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값 300만원 질렀다가 망신살 뻗쳤다

[난 네게 빠졌어②] 중형차 한 대 값 쏟아부어도, 사진이 좋은 걸 어떡해

등록 2012.01.30 09:14수정 2012.01.3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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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을 일컬어 '취미'라 합니다. 그러나 가볍게 하는 취미생활을 넘어 시간과 돈, 정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으며 '심각한 취미생활'을 만끽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특별한 취미를 4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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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1월5일 덕유산 향적봉 정상에서 남편이 운해와 함께 찍어준 사진이다. ⓒ 조정숙


2005년 가을 앙증맞고 귀여운 디지털카메라(일명 '똑딱이'라 불리움)를 남편에게서 선물받았다. 추억을 꺼내볼 수 있는 수단으로 가장 친근한 게 카메라가 아닌가 싶다. 요즘엔 카메라 보급이 늘어 대부분 가정에 한두 개쯤은 있을 만큼 흔한 물건이 되었다. 더구나 카메라가 없다 해도, 카메라에 버금가는 화질을 자랑하는 핸드폰이 있기에 사진 찍는 것을 어려워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오래 전부터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오던 남편은 주말이면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진작가와 출사를 나가곤 했다. 그때는 어렸던 아이들을 돌보느라 남편과 함께할 수가 없었기에, 혼자만 취미생활을 즐기는 남편은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내 '불편한 시선'을 느낀 건지, 남편은 한 주가 마무리되는 금요일 저녁이면 내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물론 주말 출사를 위해서기도 하지만, 평소와 달리 일찍 귀가를 하는가 하면, 꽃다발을 사들고 오곤 했다. 하지만 남편의 그런 행동들은 연애시절에도 자주 있었던 일이기에, 나에게 큰 감동을 주진 못했다.

남편은 출사를 가는 주말이면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남편이 집에 있는 날보다 나가는 날이 더 많아지자 내 마음 속에도 슬슬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월차를 내서 1박 2일 장거리 출사까지 다녀왔다.

사실 남편과 함께 출사를 떠나는 동료들 가운데 남성보다 여성이 많아 더더욱 신경이 쓰였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친절한 남편, 출사를 가서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여 어느 날 따라나섰다. 다녀온 후 며칠간 묵언수행(?)이 이어지고 미묘한 신경전도 오갔다. 부부싸움도 자주 했다. 자존심 때문에 말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다가 '사진은 호사스런 취미생활이며 돈도 많이 드니 사진을 그만두라'는 말로 남편을 회유했다.

당시는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던 때라 필름 값이 많이 드는 것도 문제고, 그걸 또 현상해야 하기 때문에 금전적 부담이 컸다. 특히 슬라이드필름을 사용할 때는 더 심했다. 부부싸움이 잦아지자 남편은 모임에서 한두 번씩 빠지더니 결국 사진을 그만뒀다.

남편한테 사진 못 찍게 했는데... 이럴 줄은 몰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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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오메가, 수 년에 걸쳐 20여회를 넘게 찾아가 2011년 끝자락에 강화도 장화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 조정숙


그 당시 남편이라면, 사진에 미쳐가는 아내를 보게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난 남편에게 카메라를 선물 받은 것을 계기로 사진에 빠져들었다. 나는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가슴 깊숙한 곳에서 스멀스멀 솟구쳐 오르는 짜릿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진에 관해서는 칭찬에 인색했던, 평소 알고 지내던 사진작가로부터 "감각이 있을 뿐더러 사물을 보는 시선이 남다르다"는 칭찬과 함께 사진을 시작해보라는 권유까지 받게 되었다.

그들은 '작은 카메라로는 작품으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보급형 카메라를 사서 사진을 찍으라'는 조언도 해주었다. 그때 120만 원 정도 주고 N사에서 나온 D70S 모델에 번들렌즈가 끼어 있는 보급형 카메라를 샀다.  

그 말 때문에 그 사진작가는 나를 2년 동안 현장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방법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 등 사진가의 기본기를 무보수로(!) 가르쳐줘야 했다. 그렇게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때가 2006년이니, 벌써 7년째 돼간다.

사진을 찍으면서 나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 2007년 4월, 당시 <오마이뉴스> 열렬한 독자였던 남편이 <오마이뉴스>에 사진과 함께 기사를 올려보라는 권유했다. <오마이뉴스>를 전혀 몰랐던 나는 사진과 함께 간략하게 내용을 써서 보냈는데 <오마이뉴스> 편집부라며 전화가 왔다.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써서 보낼 수 없느냐는 거였다. 당시만 해도 나는 별 관심이 없어서 간단한 내용으로 보냈는데 '잉걸' 기사로 채택되었다.

사진에 대한 욕심도 있지만 이제는 본격적으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주말이면 여행을 좋아했던 남편과 사진을 찍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남편은 사진을 찍는 나를 위해 먼 길 운전도 자청했고, 원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오랜 시간 기다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남편은 장비가 들어 있는 무거운 가방과 촬영에 필요한 도구들을 들어주며 "내가 하는 취미생활을 도와주는 일이 행복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말이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일정을 잡고 언제나 현장에 함께 갔다.

머리에서 김 나게 뛰어준 남편 덕분에 눈시울이 '뜨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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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6월 남편이 올라왔던 길을 다시 뛰어 내려가 삼각대를 들고와 찍은 옥정호의 붕어섬이다. ⓒ 조정숙


그렇게 사진에 미쳐가던 어느 초여름, 전북 임실에 있는 옥정호에 간 적이 있다. 일출 때 운해(구름바다, 호수 위에 바다처럼 깔린 구름)와 그 안에 들어 있는 붕어섬의 모습을 찍기 위해서였다. 새벽 4시에 도착하여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인 국사봉 전망대까지는 30여 분을 올라가야 했는데, 워낙 가파르기 때문에 숨이 턱에 찰 정도로 힘겨웠다.

아뿔싸, 전망대에 도착하고 보니 삼각대를 차에 놓고 온 것 아닌가. 일출은 삼각대 없이는 제대로 담지 못한다. 결국 남편이 되돌아 뛰다시피 내려갔다. 왕복 40여 분 만에 삼각대를 가지고 다시 올라온 남편의 얼굴이 샛노랗게 변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런데 남편의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난다. 이때 하필이면 학교 다닐 때 남편 별명이 생각날 게 뭐람. 남편 별명은 찐빵이었다고 했다.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시합을 하고 난 뒤 교실에 들어가면 열기로 인해 겨울에도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붙여진 별명이라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남편을 보며 웃지도 못하고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돌리고 있는데, '옥정호 지킴이' 백구가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남편의 마음을 달래줬다. 백구는 사진가들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기 위해 전망대까지 매일 아침 올라오는 순둥이 강아지다. 어쨌든 '찐빵' 남편 덕분에 펄펄 끓어오르는 멋진 붕어섬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다.

그 일 이후로 '부부가 취미생활이 같다면 미안함도 덜하겠지'하는 생각에 남편에게 카메라를 하나 더 장만하여 같이 사진을 찍자는 제안을 했다. 사진을 시작하면 돈이 많이 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남편은 극구 사양했지만, '저지르면 하겠지'하는 마음으로 허리가 휘청하는 고가의 전문가용 카메라를 사줬다. 당시 사진가들의 로망이라는 N사의 D3다. 물론 <오마이뉴스>에서 받은 원고료도 일부 투자했다며 당당하게 남편에게 말했다.

부부가 같은 취미... 미안함은 줄었지만 비용은 두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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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렌즈와 바디, 흰색의 나의 첫 똑딱이 카메라. ⓒ 조정숙


함께 취미생활을 하다 보니 장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원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다양한 렌즈가 필요한데, 렌즈 값이 워낙 비싸다 보니 내키는 대로 살 수가 없다. 서로 공유하며 쓰긴 하지만 찰나의 순간을 담아야 하는, 양보할 수 없는 때가 있다. 그래서 하나 둘 사다보니 그동안 웬만한 중형차 한 대 값이 들어갔다.

사진을 하다보면 흔히들 '지름신이 강림하사 저지르고 말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원하던 사진을 담기 위해서는 다양한 렌즈가 필요하기 때문에 "딱 맞는 렌즈가 있었더라면 찰나의 순간을 좀 더 멋있게 담을 수 있었을 텐데. 장비 때문에 망쳤어~" 하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렇다고 고가의 장비들을 필요할 때마다 살 수는 없는 것.

보급형 카메라에서 전문가용 카메라로 바꿀 때는 넉넉지 않은 살림에 정말 부담이 되어서 아르바이트까지 했다. 동생이 부동산을 운영하는데, 새로 분양하는 빌라의 광고용 사진을 내가 찍어준 것이다.

한 번은 망원렌즈가 꼭 필요한데 돈은 없고 해서 몸살이 날 지경까지 이르렀다. 300만 원이 넘는 고가이다 보니 망설여질 수밖에. 하지만 큰맘 먹고 사고를 쳤다. 더 이상 남편에게 기댈 순 없고 취업 1년차인 아들에게 조금만 도와달라고 넌지시 말을 꺼냈다.

"엄마, 저는 빚쟁이에요. 학자금 대출한 것 갚아야 한다고요. 1주일에 겨우 한 번 쉬면서 힘들어도 참고 일하는데, 엄마는 그렇게 비싼 걸 질렀단 말이에요?"

아들에게 대출(?)을 요청했다가 철없는 엄마로 낙인 찍혀 망신살만 뻗쳤다. 원래 사진에는 돈이 많이 드는데, 우리 집은 남편과 내가 함께 취미생활을 하니 장비 구입에 돈이 두 배로 들어간다.

"너무하는 것 아녀? 사진이 밥 먹여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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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덕유산 향적봉 정상 체감온도 영하 40도에 가까운 혹한속에서 찍은 구름바다다. 이때는 철탑이 있었으나 이듬해에 미관상 보기 좋지 않다고 철거했다. ⓒ 조정숙


이렇게 비싸고 버거운 취미생활이지만 카메라를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가 다 있다. 전북 무주 덕유산 일출과 설경, 운해를 찍기 위해 향적봉대피소에서 하룻밤 묵었을 때다. 비좁은 장소에 여러 사람이 함께 숙박을 해야 하니 칼잠을 자야 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40명이 넘는 사람이 한 번씩만 들락거려도 차가운 바람이 온 방을 냉랭하게 만들어 추위와 싸우느라 밤을 꼬박 새웠야만 했다.

당시 향적봉대피소의 온도가 영하 28도였으니 산 정상의 실제 체감온도는 영하 40도는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진감래라 했던가, 밤을 꼬박 새운 후 향적봉에 올라 일출과 함께 구름바다를 만났을 때, 그 황홀함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바로 이런 순간 때문에 사진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장관을 잊지 못해 올해 1월 5일에도 덕유산을 올랐다(관련기사 : 세찬 바람 속, 기다린 보람 있네... 황홀한 순간!).

쉬는 날마다 카메라를 메고 강으로 산으로 다니다보니 취미생활이 다른 친구들과는 왕래를 할 수도 없고, 그러다보니 당연히 친구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너무하는 것 아녀? 얼굴 좀 보자. 사진이 밥 먹여주냐?"

친구들은 그렇게 핀잔을 주면서도 "작품전시회는 언제 할 거야? 전시회 때 꼭 불러줘"라고 기대하기도 한다. 10년쯤 지난 후에 전시회를 하기 위해 지금은 부지런히 발품 팔며 준비 중이다. 이제는 출사를 나가지 않으면 일이 손에 안 잡힐 정도가 되었다. 휴일이나 주말이면 아침마다 잠을 깨우는 남편이 있으니 날씨와 자연환경이 함께한다면 좋은 작품을 얻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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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1월 체감온도 영하 40도에 가까운 날씨에 덕유산을 찾은 눈꽃속의 사진가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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