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관에서 오톱시에 몰두한 문국진을 아시나요?

[서평] 문국진·강창래의 인터뷰집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

등록 2011.10.31 18:43수정 2011.10.3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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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 ⓒ 알마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 외국 사례를 들춰 볼 것도 없이 우리나라 군사정권에 참 많았다. 특히 공안사건이나 반공법과 같은 심문과정 속에서 허위 자백은 숱하게 있었을 것이다. 오래전에 방영된 <모레시계>나 최근에 방영된 <자이언트>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지금은 목사가 되었지만 그 당시 세간을 쥐락펴락했던 고문기술자 이근안씨도 그 흐름을 탔던 인물이다. 그를 모델로 한 <생강>이라는 소설은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삶을 심층적으로 보여준다. 


그 당시 남영동 대공 분실은 온통 비명소리로 들끓었다. 관절꺾기, 요도에 볼펜 심 끼우기 등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고문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었던 것이다. 가히 히틀러의 생체실험과 거의 흡사하지 않았을까? 오죽 했으면 그가 없으면 대공 수사가 안 될 정도란 말이 떠돌았겠는가.

그런 고문 때문에 허위 자백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 억울함을 바로잡기 위해 증거재판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바로 법의학자 문국진의 등장과 함께. 문국진과 강창래가 인터뷰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는  법의관으로서 그가 펼친 바른 영향력을 들여다 보게 한다.

일례로 어느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아이가 머리가 잘려 나왔다. 아이의 부모가 경찰에 의뢰했는데, 그 전까지 병원에서 검사하던 의사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보았다. 그런데 그날 머리가 잘린 아이가 나오자, 의사도 황당했고, 사체가 된 아이의 부모도 놀랐던 것이다. 그걸 문국진이 검시했는데, 결국 그 아이는 선천성 매독에 걸려 머리가 잘렸던 것이다. 바로 그 부모의 매독 때문에.

그런 사건도 있다고 한다. 어느 공장에 일하는 여자가 숨진 채 발견됐고, 그녀의 질 속에 남자의 정액이 발견되자, 경찰은 그 공장 부근의 남자들을 모두 조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범인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문국진은 그녀의 손에 붙잡혀 있는 머리카락을 보고서 그녀의 친구를 의심했다. 결국 그 친구가 의도적으로 살인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자기 애인을 가로챘다는 원한을 품고, 전날 밤 다른 남자의 정액을 가져와서 그녀의 질 속에 삽입했던, 그야말로 악랄하고 교묘한 수단을 이용해 범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문국진 교수가 직접 쓴 <지상아>와 <새튼이>라는 책에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고 한다. 물론 이 책에는 그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참 많다. 시골에서 상경하여 서울의 여관 방에서 잠을 자는데 갑자기 질식사한 사건을 파헤친 이야기라든지, 또 병원에서 약 처방을 받은 아들이 갑작스레 숨진 이야기를 올바르게 판별해 낸 이야기라든지, 그야말로 굵직굵직한 사건의 중심에 문국진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싸인>의 20회 이야기는 마치 국과원(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2010년에 원(院)으로 승격되었다)의 지위가 어떤 권력으로부터도 독립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위해 만들어진 듯하다. 문국진은 그 부분에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토록 중요한 '독립'의 문제는 미국에서도 여전히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인다.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의 경우 그것이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법의관 개인의 문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91쪽)

문국진은 자신이 겪은 지난 날의 법의관 시절을 회고하며, 가장 필요했던 게 제도개선에 있었음을 밝힌다. 물론 고문관이 판치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월등이 나은 제도 속에 살고 있다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많다고 한다. 그것이 미국과의 실제적인 차이점이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현직에서 물러난 그는 지금은 '오톱시(autopsy)'에 몰두하고 있다고 한다. 책을 읽고 부검을 하여 죽은 사인을 밝혀내는 게 그것이다. 이 책 뒷부분에 그걸 중점적으로 밝혀놓고 있는데, 베토벤이 죽은 사인이라든지, 빈센트 반 고흐가 자살한 것인지 타살한 것인지, 또 예수는 왜 오른쪽 가슴을 찔렸는지 등 다양한 오톱시를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유명한 예술가들의 경우에는 진료기록도 많이 남아 있고, 또 전기 작가들이 그들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해서 기록으로 남기잖아요. 대게는 '어떻게 죽었는가'에 대한 기록들이 남아 있디요. 그 당시 의사들이나 전기 작가들이 법의학적인 지식이 부족하니까 사인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도 중요한 '증거'는 남겼디요." (175쪽)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 - 대한민국 최초 법의학자 문국진이 들려주는 사건 현장과 진실 규명

문국진 지음, 강창래 인터뷰어,
알마, 2011


#법의관 #문국진 #오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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