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 아내의 굴욕... 난 당신의 종이었다

[엄을순의 아줌마 이야기 ⑦] 여성에게만 쏠리는 명절 노동... 우리 함께 즐깁시다

등록 2012.01.23 10:20수정 2012.02.23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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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잔치나 명절이 되면 온 집안 식구들이 모이지만, 많은 경우 노동은 여자의 몫이다.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한 장면 ⓒ KBS


17년이란 세월동안 미국에서 떠돌다 영구 귀국한 해였으니 아마도 1994년 요맘때 쯤이었던 것 같다. 설을 일주일 앞둔 시어른 누군가의 제삿날이었다. 아침부터 신이 났다.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갔던 터라 명절을 너무나 외롭게 보낸 나였다. LA에는 친척끼리 모여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기네끼리만 전 부치고 떡국 끓여서 해먹는 걸 볼 때마다 너무도 부러웠던 나. 흥, 이제 부러워할 것 하나 없다. 서울에는 한 무더기의 내 친척들이 바글바글 있는 걸.

며느리 세 명 중 난 첫째 며느리 역할까지 해야 하는 둘째 며느리이다. 시아주버님이 오래전에 이혼을 하시고 혼자 사시는 바람에 졸지에 맏며느리가 되어버렸다. 막내 며느리와 이것저것 나누어서 대충은 미리 해 가지고 가고, 전이랑 녹두부침이랑 고기 산적은 가서 함께하기로 했다. 내가 맡은 생선이며 나물이며 죄다 챙겨 새벽부터 소란을 떤 덕에 오전 9시도 안 돼 시댁에 도착했다.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이니 옷도 긴 치마에 예쁜 블라우스까지 챙겨 입었다. 일단 입고 온 옷은 벗고 일하기 편한 어머님 옷으로 갈아입었다.

'일 다 끝나면 상쾌한 맘으로 샤워하고 갈아입으면 되지, 뭐.'

식사 후 다시 녹두지짐도 하고 산적도 해서 음식 마무리를 끝냈다. 한참 정리를 하는데 손님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외부 친척이라야 고작 세 명이다. 나머지는 남편을 포함한 오남매 부부들이다.

"밥 줘, 과일도 좀 더, 식혜도"... 밥 한 술 뜰 수 없었던 날

제사가 시작됐다. 깔끔하게 차려 입은 남자들은 촛불도 켜고 절도 한다. 하지만 기름 냄새 전 머리카락이며 김칫국물 묻은 앞치마에다 손이 퉁퉁 불어 터진 여자들은 연신 물그릇이며 탕국이며 대령시키기 바쁘다. 어제 저녁부터 음식 준비로 애를 썼지만 막상 절도 못해보고 멀찌감치 떨어져 다음 명령이 하달되기만을 기다렸다.

제사가 끝난 뒤엔 이것저것 음식을 옮기고 식사 상을 차렸다. 국 데우고 밥 푸고 굽고 지지고. 아수라장이다. 남자들이 밥을 먹고 물러난 상 위에 숟가락만 새 것으로 교체해서 자기 남편이 먹다 남긴 밥그릇에 한 주걱 더 얹은 밥을 몇 숟가락 먹지도 못했는데 남자들이 후식을 달란다(물론 새 그릇에 밥도 푸고 국도 퍼서 먹을 수도 있지만 그리해봤자 내 설거지거리만 늘리는 격이다). 과일을 잘라주고 식혜를 떠다주고 다시 앉아 숟가락을 입에 가져가려는 찰라 배가 너무 달다며 더 깎아 내란다. 배를 다시 깎고 나니 곶감이 너무 부드러워 곶감도 더 내오란다. 다시 먹다 남은 상에 앉았으나 밥맛이 싹 달아나 버렸다.


그냥 숟가락을 놓고 설거지를 하는데 남자들은 어릴 때 자기들이 뵈었던 오늘의 주인공인 증조할머니 얘기를 하며 깔깔대고 난리다. 매우 유쾌한 모양이다. 정작 뼈 빠지게 음식을 준비한 난 누군지 뵌 적도 없고 괜히 소외감만 들어 머쓱해진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이 아프다. 하지만 진짜 아픈 건 허리보다도 마음이었다. 남편은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 척 하는 건지, 도통 집에 갈 생각을 안 한다. 생전 후식 못 먹어본 사람 마냥 식혜며 과일이며 끝도 없이 대령하란다. 휴우… 간신히 제사를 끝나고 다들 일어서 나왔다. 집에 오는 내내 난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날만큼은 오랜 시간 봐온 남편이 참 많이 낯설었다. 미국에서도 주로 내가 음식하고 설거지 하고 챙겼지만 오늘 같은 기분은 처음이다. 그때는 내가 엄마같이 챙겨 먹이고 입히고 돌봐준 느낌이라면 오늘은 모든 행사에 소외된 채 소처럼 일만 한 내가 그를 받드는 종이 된 느낌이었다. 식구들을 만난다고 챙겨 입고 간 옷은 결국 다시 꺼내지 못하고 일하느라 기름에 전 어머님 옷을 그대로 입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느리 울리는 '불평등한 명절 노동'... 이제 우리 함께 즐기자

며칠 후, 설날. 이번엔 각종 전이랑 나물 산적을 동서랑 나눠 집에서 다 만들어 가져갔다. 제사를 지내고 세배도 하고. 아침상을 물린 뒤 친정 식구들이 생각났지만 어머님께 세배 오는 사람들이 연달아 있어 도저히 친정으로 이동할 수가 없었다. 오는 손님마다 떡국을 끓여대면서 상을 보다가 마치 갓 시집온 새댁마냥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이 났다.

'나도 엄마 있는데… 식탁에 앉아 혼자 신나게 웃고 떠들며 맛있게 먹는 남편같이, 나도 엄마 앞에 가면 그럴 수 있는 귀한자식인데….'

명절이란 것이 여자들에게는 파티가 아님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와 TV를 틀었더니 <전원일기>의 한 장면이 나온다. 제주도 출신인 똑똑한 맏며느리(고두심)가 명절날 손님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부엌에서 갑자기 눈물을 짓는 장면이다. 제주도에 혼자 계실 엄마 생각에 눈물짓는 그 모습을 본 시어머님(김혜자)이 며느리의 어깨를 토닥거리는 화면을 지켜보던 남편,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한마디 한다.

"야, 참 훈훈하고 따뜻한 드라마다. 그치?"
"말은 바로 하자. 좋은 대학까지 마치고 가르쳐 시집보낸 내 딸이 시집에서 저리 고생하며 명절날 친정에도 못 오는 게 자긴 그리 따뜻하고 훈훈해 보이냐?"

남편은 말을 해놓고 무안한지 대답이 없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세월이 그리 많이 흘렀어도 집집마다 설 풍경은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우리 집은 그동안 내가 '여성만 일하는 명절'에 대한 부당함에 대해 투쟁하고, 그 주장을 어머님이 이해해주신 덕분에, 명절 때도 간편하게 식구들 먹을 것만 해가지고 먹고 온다. 제사도 성묘할 때 음식 좀 준비해서 그곳에서 지내는 것으로 대신한다. 자연스럽게 동서와 나 사이에 '누가 더 많이 일을 하나' 하는 날카로운 신경전도 없다. 누군 앉아 편히 밥 먹고, 누군 서서 발을 동동 구르며 일하다가 밥도 못 먹은 채, 편히 앉아 밥 먹은 사람 후식까지 대령하는 일도 없다.

사람들은 말한다. 일 년에 몇 번만 고생하면 되는데 뭘 그리 까칠하게 구느냐고. 내 몸 조금 고생하고 온 식구가 화목하면 됐지 왜 그리 이기적이냐고. 사회에 나가면 온갖 자존심 다 버리고 돈을 벌어야 되는 남편을 위해 며칠 좀 그리 해주면 안 되냐고. 집에서 둘만 있을 때는 밥 해 바치고 후식 바치고 왕같이 해줄 수도 있겠지만 온 식구 앞에서 받는 그런 대우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 문제다.

우리나라의 명절문화. 이건 음식을 해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간단한 얘기가 아니다. 여자와 남자의 위치를 재확인시키는, '부부는 결코 동등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슴 사무치게 느끼게 해주는 날일 뿐이다. 원래 난, 사람들을 초대해 음식 대접하길 매우 좋아한다. 시집 식구들 몽땅 초대해서 그들이 손 하나 까닥하지 않게 하고, 밤을 새워 음식을 준비해 훌륭한 대접을 한 적도 많다. 하지만 명절이나 제삿날에 가서 종같이 굴욕스럽게 일하기는 죽어도 싫다. 설이 코앞이다. 여기저기 마음에 상처받을 며느리들… 또 많겠다.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즐기고 함께 웃을 수 있는 명절은 오기 어려운 걸까.
#설 #명절증후군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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