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남녘엔 나의 어머니 형제들이 있다"

북녘 오영재 계관시인을 추모하며

등록 2012.02.08 17:04수정 2012.02.0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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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제49호 ⓒ 종소리시인회

옛 속담에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 "입춘 추위에 김칫독 얼어터진다"라고 했다. 입춘을 지난 이즈음에도 그 이름값을 하는지 날씨가 몹시 맵다. 이 한파에도 재일교포 시인회 회원들이 시지(詩誌) <종소리>제49호를 정성스럽게 만들어 대한해협을 건너 강원도 내 집까지 보내주셨다. 벌써 7년째 매 계절마다 염치없이 받아 보고 있다.

이 시집에 담긴 시들은 대부분 고향을 그리는 망향(望鄕)의 정과 통일을 애타게 기원하는 시들로 그 질박함에 감동을 준다.

이번호 권두시 오영재 시인의 '분렬의 장벽은 무너지리'를 느꺼운 마음으로 읽다가 깜짝 놀랐다. 시의 끝에 '2011년 10월 사망'이라는 부음에서 잠시 심장이 멎었고, 곧 묵념을 드렸다.

인터넷으로 시인 오영재를 검색했다.

북한 계관시인 오영재 사망. 북한 계관시인 오영재(75)가 갑상선암으로 지난 10월 23일에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5일 보도했다. -한국일보 2011. 10. 25.

오영재 시인은 남녘 태생으로 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전남 강진과 함평 등지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16세의 나이로 인민군 의용군으로 입대했다. 입대 후 낙동강전투에 참전했다가 인천상륙작전 이후 인민군 후퇴 때 북한으로 갔다. 1953년 시〈갱도는 깊어간다〉발표를 시작으로 활발한 시작활동을 전개했으며, 1960년에는 평양 작가학원을 졸업했다.

대표작으로 1960년대 천리마 기수를 형상화한〈조국이 사랑하는 처녀〉(1961)·〈여기에 광부들의 일터가 있다〉(1965) 등과 분단문제를 다룬〈복수자의 선언〉·〈영원히 하나인 조선의 길이여〉(1973) 등이 있다. 이밖에도〈주체의 태양〉(1972) ·〈주체를 지켜 우리는 승리하리라〉(1995) 등, 주체사상과 김일성을 찬양하는 시를 지었다. 시집으로 <행복한 땅에서〉(1973) ·〈철의 서사시〉(1981) ·〈대동강〉(1985) ·〈인민의 아들〉(1992) 등이 있다.


1989년 3월에는 남북작가회담 예비회담 대표를 맡기도 했으며, 그해 5월 김일성 상을 수상해 계관시인이 되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 중앙위원을 거쳐, 1995년 12월에는 노력영웅 칭호를 받음으로써, 현재 북한에서 '최고 시인' 대우를 받고 있다. [이상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참조 요약]

오영재 시인이 남녘에 널리 알려진 계기는 1990년 재미교포 한 문인(김영희씨)이 북한 방문 중 문인들과 만나 나눈 이야기를 <한겨레>에 기고했다. 이 기고문에 오영재 시인의 아픈 망향 사연이 실렸다. 남녘의 오영재 시인 동생이 그 사연을 읽고는 김영희씨를 통해 북녘 형에게 편지와 가족사진을 전달했다.

오영재 시인은 동생의 편지로 어머니가 살아있음을 알고는 이듬해 '아, 나의 어머니'라는 시를 미주 지역 문예지 <통일예술>에 발표했다.
 
아, 나의 어머니
- 40년 만에 남녘에 계시는 어머니의 소식을 듣고

늙지 마시라
늙지 마시라, 어머니여
세월아, 가지 말라 
통일되어
우리 만나는 그 날까지도
이날까지 늙으신 것만도
이 가슴이 아픈데
세월아, 섰거라 
통일되어
우리 만나는 그 날까지라도

너 기어이 가야만 한다면
어머니 앞으로 흐르는 세월을
나에게 다오 
내 어머니 몫까지
한 해에 두 살씩 먹으리

검은머리 한 오리 없이
내 백발이 된다 해도 
어린 날의 그 때처럼
어머니 품에 얼굴을 묻을 수 있다면

그 다음엔
그 다음엔 내 죽어도 유한이 없어
통일 향해 가는 길에
가시밭에 피 흘려도
내 걸음 멈추지 않으리니

어머니여 
더 늙지 마시라
세월아 가지 말라 
통일되어
내 어머니를 만나는 그 날까지라도
오마니! 늙지 마시라, 어머니여….

그렇게 애타게 기다렸던 어머니였건만 오영재 시인이 2000년 남북 이산 가족상봉단으로 서울에 왔을 때는 그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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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재(왼쪽) 시인과 백두산 밀영에서 ⓒ 박도

하늘로 보내는 사진 석 장

나는 오영재 시인을 2005년 7월 남북작가회의 때 만났다. 7월 22일은 백두산으로 가는 날이었다. 그날 평양공항에서 삼지연 공항까지 비행기를 타고 간 뒤 다시 버스로 백두산 밀영에 갔다.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하는 수 없이 그곳 사무실 처마에서 비를 피하는 동안 오영재 시인과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이튿날 새벽 백두산 장군봉에서 해돋이를 본 뒤 하산하여 배개봉 호텔 현관에서 북녘의 오영재 시인, 박경심 시인과 셋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같이 사진을 찍었다. 박경심 시인과는 그날 새벽 해맞이 행사 뒤, 서로 사인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눈 바 있었다. 그때 오영재 시인이 굳이 내 카메라를 뺏더니 나와 박경심 시인에게 포즈를 취하게 한 뒤 셔터를 눌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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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심(오른쪽) 시인과 함께(이 사진은 오영재 시인이 셔터를 눌렀다) ⓒ 박도

"이제 사진을 박았으니끼니 서로 연애하라우."
"우리는 같은 박 씨라서 그럴 수는 없습니다."
"뭐이야. 일없어요. 긴데 사진은 박지만 내래 언제 받아볼 수 있갓네?"
"다음 회의 때 선생이 서울에 오시면 꼭 전하겠습니다."

하지만 남북작가회의는 그 이후 열리지 않았고, 나는 그때의 사진 석 장을 여태 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오영재 시인은 저승에 가셨기에 나는 뒤늦게나마 이 사진을 하늘로 띄운다. 그리고 당신의 유작도.

분렬의 장벽은 무너지리

                                      오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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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심(왼쪽) 시인과 오영재 시인 ⓒ 박도

허물자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오가지도 못하게 가로막은 분계선장벽

만나자 얼싸안자
장벽너머 여기 북녘엔
다도해어부의 어머니가 있고
장벽너머 저 남녘엔
나의 어머니 형제들이 있다

중세기도 아닌 오늘의 세기
자주의, 리성의 세기에
40여 년 생리별이 이 나라에 있음을 세상은 아느냐
헤어진 나의 어머니 이제는 여든이 되었다

탱자나무 울타리 곁에서 우리 헤어질 땐
마흔도 못되어 젊디젊더니…
아, 믿기조차 어렵다만 지금도 그대로 계신다면
몇 해 만이라도 더 앉아계셔 달라
그러면 내 무덤을 치며 통곡하지 않을 수도 있으리

밤 깊도록 뒤척이다 풋잠이 들며
꿈에 어린다
어린 시절 호남선렬차의 차창에서 보았던
고향의 강 영산강에 뜬 돛배들
마당가에 서있는 두 그루의 감나무
얘들아 앞서 걸으라 저기에 너희 할머니 계신다
그러면 메밀꽃 하양게 핀 밭머리에
서있는 나의 어머니
그날의 쪽물들인 치마에 곱게 빗어올린 검은 머리…

…………………………
[기자 주, 이 작품은 오 시인의 1990년대 작품으로 생각됨]

이밖에 <종소리> 제49호에 실린 20여 편의 주옥같은 시 가운데 망향을 그린 '비둘기 울음소리'와 통일을 노래한 '새봄이 오면'을 독자들에게 띄운다.

비둘기 울음소리

                                      정화흠

언제부터인지
날샐 무렵이면
뒤켠 전보대우(위)에서
비둘기가 운다

날씨가 흐려도
약속이나 한 듯이 꼭 운다

빗은 듯이 두 날개를
곱게 접고서

꾸륵꾸륵- 우는 소리가
내 소년시절
막상 고향을 뜨던 그날 아침에 들은 울음소리다

고향을 잊지말라- 꾸륵꾸르륵
어서 돌아오너라- 꾸륵꾸르륵
텃밭을 허비면서 바래주던
그 울음소리

리향 70유여 년
먼 먼 추억 속에
그날의 울음소리를
이제 다시 들을 줄이야

우는 소리가
오늘 아침은 류달리 처량하다
내 어리석은 꿈을 안고서
바다 건넌 그날이라 알아선지

새봄이 오면

                                            김두권

새봄이 오면
맨 먼저 앞산에 올라
목이 터지도록 소리질러보리라
언제나 바라보는
서편하늘 넘어다보며

춘하추동 사계절 몇 십 성상 지냈는가
저녁식사 끝나면 언제나
이 자식의 안부를 물었다는 우리 어머니
지금은 무덤 속에서 나를 찾는지

끝없이 높고 푸른 고향 하늘
이 가슴에 한껏 안아
그리운 노래를 불러보리
잊지 못할 형제들의 노래를

새봄이 오면
통일의 노래소리 더 높이 부르리
북에선 남을 부르고
남에선 북을 부르는
하나의 노래

떨어져선 못 사는 노래
반세기를 넘게 웨쳐온(외쳐온) 칠천만의 노래
부르고 또 불러도 끝없는 노래
소리질러보리라
목이 터지도록

새봄이 오면

덧붙이는 글 | .


덧붙이는 글 .
#종소리 #오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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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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