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엉덩이' 보면 운전 경력 나온다고?

[필리핀에서 현지인처럼 살기⑪] 오토바이 한 대에 22명이... 기인열전에 나올 일

등록 2011.10.25 15:33수정 2011.10.2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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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멋을 낸 아이들이 콜라 한 박스를 트라이시클에 싣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일로일로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두망가스 해변으로 놀러가는 길이라고 자랑을 합니다. ⓒ 조수영


"맘, 맘. 어디가?"

엄마를 불러대는 아이의 소리가 아닙니다. 밤 11시, 일로일로 어시장으로 가려고 바랑가이(필리핀의 마을 구역)를 나서는데 마치 불빛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몰려드는 트라이시클 기사들이 손님을 부르는 소리입니다. 순식간에 10여 대의 트라이시클에게 둘러싸였습니다.


일로일로에 살면서 웬만한 곳은 지프니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늦은 시간 지프니가 다니지 않을 때는 트라이시클을 타야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외국인은 이럴 때 미터기가 달린 택시를 탑니다.) 트라이시클은 오토바이 옆에 사이드카를 달아 승객이 탈 수 있도록 개조한 것입니다. 오토바이의 바퀴 둘, 사이드카의 바퀴 하나, 즉 바퀴가 3개여서 트라이시클이라 부릅니다. 얼핏 보면 예전 전쟁영화에 나왔던 독일군 오토바이와 비슷합니다.

"어시장까지 얼마야?"
"500페소는 줘야 해"

처음부터 정가를 부르면 기다리던 트라이시클 기사가 아니고, 그렇다고 첨 부르는 가격에 오케이 하면 필리핀 좀 살았다는 한국 사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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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시클은 동네 택시쯤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속도는 택시보다 훨씬 빠릅니다. 막힐 땐 역주행도 하거든요. ⓒ 조수영


"너무 비싸. 70페소에 가자."
"말도 안 돼. 400페소는 줘야 해. 어시장까진 멀어."
"야야, 나 다 알고 왔어.(알긴 뭐 알어) 100페소 아니면 안 가."

참고로 그날이 처음으로 어시장에 가는 길이었고, 그냥 자정쯤 연다는 이야기 하나 믿고 나선 것이었습니다. 이때쯤 되면 모여든 기사들 중 절반은 떨어져 나갑니다.


"300페소로 해. 원래 이 가격이야."
"100페소 아니면 안 가."

세 명이 더 사라집니다. 트라이시클 기사들 엄청 망설입니다. 잠시 후 두 명만 남았습니다. '하필이면 재수없게 이런 놈들을 만났을까'하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결국 홀로 남은 기사 1인.

"에이, 몰라. 태워줄게."

그렇게 트라이시클을 타고 어시장으로 가는데 어찌 상당히 멉니다. 이쯤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에서도 한참을 더 달려 어시장이 있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끝까지 깎아서 오긴 했지만 100페소가 적정 가격은 아닌 것 같습니다. 트라이시클 기사가 오늘 사납금이나 채울 수 있을지 괜스레 미안해집니다.

트라이시클 경력 말해주는 '기사의 짝궁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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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시클 기사의 경력을 알려면 그의 짝궁뎅이를 보면 됩니다. ⓒ 조수영


대부분 트라이시클은 주인이 따로 있습니다. 트라이시클 사업을 하려면 트라이시클을 중고(5만 페소)로 산다 해도 영업용 번호판을 다는 데까지 최소 8만 페소(한화 200만 원)가 들기 때문에 보통 서민은 시작할 수 없는 일입니다. 트라이시클 기사들은 임대료 명목으로 하루에 200페소씩을 상납하고 나머지를 가지고 가는데 한 달 수입이 6000페소(우리 돈으로 15만 원)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나 트라이시클 좀 몰았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엉덩이를 보면 됩니다. 운전하는 뒷모습을 보면 마치 왼쪽 엉덩이만 걸치고 운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른쪽에 무거운 통을 달고 종일 운전하니 몸의 한쪽에만 무게가 실려 몸이 기울여지면서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에 허리가 휘는 것입니다. 더욱 심한 사람은 거북이처럼 목이 앞으로 쭉 빠진 체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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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가 비를 피하는 방법도 필리핀스럽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트라이시클을 세차할 때 가끔씩 오토바이와 사이드카를 분리해서 한답니다. ⓒ 조수영


참, 트라이시클이나 인력거 기사들은 영어가 안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몇몇 따갈로그어를 알아두어야 합니다.

"데레초"  곧바로
"갈리와"  왼쪽으로
"까아난"  오른쪽으로
"빠라"    세워주세요 (뽀~ 를 붙이면 정중한 의미)

'가솔린 콜라' 한 잔 드셨다간 큰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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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굣길에 아이들을 태운 트라이시클. 무려 22명이 탔습니다. ⓒ 조수영


트라이시클의 정원은 몇 명일까요? 보통 앞에 2명, 뒤에 4명, 그리고 운전자 뒤에 한명까지 7명이 타고 다닙니다. 자리가 없으면 지붕에도 올라타고, 매달려서 타고 하여튼 어떻게든지 꾸역꾸역 채워서 바퀴가 터질 정도로 올라탑니다. 22명까지 타는 것도 보았습니다.

지프니와 마찬가지로 트라이시클도 매연 문제로 구박을 받습니다. 트라이시클의 매연 문제는 노후된 차체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승차 인원 이상의 과적으로 인한 불완전연소로 발생되는 매연 때문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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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 빨간 콜라 출시' 가 아닙니다. 필리핀 구멍가게, 깐틴에는 콜라 유리병에 휘발유를 넣어 팝니다. 트라이시클과 오토바이 기사들의 전용 주유소라고 보면 됩니다. ⓒ 조수영


트라이시클이 한밤의 승객만 태우는 것은 아닙니다. 도심을 벗어난 대부분의 한적한 길에는 트라이시클이 대세입니다. 승객을 태우는 택시가 되기도 하고, 가축을 싣는 트럭이 되기도 하고, 야유회 전세버스가 되기도 합니다. 전국 곳곳에 주유소가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도심에만 주유소가 있는 필리핀에선 한적한 시골길을 가다가 기름이 바닥난다면 낭패일 겁니다.

이럴 땐 빨간 콜라가 든 1리터짜리 콜라병을 찾으면 됩니다. 깐틴(구멍가게) 앞에 멈춰 선 운전수가 콜라병을 연료통에 거꾸로 넣고 흔들어 대는 모습이 바로 주유하는 장면입니다. 1리터씩 담아 파니 세계에서 가장 정량이 확실한 주유소일 겁니다.

기억하십시오. 필리핀 시골길을 가다가 덥다고 구멍가게에서 1.5리터 콜라병을 보고 벌컥벌컥 마셨다간 뱃속의 기생충을 확실히 박멸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생명을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예쁘다는 말에 헤벌쭉하다 '나 살려라 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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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찾은 보라카이. 트라이시클을 모두 노란색으로 칠하고 등번호를 붙인 노란티를 입고 있는 걸루 보아 큰 회사가 몽땅 운영하나 봅니다. 보라카이 항구에서 화이트비치까지는 무조건 100페소(4명 타면 25페소 씩)로 비싼 요금을 받습니다. 10년 전에는 10페소였는데... ⓒ 조수영


예전에 보라카이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화이트비치 끄트머리에 있는 다이빙 숍으로 가기 위해 트라이시클을 탔습니다.

"너 참 예쁘다."

예쁘다… 기사의 칭찬에 나도 모르게 입이 귀에 걸리며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아니에요. 별 (그런 기분 좋은) 말씀을… 땡큐~"

그냥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머릿속 한 구석에 '내가 예쁘대~ 으히히히~' 하면서 신이 났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나이와 이름을 물어봅니다.

"몇 살? 23살?"

이쯤에서 여자는 쓰러집니다. 제 나이보다 10년은 어리게 봐주니 난 또 신나서 사실 몇 살이고, 영어 이름은 땡땡이다라며 친절하게 대답합니다.

"나는 정말 럭키 가이다."
"왜?"
"너를 태울 수 있어서."
"엉?"
"저 산 꼭대기로 가자. 올라가면 보라카이 해변이 다 보이거든."

그러면서 따다다다다~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트라이시클의 속도를 올립니다. 으잉?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뭐지? 어떻게 해야 하지? 멍 때리고 있는 순간 트라이시클은 다이빙 숍을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이건 분명 납치였습니다. 오만 가지 나쁜 예가 파노라마처럼 지나칩니다. 막 소리 지르고, 뛰어내릴 기세로 몸의 절반을 트라이시클 밖으로 매달고 난동을 부리고 나서야 오토바이는 멈춰 섰습니다. 그 길로 뒤도 보지 않고 광속으로 달렸습니다. 진심으로 무서웠습니다. 지금은 웃고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여성 여러분, 한국이고 필리핀이고 이쁘고 어려 보인다는 말에 꼬이지 맙시다.
#트라이시클 #필리핀 #오토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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