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내일 누구를 찍어야 하나

[주장] 내가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

등록 2011.10.25 17:58수정 2011.10.2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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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이다. 투표일이 바로 코앞인데 찍을 후보가 없다.

일단 나경원 후보는 아니다. 이번 선거가 오세훈 전 시장의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 때문에 치러지는 것인 만큼 이를 지지했던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다시 서울시장이 되는 것은 뭔가 앞뒤가 안 맞는 일이다. 도시의 겉모습만 바꿨을 뿐, 시민의 삶을 바꾸지 못했던 이명박, 오세훈 전 시장의 독단적인 시정을 또다시 겪어야 하는 것도 끔찍하다.

문제는 박원순 후보다. 시민사회진영은 물론 민주당에서부터 진보신당까지를 포함하는 '범야권단일' 후보인 그에게서 변화의 실체를 찾을 수 없는 게 문제다.

안철수 원장이 등장하고 박원순 후보로 단일화했던 순간만큼은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기존 정당정치의 혁신과 새로운 정치의 등장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운동 내내 그 기대는 실망으로 변해갔다. 박원순 위기론은 지지층 집결을 노린 전략만은 아니었다.

학력, 천안함 그리고 한미 FTA

민주당의 혁신은 먼 미래에 돌아올 어음으로 돌린 채 "민주당의 길이 박원순의 길이다"라며 사실상 민주당 후보 행세를 벌인 것은 적어도 정당정치의 혁신을 바랐던 이들에게는 배신과 같은 일이다. 신자유주의 정당과 함께해서 어쩌겠다는 것이냐는 비판은 둘째치고서라도 말이다.

나경원 캠프의 네거티브 전략에 휩싸인 문제들, 특히 학력 문제도 그렇다. 겉으로는 나경원 캠프의 저열함에 열을 받았지만, 속으로는 박원순 후보 때문에 시꺼멓게 타들어갔다. 박원순 후보는 출판사 쪽에서 알아서 했고 그것을 챙기지 못한 것은 자신의 불찰이라 해명했다. 하지만 이게 정말 어찌 된 영문인가 싶었다. 학벌 사회의 심각성은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우리 모두를 지배한다는 데 있다. 의식적으로 학벌 사회를 배격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모두 학벌 사회의 포로일 뿐이다. 박원순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박원순 후보의 발언도 귀를 의심케 했다. 지난 10일 열린 관훈클럽 초청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에서 박원순 후보는 "나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며 "그러나 정부를 신뢰하지 못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상당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믿음은 자유지만, 북한의 소행이라는 증거가 단 한 건도 없고 자신의 지지하는 사람 중 다수가 이를 부정하는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정말 진실된 후보일까 싶었다. 진실을 버리는 게 화합이라면 차라리 화합하지 않는 게 낫다.

한미 FTA도 그렇다. 박원순 후보는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라며 하나마나 한 말만 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문제에 대해, 그것도 중소상인과 서민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문제에 대해 회피하는 것은 기회주의적인 태도일 뿐이다.

진실한 변화는 아래로부터

얼마 전 방송인 김미화씨가 포이동 강제 철거 피해자 사진을 공개해 분노가 치밀었던 적이 있다. 오늘 그 포이동 재건마을에서 '포이동 재건마을 대책 관련 질의'에 대한 박원순 후보의 답변을 공개했다. 하지만 그 내용도 강제철거 경위를 철저히 조사하고 관리·감독하겠다는 일반적인 내용일 뿐이었다.

포이동 주민은 박원순 후보가 직접 마을을 찾아주길 바랐다. 그래서 직접 주민의 목소리를 듣고 주민의 주거권을 위해 대책을 마련해주길 원했다. 하지만 박원순 후보도 오세훈 전 시장과 다를 게 하나 없었다. 현장을 찾는다는 핑계로 방송토론을 거부하더니 정작 주민이 원하는 자리는 끝내 외면하고 말았다.

나도, 포이동 주민도 박원순이면 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박원순 후보가 말한 변화가 진실했다면 그 변화는 분명히 포이동에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진실한 변화는 늘 아래로부터 불어왔으니까.

내 삶을 바꿔주겠다는 박원순 후보. 내가 그에게 기대한 변화는 거창한 게 아니라 작고 소박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박원순 후보는 그저 공허한 바람뿐이었다.

그래서 큰일이다. 나는 도대체 내일 누구를 찍어야 하나.
#박원순 #서울시장 보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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