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이발!

[치과에서 바라 본 세상 24]

등록 2011.11.05 15:24수정 2011.11.0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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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치과대학에 입학하면 여러가지 변화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더 이상 '이빨'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다는 점 입니다. 이빨은 눈깔이나 주둥이 처럼 동물에게만 사용하는 비속어이기에 사람에게는 쓰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만 일상적으로는 많이들 쓰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갓 입학한 신입생은 자신도 모르게 '이빨'이라는 단어를 종종 쓰고는 하는데 그때마다 선배들은 '너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을 치료하려고 입학했니?'라고 핀잔을 주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렇게 몇달이 지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 또는 '치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입에 붙습니다.

지난 일요일은 안성에 있는 하나원에 봉사 진료를 가는 날이었습니다. 하나원은 북한에서 탈출한 분들이 남한 사회에서 적응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곳입니다. 여느 때처럼 별 생각없이 진료를 시작하려는데 재미있는 게시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가 쓰는 표준어와 북한에서 사용하는 문화어 중에서 치과 진료실에서 흔히 쓰이는 몇가지를 적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동안은  표준어가 서툰 교육생과 문화어를 모르는 치과의사 사이에 의사 소통이 되지 않아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치과에서 사용하는 기구에 얼룩이 묻으면 안되기 때문에 치과 진료를 받기 전에는 립스틱을 지우라고 이야기를 해도 환자는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치과의사가 환자가 화장을 지우기 싫어서 그러는 줄 알고 왜 립스틱을 지워야 하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해 주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진 적도 한두번이 아닙니다.

이럴 때는 "립스틱을 좀 지워주시겠습니까?"가 아니라 "입술 연지 좀 지워주시겠습니까?"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치석이 많아서 스켈링 좀 하셔야 겠습니다"라는 말을 못 알아 듣는 환자에게는 부득이 하게 "이에 때가 많이 껴서 좀 벗겨내셔야 해요"라고 설명을 했지만 이때는 '치담이 많아서 스켈링이 필요하네요"라고 설명했으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듯 합니다.

함께 간 다른 선생님들도 잠시 진료 준비를 멈추고 게시물을 유심히 살펴 보면서 좋은 정보를 배운다고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립스틱과 입술 연지, 치석과 치담 같은 단어들 사이에 이와 이발이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문화어로는 치아의 단수형 표현이 이고 이발이 복수형 표현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이야기한다면 '이'는 teeth이고 '이발'은 tooth가 됩니다. 이발에서 발은 장음으로 문 앞에 가늘고 긴대나 줄을 나란히 엮어서 문앞에 걸어놓는 물건에서 왔다고 합니다. 치아가 나란히 놓여져 있는 모습이 이로 만든 발 같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이빨이라는 말은 이발이 시간이 지나서 된소리가 된 것으로 봐도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비속어로 되어있지만 이빨의 어원은 이발에서 온 것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해서 익숙해 진다면 시간이 지난 후 표준어로 인정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장면이 짜장면이 된 것처럼 말이죠. 언젠가 될 통일을 대비해서라도 문화어와 표준어가 어떻게 다른지 조금씩 관심을 갖고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특히 의사 같은 전문직의 경우 통일 직후에 용어의 일치를 위해 애를 먹을 것이기에 앞으로는 서로 다른 용어를 조금씩 알아가고 바꿔나가는 노력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자유 칼럼 그룹 중복게재 입니다.


덧붙이는 글 해당 기사는 자유 칼럼 그룹 중복게재 입니다.
#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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