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인터넷서 '대머리'라 불러도 명예훼손 아냐"

1심 무죄→항소심 유죄 벌금 30만원→대법원 무죄 취지 파기환송

등록 2011.11.04 15:25수정 2011.11.0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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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상에서 상대방에게 '대머리'라고 표현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30대 회사원에게 1심은 무죄, 항소심은 유죄를 인정하며 판결이 엇갈렸는데, 대법원의 최종 판단은 어떻게 결론 났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죄로 판결났다.

사건은 이렇다. K(30)씨는 지난해 6월 인터넷게임 사이트 '리니지'에 접속해 채팅창에서 P씨와 감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P씨에게 '뻐꺼(머리가 벗겨졌다는 속어), 대머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 1심 "대머리 표현은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 떨어뜨리지 않아"

이에 검찰은 K씨가 불특정 다수인이 볼 수 있는 채팅창에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 P씨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으나, 1심인 수원지법 형사13단독 이수민 판사는 지난 1월 K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해자를 대머리라고 불렀더라도 이는 신체적 특징을 묘사한 말일 뿐 객관적으로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를 떨어뜨리는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고, 피해자가 실제로 대머리가 아니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이어 "물론 신체적 특징을 묘사하는 말도 명예훼손죄가 될 수 있지만, 대머리는 머리털이 많이 빠져 벗어진 머리 또는 그런 사람을 뜻하는 표준어이고, 그 단어 자체에 어떤 경멸이나 비하의 뜻을 담고 있다고 보기 어렵고, 또 신체적 특징이나 개인의 취향과 선호도, 유행 등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이 판사는 그러면서 "특히 이 건의 경우 유죄로 인정한다면 처벌의 무분별한 확장을 가져올 우려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를 명예훼손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 항소심 "대머리는 사회적 가치 평가를 저하시키는 표현 맞다"

이에 검찰이 항소했고, 수원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이흥권 부장판사)는 지난 6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K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유죄를 인정해 벌금 3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대머리'는 사람의 외모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외모에 대한 가치 평가적인 요소도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방송이나 문화작품 등에서 대머리를 부정적 이미지로 그려낸 사례도 없지 않고, 특히 (대머리) 당사자의 경우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함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점, 현대의학에서 대머리를 일종의 질병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 점 등을 종합할 때, 일반인이 '대머리'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여지가 없지 않다"며 "따라서 대머리를 사회적 가치평가를 저하시키는 표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사이버 공간에서 상대방을 '대머리'라고 지칭할 경우 당사자가 실제로는 대머리가 아님에도 대머리인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어 허위사실의 적시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 대법원 "모욕주기 위한 것일 수 있으나, 사회적 평가 저하시키는 것 아냐"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3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온라인 게임 채팅창에서 사람을 '대머리'라고 비하한 혐의로 기소된 K(30)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죄를 인정한 항소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수원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뻐꺼'라는 표현은 피고인이 평소 직장동료들과 사이에 머리가 벗겨진 사람, 즉 '대머리'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해 온 은어일 뿐이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표현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과 피해자는 직접 대면하거나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서라도 상대방의 모습을 본 적이 없이 단지 사이버 공간의 게임 상대방으로서 닉네임으로만 접촉했을 뿐인 점 등에 비춰 볼 때, '뻐꺼'나 '대머리'라는 표현은 피해자에 대한 경멸적 감정을 표현해 모욕을 주기 위해 사용한 것일 수는 있을지언정 객관적으로 상대방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시키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공소사실에 대해 피고인을 유죄라고 판단한 데에는, 정보통신망을 통한 명예훼손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어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케 하기 위해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낸다"고 판시했다.

◈ 인터넷 이용자와 수사기관에도 당부와 지적

한편, 재판부는 "현대생활에서는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공간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접촉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나 표현도 사회의 건강성을 해치지 않아야 하고 타인의 권익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나 침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절제와 규범이 필요하다"고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아울러 수사기관에도 "인터넷 공간에서 글을 게시하는 것도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의한 보호의 대상에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므로, 게시한 글에 대한 형사적 제재에 관한 규정은 엄격하게 제한적으로 해석ㆍ적용해야 하고, 그로써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의사표현이 지나친 제약을 받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대머리 #명예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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