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여권에서 새어 나갈 수 있다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전자여권... IC칩 달아야 안전

등록 2012.03.05 12:09수정 2012.03.0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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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여권 여기에는 당신의 성별은 물론 태어난 장소, 생년월일, 집주소, 전화번호 등 심지어 당신의 남편(부인)의 개인정보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신광태


"인천 남부경찰서 이경○ 형사입니다. 혹시 김현숙씨 되십니까?"
"네, 맞는데요. 그런데 경찰서에서 제게 무슨 일로…."
"누가 오늘 경찰서로 김현숙씨를 고소했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확인 차 전화를 드렸습니다."

지난 4일 휴대전화를 통해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아내는 순간적으로 보이스피싱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누가 저를 고소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그 전에 전화통화 내용을 녹음 좀 하겠습니다."
"아니, 고소를 당하셨다는데 무슨 녹음입니까? 혹시 이만복씨를 아십니까?"
"모르는 사람인데요." 
"그럼 몇 가지 확인 좀 하겠습니다. 주소가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리. 주민등록번호가 68071x-xxxxxxx 맞죠?"

아내는 "어쩌면 이토록 정확하게 내 정보를 알 수 있는지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틀림없는 보이스피싱'이라고 생각한 아내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주소는 화천군 하남면은 맞는데 ○○리가 아니구요 △△리 입니다. 그리고 주민등록번호 끝자리가 틀렸는데요."

그러자 상대방은 어떤 말을 하려다 "근데 녹음은 왜 한다고 했습니까"라며 엉뚱한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아내가 "아저씨 보이스피싱 맞죠? 왜 그런 짓을 하면서 사세요?"라고 말하자, 상대방은 들킨 것이 못내 분한지 "이런 개xx, 이xxx 내가 찾아가 가만두지 않을 거다"라는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과 협박을 늘어놓더니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서둘러 발신번호로 전화를 연결했는데 "이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라는 안내음이 나온다. 도대체 그 사람은 어떻게 내 아내의 정보를 알았을까.

아내는 휴대전화 번호를 변경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또 상대방은 어떤 말을 하려다 얼버무렸다. 아내는 신분증을 분실한 적도 없다. 아내는 얼마 전에 홍콩과 마카오, 심천을 다녀온 기억을 떠올렸다.

전자여권을 통해 당신의 정보가 새어 나갈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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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여권 사진과 주민등록번호 13자리 등의 개인정보가 담겨있다. ⓒ 신광태


전자여권을 보면 주민등록번호 13자리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태어난 연도와 날짜는 물론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성별), 출생지까지 알 수 있다. 또한 사진을 통해 생김새도 노출된다. 또한 여권 뒷면을 보면 분실 에 대비해 적어 놓은 주소, 휴대폰 번호, 집 전화번호까지 알 수 있다. 게다가 비상시에 연락이 가능한 사람의 정보도 기록할 수 있도록 돼 있어, 남편(처)이나 친지, 혹은 친한 친구의 정보도 덤으로 노출시킬 수 있다. 물론 이 부분(뒷면)을 적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분실 시 안전장치를 위해 다수의 사람들이 기록을 해둔다.

전자여권에 있는 내 정보, 어떻게 누출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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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뒷면 본인의 전화번호, 주소 등 지인들의 정보도 노출될 수 있다. ⓒ 신광태


해외여행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는 것 중의 하나가 공항검색대의 취약함이다. 여권을 제시하면 검색를 하는 직원은 여권과 얼굴을 번갈아 비교하기도 하고, 여권을 보고 타이핑을 치거나 열심히 무언가 적는 사람도 볼 수 있다.

검색을 담당하는 사람은 창구 단위로 한 명씩 배치돼 있다. 동남아를 비롯한 중국 여행을 할 때면, 검색 담당자는 여행객이 조선족인지 한국어에 능통한 외국인인지 알 수 없다. 홍콩과 마카오, 심천을 여행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같은 중국이라고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홍콩에 들어갈 때 입국신고, 마카오로 이동할 때 출국신고, 마카오에서 입국신고, 심천으로 떠날 때 마카오에서 출국신고, 심천에서 입국 신고를 하는 등 상당히 번거로운 절차를 거친다. 그만큼 내 정보의 노출 횟수가 많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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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에서 심천까지 가기 위해 배를 타기 앞선 출국심사 장면 ⓒ 신광태


또 다른 황당한 경우는, 현지 가이드가 여권분실 위험이 있다며 여행기간 내내 친절하게 여권을 보관하다가 다른 나라로 이동할 때 돌려주는 경우다. 혹은 이동을 위한 체크인 등을 위해 전날 여권을 회수해 다음날 돌려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다수의 관광객들은 별 의심 없이 현지 가이드에게 여권을 맡긴다.

머나먼 이국에서 그 나라 언어도 모르는데, 그나마 믿을 사람이라곤 가이드 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꼭 그렇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 가이드가 내 정보는 물론 우리 일행의 개인정보를 빼돌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책이 필요하다

얼마 전 '유명 포털에서 회원정보 모두가 노출됐다' '모 금융회사의 서버가 해킹되면서 다수의 회원정보가 누출됐다'는 뉴스를 보면서, 누구나 내 정보는 무사하길 바랐다. 그러나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상황(입출국 심사 제도상 문제 또는 관리 부주의)에서 노출된 나의 소중한 정보가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지구상을 떠돌아다닐 수 있다. 또 전자여권에 붙은 사진의 스캔을 통해 또 다른 내가 탄생(신분증 복재)된다면? 이는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오마이뉴스> 강인규 기자가 쓴 기사(주민등록번호 13자리의 '무서운 진실')처럼 정부는 왜 자국민의 개인정보를 알리는데 급급 하는지 모를 일이다. 여권에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7자리 숫자 기재가 불가피하다면, IC칩 등으로 대체해 육안으로 구분할 수 없도록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전자여권 #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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