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동안 봐온 다비 중 '가장 빠른 다비'

[현장] 속리산 법주사에처 치러진 범행 스님 다비식

등록 2012.01.20 18:07수정 2012.01.2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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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봐왔던 다비식 중 가장 빠르게 치러진 범행 스님 다비식 ⓒ 임윤수


실체를 본 적이 없으니 보여줄 수도, 들려줄 수도 없지만 '마음'이란 건 줏대 없이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것인가 봅니다. 아직은 어두운 새벽 5시, 소나기도 아니고 가랑비도 아닌 겨울비가 흐느낌처럼 흘러 내립니다. 입술 비질거리며 우는 흐느낌처럼 흘러내리는 겨울비에 마음조차 젖어듭니다.

자동차 불빛이 겨울 새벽의 허공, 비 내리는 겨울 아침의 어둠을 거칠 것 없이 가릅니다. 차창에 뿌옇게 서리는 김을 없애려 창문을 조금 내립니다. 거칠 것 없이 차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겨울 새벽의 스산함이 실렸습니다. 얼굴을 핥고 지나가는 바람에 마음조차 스산해집니다.   

법주사로 향하는 마음은 '겨울비에 젖은 스산한 바람'

마음이 뭔지를 모르겠습니다. 뭔지도 모르는 마음이지만 지난 15일 원적에 드신 범행 스님의 영결식이 봉행되는 속리산 법주사를 향하는 마음은 겨울비에 젖은 스산한 바람입니다.  

비 내리는 겨울 새벽 분위기도 즐길 겸 국도를 따라 속리산으로 향합니다. 옥천과 보은을 지나 구부러지고 뒤틀린 길로 기억되는 말티재로 접어듭니다. 수십 번을 넘어 다녔어도 말티재는 말티재입니다. 뒤로 미끄러질 만큼 심한 경사, 휘어지고 구부러지기를 반복하는 꼬부랑길, 내비게이션에 나타난 길은 마치 사람의 내장이라도 그려 놓은 듯 구불구불 합니다. 

말티재를 거반 올라서 마지막 구비를 돌아서는 순간 자동차가 뒤뚱합니다. 뒷바퀴가 미끄러지는가 싶더니 휙 뒤틀어지며 뒤뚱합니다. 아차, 빙판이구나 싶습니다. 빗물에 촉촉하게 젖어 있는 줄로만 알았던 길이 얼어 있었습니다. 오르막길이기에 조금 미끄러지고 잠시 뒤뚱거리는 것으로 멈출 수 있었습니다. 내리막길에서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관성 때문에라도 어떤 불상사가 뒤따랐을 겁니다.

여명을 기다리듯 허허롭게 두리번거리던 시선을 조명이 가리키고 있는 곳으로 조붓하게 고정시키고 말티재를 넘고 정이품송을 지나 법주사 입구로 들어섭니다. 달천을 건너 취사장에서 매표소 쪽 직각회전을 하는 순간 차가 뱅그르르하고 한 바퀴 돕니다. 순간 입에서는 '어~어~' 거리는 소리만 나고 등줄기가 찌릿해집니다. 완전 빙판입니다. 삼거리 형태의 장소라 여유 공간이 있고,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차량도 인적도 없기에 어어 거리다 멈춰 섭니다.

두 번씩이나 미끄럼을 타고 나니 겨울비에 젖은 스산한 바람 같던 마음에 땅바닥을 경계하는 의심의 고드름이 열립니다. 오리숲을 지나 나뭇가지 무성한 나목 아래 주차를 하고나니 7시가 되지만 주변은 아직도 밤 그림자를 떨치지 못해 어둑어둑합니다.   

영결식장이 준비되고 있는 범종루 앞은 조용합니다. 뽀얗게 차려진 영결식단, 지긋하게 관조하고 있는 미륵대불의 시선, 영결식장을 준비하고 있는 작업자의 발자국 소리만 흐르는 빗줄기를 흔들 뿐 조용하기만 합니다. 

법주사에 차려진 수덕사 연화대

영결식장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고, 등줄기가 찌릿할 만큼 긴장했던 몸도 달랠 겸 자동차로 돌아와 의자를 젖히고 누웠습니다. 나뭇가지에서 뭉친 빗방울들이 자동차 지붕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경쾌합니다.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고드름처럼 얼었던 마음이 햇살에 녹아 흐르는 낙수처럼 녹아내립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법주사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목하를 조망하는 호기를 즐기고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하지만 빗소리를 들으며 벌렁 드러누워 쉬는 시간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9시, 이 정도면 충분히 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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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단에는 어느덧 제물까지 진설되었습니다. ⓒ 임윤수



수정교를 건너 다비장으로 갔습니다. 어, 이상합니다. 다비장에 마련되어 있는 연화대가 시멘트블록으로 조성되어 있는 연화대를 벗어나 흙 위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다비장을 정리하고 있는 분에게 연화대가 왜 저 곳(시멘트 블록)이 아니고 이 곳에 설치되었느냐고 여쭈니 '수덕사 방식'으로 하느라 그랬다고 합니다.

수덕사 방식? 몇 번이나 수덕사 방식을 되뇌며 영결식장으로 돌아왔습니다. 기초화장을 마친 정도로 연꽃 조화와 위패만 모셔져 있던 백색의 영결식단이 색조화장까지 마친 것처럼 이런저런 제물들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비를 가리기 위한 천막이 영결식장에 가득히 펼쳐지고, 오가는 사람들 마다 우산을 들고 있거나 우의를 입고 있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조금은 어수선합니다. 

설 나흘 전이라 한적한 영결식장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금기, 전통 아닌 전통으로 전해지는 주술 같은 금기, 제사를 앞두고는 상가(喪家)엘 가지 않는다는 금기 아닌 금기를 현실로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설을 나흘 앞두고 치러지는 영결식에 비까지 내리니 조문객들이 적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랬습니다. 스님이 주석해 계시던 팔달사에서도 이런 저런 사정으로 버스 2대만이 왔다고 하였습니다.   

영결식장에 펼쳐진 300개의 의자에 앉은 사람들과 주변의 전각들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200여 명을 합친 500여 명이 범행 스님이 가시는 마지막 길을 배웅합니다.  

11시가 조금 넘어 범종을 5번 울리는 명종으로 영결식이 시작됩니다. 세민 스님과 동성 스님의 영결법요에 이어 범행 스님의 일생인 행장을 원로의원인 월탄 스님이 소개합니다. 범행대종사의 육성법문이 이어지고, 영결사와 법어, 추도사와 조사, 헌화, 문도대표 인사, 사홍서원에 이어 발인의 순서로 진행됐습니다.

얼마 전 해인사에서 종단장으로 봉행된 지관 스님 영결식에서는 식순에서 제일 앞서는 영결사를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이 하더니 원로회의장으로 봉행되는 범행 스님의 영결식에서는 원로의장 종산 스님의 영결사를 원로의원인 현해 스님이 대독합니다. 

명절 밑이기에 여느 스님의 영결식 때처럼 엄청난 인파는 아니었지만 추도의 물결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상가에서 갖출 수 있는 최고의 예는 슬퍼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범행 스님의 영결식장에 참석한 사람들의 표정은 슬펐습니다. 흐느낌처럼 내리는 빗물 사이로 비추는 추모객들의 마음은 더 할 나위 없는 슬픔이며 더 이상을 말할 수 없는 심상(心喪)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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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장을 하고 있는 스님들 ⓒ 임윤수


미물인 까치조차도 흐르는 비 흠뻑 맞으며 영결식단 뒤 담장에 앉아 조곡이라도 하듯 깍깍 거리며 웁니다. 영결식을 마치니 이운행렬이 이어집니다. 12명이 멜 수 있는 상여 틀에 범행 스님의 법구를 모시고 아래쪽 면이 트인 직육면체 상자를 생화로 단장해 씌운 상여입니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드러났을 생화의 싱그러움이 덮어씌운 비닐에 가렸습니다. 

우왕좌왕하는 운구행렬

영결식단 뒤에 모셔져 있던 상여가 흰색 우의를 입은 12분 스님의 어깨에 메어져 이운행렬을 시작합니다. 미륵대불을 향하다 대웅전이 마주 보이는 곳에 멈춰 서서  하직 인사를 합니다.

미륵대불을 지나 상여에 앞서가던 행렬이 우왕좌왕합니다. 행렬을 안내하고 있던 사람들은 사천왕문과 금강문을 통하고 수정교를 건너서 행렬하는 것으로 진행하고 있었지만 법구가 사천왕문을 통과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행렬이 우회하는 것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법주사에서 봉행된 3번의 영결식에서는 상여가 사천왕문을 통과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라서 문제가 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범행 스님의 법구를 모신 상여는 사천왕문을 통과해도 될 만큼 단출하게 꾸려졌기에 사천왕문을 통과하려는 시도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담벼락을 끼고 우회해 수정교를 건너 삼거리에서 다비장으로 가는 문장대 쪽으로 접어든 행렬이 이미 마련되어 있는 노제상 앞에서 다시 한 번 우왕좌왕합니다. 손발이 맞지 않는 건지, 주먹구구식 준비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는 노제를 지내겠다며 제물을 차려 노제상까지 마련해 놓았지만 막상 행렬에서는 노제를 지내지 않는다고 하니 우왕좌왕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예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질서라면 의식절차는 행사를 아우르는 질서이며 범례입니다. 이럴 때 종단이나 문중 차원에서 행사 전체를 아우르는 규범(매뉴얼)이 마련되어 있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을 규범, 시나리오, 콘티 뭐라고 부르던 간에 차제에 행사를 원만하게 치를 수 있는 뭔가가 준비되고 마련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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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행렬 ⓒ 임윤수


다비식장으로 들어선 상여가 연화대 앞으로 모셔집니다. 연화대를 장식하고 있던 연꽃 문양과 비닐을 걷어내고 상여에 실려 온 관, 스님이 누워 계시는 관의 뚜껑을 뜯어내고 연화대 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빈 공간에 장작을 채우고 미리 준비되어 있던 20개의 거화봉으로 거화를 합니다. 

수덕사와 법주사 방식이 혼합된 '절충형 연화대'

쭉 그래왔던 것처럼 거화와 동시에 '스님 불 들어갑니다' 하는 이구동성이 속리산 자락에 울려 퍼집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하는 소리는 다비장을 울리고, 수정봉에서 메아리쳐 문장대 너머로 올라섭니다.

법주사 다비장에 마련된 연화대는 수덕사에서 하는 다비 방식과 그동안 법주사에서 치러지던 다비 방식과 절충(혼합)형이었습니다. 법주사에서는 해인사와 마찬가지로 철상을 만들고 그 위에 법구를 모시고 숯과 나무를 쌓고 연꽃 모양으로 장식을 한 형태로 다비를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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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교를 건너고 있는 상여행렬 ⓒ 임윤수


반면에 수덕사 방식은 땅바닥으로 고랑을 만들고, 아름드리 통나무를 가로로 놓고 그 위에 법구를 모시고 법구 위로 장작과 통나무나무를 쌓고 송가지로 마무리를 한  후 거화를 해 다비를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법주사와 수덕사 방식에서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연화대를 미리 만들어 놓느냐 마느냐 여부, 관을 밀어 넣을 공간을 미리 만들어 놓느냐 마느냐 여부, 관을 철상(鐵床)에 올려놓느냐 아니면 땅바닥을 파고 가로로 올려놓은 통나무위에 올리느냐, 연화대의 외형을 연꽃 모양으로 장식여부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범행 스님을 다비한 연화대는 수덕사에서 있는 연화대처럼 땅바닥에 너비 50cm, 깊이 70cm의 고랑을 5m쯤 파고 고랑 위 땅바닥에 아름드리 통나무 11개를 가로로 걸쳐 놓았습니다. 그 위에 서랍처럼 관을 밀어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장작을 쌓아 통나무를 두르고 솔가지를 덮은 위로 분홍빛이 나는 천 등을 이용해 연꽃모양이 되도록 장식되어 있었느니 방식과 모양에서 수덕사 연화대와 법주사 연화대가 혼합된 그런 형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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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대 앞에 도착한 상여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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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고 있는 연화대 ⓒ 임윤수


그동안 법주사에서 치러지던 방식이 있는데 왜 수덕사 방식으로 다비를 하는지가 궁금해 맏상좌인 팔달사 주지 혜광 스님께 그 연유를 여쭸습니다. 법주사 방식으로 하면 이 불순한 날씨에 밤을 지새워야 하지만 수덕사 방식으로 하면 너덧 시면 다 끝난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설명해 주십니다.   

승가에서도 산 자들이 우선하는 영결식 되나

속세의 상장례가 시나브로 산 자들의 체면과 편리대로 변모해 가듯이 산중에서 치러지는 스님들의 영결식과 다비 역시 생존해 있는 사람들의 편리를 쫒아 변모해 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예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질서라면 의식절차는 행사를 아우르는 질서이며 범례입니다.

절을 장엄하거나 장식하고 있는 모든 문양, 절에서 치러지는 사소한 행위조차도 의미가 있고 상징이 있습니다. 같은 손이라도 수인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고, 꼭 같이 생긴 불상이라도 좌우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불명이 달라지듯 말입니다. 출가수행자 집단이라고 해서 무조건 옛것을 고집하고, 전통에 억매이며 불편하게 살아갈 이유는 없지만 너무 명분 미약한 시속에 물들어 가는 것은 아닌 가하는 안타까움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수덕사에서 치러진 두 번의 다비, 숭산 스님과 원담 스님을 다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기록한 입장에서 범행 스님을 다비한 연화대가 수덕사 방식과 가장 다른 것은 그 형식이나 방법에 있는 게 아니라 운용과정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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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과 연화대 ⓒ 임윤수


숭산 스님이나 원담 스님을 다비하는 방식은 거화 후 연화대에 거의 손을 대지 않는 기다림이었습니다. 숭산 스님 때는 비가 더 많이 와 비를 가리기 위해 철제로 된 가림막을 옮겨 가렸을 뿐 연화대를 쑤시는 등의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범행 스님을 다비하는 과정에서는 미리 준비한 4~5m 쯤의 생나무 장대로 계속 쑤시고 있었습니다.

불길을 트기 위해서이거나 공기 유입로를 확보해 줌으로 화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쑤시는 것이겠지만 너무 서두르는 것처럼 보이고 조금은 불손해 보이기조차 했습니다. 그렇게 쑤시지 않았다면 마지막에 눈가림을 하듯 넣어야 했던 몇 조각의 장작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법구를 다비하던 철상에 차려진 제상

다비장 연화대 앞에 차려진 영단을 보고 법주사 다비식장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이 뜨악해 했을 겁니다. 법구를 올려놓던 철상에 위패를 모시고 제물을 차렸습니다. 부처님께 올리는 청수 한 그릇조차 정성을 요구하는 절에서 스님께 올리는 제물을 다비를 할 때 사용하는 철상, 언제 다시 법구를 올려놓고 다비를 할지도 모르는 철상에 차린다는 건 범부의 기분, 미혹한 중생의 마음으로는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다비가 다 끝나기도 전, 스님의 법구가 아직도 지수화풍으로 환원되고 있는데 위패와 영정은 물론 차려 올렸던 제물들까지 깡그리 철수해 버리니 가는 발걸음을 서두르는 것인지 보내는 마음을 채근하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에 무애한 도인의 경지라면 몰라도, 예와 질서, 의식과 절차, 의미와 상징을 숭상하는 곳이 승가라고 생각하는 중생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10여 년 동안 봐온 다비 중 '가장 빠른 다비'

빠르긴 빨랐습니다. 10여 년 동안 봐온 다비 중 가장 빠른 다비였음에는 틀림없습니다. 끊이지 않고 쑤셔 대서 그런지 활활 뿜어대는 불꽃 또한 그치지 않더니 거화를 하고 1시간 30여 분이 지나니 연화대 아래로 파진 고랑으로 하얀 유골이 떨어집니다.

연화대를 주관하던 스님의 이마가 화상이라도 입을 듯 벌겋게 달아오르는가 했더니 산더미처럼 수북했던 연화대도 어느덧 모닥불만큼이나 야트막해졌습니다. 고랑을 가로질러 놓았던 아름드리 통나무가 타들어가며 틈이 생기더니 그 사이로 벌건 숯덩이들이 밤하늘에 쏟아지던 별똥별처럼 쏟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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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랑에 담겨진 유골 ⓒ 임윤수


고랑을 가로지르고 있던 아름드리 통나무가 하나 둘 치워지고, 텅 비어있던 공간이 쏟아진 숯덩이로 채워졌습니다. 근접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기만 하던 연화대, 불꽃을 뿜어대는 화룡처럼 활활 불기를 내뿜던 연화대가 야트막하게 파진 고랑에 다 담겼습니다. 고랑에는 연화대가 화한 숯덩이만 담겨있는 게 아니라 세수 91세, 법랍 64세의 범행 스님께서 화한 모든 것도 담겼습니다.

오후 4시 30분 경, 거화를 하고 채 4시간이 지나지 않는 시간에 환원과정의 다비는 끝났습니다. 적지 않은 스님들이 무척이나 빠른 다비에 놀랍니다. 법주사 다비방식을 수덕사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소리도 예서저서 들려옵니다. 법주사 주지인 노현 스님께 법주사 다비 방식을 수덕사 방식으로 바꿀 것이냐고 여쭈니 '문중의 어른들이 계시니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고 답하십니다.   

연화대는 물론 연화대에 모셨던 범행 스님이 화한 흔적까지 모두 고랑에 담기니 다비를 하던 두 분 스님은 떠나갑니다. 적지 않은 스님들께서 화상이라도 입은 게 아니냐를 걱정할 정도로 붉어진 이마를 가리며 산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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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레 유골을 주워 담는 스님들 ⓒ 임윤수



연화대 주변을 대나무 비질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고랑에 쌓여있는 숯과 유골을 삽으로 조심스레 퍼 올립니다. 한 삽, 두 삽, 세 삽…, 그렇게 퍼 올려 펼치더니 유골만을 주워 담는 습골(拾骨)이 시작됩니다. 나무젓가락으로 숨겨진 보물을 찾고, 감춰진 밑그림을 따라가듯 조심스럽고 정성스레 한지로 접은 고깔에 유골을 주워 담는 습골입니다. 

세속을 향하는 마음 역시 겨울비에 젖은 스산한 바람

고깔에 담긴 유골이 수북합니다. 엉성하게 쌓인 유골을 돌절구에 넣고 살짝살짝 눌러줍니다. 거칠거칠했던 유골이 차분하게 가라앉습니다. 그렇게 습골된 유골들이 항아리처럼 생긴 유골함에 모아집니다. 거화를 하고 4시간 30분 정도가 지난 5시 30 분경에는 유골을 모으는 습골까지도 끝났으니 일련의 다비가 끝났습니다. 

세수 91세, 법랍 64세의 범행 스님의 흔적이 된 유골은 물론 마지막으로 남긴 임종게 까지 한 줌의 가르침으로 오롯하게 담겼습니다. 속리산 자락이 다시금 어스름에 젖어듭니다.

말티재를 넘어서며 꼬부랑길로 접어드니 몸뚱이가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립니다.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는 몸뚱이에 스님이 남기신 임종게를 실어보지만 세속을 향하는 마음 역시 겨울비에 젖은 스산한 바람입니다.   

 一生多事  한 생의 많은 일들
夢中如幻 꿈 속의 허깨비였네
一念放下 한 생각 놓고 보니
無碍歡喜 걸림없는 환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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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덧붙이는 글 | 범행 스님 영결(다비)식은 19일 속리산 법주사에서 있었습니다. 한국 산사에서 치러지는 다비현장을 기록한다는 사명감(?)으로 관계있는 분들에게는 조금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는 내용까지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범행 스님 영결(다비)식은 19일 속리산 법주사에서 있었습니다. 한국 산사에서 치러지는 다비현장을 기록한다는 사명감(?)으로 관계있는 분들에게는 조금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는 내용까지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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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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