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란 소리 할 때마다 벌금 500원, 오케이?

등록 2011.12.12 16:17수정 2011.12.1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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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친정에 갔다가 오늘 길이었다. 늘 그렇듯 차에서 라디오에 귀를 맡겼는데, 마침 라디오에서는 교육에세이를 쓰신 어느 분이 좌뇌형 우뇌형을 설명해가며 '우리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비법'을 말하고 있었다. 왜 모든 결론은 '공부 잘하는'으로 귀결되냐며 찡그렸으나 다른 채널 돌리기 귀찮아 그냥 들었다.


그런데 듣다 보니 공부를 떠나 흥미로웠다. 즉 평소, 나는 좌뇌형일까 우뇌형일까 무척 궁금했으나 굳이 찾아보고 분석해보기 싫어 '궁금만'하고 있었더랬다. 그랬는데 마침 그 방송이 그것을 아주 쉽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즉, 우뇌형은 숲을 보는 형이라 전체를 보는 눈은 있으나 넓게 보는 만큼 속속들이 알지 못하고 대충 알기 때문에 아는 것도 많지만 잊어버리기도 잘하고 덜렁댄다고 하였다.

반면, 좌뇌형은 숲이 아닌 나무(부분)를 보는 형이라 꼼꼼하다고. 처음에는 배움의 효과를 내는데 더디나, 더디게 알지만 확실히 알고서 하나하나 쌓아가는 형이기 때문에 갈수록 향상하는 형이라고 하였다.

즉, 비약이 심할 수 있겠으나 한 줄로 요약하자면 '우뇌는 숲을 볼 줄 아는 덜렁이, 좌뇌는 나무만 보는 꼼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좌뇌형은 계획한 바를 꼼꼼히 실천하나 우뇌형은 그러지 못한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가장 힘든 부모와 자녀의 조합은 좌뇌형의 꼼꼼한 엄마가 우뇌형 덜렁이 아이를 키울 때라고 하였다. 속에서 천불이 난다고.


좌뇌형 엄마는 우뇌형 아이에게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왜 늘 말만 앞세우고 실천을 끝까지 못하느냐고 윽박지르게 되는데 우뇌형은 태생이 그게 안 된다고 한다. 책상에 10분을 못 앉아있는 형이라고. 그러니 꼼꼼한 엄마는 속이 터지고 우뇌형 아이는 우리 엄마 속상한 이유를 모르겠어라. 그러나 결과는 엄마의 힘이 강하니 꼼꼼하게 강압적으로 시키게 되고 10분도 못 앉아있는 아이는 아이고, 엄마 나죽소….

방송을 들으면서, 나는 우뇌형이구나 싶었다. 남편은 자신은 좌뇌형 같다고 했다. 덧붙여 첫째는 우뇌형, 둘째는 좌뇌형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게 느껴졌다. 우리만이 아니라 뒷좌석의 아이들에게도 솔깃하게 들렸는지 그 방송이 끝나자 바로 항의 들어왔다.

"봐라, 우뇌형은 10분도 못 앉아 있고 덜렁댄다잖아. 그런데 엄마는 두 시간을 공부하라니 말이 되나? 10분도 못 한다는데, 10분도. 엉?"

"아, 예~ 알겠심더. 그러면 이참에 엄마가 약속을 하나 하겠다. 그동안 우뇌형인줄 모르고 한 시간 두 시간 공부(독서)하라고 한 것 미안하고 앞으로는 공부하라는 소리 하지 않겠다."

"진짜? 정말이제?"
"그래. 엄마는 다른 부모들에 비해서 공부하란 소리 별로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들렸단 말이지? 알았어.(끄덕끄덕)"

둘째도 뽀루퉁하게 거들었다.

"내 한테도 공부하라 하지마라."
"니는 왜? 니는 그런 말 좀 들어도 되는 것 아니가?"

둘째는 한글을 못 떼고 학교 가서 3년째 고행 중이다.

"그래도 하지마라."
"풉~. 알았다."

사실 그동안 밖에서도 실컷 놀고 집에 와서는 또 만화영화는 기본이고 <런닝맨> <1박2일> <남자의 자격> <위기탈출넘버원> <소비자고발> <개그콘서트> 등 하나 하나 맛을 들이더니 요새는 <해피투개더> <승승장구>까지 보는 것이 아닌가.

'보고 싶으면 봐야지 어쩌겠어.'
'자꾸 보게 되니까 습관이 되는 건 아닐까.'

두 생각 사이에서 늘 왔다갔다 하다가 보는 꼴이 유난히 거슬리면 '이제부터 오후 8시 이후로는 TV시청 금지' 선언을 하는데 약발 며칠 못 간다. 내가 (우뇌형이라) 지속적으로 그럴 수 없는 데다가 아이들이 "'위기탈출 넘버원'은 꼭 봐야지 조심할 거 아니냐"며 꼬시면 한 번은 안 돼 넘어가도 두 번 안 돼 할 수는 없다. 그냥 넘어간다. 시대가 이런데 막아서 될 일이냐 하면서…. 그러면 또 원칙이 와르르~~ 보는 김에 <소비자 고발>도 보고 <1박2일>도 보고… 도로아미타불.

벌금이라도 내야 공부 닦달 하지 않을 것 같아서

우좌간 이제 내년이면 큰애도 중학생이 되니 그럭저럭 관계정립을 한번 새롭게 할 때도 되었겠다.

"공부하라는 소리 못 들어서 공부 안 할 일은 없겠지?"
"그럼, 10분을 못 앉아 있는 다잖아."
"공부하란 소리가 그렇게 효과없나?"
"그럼."

"알았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정말 알아서 해라. 오로지 공부, 공부하라는 것도 아니고 TV 보는 것의 반의반의 반만큼 공부(독서) 좀 하라는 게 그렇게 들렸다면 할 말 없네. 반평균 까먹어서 반에 피해주는 일이 없도록 각자 알아서들…. 말로만 간섭 안 하겠다고 하면 작심삼일로 잊어버릴지도 모르니 이참에 맹세할 게. 앞으로 공부하라 소리 하게 되면 100원 벌금 낼께."

"100원은 너무 적다."
"그러면 200원."
"그것도 너무 적다."
"그래, 그럼 엄마 스스로 결심을 굳건하게 하는 의미에서 500원 건다. 공부해라 소리 엄마 입에서 나오면 무조건 500원 청구해라. 사과의 말과 함께 즉시 주마."
"앗싸~."

어쩌면 벌금을 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전부터 생각한 것이었는데 마침 그날이 그날이 된 것이었다. 그렇게 약속을 하고 나니 이내 속이 후련했다. 효과 없는 엄마의 잔소리로부터 아이들을 해방시키는게 목적이었는데 되려 내가 해방되는 느낌이었다. 이런줄도 모르고 혹시 덜렁 약속을 했다가 벌금만 잔뜩 무는 것은 아닌가 싶어 그동안 생각만 깨적깨적 했더랬다.

그러나 그렇게 '벌금'이라는 못을 박지 않고는 나도 모르게 '공부' 하란 소리를 습관적으로 할 것이기에 그러한 상징이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필요했다. 더불어 아이들의 입장에선 잔소리 안 들어 일단 좋고, 대신 엄마의 잔소리로부터 자유로워진 만큼 스스로 알아서? 기대는 금물. 그런 기대 안 하고 싶다. 공부가 좋고 책이 좋으면 내나 할 일.

하여간 일주일이 흐른 어제, 큰애는 한 건 올리려고 바람을 넣었다. 아, 오늘은 숙제가 많네 어쩌네 하면서 다가왔다.

"엄마, 공부할까, 할까? 응?"

나도 모르게 평소대로 '그래 해라'라고 하면 당장 말꼬리 잡고 벌금타령 할 꿍꿍이가 순간 보였다. 오호, 거기에 넘어 갈소냐.

"니 맘대로 하세요.^^"
"안 속네. 헤헤~"

아무튼 지금의 마음으론 앞으로도 쭉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좌뇌형이었다면 지키지 못할 약속이겠으나 우뇌형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극복가능한 공약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후후~. 
#효과없는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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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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