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총 살 때 우선 필요한 건 남편

[필리핀에서 현지인처럼 살기⑥] 필리핀, 총기가 자유로운 나라?

등록 2011.09.15 10:54수정 2011.09.1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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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필리핀에 왔을 때 가장 놀란 것이 흰색 셔츠에 감색 바지를 입은 남자들이 들고 있는 무지막지한 '장총'이었습니다. 허리에는 총알이 박혀있는 탄띠를 두르고 있는 것을 보아 진짜 총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혹시 장난으로 쏘지 않을까?', 간혹 람보처럼 탄띠를 X자로 메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가 외국인이라 눈에 거슬려 우두두 기관총을 쏘아대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움찔합니다. 한방이면 인생 끝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장난으로 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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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가드들은 항상 총기를 소지하고 있습니다.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입니다. ⓒ 조수영


제복에 각이 잡힌 모자, 곤봉, 총으로 무장한 그들이 당연히 경찰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은행이나 쇼핑몰을 비롯한 거의 모든 건물, 들어가는 곳마다 총을 든 경찰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필리핀은 이렇게 경찰이 많아야만 하는 위험한 나라인가?' 라는 생각에 두려워졌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 은행 앞에서 주차도 도와주고, 쇼핑몰 앞에서 무거운 짐도 들어줍니다. 무엇보다 편의점에 들어갈 때 문을 열어주는 것도, 가게 앞 청소도 그들의 몫입니다. 알고 보니 이들은 경찰이 아닌 보안업체에서 파견된 가드(Security Guard)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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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총이냐고 물었더니 허리에 찬 탄띠를 보여줍니다. 물론 나는 봐도 모릅니다. ⓒ 조수영


쉽게 이야기하면 '총을 소지한 경비원'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들의 업무는 주로 일반 상가나 주택 경비를 하는 것인데 총기 소지가 허용된 나라이다 보니 우리나라와 다르게 가스총 대신 실제 실탄이 장착된 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쇼핑몰에서 일하는 가드들의 주요 업무는 손님들의 소지품과 몸을 검사하는 일입니다. 조금 큰 곳은 가방검사는 물론 X-레이 검사까지도 합니다. 무기를 소지하고 입장하여 큰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처음엔 총을 든 '무서운 사람', 아니 '무서운 총'을 든 가드 앞에서 검사를 받는 것이 두려웠는데, 시간이 지나 좀 익숙해지니 들어가는 건물 입구마다 가방을 열고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10미터는 족히 줄을 서서 검사를 기다려야 합니다.

필리핀 건물입구를 빨리 통과하는 팁! 외출 시 최대한 작은, 절대 총을 넣지 못하겠다 싶어 보이는 크기의 가방을 가지고 다니면 됩니다. 검문 없이 무사통과입니다. 한 가지 더, 가드도 사람의 일이라 선한 눈빛에 '난 착한 사람이야. 걱정마~'라는 메시지를 담아 보내며 살짝 웃으며 지나가면 만사 오케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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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시장에서 일하는 친절한 가드입니다. 무거운 짐을 차에 실어주기도 합니다. ⓒ 조수영


한방 맞으면...엄청 아플 겁니다

하지만 항상 이들이 가지고 있는 총은 실탄이 장전된 진짜 총이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필리핀에서 일어나는 총기 사고 중 많은 경우가 술집 등에서 시비가 붙었는데 가드의 제지를 불응하고, 오히려 가드와 싸우다가 총을 맞는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술 취해 난동을 부리는 사람에게 총을 쏘는 경우에는 대부분 가드 스스로 많이 놀라서 방어하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책임에 충실하여 가드라는 일자리를 잃지 않으려는 그들의 노력인 경우가 많습니다.

일상적으로는 마치 아파트의 수위 아저씨처럼, 또는 음식점 종업원처럼 자신이 지키고 있는 업소의 손님을 친절하게 보살펴주는 사람들이지만, 가드는 자신의 일에 투철한 책임감과 자긍심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평소에 문도 열어주고 몇 푼 팁에 고마워 하는 잘 아는 가드라고 해도 자신이 지켜야할 업소의 안전을 위협하고,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을 이해하진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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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들은 대부분 영어를 못합니다. 법원에서 일하는 이 청년은 외국인인 나를 볼 때마다 신기한 듯 쳐다봅니다. 사진기를 들이대니 수줍은 듯 웃습니다. ⓒ 조수영


업소를 입장할 때는 짜증내지 말고 차례로 줄을 서서 검문에 잘 따르고, 혹 분쟁이 생겨 가드가 제재를 하는 경우에는 절대 가드에게 큰 소리를 치거나 가드를 몸으로 밀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것도 없습니다. 그냥 너무 과격한 행동이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조금씩만 양보 하고 조심하면 됩니다.

필리핀 가드들은 시민을 보호하고 특히 외국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입니다. 친절하고 상냥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필리핀의 대부분 지역은 안전합니다. 어느 나라를 가거나 우범지역이라고 불리는 위험한 곳이 있듯이 필리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도 일반적으로는 안전하듯이 필리핀도 일반적 생활은 안전합니다.

우리가 본인 스스로 주의하고 위험한 거리에서, 위험한 시간에, 위험한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큰 불상사를 당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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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 앞에도 가드가 있습니다. 보통 가드의 월급은 3000~4000페소 정도라고 합니다. ⓒ 조수영


영수증, 죄발~

일로일로 슈퍼마켓에도 항상 총을 든 가드 두 명이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 중 한사람 매일같이 싱글벙글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는데, 한국인 손님을 만나면 들어올 때는 "안녕하쎄요우~"를 외치며 문을 열어주고, 나갈 때는 손님들의 영수증에 볼펜으로 체크를 해주며 "캄싸합니다~"를 외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가드가 물어 봅니다.

"플리즈(please)가 한국어로 뭐야?"
"(중학교 영어실력으로) '제발'이라고 하면 돼."
"응, 죄발~"

며칠 후 다시 슈퍼마켓에서 그를 만났을 때 웃으며 말합니다.

"리시트(Receipt), 죄발~"

어이쿠, 영수증을 내라고 할 때 "리시트, 플리즈(Receipt, please)" 하더니 그걸 한국어로 말하고 싶었나 봅니다. 일로일로에 가면 '죄발'을 외치는 가드가 있습니다. 그를 만나시면 바르게 고쳐주세요. "리시트, 주세요~"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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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일로 게사노 백화점 내에 있는 총기매장. 젊은이들이 구경하고 있습니다. ⓒ 조수영


신상 총을 구입하려면 백화점에서

총을 가드의 허리춤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로일로 시내 백화점에는 긴 총, 큰 총, 작은 총 수십 가지의 총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신상 권총을 보여주는데, 총이라곤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 비비탄총을 만져본 것이 유일한 나로서는 그저 비현실적인 쇳덩어리일 뿐입니다. 2만5천페소에서 6만페소(한화 150만원 상당)를 넘는 것도 있습니다.

"한국산도 있어."

제대한 예비역들이 하나같이 읊어대는 '사격을 잘해서 저격수로 뽑혀갈 뻔 했다'는 뻔한 군대이야기에서나 들었던 K2 기관단총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가 무기 수출국인지 필리핀에 와서 처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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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제 총도 팔고 있습니다. 대우에서 만드나 봅니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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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총기 자유국가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총기를 휴대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총기를 구입할 자격이 되더라고 총기 자체는 매우 고가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일부 부자들만 가지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 조수영


필리핀에서 총을 소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필리핀 남편'

물론 가게주인은 외국인인 나에게 총을 팔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흔히들 필리핀에 대해 잘못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가 '필리핀은 총기 소지가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이삼십만 원이면 길거리에서 총 한 자루 사서 복수혈전을 벌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총을 소유하려면 총기관련 허가를 취득해야 합니다. 우선 필리핀 국적을 가진 자이어야 하며, 범죄에 연루된 적이 없는지 신원조회 과정을 거쳐 단순히 소지할 수 있는 권한(집이나 사무실, 차량 등에 보관하며 정당방어용으로만 사용할 수 있으며, 외출 시 휴대는 불가)에 대한 허가를 얻을 수 있습니다.

휴대에 대한 허가는 더 까다롭고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지방 경찰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에 공무원이 아니라면 웬만한 재력가나 지위가 있지 않으면 받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불법으로 총을 소지할 수 있는 방법도 있겠지만, 외국인이 호신용으로라도 총을 소지하는 것은 오히려 범죄의 표적이 됩니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관공서, 식당, 은행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출입할 때에는 그 누구라도 휴대가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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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인 우리는 총기를 구입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불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고 해도 오히려 돈많은 외국인으로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 조수영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한참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이것저것 가격도 물어보았더니 간절하게 총을 갖고 싶은 1인으로 보였나 봅니다.

"너 총 사고 싶니?"
"하나 줄래?"
"너 필리핀 남편 있어?"
"?"
"필리핀 남편이름으로 사면 돼. 한사람 소개해줄까?"

필리핀 총 구경하다가 졸지에 필리핀 남편 하나 얻게 생겼습니다.
#필리핀 #가드 #필리핀 가드 #총기사고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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