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부검하려 메스 들었더니... 도끼가 '번쩍'

[서평] 문국진·강창래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

등록 2011.11.12 13:55수정 2011.11.1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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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 알마

책 표지 ⓒ 알마

책 제목, 자극적이다. 궁금증을 무한하게 유발한다. 법의관이 대체 왜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을까, 하는 의문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연기처럼 모락모락 솟아오른다. 게다가 '대한민국 최초 법의학자' 이야기란다. 추리소설 마니아를 자청하는 나로서는 당연히 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이 임상의학이라면, 사람의 권리를 다루는 의학은 법의학이다.' 이 말에 매료되어 나는 당시 불모지였던 법의학의 길로 들어섰고, 이제 법의학을 시작한 지 56년이 흘렀다. 이 인터뷰집은 그간 나의 학문과 잠정 실무를 통한 삶의 기록이다." - 인터뷰이 문국진의 들어가는 글에서

 

들어가는 글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법의학자 문국진 박사'가 밝힌 대로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는 인터뷰어 강창래 작가가 법의학자 문국진 박사를 만나 인터뷰를 한 내용을 풀어놓은 책이다. 이런 분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면 참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부검 관련된 흥미진진한 사례도 많을 것이며,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이야기도 엄청 많이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우리나라 최초의 법의학자인 문국진 박사는 대체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을까, 궁금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든 생각. 강창래 작가가 이런 분과 인터뷰를 하려면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을 것이며, 그 작업이 만만치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인터뷰이에 대해 혹은 그의 직업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면 상투적인 이야기만 나누면서 겉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만큼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를 흥미로우면서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

 

부검실에 날아든 도끼... 사실은

 

문국진 박사가 법의학을 전공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대학 3학년 때라고 했다. 의사가 되려고 의대에 들어갔지만 '의사가 되더라도 늘 환자만 보는 임상의사가 되고 싶지 않았던' 그는 후루하다 다네모도가 쓴 <법의학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법의학을 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당시 스승이었던 장기려 박사는 그의 결심을 듣고 마구 화를 내면서 그런 건 학문도 아니니 외과를 전공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문국진 박사는 법의학을 전공하겠다는 결심을 했으나, 막상 의대를 졸업하고 나니 막막하더란다. 그때가 1955년. 당시 한국에는 법의학과나 법의학 교실이 있었던 것도 아니요, 그런 일을 하는 곳도 없고 배울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법의학을 전공할 운명이었다. 그가 졸업하던 해, 국과수가 독립기관으로 발족하면서 법의관을 뽑았던 것이다. 지금이야 유명한 미국 드라마 <CSI>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법의관이 무엇이며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지 잘 알고 있지만, 당시 사회 인식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수사관들은 법의관에게 정황을 설명해주면서 증거를 찾아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수수께끼 같은 걸 내면서 답을 알아맞히나 보자는 식으로 테스트를 하려고 들었어요. 검사들도 그랬고. 부검을 해서 보고서를 보내면 읽어보지도 않고 부르는 거요. 그래서 가보면 한두 시간 기다리게 하는 건 보통이고, 또 불러서 들어가 보면 무슨 죄인 취조하듯 물어봐요." - 112쪽

 

이런 대우 때문에 자괴감을 느낀 문 박사는 한때 법의관 생활을 접으려는 생각도 했다. 그가 법의학을 전공한다고 했을 때 반대했던 은사인 장기려 박사를 찾아가 외과의사로 받아달라는 청을 했다. 하지만 장 박사는 한 우물을 파야 한다면서 그를 돌려보냈다고 한다. 대단한 스승이 아닐 수 없다. 그 덕분에 그는 56년간 한 우물을 열심히 팔 수 있었으니 말이다.

 

법의관이 되었지만, 당시는 그가 할 일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법의관 첫해에 그가 한 부검 횟수는 52회. 일주일에 한 건 정도밖에 되지 않아, 그는 부검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형편이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부검에 대한 인식 때문이라는 것이 문 박사의 설명이었다. 부검을 '두벌죽음'이라고 여겼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두벌죽음'은 큰 형벌이라는 생각이 꽉 박혀 있었다고 한다. 죽은 사람을 부검을 하면 그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피살자 가족들은 어지간하면 부검을 하지 않으려고 했고, 수사관들조차도 부검까지 하면서 사건을 수사할 의지를 갖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 억울한 죽음이 많았고, 끝까지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경기도 남양주의 한 마을에서 한 청년이 목을 매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단다. 사건을 수사하던 중 사실은 이 청년이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사귀던 여자의 가족에게 폭행당해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청년이 살해당한 것을 숨기려고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꾸몄다는 것이다. 사인을 자세히 밝히려면 청년의 시체를 부검해야 했다. 문제는 청년의 할아버지가 부검을 반대한 것이다. 이 할아버지는 무슨 이야기가 되었건 자신의 손자가 '두벌죽음'을 하는 걸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길길이 날뛰었다.

 

문 박사가 사과상자 4개로 만든 간이 해부대에서 시체를 부검하려고 메스로 절개를 하려는 순간, 도끼가 번쩍 하면서 날아들더니 사과상자 한쪽이 동강나고 말았다. 문 박사가 보니 할아버지가 도끼를 들고 현장에 와 있었단다. 하마터면 문 박사는 할아버지가 휘두른 도끼에 맞을 뻔했다. 지금은 '두벌죽음'인 부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 문 박사의 설명이었다. 그 설명, 수긍이 간다.

 

문 박사는 법의관으로 부검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글을 썼고, 또 그것을 책으로 엮어 내기도 했다. 그가 지금까지 펴낸 책이 전부 49권이라고 하니 엄청나게 많은 글을 쓴 셈이다.

 

법의학은 인권을 위한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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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진 박사가 쓴 책.

문국진 박사가 쓴 책.

1985년에 펴낸 <새튼이>와 1990년에 펴낸 <지상아>는 당시에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내가 이번에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와 함께 읽은 <지상아>는 1995년에 나온 20쇄였다. 그것만 봐도 그 책의 인기가 어떠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책들은 전문적인 의학상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을 위해 사례를 들어 쉽게 풀어쓴 법의학 이야기인데, 문 박사의 만만치 않은 필력을 엿볼 수 있다. 흥미와 재미 그리고 저자의 철학이 잘 버무려져 있으며, 술술 잘 읽힌다.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에도 그 책들에 실린 사건 내용이 많이 인용되어 있어, 어떤 내용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새튼이'와 '지상아(紙狀兒)'는 섬뜩한 의미를 담고 있다. '새튼이'는 죽어서 미라가 된 아이, '지상아'는 태아가 어머니 뱃속에서 죽은 채 부패하지 않고 연화되어서 나중에 종이처럼 얇아지게 된 것을 의미한다. '새튼이'는 전설에 등장하지만, '지상아'는 의사의 오진 때문에 산부인과에서 출산 중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문국진 박사는 이 책,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를 통해 한 때는 학문도 아니라는 취급을 당했던 법의학이 '인권을 위한 학문'이라고 주장한다. 법의학이 어떤 경우에도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게 애쓰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왜?

 

문 박사가 법의관이었던 시절, 수사관들은 고문을 공공연한 수사 수단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악랄하고 잔인한 고문을 활용해서 억울한 사람들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밝히고, 과학적인 증명을 통해 범인을 찾아낼 수 있으니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리는 사람들이 줄어들거나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 문 박사의 주장이다. 실제로 그런 예는 많았다고 문 박사는 이 책을 통해 증언한다.

 

법의학의 발달은 과학수사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점점 더 그렇게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미국드라마 <CSI>가 그런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 드라마 덕분에 시청자들의 범죄관련 지식이 풍부해지고 인식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물론 드라마와 현실은 다르고, 또 미국과 우리나라는 '부검'과 관련된 제도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고스란히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말이다.

 

법의학의 불모지에서 뿌리가 되고 줄기가 되어, 법의학이 무성한 가지를 뻗게 한 문 박사의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로우면서 의미가 새롭다. 또한 현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책을 통해 '부검'을 계속하면서 생의 의미를 찾는 노 학자는 존경스럽다. 그런 이가 들려주는 '죽음' 혹은 '주검'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나라 법의학의 현재를 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관심이 없더라도 '인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곱씹어 생각할 것이 많을 것이다.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을 다 읽은 뒤에는 아마도 나처럼 문국진 박사가 이전에 썼던 책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새튼이>와 <지상아> 등은 거의 30년 전에 출간된 책인데도 여전히 내용이 흥미롭고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것은 아마도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나 '주검'을 둘러싼 인간 범죄의 내용에는 그다지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 - 대한민국 최초 법의학자 문국진이 들려주는 사건 현장과 진실 규명

문국진 지음, 강창래 인터뷰어,
알마, 2011


#문국진 #법의학 #법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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