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을 먹어도, 가족이 죽어도, 온종일 서서 웃어야 해요"

[과로사회-감정노동 ①] 패스트푸드점 알바와 대형마트 계약직의 '웃음과로'

등록 2011.12.12 10:52수정 2011.12.1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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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직업은 감정에 부담을 지운다. 단 감정노동은 사람들과 개인적인 접촉을 해야 하고, 그들의 마음 상태에 맞춰 감정을 감시, 감독당해야 하는 직업에서 발생한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친절함을 유지하며'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는 서비스직이 대표적이다. 서비스산업은 급속히 성장했으나 감정노동에 대해서는 아직 사회적 인식도 보장도 미흡한 상태다. 더구나 장시간노동, 직무스트레스 요인을 계속해 가중하는 기업의 경영태도가 피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 <노동세상> 편집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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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 (Emotional Labor) 은 '배우가 연기를 하듯 타인의 감정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노동'을 말한다. ⓒ 노동세상

감정노동 (Emotional Labor) 은 '배우가 연기를 하듯 타인의 감정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노동'을 말한다. ⓒ 노동세상

손님의 편의가 강요하는 알바생의 웃음

 

낮 12시다. A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김유정(20·가명)씨는 허리를 곧추세운다. 피크타임이다. 몰려오는 인근 직장인들을 향해 밝은 표정으로, 크게 외친다. "어서 오세요, A버거입니다."

 

재빠르게 앞에 선 손님이 대뜸 묻는다. "ㄱ버거랑 ㄴ버거랑 맛이 어떻게 달라요? 세트는 바꿀 수 있어요?" '감'이 온다. 이 손님 까다롭겠다.

 

"ㄱ버거엔 치즈가 더 들어가서요, 좀 더 느끼할 수 있으세요."

"느끼한 걸 누가 좋아해요?"

 

손님의 말에 마음이 톡 쏘였다. 예상은 했지만 마음이 상한다. 그래도 티를 내면 안 된다. 아니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해야 한다. "그럼 이거로 해드릴까요?"

 

주문을 받으면 한 번 확인을 해준다. "ㄷ버거, 감자튀김, 아이스커피 하신 거 맞으세요?" 전화통화에 여념 없는 손님은 고개만 까닥인다. 사람이 자판기로 보이나. 애써 지어보인 웃음이 민망하다. 그보단 나중에 음식이 잘못 나왔다고 항의를 할까 봐 걱정이다. 확인 안 한건 손님이라도 사과는 알바 몫이다.

 

다음 손님은 통 메뉴를 못 고른다. 뒷손님들이 김씨를 향해 인상을 쓴다. 초조하다. 한 번 '말리면' 줄이 계속 길어진다.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한다. 그러다 또 말에 쏘인다. "말이 왜 그렇게 빨라요? 불친절하게."

 

느려도 문제다. "5900원입니다. 할인카드 있으세요? 현금영수증..." "아, 다 필요 없으니까 그냥 빨리 줘요."

 

그렇다고 멘트를 생략할 수도 없다. 안내를 안 해줬다고 항의가 들어오면 큰일이다.

 

"야, 런치세트 지금 되냐? 그거 줘." 반말과 함께 돈을 던진다. 분명 '맛이 강한 건데 괜찮으시냐'는 확인을 무시했던 손님이 먹다 만 햄버거를 도로 내놓는다. "이거 너무 짜서 못 먹겠으니까 바꿔줘요." 새 햄버거를 내드린다. 일이 또 늘었다. 재고를 다시 맞춰야 한다.

 

"저희가 보는 앞에서 일부러 휴지 찢어 바닥에 뿌려버리는 분도 있었는데, 그래도 저희는 아무 말도 못 하죠. 그때는 진짜 너무 화가 났는데... 어쩔 수 없죠. 진짜 하루에 수백 번도 더 참아요, 저희는."

 

네 시간을 서서 일하고 30분 쉰다. 바쁜 시간을 넘긴 오후 2~3시경이다. 점심은 그때 햄버거로 먹는다. 그리고 또 서서 웃는다. 손님을 맞을 때마다 응대와 계산, 주문을 넣고 음식을 내는 과정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그렇게 하루 평균 100여 명의 '고객님'을 맞는다고 김씨는 말했다. 하루 종일 서 있는 다리도, 쉬지 않고 멘트를 날리는 목도, 애써서 웃음을 만드는 입가도 피로하다. 그래도 '고객님'은 용서가 없다.

 

"좀 웃으면서 주지.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하거나 대놓고 "손님한테 인상 쓴다"며 지적하는 이도 있다. 몇 번째인지 모를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면서 마음 속에 또 비수가 꽂힌다.

 

차라리 그게 낫다고 싶을 때도 있다. 한 번은 햄버거를 잘못 드렸다. 피크타임에 뒤늦게 할인카드를 낸 손님의 계산을 다시 하다가 벌인 실수였다. 바꿔드리고 죄송하다고 수차례 사과드렸다. 다음날 매니저에게 야단을 맞았다. '주문도 제대로 못 받고, 사과도 건성으로 하고, 서비스 마인드가 안 돼 있다'는 컴플레인이 본사 홈페이지 '고객의 소리'에 올라왔다. 그 손님이었다.

 

"매일 본사 서비스팀이 인터넷 체크하거든요. 그렇게 인터넷에 올라오는 컴플레인이 마음에 오래 가요. 나는 나름 최선을 다 했는데 이 사람은 더 요구하는구나... 상처가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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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점포는 기사와 연관이 없습니다. ⓒ 노동세상

사진의 점포는 기사와 연관이 없습니다. ⓒ 노동세상

마음을 풀려고 동료들과 수다를 떨고 노래방에 간다. 때로는 운다. 풀리진 않는다. 묻을 뿐이다. 억눌린 마음은 튀어나갈 곳을 찾는다. 지하철에서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히는 등의 사소한 일로도 화가 확 난다.

 

"여기서 일하면 성격 바뀌어요. 조급해지고, 고객이 뭐라고 해도 맞대응을 못 하니까 쌓여서 그런지 화를 자주 내요. 욕도 늘고."

 

보람도 있다. 손님이 그를 '사람'으로 인정해줄 때다.

 

"고객님이 '되게 친절하시네요.', '많이 힘드시죠?' 진심으로 말씀해주실 때. 또 단골 분들, 주로 나이 든 분들인데 가끔 피곤하겠다고 사탕도 주시고 저희한테 잘해주세요. 저희도 잘해드리고."

 

김씨는 덧붙였다.

 

"저희도 저희 입장이 나름대로 있는데, 조금만 불친절해도 '너희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걸 안 했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희도 항상 친절할 수는 없어요. 사람이잖아요. 무시하거나 막말, 비꼬는 말 들으면 되게 상처 받아요. 같은 사람 대 사람으로 대했으면 좋겠어요."

 

김씨는 꼬박꼬박 손님을 '고객님'으로 높여 불렀다. 16살 때부터 패스트푸드점 알바만 4년째다. 돈 버는 것도 재미있었고 마음 맞는 친구들도 생겼다. 진상손님을 욕하다가도 손님들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표정관리를 한다. 단골손님들에 대한 맞춤 서비스는 기본이다. 서비스직이라면 뭐든 잘할 자신은 있다. 그러나 계속하고 싶지는 않다. 요즘은 직업을 바꿀 고민을 하고 있다. 시종일관 밝은 표정을 유지하면서, 그는 "진짜 웃을 때가 거의 없다"고 했다.

 

"감정 컨트롤은 잘 하죠. 그런데 친한 단골손님이 가끔 장난 걸어주시고 그럴 때... 그런 때 아니면 진짜 웃는 때가 없는 거 같아요."

 

마트의 매출이 강요하는 판매직원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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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노동자의 감정노동, 건강권 문제를 제기한 아주라 콘서트. ⓒ 노동세상

서비스 노동자의 감정노동, 건강권 문제를 제기한 아주라 콘서트. ⓒ 노동세상

A마트 협력업체 계약직인 이희숙(40)씨는 정육코너에서 돼지고기를 판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뭐 찾으세요? 보고 가세요! 싸게 드려요 고객님."

 

어제도 매출이 나쁘다고 또 한 소리 들었다. 옆 자리에 있는 경쟁업체가 3개나 된다. 그 중 하나는 마트 PB(마트 자체개발 브랜드) 상품이다. PB 냉장 국내산 돼지고기는 100g에 1750원이다. 여기는 2280원이다. 애초 불공평한 게임이다.

 

가격 경쟁력을 때우는 방법은 '친절'뿐이다. 다른 코너보다 더 큰 소리로 고객님을 부른 다. 열심히 '썰'도 푼다. "고객님, 어디 가셔도 이 가격에 못 사세요. 이게 제육볶음 하면 진짜 맛있어요." 20대 손님이 "이거 한 근 하면 얼마니?"하며 '야자'를 트고, 엄마 손님이 아이 더러 "너도 공부 안 하면 커서 저런 일 해야 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마음이 요동친다. 그래도 사근사근히, 웃어야 팔린다.

 

월초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금요일이었다. 팀장에게 주말 오전 출근을 못 하겠다고 연락했다. 팀장은 대뜸 짜증을 냈다. "아니 왜 언니네 시아버님은 하필이면 주말에 돌아가셨대?" 사람 없다는 등쌀에 법적 휴가기간인 5일도 채 못 쉬고 출근했다. 그래도 웃으며 손님을 잡아야 했다. 매출을 위해서다.

 

마감세일이 임박해지면 예민해진다. 손님이 많을 때라 바쁘면서도 매출을 많이 올릴 수 있는 시간이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바쁜 틈에 도둑도 잡아야 한다. 도난을 당해 제품 '로스(lose, 손실)가 나면 문책을 받는다. 그러다 손님을 불쾌하게 해서 컴플레인이 들어와도 문책을 받는다.

 

마트는 직원만 잡는다. 보안요원이 매일 직원의 가방을 열어 소지품을 검사하고, CCTV도 직원들이 움직이는 동선을 잡는다. 이름을 적은 명패를 패용하게 하며 언제나 누구에게나 직원의 신상을 드러내어 놓는다. 늘 태도를 감시당한다는 부담도, 툭하면 직원 실명을 거론한 컴플레인이 올라오는 인터넷도, 친절하라면서 욕 먹는 일은 직원에게 돌리는 마트도 이씨는 원망스럽다.

 

마트의 규정은 기이하다. 따라도 안 따라도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 역시 무조건 직원의 '친절'로 커버해야 한다. 마트 의류, 잡화매장에서 일하는 박현주(가명, 40대)씨는 '이번 주 대박상품, 1천 원 욕실화' 때문에 또 곤욕을 치렀다.

 

"미끼상품이라고, 싼 특정 상품을 전단에 내요. 목요일 오전에 전단지를 바꾸는데, 이 상품은 그때 다 빠져요. 수량이 적거든요. 그럼 전단 보고 오후에 온 손님은 어이가 없죠. '광고만 대문짝만하게 내놓고 뭐냐? 물건 빨리 가져와라' 화를 내시죠. 마트가 애초 물량을 많이 하면 될 걸 손님 낚으려고 미끼상품이라고 조금만 내놓으니, 어디서 더 가져올 수도 없고 저희도 힘들죠. 그냥 무조건 '죄송합니다 고객님' 하고 굽실댈 수밖에요."

 

얼마 전엔 속옷을 사갔던 손님이 "빨았더니 늘어났다"며 새 것으로 바꿔달라고 했다. 영수증도 없었다. 규정상 그럴 수 없다고 거절했더니 난리가 났다. 결국 매니저가 나와 물건을 바꿔주었다.

 

"직원들은 규정에 맞게 일하라고 하고, 그러려고 하는데 결국 손님이 큰소리치면 무조건 해 주는 거예요. 이런 거도 손님 봐가면서 하는 거거든요. 직원 내보내서 될 거 같으면 그 선에서 끝내고, 정 안 되면 자기가 처리하고. 그럼 애초에 규정을 만들질 말던가... 어떻게 보면 직원을 이용해 먹는 거죠. 회사는 공격적 마케팅 하고 좋은 이미지 만들고."

 

얼마 전엔 여성 캐셔가 락커룸에서 퇴근 준비를 하다 남성 손님에게 맞기도 했다고 그는 전했다.

 

"낮에 손님 한 분이 카트 밑에 딴 물건을 뒀던 거예요. 그 캐셔가 계산하신 거냐고 물었대요. 그게 규정이니까. 그런데 손님은 그게 화가 나신 거야. 그 가족분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 캐셔를 찾아가서 때린 거예요."

 

남성 손님을 여성 직원 락커룸까지 안내한 건 마트 직원이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정연주(가명, 20대) 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마트 매니저를 대동한 중년 남성이 씩씩대며 매장에 들이닥쳤다. 영문도 모르고 일단 수습에 나섰다. "고객님 일단 제가 알아보고요, 잠시만..." 얼굴에 물건이 날아왔다. "야 이 XX년아" 욕설이 뒤이어 쏟아졌다. 너무 놀라서 말 한 마디 못하고 고스란히 욕을 들었다. 말리지도 않던 매니저는 손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한 마디 했다. "잘했어." 뭘 잘 했다는 건지 정씨는 모르겠다.

 

마트는 친절을 이용하고, 이를 위해 관리한다. '고객님 보기에 불편할까 봐' 매장에는 의자도 놓지 않았다.

 

미스터리 쇼퍼가 친절을 감시한다. 손님이 2분 이내에 매장 안에서 직원을 찾을 수 있는지, 직원은 하던 일을 멈추고 손님을 응대했는지, 눈맞춤을 했는지, 웃었는지, 원하는 곳까지 동행 안내를 했는지, 체크하고 점수를 매긴다.

 

"매장이 한 100평은 되는데, 손님을 바로 찾아오긴 힘들어요. 창고에 가 있거나 식사 중일 때도 그렇죠. 그래도 감점돼요. 일단 눈은 마주쳤는데 바로 웃진 않았다, 이래도 감점이고."(박현주)

 

점수는 한 달에 한 번, 각 점포, 부서별로 매겨져 공고된다. 점수가 떨어지면 한 소리를 듣는다. '인사 실천단'도 해야 한다. 목에 리본을 달고 매장을 돌아다니며 큰 소리로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외친다. 안 그래도 직원이 점점 줄어서 바쁜데, '친절'이 일을 더 늘린다.

 

친절은 경쟁도 늘린다. 부서별로 서비스 매니저가 6개월마다 한 번씩 친절평가를 통해 6개월에 한 번씩 등급을 매기고 상위 15%인 1등급에게 성과급을 지급한다. '얼마나 친절했느냐' 식의 주관적인 평가다. 인정받을 수 있는 친절은 매니저의 눈에 보이는 것뿐이다.

 

박씨는 한 주에 한두 번은 동료들과 술을 마신다. 가장 만만한 스트레스 해소 방식이다. 평일에 휴무를 갖기에 친구들을 만나기도, 가족과 놀러 가기도 힘들다. 효과는 얼마 못 간다. 집에 돌아갔을 때 아이들이 숙제를 안 했거나 방을 어지럽혀 놨으면 '너무' 화가 난다.

 

"감정노동에 대해서 회사가 해주는 게 없는 거 같아요. 치료프로그램이나 상담 같은 거도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창 예민한 중 3 아이와 자꾸만 부딪히는데 하소연할 곳이 없다는 박씨의 웃음이 씁쓸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노동세상 1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감정노동 #과로사회 #서비스노동자 #서비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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