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텃밭 민주당도 외면..."살아서 끝나겠죠?"

[현장] 전북 부안 '새만금교통 해직 노동자' 농성장을 가다

등록 2012.03.27 20:12수정 2012.03.3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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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 읍내 차고지에 설치된 망루. 지난 18일부터 새만금 교통 해직 노동자 양이식 위원이 망루에 올라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 고종우


전라북도 부안군에 18m 높이의 망루가 세워졌다. 얇은 쇠파이프로 엮어져 높게 솟은 망루는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지난 18일 양이식 노동자대책위원회 위원은 한 사람만 올라가도 위태롭게 흔들거리는 망루에 올라 "새만금교통 해직노동자의 전원 고용"을 요구하는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지난해 9월부터 천막농성과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신문 및 전단지를 제작해 군민에게 그들의 처지를 호소했던 새만금교통 해직 노동자들은 망루 위 고공 단식 농성이라는 최후의 선택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재 부안군내 공직자들은 중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은 채 그들을 '투명 인간' 취급하고 있다.

결국 이들은 지난 11일 부안에서 정 반대에 위치한 부산 사상구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의 선거 사무실을 방문해 "민주통합당 출신 군수로부터 버림받은 인생, 문재인 고문으로부터 위로 받고 싶다. 만약 여기서도 버림받는다면 대한민국의 투명인간이 될 것"이라며 읍소하기도 했다.

18m 망루 위에서, 그들의 '내려올 날'을 알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됐다.

또 다시 횡령 사업자? "믿을 만한 개인 사업자 선정해야"

지난 22일 부안에는 굵은 비가 내렸다. 그러나 장대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양 위원은 망루 위를 지키고 있었다. 새만금교통 해직 노동자들도 차고지 구석에 임시 천막을 세우고 함께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싸움은 지난해 9월 28일 36시간 만에 결정된 새만금교통 '무단폐업' 결정에서 시작된다. 폐업으로 실직 상태가 된 33명의 새만금교통 운수 노동자들은 퇴직금과 미지급 임금 등 약 11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또 새만금교통 버스 23대의 운행이 중단되어 군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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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 읍내 차고지에서 만난 새만금교통 해직노동자 대책위원장 박광호씨. 천막은 그동안 싸움의 흔적인 플래카드로 덮여있다. ⓒ 고종우



새만금교통노동자대책위원회(이하 새노위) 박광호 위원장은 "폐업까지 오게 된 원인에는 전 새만금교통 사장 이아무개씨의 13억 횡령으로 인한 적자가 큰 문제였다"며 "폐업 전부터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등 낌새가 이상해 부안구청에 관리감독을 해 달라 수차례 요청했지만 그들은 개인 사업을 간섭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새노위는 이후 정보공개청구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전 사업자의 문제를 알아보고자 노력했으나 이마저도 거절 당했으며 현재 전 사장 이아무개씨는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관리감독 요청 거부'에 대해 부안군청 측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노조 요청대로 관리감독까지 하게 되면 부안군이 경영을 하는 단계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며 "부안군은 보조할 뿐 경영은 개인사업자의 몫"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부안군 버스 사업은 100% 개인의 자금으로 운영되지 않고 군으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운영된다"며 "국가에서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개인 사업자가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알아보고 관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이후 새노위는 개인 사업자가 버스를 운영할 경우 노동자들의 '고용승계' 문제 및 버스경영의 '투명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판단, 노동자가 경영을 책임지는 '노동자 자주관리기업 제도'를 부안군에 제시했다. '자주관리기업'은 100% 투명하게 자금의 흐름과 장부가 공개되는 경영 방식이다.

그러나 부안군은 사업면허를 줄 수 없다며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후 군은 재정지원 감축을 이유로 1군 1사 원칙을 내세워 부안 내 또 다른 버스 운수 회사인 '스마일 교통버스'의 증차를 통해 노동자들의 고용인계를 시도했다. 즉, 기존 두 회사로 나뉘어 운영 중이던 부안 군내버스를 스마일 교통으로 통합해서 운영하겠다는 것.

그러나 11대로 증차된 버스로는 실직자를 모두 채용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이에 새노위는 "우리 모두가 채용되지 않는다면 고용을 거부하겠다"며 스마일 교통으로의 이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군내 버스폐업사태가 장기화되자 부안군은 자신들의 정책을 1군 2사로 선회해 신규 사업자를 모집했다.

부안군청은 지난 2월 29일 인헌운수㈜ 박현식 사장을 신규 사업자로 최종 결정했다. 허나, 1998년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박 사장은 '마을버스 노선을 연장해달라'며 구청 공무원들에게 돈을 건넨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된 바 있으며 회사 수익금 중 4500여만  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연합뉴스 기사 ⓒ 연합뉴스


즉, 부안군청은 '새만금 교통'의 폐업이 전이아무개 사장의 횡령 혐의에서 비롯되었음에도 또 다시 횡령혐의가 있는 사업자를 선정한 것이다.

또 부안군청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보면 결격 사유에 해당하는 사람은 운수 사업을 할 수 없지만 박 사장의 경우 사유에 해당되지 않아 문제가 없다"고 대답했다. 현재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나온 결격사유는 금치산자나 한정치산자,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復權)되지 아니한 자 혹은 이 법을 위반하여 징역 이상의 실형(實刑)을 선고받은 자 등이다.

이후 박씨는 벌금형 이상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박씨의 최종 형량에 대해 다시 문의하자 부안군청은 "전과 조회를 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며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결격사유가 없는 자만 뽑겠다고 했고, 그에 해당하는 사람만 신청했을 것이다. (전과내용은) 본인에게 직접 확인하라"며 정확한 답변을 피했다.

이러한 사실에 박 위원장은 "지난번 부안군 버스 무단 폐업 사태도 부도덕한 사업자의 횡령으로 발생한 것인데 또다시 비리전력자가 버스를 맡게 됐다"고 우려했다. 새노위의 김종서 위원도 "이 해명은 말도 안되는 것"이라며 "사업자 선정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문제가 있는 사업자라면 결정을 철회해야 제 2의 부안군 새마을 버스 무단 폐업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규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도 문제가 제기 됐는데 박 위원장은 "동네 이장님들이나 군에서 보조금 받고 사는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 위원들이 새 사업자를 선정했다"며 "운수 사업에 전문성이 없는 분들이 무슨 평가를 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이에 부안군청은 "'농어촌정책심의 위원회'를 조직해 심의위원들에게 사업자 정보와 관련 서류를 배포하고 일일이 다 설명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박현식 사장의 횡령 사실에 대해서도 심사 위원들에게 공포한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머뭇거리더니 "아마 심사위원들은 몰랐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민주통합당'의 무관심... 그래도 문재인 믿을 만해

망루 옆 비닐천막 안은 고인 빗물로 발 디딜틈조차 없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상자 사이로 수북하니 쌓인 성명서와 보도자료 등이 그간의 긴 싸움의 흔적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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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 읍내에 걸린 '민주통합당은 새만금노동자사태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플래카드. ⓒ 고종우



가장 큰 문제는 현재 부안 군내에서 새만금 해직 노동자들은 '낙오자'란 사실이다. 화병으로 속이 다 상해 죽으로 끼니를 챙기던 박 위원장은 "어딜 가든 '새만금 해직 노동자는 안 된다'며 고용을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6개월 동안 장기간 이어진 싸움, 재고용의 어려움으로 인한 생활고로 새만금 교통 해직 노동자들의 몸과 마음은 모두 지친 상태다. 무엇보다 그들은 전라도를 텃밭으로 둔 민주통합당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부안은 마을이 작다. 거기다 부안은 전북 아닌가. 몇십 년 동안 구 민주당의 텃밭이라 민주통합당 사람이면 누구인지 상관없이 다 당선되는 곳이다. 이 때문에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자신만만해서 민심이건 민생이건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새노위 김종서 위원은 "지금 선거철 아닌가"라며 "해직 노동자를 떠나 지역 주민이 저 높은 망루 위로 올라가 있어도 그 어느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옆에 있던 동료도 "부안은 썩을 대로 썩었다"며 "부안에서 민주통합당과 부안구청은 청와대보다 무섭고 잔인하다"고 말했다.

곧 7개월째로 접어드는 긴 싸움에도 발길 한번 주지 않은 민주통합당의 무관심은 그들을 더욱 '투명인간'으로 느끼게 했다. 박 위원장은 "부안 주민들, 군수, 부군수 모두 무관심하더라도 이 지역을 맡고 있는 자들이라면 한번쯤은 우리가 이곳에서 왜 이러고 있나 묻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지적했다.

부안과 정반대에 위치한 부산 사상구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사무소를 방문한 이유를 묻자 그들은 "부안 민주통합당 사람들은 썩었어도 그 사람은 조금 다를 거라 생각했다"며 "다행히도 우리 요구조건을 잘 이해해주어 지금 문 상임고문 선거 사무소에서 우리를 담당하는 변호사도 있고 매일 우리 소식을 문 상임고문에게 보고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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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moonriver365)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트위터 캡쳐 화면이다. 새만금 교통 해직 노동자에 대한 지지 내용이 실려있다. ⓒ 김혜승


망루에 오른 양 위원도 "방문까지 솔직히 믿지 않았다"며 "그러나 문 상임고문은 바쁜 상황에도 선거캠프에 전화를 하니까 바로 오셔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문 상임고문은 사무소를 방문한 우리에게 '한번 노력해 볼 테니까 믿고 기다려 보십시오. 내가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요청을 하고 실시간으로 알려 드리겠다'고 말했다"며 "감동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문 상임고문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14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 그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낸 것이 가슴 아픕니다", 15일 "부안군수에게 호소합니다. 신규사업자가 해직운전기사들을 채용하도록 주선할 수 없을까요"라며 부안 군청에 해직자들의 처우 개선을 호소하기도 했다.

"망루 위 동료, 살아서 내려오게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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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 읍내 차고지에 설치된 망루. 지난 18일부터 새만금 교통 해직 노동자 양이식 위원이 망루에 올라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양이식 위원이 천막에서 나와 기자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 고종우



박 위원장은 "지난해 촛불시위 이후 군에서는 '시위 참여시 범칙금을 부과하겠다'고 협박하고, 전라북도부안교육지원청에 공문을 보내 학생들의 촛불 집회 참여를 막아달라고 협조 요청을 하기도 했다"며 부안군의 처사에 분노를 표시했다. 그는 "내 딸이 학교에 내려진 공문을 보고 '우리 아빠가 나쁜 사람이냐'고 가슴 아파했던 일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한탄했다.

6일 동안 이어진 단식농성으로 미열이 오른 양이식 위원을 비롯해 나머지 10명의 해직 노동자들 모두 벼랑 끝에 서 있다.

"아내도, 아이들에게도 미안할 뿐"이라는 이들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지만 이 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다. 김종서 위원은 "이제 11명이 남았다, 우리는 몸이 부서지더라도 끝까지 해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박위원장은 "며칠째 아무것도 안 먹고 있는데 저러다 사람 하나 죽겠다"며 망루로 올라간 양 위원을 염려하기도 했다.

박 위원장을 포함한 동료들 모두 인터뷰 내내 천막 안에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들은 '혹시나 하는 맘'에 밖으로 나가 망루를 올려다 보며 계속해서 양 위원을 살펴 보았다.

"버스 운수로 고용승계가 되지 않아도 좋고 군내 청소직이 돼도 좋다.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투명한 사업자 선정, 고용승계 문제만 해결 된다면 이 싸움 멈출 것이다. 반드시 망루로 올라간 양 위원을 살아서 내려오게 해야 한다."

4·11 총선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수많은 정치인이 '서민을 위해 힘쓰겠다'며 골목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는 이 때, 여전히 외면 받으며 '투명인간'이 돼 버린 그들의 서러운 목소리가 빗소리에 파묻혔다. 박 위원장의 마지막 한마디는 자금도 마음 한 켠을 서글프게 울리고 있다.

"기자님, 이 싸움 살아서 끝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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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 읍내 차고지에 설치된 망루이다. ⓒ 고종우


#새만금 교통 해직 노동자 #문재인 #부안 #민주통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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