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늑장부리며 천천히 즐기다 가면 안되나요?

결혼식풍경 에세이

등록 2012.03.20 10:01수정 2012.03.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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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꽃들이 만개하기 위해 완연한 봄을 서서히 준비하는 시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신랑 신부의 의식치례는 매우 빠르고 바쁘다. 자연의 시작 "봄"과는 다른, 제2의 인생의 시작인 "봄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자, 찍습니다!

신부의 웨딩드레스가 멀리서 빛이 나는 듯 했고, 카메라의 플래시가 번쩍번쩍 광채를 냄과 동시에, 웃고 있는 온갖 사람들에게도 환한 빛이 둥둥 떠 다녔다. 오전에 볼일을 보느라 남편과 나는 남편 중학교 동창의 결혼식에 20분 늦어버렸다. 그래도 결혼축가, 신랑의 이벤트, 축하 공연등의 활약으로 식이 아직 진행되고 있으리라 짐작하여 비교적 차분히 식장에 들어섰건만, 실망스럽게도 막바지 사진촬영이 시작될 즈음이었던 것이다. '여유로운 결혼식을 기대한 우리가 잘못이지.' 생각할 틈도 없이 남편이 단체사진을 찍으러 식장의 군중들에 합세했고, 기다리던 중에 들리던 대화.

"사람 충분한데…안 찍어도 되겠는데…."
"그래도 찍는게 낫지 않겠냐."
"빨리 가 봐야 하는데…."

내 뒤쪽에 서있던 젊은 여자 2명이서 단체사진을 찍느냐 마느냐를 두고 나눈 대화이다. 이후 결국, 사진을 찍으러 무리 속으로 황급히 들어가던 두 여자. 신부의 친구들이었다.

"거기, 신부 친구분! 앞에서 두번째… 맨 오른쪽 분 고개를 왼쪽으로 조금만 돌려 주시구요."
"신랑님, 다리 좀 모아주세요."
"아, 신랑 친구 분들 조금씩만 좀 웃어주시고요."
"자, 찍습니다!"
"움직이지 마세요!"
"부케사진 찍습니다!"


결혼식 단체사진을 위한, 사진사의 교과서식 요청은 빠르게 셔터를 움직임과 동시에 끝이 났고, 하객들은 파도물결처럼 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했다. 남편과 나도 사람물결에 휩쓸리듯 급히 발걸음을 디뎠다. 뷔페 음식의 양 옆으로 길게 이어진 사람행렬. 빈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기호에 맞는 음식들을 쌓은 접시를 들고 우왕좌왕 하다가 한적한 공간을 발견했고, 자리 빼앗길세라 또 빠르게 걸음질.

오전 11시 결혼식이었고,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한 것은 약 11시 40분경이었다.

무슨 폐백을 이렇게 오래 해

우리보다 일찍 왔는지 그새 얼굴이 벌개 소지품을 챙겨 자리를 뜨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빈 접시와 음료수병, 술병들이 즐비했고, 직원들이 치우기 위해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남편의 중학교동창들은 오랜만에 이야기꽃을 피웠고, 주로 가족이야기나,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에 대한 걱정, 다음 달에 결혼한다는 동창의 '태국'신혼여행지이야기 등이 대부분이었다. 남자동창들이, 둘러앉은 테이블의 대부분을 차지했던터라, 식사를 하며, 술이 담긴 종이컵을 홀짝이며, 마지막 이야기는 '당구'로 넘어갔다.

"나가면, 당구 한 번 치러 가야지."
"그럼 빨리 가야지. 하이고 벌써 1시가 다 되어가네."
"뭘 그렇게 빨리 가려 그래. 신랑 신부 얼굴은 보고 가야 할 것 아니냐."
"그래도… 빨리 올라가야 안 막혀."
"야 왜 이렇게 안 오냐. 무슨 폐백을 이렇게 오래 해."

'무슨 폐백을 이렇게 오래하냐'는 질문은 내 결혼식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빨리 가야했던 친구, 친지 분들은 비교적 길었던 폐백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얼굴을 보고가기 힘들었다며, 식이 끝난 후 전화로 사정을 토로했었다. 서운했지만 바쁘다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불과 1년도 안 된 그 때의 상황과 감정이, 내 결혼식이 아닌 다른 결혼식에서도 그대로 살아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와 동시에 씁쓸했다.

다행히도 신랑 신부는 1시쯤에 인사를 나눌 수 있었고, 조금 전에 '당구이야기'로 생기를 띠던 남자 동창들은 결혼식장 길 건너 맞은편에 있던 당구장을 향해 급히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짧은 인사 끝에 멀어져 갔다. 빨리 당구를 치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그들이었다. 뿔뿔이 흩어지는 다른 일행들 모습도 여기저기서 보였고, 일률적으로 장식해 놓은 식장 정문 앞의 웨딩카 3대가 결혼식 풍경의 말미를 재미없게 장식하고 있었다.

'아 어쩜, 너마저 재미가 없구나.'

겨울과 천천히 이별하며 서서히 봄이 오듯

조금 늦어지면 큰일 나는 것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던 사람들. 그와 함께 축의금 봉투와 식권도 팔랑이며 바쁜 대열에 협력했고, 12시 30분 타임의 다음 결혼식은 기다렸다는 듯이 '빨리빨리'를 도와줬다.

이 아름답기만 해야 할 결혼식에, 몇 백 개의 알람시계가 신속함으로 백미를 장식하고 있던 것이다. 알람시계 같은 현대인의 삶이 그대로 투영된 결혼식 풍경은 이미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나의 결혼식이 그랬었고, 또 대부분의 결혼식이 그랬던 것이다. 먹고살기 바쁜 일상의 무게가, 축제라고 해도 좋을 결혼식의 가치를 짓눌러 버려서일까.

봄이 되기 위해 서릿발을 줄여나가고, 조금씩 따뜻한 햇살과 바람, 그리고 단비를 천천히 내려주는 자연의 순조로움에 서서히 닮아지길 원한다. 사랑하는 이와의 동반인생을 합법적으로 공표하고, 인정하고, 축하해주는 아름다운 축제인 결혼식의 느린 시간을 바란다.

이왕 하는 결혼식, 이왕 참석한 결혼식, 모두가 천천히 즐기다가 충분한 만남 후에 이별하면 좋지 않을까요? 겨울이 머물다간 자리를 봄이 찾아들며, 우리가 서서히 겨울과 이별하듯이 말이에요.
#결혼식 #웨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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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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