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물만 남기고 사라진 한계사, 어떤 절이었을까?

한계령 고갯길 한계사지를 찾아가다

등록 2011.11.16 08:45수정 2011.11.16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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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사지 원통을 지나 삼거리에서 한계령 정상으로 오르다가 만나는 한계사지. 그러나 일반인들에게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 하주성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 90-4번지에는 사지가 있다. 강원도 기념물 제50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 사지를 '한계사지'라고 한다. 11월 14일 오후에 찾아간 한계사지. 그러나 일반인들에게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는 곳이라, 안으로 들어가려면 관리사무소의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미리 공문을 보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한계사지를 둘러보았다.


한계사에 대한 유래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통일신라시대 때 세워진 이 절은, 조선시대 때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한계사가 있던 자리라고 본다. 1984년의 발굴 결과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의 금당터와 부속 건물터 등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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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금지 푯말 한계사지를 오르는 길은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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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괴석 한계사가 서 있던 절 터 뒤로는 기암괴석이 즐비한 산 봉우리들이 보인다. 한계사는 얼마나 아름다운 절이었을까? ⓒ 하주성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한계사

이 사지의 발굴 당시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인 석탑과 석등, 석불 등의 재료와, 고려와 조선시대의 명문기와가 많이 발견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점으로 유추해 볼 때 한계사는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여러 차례 중건을 거듭하며 이어져온,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한계사가 누구에 의해서 창건이 되었는지, 정확히 언제 적에 사찰이 사라진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인제에서 원통을 지나 미시령과 한계령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한계령 방향으로 길을 잡아 올라간다. 좌측 길 아래 장수대라는 정자가 보이는 도로 우측에 설악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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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물 한계사지 한편 보호철책 안에 놓여있는 각종 석조물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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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 터 한계사지 안에는 정면 세칸, 측면 세 칸의 금당터 외에도 많은 전각터가 보인다. ⓒ 하주성


어렵게 허락을 얻어 들어간 한계사지, 놀라워

관리사무소에서 한계사지 뒤편을 보면 기암괴석이 솟아있다. 앞으로도 마치 뾰족한 원뿔모양의 산봉우리들이 첩첩이 놓여 있다. 한계사지로 오르는 길에는 굳게 철문이 막히고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걸려 있다. 사전에 관리사무소에 허락을 받은 지라, 철문을 열고 낙엽이 가득 쌓인 길을 걸어 오른다.

조금 올라가니 밑에서 보이던 기암괴석이 조금 더 자세하게 보인다. 오악(五嶽) 중 한 곳인 설악이 아니던가. 바라다만 보아도 그 장엄함에 눈을 뗄 수가 없다. 폐가가 서 있는 뒤로 한계사지가 펼쳐진다. 한계사지 안에는 보물인 삼층석탑 두 기가 경내에 자리하고 있다(석탑의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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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물 배려석 인듯한 석조물. 측면에는 안상을 새겨넣었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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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단석 기단석인 듯한 장대석도 보인다. 길이가 3M는 됨직한긴 석조물이다. ⓒ 하주성


눈앞에는 많은 석물들이 철책 안에 자리한다. 각종 주추들이며 문 자귀틀, 그리고 석조로 조형한 짐승(사자인 듯하다)과 여러 조각으로 난 석물들이 즐비하다. 그 한편에는 삼층석탑 한 기가 서 있고, 그 주변으로는 옛 전각 터들이 보인다.

석물로만 보아도 옛 한계사를 그려볼 수 있어

석물 중에는 딴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도 보인다. 이것 저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많은 석물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아마도 이 석조물들로만 보아도 한계사라는 옛 절이 그리 조그마한 절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에는 안상을 새긴 네모난 돌이 보이는데, 아마도 배례석인 듯하다. 그러나 위에 문양을 돋을새김으로 새겨 넣은 것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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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수 아마도 층계 밑에 세운 사자인 듯하다. 이런 류의 석조물들이 많이 발굴이 되었다 ⓒ 하주성


금당터 등은 석축이 남아있어 알 수 있지만, 여기 저기 돌 축대 흔적으로 보아 많은 전각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석좌나 다양한 문양으로 새겨진 주춧돌만 보아도, 이 한계사가 여러 번에 걸쳐 중창이 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런 한계사가 언제 적에 누가 창건을 하였는지, 그리고 언제 사라졌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다만 석조물과 기와 등 명문으로 살펴볼 때, 신라시대에 창건된 절로 조선조에 와서 폐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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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물 무엇에 사용한 것일까? 이렇게 세모난 석조물 등은 흔히 볼 수 없는 것들이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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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추 주추인 듯하다. 연꽃문양을 아름답게 새겨넣었다 ⓒ 하주성


사람들의 발길도 멈춘 인제 한계령 고갯길 한편에 남아있는 한계사지. 출입이 금지된 곳이라 다음을 기약할 수가 없어, 더욱 찬찬히 살펴본다. 그러나 말없는 석조물들은 그런 나그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세월만 보내고 있다. 기암괴석 위에 걸린 늦가을의 푸른 하늘과 함께.
#한계사지 #신라시대 창건 #조선조에 페사 #인제 #문화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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