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기러기 아빠들... 사무치게 우울하다

기러기아빠, 펭귄아빠, 독수리아빠...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등록 2012.02.06 12:35수정 2012.02.06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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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마침내 기러기들의 유희가 시작되고 있다. 하얀 눈이 쌓인 연천평야를 기러기들은 V편대를 이루며 낮게 날아간다. 눈이 없을 때는 볼 수가 없었던 또 다른 풍경이다. 이렇게 추운 날, 저 기러기들은 어디서 밤을 새우고 날아올까? 이날따라 기러기들은 평소보다 낮게 비행한다. 흰 눈이 쌓인 평야를 저공 비행하는 기러기들이 선명하게 잡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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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노을을 저공비행하는 기러기 편대 ⓒ 최오균


붉은 아침노을 위를 나는 기러기들의 군무가 때로는 삼각형으로, 때로는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을 수놓고 있다. 기러기들이 높은 곳, 중간, 낮은 곳으로 세 개의 선을 그으며 날아가는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녀석들은 이 추운 날씨에 어디에서 먹이를 구할까? 괜히 걱정이 된다. 그런데 기러기 편대와 떨어져 홀로 외롭게 날아가는 기러기 한 마리가 눈에 띤다. 녀석은 왜 홀로 날아갈까? 그 그러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기러기 아빠'란 말이 떠오른다.

보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아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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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 아빠는 고독하다 ⓒ 최오균


'기러기 아빠'라는 말은 실제로 미국 <뉴욕타임스>가 아내와 아이들을 유학을 보내고 한국에 홀로 남아 뒷바라지를 하는 한국의 아빠들을 꼬집어 만들어낸 신조어다. <워싱톤 포스트>는 'Gireugi'라는 용어를 쓰며, 아빠들의 재력과 형편에 따라 세 부류로 분류해서 보도했다.

기러기아빠(Wild geese fathers)는 1년에 한두 차례 아내와 자녀를 보기 위해 외국에 나가는 아빠. 독수리 아빠(Eagle fathers)는 경제적 여유가 많아 마음만 내키면 수시로 외국에 나가는 아빠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펭귄아빠(penguin fathers)는 돈이 없어 아예 외국방문을 포기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아빠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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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아빠는 우울하다 ⓒ 최오균


참으로 아이러니한 풍자다. 오죽했으면 이런 풍자를 했을까? 그러나 기러기들의 자식 사랑은 각별하다. 기러기들은 야산에 불이 났을 때에도 품에 안은 새끼와 함께 타 죽을 지언정 새끼를 홀로 버려두고 도망치지 않는다. 과연 한국의 아빠들은 기러기처럼 자식을 사랑하는 아빠들일까? 최근에는 직장일 때문에 아내와 자녀를 서울에 남겨놓고 홀로 부산이나 다른 도시에서 생활을 하는 '갈매기 아빠'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 용어들은 위키백과에도 올라와 있다. 기러기는 한국의 전통 결혼식에서 평생 반려의 상징이며 먼 거리를 여행하며 새끼들의 먹이를 구해 오는데, 한국에서 자녀의 교육을 위해 부인과 아이들을 외국으로 떠나 보내고 한국에 홀로 남아 뒷바라지를 하는 아버지들을 말하는 신조어라고 소개하고 있다.

나 역시 20여 년 전에 직장에서 광주로 발령나는 바람에 서울에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홀로 1년 동안 갖고과 떨어져 생활한 적이 있다. 일주일 동안 근무하다가 토요일이면 서울로 와 가족과 함께 지냈다. 그러다가 일요일이면 다시 광주로 내려가는 주말부부 신세를 1년 동안 하게 됐다.

1년 더 기러기 아빠 생활 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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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을 저공비행하는 기러기편대(경기도 연천군) ⓒ 최오균


문제는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살아가는 기러기 아빠들의 후유증이 심각하다는 것. 퇴근시간이 돌아오면 괜히 우울해진다. 함께 있으면 '에이, 아내와 좀 떨어져 지냈으면…'하는 생각도 이따금 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가족과 떨어져 있어보면 사뭇 달라진다.

남자는 회귀본능이 강하다. 하루 종일 일을 하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가족의 품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누군가 기다려 주는 사란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한 일이다.

집에 들어가 홀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정말 죽기보다 싫고 고독한 일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발길이 술집으로 향한다. 가족의 빈자리를 술로 채우는 것도 한계가 있다. 건강 나빠지고, 고독하고. 사람은 외로움에는 무기력해 지는 것이다. 의욕이 없어지고 생기도 없다. 자기도 모르게 우울증이 생기는 것이 기러기 아빠들이의 실태다. 만약에 나도 1년 더 기러기 아빠 생활을 더 했더라면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을 것이다.

아들이 그리워 울부짖다 세상 떠난 직장 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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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아빠는 고독하다 ⓒ 최오균


전에 직장의 상사 한분이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서 아예 눌러 앉아 버렸다. 외동아들을 미국으로 보낸 것도 마음이 아픈데, 이제 영영 따로 떨어져 살아야 하니 그는 아들만 보고 싶으면 술을 마셨다. 그리고 술이 취하면 "○○야" 하면서 울었다. 아들이 보고 싶어 술 취한 그 상사를 나는 택시에 태워 집에 데려다 줘야 했다. 결국 그는 알코올 중독으로 어느 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땅에 아내와 자식들을 외국으로 떠나보내고 홀로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기러기 아빠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식들의 교육이 무엇인지, 영어 조기교육이란 것을 꼭 해야 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을 해봐야 한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경쟁과 성공, 가정의 행복, 부부의 행복, 그리고 우리네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생각을 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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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노을을 날아가는 기러기편대(연천평야) ⓒ 최오균


명절이 돼도 경제적 부담 때문에 오가지도 못하는 기러기 아빠들의 신세는 처량하다. 다른 집에는 온가족이 모여 떡국을 먹으며 오손 도손 설날을 맞이하는데, 홀로 삭막한 방에서 떡국을 끓여 먹으며 눈물 삼키는 기러기아빠, 펭귄아빠의 고독한 마음을 그 누가 다독여 줄 것인가?
#기러기아빠 #펭귄아빠 #독수리아빠 #기러기 편대 #연천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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