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과 '찬성'을 선호하는 노장층의 관성

지역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떠올린 생각들

등록 2012.02.23 19:14수정 2012.02.23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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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여론조사 시대다.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 전문기관과 전문가들도 많고, 정밀하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여러 가지 목적의 여론조사가 시행되곤 한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가능해진 여론조사는 이제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필수적인 사항이 되었다.

물론 정치적 목적의 여론조사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정치권은 수시로 실시하는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하기도 하고, 그것에 따라 향배를 결정하기도 한다. 특히 선거철이 임박한 시기에는 정치권 전체가 여론조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곤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소통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여론조사에 공을 들인다는 사실이다. 소통과 여론은 연결고리 같은 상호작용 속에서 조화를 이루기 마련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상식과 합리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환경 속에서 소통이 원활하다면 여론 또한 정상적으로 형성된다. 그리하여 여론조사 결과는 정확성과 정직성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위축되거나 퇴보하고 상식과 합리가 일그러지는 상황 속에서 불통마저 만연한다면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여론조사는 부실을 면할 수 없다. 왜곡의 기류 속에서 속내와 표면이 전혀 다른 양상으로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10년의 '6.2지방선거' 직전의 여론조사 결과다. 이명박 정권은 민주주의의 퇴보, 상식과 합리의 훼멸, 소통부재 등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서도 여론조사에 과잉적으로 공을 들이고 또 그 결과에 만족했다. '압승'을 기대하고 자신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한나라당의 참패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결과를 완전히 뒤집는 그런 현상을 계기로 여론조사의 속성이나 이면을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초등학생들까지도 휴대폰을 갖고 사는 시대에 유선 전화기에만 의존하는 후진적인 조사 방식, 10%를 넘지 못하는 응답률, 시민의 이메일까지도 뒤지는 비민주적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여론조사 결과는 정직성이나 진실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여론조사 결과 자체가 덫이 되고 함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한 지역 언론사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내용을 흥미롭게 보았다. 지난 10일과 11일 이틀 동안 태안과 서산 주민을 상대로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소프트 로직스'에 의뢰하여 '서산·태안 통합논의'와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묻고, 4월 총선 출마 예정자들에 대한 지지도를 조사했다고 한다. 전체 응답 주민은 506명으로 응답률은 4.01%였고, 40대 이하 젊은 층은 응답률이 매우 낮은 반면 50대 이상은 응답률이 높았다고 한다.

우선 흥미를 끄는 것은 서산·태안 통합논의에 대한 반대가 31.8%인데 비해 찬성은 무려 53.2%나 되는 점이다. 그리고 태안군에서도 반대 35.2%에 비해 찬성이 51.2%로 월등히 높게 나타난 점이다. 서산시에서 찬성률이 높게 나오는 것이야 당연지사이겠지만 태안군의 찬성률은 아연함과 당혹감을 가지게 한다.

논의에 대한 찬성은 필경 통합에 대한 찬성을 의미할 터이므로 앞으로 그것에 관해 심층적인 글을 쓸 계획이지만, 우선 한 가지 적시해 볼 것은 태안지역에도 유입인구가 매우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유입인구가 많아지는 것이야 자연현상에 속하는 것이지만, 토박이들이 견지하고 있는 지역정서가 매몰되거나 무시되는 경향이 그런 작용을 낳은 것은 아닐까 우려되기도 한다. 나는 명백하게 반대 의사를 가지고 있으므로 차후 포괄적인 논법으로 그 뜻을 피력하고자 한다.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건설추진에도 서산과 태안 모두 반대보다 찬성이 높게 나온 것 역시 아연함을 자아낸다. 젊은 층의 응답률이 매우 낮은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50대 이상 노장층을 무시하는 논법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 노장층은 정보 면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또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져서 고정관념이나 관습에 의존하는 경향도 짙다.

현재 60대 중반 시절을 살고 있는 내 과거 경험에 근거하여 하는 말이지만, 50대 이상의 노장층은 오랜 세월 '순치'의 관습 속에서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20대 초반 시절이던 1969년 삼선개헌 국민투표와 1972년 시월유신 찬반 국민투표를 경험했다. 또 1975년의 유신체재 재신임 국민투표도 경험했다.

찬성과 반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반대를 뜻하는 ×쪽에 기표를 하는 것에는 상당한 신념과 용기가 필요하다. 또 찬성을 뜻하는 ○쪽에 기표하는 것은 수월성과 함께 순치의 효과를 동반한다. 1972년의 시월유신 국민투표는 전국적으로 93% 이상의 찬성률을 보였다. 더욱이 태안의 경우 97% 찬성이라는 가공할 만한 수치를 기록했다. 끔찍한 일이었다.

당시 반대쪽에 기표를 했던 나는 이상한 공포감을 가슴 한구석에 지니고 살아야 했다. 집단적 몰이성에 대한 공포감과 함께 태안지역 3% 반대자들에 대한 사찰이 은밀히 진행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그 후 유신독재시대와 또 5공 독재시절을 살아오면서 나는 술에 취하면 "5ㆍ60대 이상 늙다리들이 빨리빨리 사라져 줘야 이 나라가 산다"는 독설을 쏟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시월유신 국민투표 결과를 상기하면 헛소리임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또래 20대를 포함하여 젊은 층도 거의 모두 찬성, 곧 순치 쪽으로 휩쓸려버렸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탓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순치의 관습을 지니게 된 내 또래들이 이제는 60대 노장층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내 또래들 가운데서 오랜 세월 유지되어 오고 변치 않는 순치와 고정관념의 견고함을 본다. 때로는 그 순치와 고정관습의 성채 안에서 숨 막힐 것 같은 답답함과 절망도 체감하곤 한다. 그래서 때로는 많이 외롭고 많이 슬프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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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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