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김치 맛있는 이유, 바로 이것이제!"

영광태양초만 거래되는 재래시장 '영광 고추특화시장'

등록 2011.11.25 17:17수정 2011.11.2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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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한 농가 장독에서 빨강 고추가 늦가을 햇살에 말려지고 있다. ⓒ 이돈삼


"고추장 빛깔 낼라믄 고추가 좋아야 혀. 고추장에 쓸 놈은 젤 존 놈으로만 해야제. 양건으로. 그니까 태양초! 빨갛고 껍질도 두툼하고. 고추가 맛있어야 고추장이 맛있고 색깔도 빨간허게 나오제."


순창 전통 고추장 분야의 제조 명인 이기남(90·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잠마을) 할머니의 얘기다.

양건, 태양초. 그래 영광이었다. '굴비'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영광은 태양초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고장이다. 고추만 거래되는 특화시장이 열리는 곳이 여기에 있는 것도 이런 연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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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낙이 아스팔트 도로변에 빨강 고추를 널고 있다. 이렇게 햇볕에 말려진 게 진짜 태양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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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고추가 아스팔트 위에 온몸을 던진 채 맛좋은 태양초로 변신하고 있다. ⓒ 이돈삼


"만져보고, 맡어보믄 금방 알제"

지난 16일 새벽 고추특화시장으로 갔다. 영광의 고추특화시장은 매 1일과 6일에 서는 5일 시장이다. 이 시장은 새벽 네다섯 시에 열리고 날이 새면 파한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궂은 날씨다. 고추시장은 벌써 사람들로 왁시글덕시글하다. 빨갛게 불을 밝힌 고추 모형의 가로등이 이채롭다. 고추를 가득 실은 트럭이 속속 모여든다. 시장을 서성이던 한 무리가 그 트럭을 에워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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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수매를 위해 고추특화시장에 온 한 농민이 비를 피하기 위해 트럭에 씌운 비닐을 걷어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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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고추를 싣고 온 한 생산농민이 고추특화시장에서 경매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이돈삼


트럭에서 고추가 내려지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에 의해 금세 마대포대가 풀어 헤쳐진다. 손전등을 든 사람들이 불빛을 비춰가며 이리저리 살펴본다. 어떤 이는 고추를 한 움큼 쥐어 손전등 불빛에 비춰본다. 포대 깊숙이 손을 넣고 고추 한 움큼 빼내 살피기도 한다. 라이터 불을 밝히고 살피는 눈길도 보인다.

"후레쉬하고 라이터 불빛하고 보이는 게 달라. 이것으로 한 번 더 봐야 고추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 수 있거든."

한 상인은 고추 하나를 쪼개 코끝에 대본다. 입으로 깨물어보기도 한다. 능숙한 솜씨다. 좋은 고추를 고르기 위한 것이라는데, 길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고추 장사는 아무나 못해. 백날 봐도 모르는 사람은 몰라. 우리는 보고, 만져보고, 맡어보믄 금방 알제. 저울도 필요 없어. 들어보믄 돼."

상품이 맘에 들면 바로 흥정에 들어간다. 이제부터는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생산자와 조금이라도 깎아보려는 상인들의 줄다리가 시작된다. 그 옆으로 흥정을 거쳐 상인들의 손으로 넘어간 큼지막한 고추 포대가 줄지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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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고추특화시장에서 한 상인이 고추의 상태를 살피던 손전등을 들어보이고 있다. ⓒ 이돈삼


올해 고추 농사를 지은 영광 농민들은 한 몫 잡았다. 궂은 날씨 탓에 다른 주산지의 고추농사가 안 됐기 때문이다. 평소 한 근(600g)에 6000∼7000원 하던 고추 가격이 올해 2만 원까지 뛰었다. 예년보다 3배나 높은 가격이었다.

"고추 농사지으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구먼. 올해는 돈 좀 만졌제. 한창 땐  50근(30㎏)짜리 한 포대에 100만 원까지 갔어. 근디 따지고 보믄 고추 값이 비싼 게 아녀. 70~80년대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가 금년에 비싸다고 하는 디 절대 비싼 게 아니여."

고추 장사만 40년째 해오고 있다는 김상호(75) 어르신의 얘기다. 김 어르신은 지금도 고추특화시장에서 고추를 팔고 있다.

일반적으로 영광 고추는 다른 지역 고추보다 가격이 높다. 같은 종자를 심더라도 영광에서 나는 고추는 더 비싸다. 고추 값이 좋지 않을 때는 1000원. 올해같이 좋을 때는 3000원씩 더 받는다. 시장 상인들이 모두 알고 소비자들도 인정한다. 하나의 불문율이자 영광 고추의 특권이다.

"고추라고 무작정 맵기만 해서는 안돼야. 매우면서도 먹기 좋게 단맛이 있어야 허고 향이 좋아야지."

시장 상인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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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고추특화시장에서 고추를 파는 최문수·김상호 두 어르신이 햇볕에 잘 마른 '영광양건(태양초)'을 들어보이고 있다. ⓒ 이돈삼


매운맛과 단맛이 어우러져 감칠맛을 낸다

영광 고추는 색이 붉고 살이 두텁다. 매운맛과 단맛이 어우러져 감칠맛을 낸다. 고추를 빻을 땐 구수한 향을 내기도 한다. 황토에서 해풍으로 키우고 햇볕과 바람으로 말린 덕이다. 상인들은 이를 '영광양건'(태양초)이라고 부른다.

"이놈이 영광양건이요 하믄 끝이여.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어. 양건은 빛깔이 자르르 흐르고. 화건(기계로 말린 고추)은 때깔이 안 좋제. 꼭지를 보믄 금방 알 수 있어. 노르스름한 게 이쁜 반면에 화건은 시푸렇거든."

영광 고추특화시장에서 고추 가게를 운영하는 최문수(65) 어르신의 영광태양초 자랑이다. 최씨 어르신의 양건과 화건 구별법이 이어진다.

"양건은 구수한 향이 나는데 화건은 풋내가 나제. 김치를 담그믄 양건은 김치에 착 달라 붙는디, 화건은 붙지 않고 따로 놀제. 쉽게 얘기해서 물에 떨어뜨리면 양건은 무지개 마냥 착 퍼져 나가는디, 화건은 그대로 물속에 가라앉아버려. 전라도 김치가 맛있는 이유제."

충북 음성, 경북 영양과 함께 전국 3대 고추 주산지로 통하는 영광의 고추 재배면적은 1700여㏊로 전국의 17%에 달한다. 생산량은 4만여 톤, 이에 따른 소득은 2천600여억 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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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고추특화시장 입구. 여기서는 고추만 거래되고 있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광양건 #태양초 #고추특화시장 #영광 #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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