왔다 할까? 그런데 어부들은 이런 날씨를 좋아한다. 아니 이런 날씨를 기다린다. 그것은 가을에 찾아오는 이런 날씨는 귀한 고기를 몰고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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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치낚시에 물린 삼치를 일행이 입에서 낚시를 꺼내고 있다. ⓒ 심명남


바다에 가을을 알리는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삼치다. 그런데 올해는 좀 빠르다. 이상기후로 인한 바다수온 상승이 그 원인이다. 매년 9~10월경이면 멸치 떼를 잡아먹기 위해 남해안으로 몰려들던 삼치가 올해는 한 달 이상 빨리 북상했다. 그것도 고시가 아닌 삼치급이다. 고시가 삼치 반열에 끼려면 적어도 1㎏은 넘어야 한다. 고시는 삼치새끼를 이르는 말이다. 크기는 길이 30㎝, 무게 800g 정도인데 주로 구이용으로 안성맞춤이다.

삼치는 주로 남해나 제주 해역에 서식하는 아열대성 어류로 회유성 어종다. 연어가 여러 해 동안 여행을 하고 성어가 되어 알을 낳기 전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찾듯이 삼치도 마찬가지다. 삼치도 매년 꼭 들르는 코스가 같기 때문이다.

1년에 1kg이 크는 삼치는 부레가 없는 까닭에 민첩하다. 또한 날카로운 이빨을 가져 눈에 보이는 건 한입에 덥석 먹어 버리는 포악한 성격을 가졌다. 그래서 살아있는 삼치에 물리면 손이 잘리기 때문에 어부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하지만 삼치는 두뇌에 좋은 두뇌영양소로 불리는 'DHA'라는 오메가3 지방산이 가장 많이 들어있는 고급어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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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치낚시를 하고 있는 도중 멸치떼를 만난 갈매기가 배를 따라 오고 있다. ⓒ 심명남


올해 첫출항, 삼치잡이에 나서다.

주말을 맞아 일행들과 지난 20일 삼치몰이에 나섰다. 여수 연안인 연도와 안도 앞바다에 삼치가 붙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부푼 기대로 출조가 시작됐다. 이른새벽 얼음공장에서 아이스박스 3통에 얼음을 가득 싣고 출조에 나섰다. 삼치를 잡으면 얼음에 보관해야 삼치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낚시꾼들은 준비만큼은 완벽 그 자체다.


삼치는 한 번 붙으면 떼로 몰려다니는 까닭에 운만 좋으면 만선의 가능성이 큰 어종이다.

새벽 4시부터 출항준비에 나서 목적지인 연도 앞바다에 도착하니 이내 날이 밝았다. 바다는 아침부터 흐려 안개가 자욱하다. 울렁이는 파도와 함께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쌀쌀하게 느껴진다. 갈바람이다. 서풍으로 불리는 갈바람은 비와 바람을 동반하는 변덕스러운 바람이지만 고기를 몰고 오는 반가운 바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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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에 깃발을 단 통발 어선이 삼치를 낚고 있다. ⓒ 심명남


이내 삼치 낚시가 시작되었다. 잠시 소원을 빌었다.

"오 용왕님이시여 우리에게 삼치를 주소서."
"어장에 매달린 낚시마다 삼치가 물어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참, 기도는 간절하다. 이후 삼치어장을 놓고 바다에서 끌고 다닌 지 30분이 지났지만 별다른 기별이 없다. 날이 밝자 바다에는 점점 삼치를 잡으러 온 어선들이 몰려 들었다. 이렇게 배가 몰려드는 것을 보니 물때가 다다른 모양이다. 우리가 조금 빠르게 온 모양이다고 애써 위안을 삼았지만 우리보다 늦게 온 배들이 삼치를 당겨 올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입질조차 없다. 한참을 끌고 다녀도 소식이 없자 선장인 형님이 어장을 올려 보자고 한다. 그런데 이게 뭔 일이당가, 어장을 끌어올리니 낚시줄이 탱탱 꼬여있다. 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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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치잡이로 잡은 1m급 삼치가 낚시에 물려 올라오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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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에 걸린 삼치 너머로 작도가 보인다. ⓒ 심명남


어장을 잘못 꾸민 것이 분명하다. 출조전 삼치어장을 손보면서 작년보다 쎄미줄을 너무 짧게 잘라 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형님은 잽싸게 스페어 쎄미줄을 낚시마다 약 3미터씩을 더 연결했다. 이후 다시 어장이 시작되었다. 잠시 후 일이 터졌다. 삼치들이 퍼무는지 와이어에 드륵드륵 입질 신호가 전해졌다. 일행들이 일제히 낚시줄을 당겨 올렸다. 한참을 올리니 낚시에 매달린 커다란 삼치가 허연 몸통을 드러내고 퍼덕거리며 올라온다.

"신봤다, 와 씨알 좋다. 한꺼번에 세 마리씩이나? 나이스!"

힘이 절로 솟는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 했든가? 고친 어장의 쎄미줄의 길이가 정확히 맞아 떨어져 고기를 낚아 올리니 기쁨은 두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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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좋은 방어가 낚시에 물어 올라오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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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를 하고 있는 방어의 모습 ⓒ 심명남



삼치어장은 계속되었다. 큰 고기가 물었는지 묵직해진 와이어를 끌어 올리는 일행이 또다시 환호성을 지른다.

"이번에는 어종이 달라야, 방어야 방어, 그놈 힘 한번 좋네그려!"

삼치를 낚는 데는 무엇보다 테크닉이 중요하다. 삼치가 물면 빠른 속도로 가던 배의 속력을 조금 줄여 계속 달려야 한다. 만약 배를 멈추면 끌려오던 삼치가 날카로운 이빨로 낚시줄을 끊어버려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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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의 입에서 낚시를 꺼내고 있는 이성철씨가 즐거워 하고 있다. ⓒ 심명남


이렇듯 삼치낚시를 알고 보면 참 재미있고 오지다. 왜냐면 삼치낚시는 미끼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끼값이 하나도 안 든다. 루어낚시의 일종인 삼치낚시는 주낙처럼 생긴 어장이다. 군데군데 납이 달린 와이어 줄에는 20여개의 낚시가 달렸다. 낚시는 원하는 대로 더 늘릴 수 있다. 원줄인 와이어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삼치가 물어도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

어른중지 2배 크기의 낚시 모양은 반짝반짝 컬러풀한 야광 플라스틱이 달려있는데 이것이 삼치를 유인한다. 수십 미터 늘어뜨린 삼치주낙을 빠른 속도로 배가 달리면 낚시가 빙글빙글 팽돌이처럼 돈다. 낚시를 멸치로 착각한 삼치 떼가 한입에 덥석 물면 꼼짝없이 걸려드는데 이것을 끌어당기면 숙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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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썰어 먹는 삼치맛은 세상 시름을 잃게 한다. ⓒ 심명남


어느덧 바다에서 3시간 정도 삼치어장을 끌고 다녔더니 더이상 입질이 없다. 아마도 아침 물때가 지난 모양이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잔잔한 포구로 들어와 회를 썰었다.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삼치회는 간장소스가 제격이다. 간장 소스에 바른 삼치회에 소주를 한잔 들으킨 형님이 한마디 날렸다.

"니들이 삼치맛을 알어?"
"난 알어! 기름기가 좌르르 흐르는 삼치맛, 이빨없이 혀만 있으면 된다는 사실을....." 

덧붙이는 글 | 전라도뉴스에도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전라도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삼치 #삼치잡이 #이상기후 #연도 #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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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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