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씨구" 막둥이 덕분에 감동 먹었다

의무감에 갔다가 함박웃음 선물받은 아이들 학예회

등록 2011.10.31 09:32수정 2011.10.3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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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다시 한 번 소고춤을 추겠다고 나섰습니다. ⓒ 김동수

집에서 다시 한 번 소고춤을 추겠다고 나섰습니다. ⓒ 김동수

"누나도 학예회에 나가니?"

"아니요."

"그럼 아빠는 안 갈래."

"…앙앙앙~."

 

"아빠는 안 가"에 대성통곡

 

막둥이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보름 전부터 29일 학예회가 있으니 아빠가 꼭 와야 한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던 막둥이. 누나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농담 삼아 아빠는 안 가겠다고 했더니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막둥아, 미안해. 아빠가 갈게. 아빠가 갈게."

"아빠 꼭 올 거지? 꼭 와야 해요."

"그래 막둥이가 소고춤을 춘다는데 가야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학예회를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저를 닮아 그런지 예능은 별로입니다. 이런 이유인지 몰라도, 학예회 무대에 서는 일로 자랑을 하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막둥이가 소고춤 멤버에 뽑혔습니다. 얼마나 보여주고 싶었겠습니까.

 

아빠가 인정하면 어느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좋아합니다. 아빠가 봐주면 세상 모두가 봐주지 않아도 좋아합니다. 아빠가 오면 모두가 오지 않아도 좋아합니다. 학예회를 며칠 앞두고 막둥이는 소고춤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아빠가 오지 않겠다니 얼마나 실망했습니까. 어떤 때는 시끄러워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막둥아, 이제 그만해라."

"아빠, 연습 많이 해야 돼요."

"시끄럽잖니."

"시끄러워도 어쩔 수 없어요. 실수하면 안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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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춤 실력을 다시 보여주겠다고 나선 막둥이 ⓒ 김동수

소고춤 실력을 다시 보여주겠다고 나선 막둥이 ⓒ 김동수

참 어떻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속으로는 '공부도 좀 저렇게 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난 막둥이는 아빠가 오늘 학예회 올 것인지 다시 다짐을 받았습니다. 가지 않으면 아빠 자격 없는 것 같아 갔습니다. 막둥이 실력 대단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감동을 먹었습니다.

 

안 간다는 말에 울고불고하고, 생애(?) 처음으로 학교에서 하라고 한 것에 대해 열심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지 않으면 아빠 도리가 아닐 것 같아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자기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막둥이를 찾지 못할까 걱정을 했는데 아들이라 그런지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정말 잘했습니다.

 

"얼씨구 좋구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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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구와 소고로 장단을 맞추면서 춤을 추는 아이들 정말 한바탕이었습니다. ⓒ 김동수

장구와 소고로 장단을 맞추면서 춤을 추는 아이들 정말 한바탕이었습니다. ⓒ 김동수

"아빠는 막둥이 금방 찾았는데, 너는 아빠 찾았어?"

"저도 바로 찾았어요."

"아빠가 그렇게 좋아?"

"그럼요. 아빠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많이 했어요."

"아빠 오늘 우리 막둥이 때문에 감동 먹었다."

"내가 그렇게 잘했어요?"

"당연하지. 막둥이는 무엇인든지 정성을 다해 열심히 하잖아."

"예. 나는 열심히 해요."

"잘하는 것과 열심히 하는 것은 달라."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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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와 장구 그리고 꽹과리 소고와 장구 꽹과리로 춤 한 마당을 만들었습니다. ⓒ 김동수

▲ 소고와 장구 그리고 꽹과리 소고와 장구 꽹과리로 춤 한 마당을 만들었습니다. ⓒ 김동수

'얼씨구 좋구나 좋아'에 모든 이들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막둥이 소고춤에만 관심을 가졌는데 6학년 아이들이 '개그콘서트'를 흉내내 '개그'를 했습니다. 학부모들 모두가 이를 보고 배꼽을 잡았습니다. 정확하게 생각이 나지 않지만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도 다 틀렸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어로 땡큐, 중국어 쎼쎼, 일본어론 아리가토라 하지요. 수업 시간에, 잠이 와서 꾸벅꾸벅 졸았었는데, 화가 나신 선생님이 다가와 난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앞에 친구 만화책 봤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젯밤에 숙제도 안 하고 일기도 안 써서 혼났다고 생각했는데, 아 선생님 출장갔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숙제를 하는데, 엄마가 들어와서 그것도 못하냐고 소리쳤는데, 아 엄마도 다 틀렸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웃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지금 봐도 웃음이 나옵니다. 소고와 장구 그리고 꽹과리 한바탕을 보고, "감사합니다"로 배꼽을 잡은 후 아이들이 만든 작품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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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이가 만든 '탈'(?)입니다. ⓒ 김동수

딸 아이가 만든 '탈'(?)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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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둥이가 만든 '컵'(?) ⓒ 김동수

막둥이가 만든 '컵'(?) ⓒ 김동수

딸아이는 '탈'을 만들었다고 했는데 아무리 좋게 봐도 탈이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손재주가 어떻게 이렇게도 없는지. 자기 엄마는 손만 가면 작품인데, 아마 100% 아빠를 닮은 것 같습니다. 막둥이는 컵을 만들었습니다. 투박한 컵, 가만히 보면 누나보다 낫다는 생각입니다.

 

막둥이 통곡에 어쩔 수 없이 갔지만 소고춤 한바탕과 "감사합니다"로 즐겁게 보냈습니다. 아빠가 막둥이에게 선물을 준 것이 아니라 막둥이에게 함박웃음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언제나 함박웃음 주는 웃음쟁이 막둥이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2011.10.31 09:32 ⓒ 2011 OhmyNews
#막둥이 #소고 #장구 #학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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