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잡대'는 몸에 불을 붙여야 취재한다?

[取중眞담] 목원대생 '1만 배 시위' 보도에 나타난 씁쓸한 '학벌주의'

등록 2011.10.17 21:07수정 2011.10.17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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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걔, 이상한 애 아냐?"

지난 13일 오후, 목원대생의 '1만 배 후 분신' 소식을 전한 후 주위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저도 <오마이뉴스> 대전·충남 주재기자 선배로부터 처음 이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이해가 안 가는데요. 이상한데요"를 연발하며 황당해 했으니까요. 21세기에 '분신자살'이라. '등록금 인하'도 아니고 고작 '등록금 인하 서명운동'하겠다고?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게 '목숨'까지 걸 정도의 일일까. 너무 극단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대화'하고 '타협'하면 될 일이지, 너무 '막무가내'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그리고 또 다음 날 아침저녁으로 세종대왕상 앞을 찾아 김씨의 친구들, 가족들 그리고 학교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김씨가 왜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차츰 이해가 갔습니다.

'1만 배 후 분신'...목원대생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나  

14일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목원대생 김아무개씨가 '등록금 인하 서명운동을 허가해달라'며 이틀째 1만 배를 하고 있다. 김씨는 학교 측이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1만 배 후 분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 홍현진


지난 6월, 김씨는 전국적으로 타오르는 '반값등록금 촛불'을 보고 '왜 우리학교는 등록금이 3%나 올랐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합니다. 김씨는 친구 10여 명과 함께 '등록금 인하 서명운동'을 계획하고 학교 측에 유인물을 들고 갔습니다. '그냥 서명을 먼저 받아서 학교 측에 제출하면 될 일이지. 그걸 왜 허가를 받으려고 했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김씨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허가를 받아야 마음 편히 서명을 할 수 있는데, '불법'처럼 생각되면 꺼려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접했던 타 학교의 '학생운동' 양상과는 상당히 차이가 나는 대목이죠. 그런데 김씨와 친구들에 따르면, 목원대 내에는 자유게시판에 학교 비판 글을 올리기만 해도 전화가 걸려오거나 삭제가 될 정도로 억압적인 분위기가 있다고 합니다. 지난 9월 '부실대학' 선정 이후 학생들이 동요하자, 목원대생들의 대화공간인 '목원톡(스마트폰 앱)' 사용이 한동안 차단된 적도 있다고 하네요.


이후 4개월 가까이 학교와 충돌을 빚는 과정에서 김씨는 학교 측으로부터 수많은 폭언과 압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학칙'을 근거로 '징계경고'를 받기도 하고, 학교 도서관 앞에서 '서명운동을 허가해달라'며 1000배를 드린 다음날, 학과 교수님들이 '서명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라고 한 적도 있다고 하네요. 특히 한 교직원의 "차라리 죽어라"는 '폭언'은 김씨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고 합니다.

총학생회에게 도움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요. 김씨의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최근 20년 이내에 우리학교에서 '운동권'이 총학이 된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등록금 투쟁도 안 해요. 올해 다른 학교들 다 등록금 동결되는데 저희 학교는 올해 3%가 올랐어요. 또 등록금 인하 운동을 하자고 하면 학생들이 도와줘야 하는데, 원래 ○○이가 국어교육과 학회장이었어요. 그런데 단과대 학생회장들이 ○○이가 학교 측이랑 계속 충돌하니까 회의가 있어도 ○○이 한테는 연락도 안 하고 배척하더라고요. 안타깝죠."

물론, 이런 식의 '운동'이 처음이었던 김씨가 '융통성' 또는 '정치력'이 부족한 측면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 학교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가 너무 극단적으로 나오니까 학교 입장에서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소연 하더군요. 하지만 '등록금 인하 서명운동'을 허가해주는 것이 4개월 가까이 충돌을 빚을 만한 일인지에 대한 의문은 아직도 남습니다. 지난해 취임한 김원배 총장은 '학생중심대학' 경영을 선포한 바 있습니다.

사흘째 7800배를 해도 '무관심'...만약, 서울대생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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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인화에 반대하는 법대 4학년 오준규씨가 9월 22일 새벽 4시부터 관악구 서울대 철제 정문위에 올라가 "법인화법 폐기! 설립준비위원회 해체! 중징계 철회!"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동료학생들이 고공농성장 아래에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서울 한 복판에서 대학생이 '자유로운 서명운동 허가'라는 정당한 요구를 하면서 1만 배를 드리고 있는데, 그것도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겠다'고 공언하고 있는데도 이를 보도한 언론은 1만 배 이튿날인 14일 오전까지도 <오마이뉴스>밖에 없었습니다.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1만 배에 들어가기 전, 김씨는 직접 보도자료를 만들어서 언론사에 보냈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 보도 이후 트위터 등 온라인상에서 김씨의 시위는 꽤 화제가 됐고요. 마침 이날 오전에는 '학벌사회'를 거부하며 '자퇴선언'을 한 서울대생 관련보도가 거의 모든 언론사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문득, 지난 9월 한 서울대생이 '법인화법 폐기'를 요구하며 서울대 정문 위에서 '고공농성'을 했을 때 그 주위에 진을 치고 있던 취재진들이 떠올랐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다음과 같은 글을 트위터에 남겼습니다.

"목원대생이 등록금 인하 서명운동을 허가해주지 않는다면 '1만 배 후 분신'을 하겠다고 밝히며 서울 한 복판에서 비를 맞으며 절을 하고 있는데도 어째 이를 보도한 매체는 우리밖에 없다. 이게 중요한 뉴스가 아닌걸까."

물론, "걔, 이상한 애 아냐?"라는 주위의 질문처럼, 김씨의 행동이 '비상식적'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쇼'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김씨가 7800배를 할 때까지도 이를 보도한 매체는 <경향닷컴>과 <머니투데이>가 전부였습니다.

만약, 김씨가 서울대생이었다면 어땠을까요. '김예슬 선언'으로 한창 시끄럽던 지난해 봄, 한 대학생 시민기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했습니다. 제목은 '왜 김예슬의 대자보에만 주목하나'(전문보기).

"나는 인터넷에서 종종 '원세대'라 불리우는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 다니고 있다. 말만 연세대학교지 툭툭 던지는 댓글의 점층으로 인해 거의 '지잡대(지방 잡 대학)'로 분류되고 있는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는 입학 결과로만 본다면 대체로 2~4등급 정도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가 되시겠다. '최소' 상위 1%라는 신촌 연세대학교와는 '급'을 달리 하는 학교다. 특히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등등과 더불어 실력은 안 되는데 '수도권 대학의 타이틀'을 사칭하고 싶은 속물들이나 가는 학교로 오해받는 것이 특징이다.

만약 이런 내가 우리 학교 정문이나 학생회관에다가 '우리나라의 대학현실과 사회현실을 경멸하며 그러므로 대학을 거부한다'며 대자보를 붙인다면 여러분들은 주목해 주시겠는가? 기자님들께서는 취재를 해주시겠는지? 물론 학내신문,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 정도에 실리며 파장을 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사회적으로는 고작해야 블로그에 올라가는 정도, 혹은 취재된다고 해도 수많은 기사 속에 묻히며 몇몇 분들이 선심 쓰듯 던져주는 '옛다 관심~' 정도가 아닐런지?"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을 부제로 하고 있는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책에서 엄기호씨는 이글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았습니다. 

"그는 김예슬 이전에도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대학을 거부하고 대안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이 있음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그동안 그들의 대학 거부에 대해서 누가 관심을 보였던가를 되묻는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 난리인가. 대학거부에도 명문대생이라는 '흥행 보증수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서 만약 '지잡대'로 분류되는 자신이 대학 거부를 선언하더라도 이 정도의 관심을 보여줄 것이냐고 묻고 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러지 않으리라는 것을."

'상경투쟁'에도 명문대생이라는 '흥행보증수표'가 필요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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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1일 오후 서울시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있자 지나가던 학생이 발길을 멈추고 글을 읽고 있다. ⓒ 유성호


김씨가 7800배를 마치고 부총장과 협상을 하러 간 15일 늦은 오후, 김씨의 친구가 세종대왕상 앞에서 광화문을 바라보며 제게 묻더군요. 

"기자님, 여기 언론사가 이렇게 많은데. 왜 다른 데는 기사가 안 나올까요."

그 친구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멍해졌습니다.

16일 오전 1시께, 김씨와 친구들은 부총장과의 협상을 끝내고 세종대왕상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총장을 대신해 김씨를 만나러 온 부총장은 무려 5시간의 협상 끝에 '자유로운 서명운동 허가' 등 요구사항을 들어주기로 했다고 합니다. 김씨의 부모님은 "한 언론사에 전화를 했다가 '몸에 불이 붙어야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찌나 착잡했던지"라면서 "<오마이뉴스>가 정말 고맙다"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또 다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해졌습니다. 대학생 시민기자의 말처럼, '상경투쟁'에도 명문대생이라는 '흥행 보증수표'가 필요했던 걸까요. 소위 '지잡대'로 분류되는 목원대생은 목숨을 건다고 해도 안 되는 걸까요.

학교로 돌아간 김씨는 오는 11월부터 '등록금 인하 서명운동'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전화가 왔길래 "다음부터는 절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부디 다시는, 이런 기사를 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원대 #1만 배 #김예슬 #서울대 #지잡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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