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원으로 일주일 살 수 있나요?

[주장] 출·퇴근 교통비와 점심 한 끼도 만 원 넘는다

등록 2012.03.06 18:28수정 2012.03.06 18:2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만 원짜리 한 장 들고 나와서는 장은커녕 아이들 간식도 사기 어려워요."


푸념 섞인 아내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만 원짜리 한 장으로는 아이들 간식거리 밖에 살 수 없다는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사실 제래 시장을 다니지 않고, 대형 마트에 익숙한 나에게 현금 만 원짜리보다는 카드대금 고지서가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만 원짜리 한 장 들고, 동네 장터에 나가 아이들 간식이나 겨우 사오는 아내의 장바구니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세종대왕의 근엄한 모습이 그려져 있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 그렇다면 이 만 원짜리 지폐 한 장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지난달 13월의 보너스(연말정산)를 받았음에도 늘어가는 가계 부채 때문에 늦은 밤까지 아내와 가족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앞으로 용돈은 근무 일수 기준으로 하루에 만 원씩 준다는 아내 말에 짐짓 머뭇거리다가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의 가치를 떠올려 봤다.

'만 원의 행복?' 일주일은커녕 하루도 견디기 어렵다

가장 먼저 <만원의 행복>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머리를 스쳤다. 지난 2003년 11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주말 저녁 일반시민(대학생)과 연예인들이 단돈 만 원으로 일주일을 생활하면서 매일매일 미션을 수행하고 중간에 상대방과의 잔액교환 그리고 찬스, 빌붙기 등을 통해 도전이 끝난 뒤 잔액이 많은 사람이 승자로 확정되어 부상으로 효도관광상품권을 선물로 받고 도전자들의 남은 잔액은 전액 불우이웃돕기에 쓰여졌던 '만원의 행복'은 돈의 가치와 소비생활에 대한 습관을 바꿔주는 참신한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만 원을 가지고 일주일을 살았던 이들의 모습은 과연 현실적이었을까? 오래전에 방송되었던 프로그램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자는 것은 아니다. 프로그램 특성상 여러 가지 미션이 있었고, 그 결과에 따르는 보상도 있었음을 안다. 정말 내가 궁금한 것은 보통의 직장인들이 만 원짜리 한 장으로 일주일을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밀려와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 원짜리 한 장으로는 일주일은커녕 하루를 살아가기도 벅차다는 것이다. 물론 만 원짜리 한 장으로 하루를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회사와 집이 가깝다면 출·퇴근을 걸어서 하기때문에 교통비를 아낄 수 있고, 점심을 도시락으로 해결한다면 만 원짜리 한 장으로 얼마든지 하루가 아닌 일주일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현실성 있게 접근을 해보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다.

광역버스비 3700원 + 점심값 7000원 = ?

지난달 25일부터 서울시 대중교통 요금이 150원씩 올랐다. 교통카드를 사용 시 종전 900원이었던 기본요금은 1050원이 되었고, 이를 왕복요금으로 환산하면 2100원이다. 그리고 지난해 채소값 폭등을 겪었던 식당가의 점심값은 싸게 먹을 수 있는 곳이라 해도 기본 6000원이고, 직장인들이 밀집된 여의도와 강남은 7000원에 이른다. 정말 도시락 생각이 절로 날 수밖에 없고, 커피 한 잔 사 달라는 후배가 얄밉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도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나 서울 외곽이라 해도 지하철이나 일반 버스를 타는 사람은 교통비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지만, 광역버스를 이용해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상황은 더욱 어렵다.

현재 광역버스 기본요금은 교통카드 사용 시 1850원이다. 이를 왕복요금으로 환산하면 3700원. 즉, 만 원짜리 한 장 들고 출근했다가 6000원짜리 점심 먹고 퇴근하면 호주머니에 남는 돈은 고작 300원이다. 퇴근길에 아이들에게 사탕 하나 사 줄 수 있는 돈도 안 된다. 그런데 점심때 누군가가 맛있는 음식을 먹자고 한다면 광역버스를 타고 가다 중간에 내려서 걸어가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출·퇴근 교통비와 점심 한 끼면 지갑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만 원짜리 한 장. 이것이 만 원짜리 한 장의 가치이고 우리의 현실이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처럼 만 원의 행복이라는 것이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피부로 느끼는 만 원짜리 한 장의 가치는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허무했고 그 돈을 벌기 위해 요구되는 노동력의 대가는 크게만 느껴진다.

세종대왕의 근엄한 모습이 그려져 있는 10000원권 지폐 한 장. 한 때는 이 만 원짜리 한 장이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느낌이었고,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여러 장의 천 원짜리로 바뀌지 않기 위해 아끼고 또 아끼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고 사회가 변하면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지니는 가치는 그 시절과 비교하기 어려울만큼 떨어졌고 우리의 생활 물가도 많이 올랐다는 방증이다.

아내가 제시한 '일일 용돈 만 원' 만 원짜리 한 장의 가치를 되짚어보니 받아들이기 어려운 협상 조건이다. 그런데 힘이 없다. 가족 경제의 번영을 위해서는 만 원짜리 한 장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어쩌면 이틀을 살아가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만원의 행복' 일주일이 아니라 하루로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만원의 가치 #만원의 행복 #일만원 #일일 용돈 #장바구니 물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2. 2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민주당은 앞으로 꽃길? 서울에서 포착된 '이상 징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