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미터 망루에서 만난 사람..."우리는 투명인간"

[고공 인터뷰] 전북 부안 새만금교통 해직 노동자 양이식씨

등록 2012.03.27 20:11수정 2012.03.2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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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군 새만금교통 차고지에 설치된 높이 18m짜리 망루. 현재 양이식 노동자대책위원이 고공 단식 농성 중이다. ⓒ 고종우

"(고종우) 기자님, 거기 못 올라갑니다. 죽을 생각이면 가세요. 오늘 비도 오고, 너무 위험합니다. 정 가겠다 그러시면 119라도 불러 놓겠습니다."

지난 18일 전라북도 부안군 새만금교통 차고지에 높이 18m짜리 철골 구조물이 등장했다. 보기에도 위태로운 이 구조물은 '망루'. 그 꼭대기에는 새만금교통 폐업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자 고공 단식농성 중인 새만금교통 노동자대책위원회(이하 새노위) 양이식 위원(42)이 있었다. 새노위 위원들은 그를 만나러 망루에 오르겠다는 기자를 만류하며 이같이 말했다.

봄비가 언 땅을 녹이던 23일, 기자는 고집 끝에 18m 망루 꼭대기에 올라 양씨를 만났다. 그는 텐트를 방문한 기자를 향해 "비도 와서 더 위험한데 뭐하러 올라오셨냐"며, "여기까지 오신 분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새만금교통의 전(前) 사장은 지난해 9월 28일 군청에 폐업 신청을 냈다. 밀린 퇴직금과 체불 임금의 총액은 무려 11억 원. 군청은 "1군 2사는 군 정책에 부적합하여, 1군 1사로 조정해야 한다"며 이틀 만에 폐업을 승인했으며, 이 과정에서 33명의 노동자들이 해직됐다. 군청은 이에 따른 교통난을 해소하고자 부안군 내에 있는 또 다른 운수업체인 스마일교통에 11대의 버스를 증차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스마일교통은 증차 인가를 군청에 반납했고, 이에 따라 군청은 1군 1사 정책을 기존의 형태로 선회하여 1군 2사 체제로 변경, 신규 사업자를 모집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신규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군청은 '해직 노동자들의 퇴직금과 체불 임금을 안고 영업을 하겠다'며 '영업권을 달라'던 사업자를 배제하고, 즉각 농어촌정책심의위원회를 구성하여 새로운 사업자를 공모했다.

이에 대해 새노위 관계자들은 "군청이 신규 사업자에 대한 정보를 제한적으로 제공하는 등 미심쩍은 행동을 보였다"며, "형평성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새노위는 "투명한 신규 사업자 선정 및 남아 있는 해직 노동자 11명의 전원고용"을 촉구하며 농성 중이다. 이아무개 전 사장은 현재 공금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공정하게 사업자 선정한다더니 이게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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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루 꼭대기에서 만난 양이식 노동자대책위원회 위원. 이 곳에서 그는 '해직 노동자 전원 고용'을 요구하는 단식 농성 중이다. ⓒ 고종우


- 미열이 있다던데,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예, 괜찮습니다. 어제 조금 그랬는데 지금은 많이 나았습니다."

- 새로 선정된 사업자도 문제가 있다는 말씀이죠?
"실제로 이번에 선정된 사업자가 공무원 뇌물 공여 혐의로 벌금도 물었고. 운수 수익금을 횡령해서 구속된 사례도 있습니다. 물론 다시 (횡령)하리라는 법은 없지만, 결격사유가 없는 사람을 공정하고 형평성에 맞게 뽑겠다던 부안군청이 그런 하자는 쉬쉬하면서 선정을 했더라고요. '투명성 강조하고, 공정하게 제대로 된 사업자를 선정한다더니 이게 뭐냐'고 군청에다 항의했지만 소용없었죠. 피도 눈물도 없더라고요."

부안군청 "범칙금 부과한 적 없다"
부안군이 유언비어를 퍼트렸다는 양씨의 말에 대해 부안군청 민생경제과장은 "집회 초기에는 (노동자들이) 확성기를 이용해서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하기도 했다"며 유언비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집회에 50만 원의 범칙금을 부과한다는 것과 관련해서는 "집회 허가 여부는 경찰 소관"이라며, "일부 불법 집회가 있었고, 이에 대해 많은 불편 민원이 접수되어 법원에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여 감사계가 공고를 한 적은 있으나, 실제로 범칙금을 부과한 사례는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부안경찰서 정보과의 한 직원은 "새만금교통 노동자들의 집회 신고는 작년 10월 4일부터 접수가 되었으며, 지속적으로 기간을 연장하여 현재는 4월 25일까지 허가가 나 있다"며, '불법집회가 있었냐'는 물음에 "그런 적은 없다"고 말했다.
- 부안군청이나 언론 반응은 어떤가요?
"군청에서 '새만금교통 노동자들이, 군청에서 폐업 승인 받아줬으니 퇴직금을 너희(군청)가 줘야 한다고 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다녔더라고요. 언론사들도 버스 문제를 크게 다루지 않고요. 저희들은 이 사태를 알릴 수가 없어요. 부안군청에 비해 우리는 '세발의 피'죠. 저기는 기자단 딱 불러서 노인 단체나 여성, 사회단체 이런 데에 자료 돌리고, 단체에서는 (군청의 대책이 올바르다는 내용의) 성명서 발표해서 언론에 보내고요. 언론은 이슈가 되지 않으면 불러도 우리한테는 안 옵니다."

- 그럼 어떻게 이 사태를 알렸나요?
"성명서를 발표한 단체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드렸죠. 그랬더니 이해하시는 분들도 많으셨고요. 노인회 분들은 '양쪽 얘기를 전부 들었다면 이런 성명서는 발표하지 않았을 텐데 미안하이' 그러셨어요. 부안군에서는 우리가 소모적인 집회를 한다고 하면서 집회 건당 50만 원씩 벌금 물도록 해놨어요."

"행정조직에 맞선다는 것, 병아리 눈물로 바위 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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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교육지원청이 각 학교에 보낸 공문 ⓒ 고종우


- 부안 군민들은 이 사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지요?
"잘 압니다만, (농어촌정책) 심의위원회 구성된 것도 군에서 보조금 받는 사람들로 전부 채워져 있어요. 각 사회단체, 이장 협의회 이장님들 다 군에서 보조금 받습니다. 솔직히 그런 사람들이 형평성 있게 하고 싶어도 그렇게 안 되죠.

3개월 정도 촛불집회 했었는데, 학생들도 나왔죠. 군청에서 협조요청을 하는 바람에 교육지원청에서는 각 학교마다 '학생들이 버스폐업 사태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지도'하라는 공문을 보냈어요. 사실상 촛불집회에 못 나오게 하라는 뜻이죠."

- 집회는 신고 및 허가 받고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죠. 다 신고하고 허가 받았죠. 근데 행정조직에 맞선다는 게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아니라요, 병아리 눈물로 바위 치기더라고요."

- 군민들은 교통 불편한 거 못 느끼시나요?
"그게 또 하나의 꼼순데요.(웃음) 폐업 초기에 우리 회사 버스 23대가 한꺼번에 섰잖아요. 그래서 군청에서 그 다음 다음날 임시 버스 8대를 투입합니다. 근데 며칠 안 가서 6대를 빼버려요. 처음에 8대 돌면 그나마 낫죠. 근데 8대 운행해도 산간벽지에 계신 노인 분들은 버스 타러 굉장히 걸어 오셔야 해요.

학생들도 시간 맞춰서 차를 타야 하는데 큰 도로까지 나와야 하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시간도 굉장히 소요되죠. 학생들로서는 차 한 번 놓치면 지각이 뻔합니다. 다음 차가 언제 올지 모르니까요. 그런 건 굉장히 불편해 하셨죠. 근데 거기서 임시버스마저 2대로 줄이니까 환장하시죠. 한 2개월 동안 그렇게 유지하다가 그 후에 임시버스 10대를 투입했죠."

- 조삼모사인건가요?
"맞습니다. 그거에요.(웃음) 처음에 두 대가 도는 것보다 여덞 대가 더 와서 열 대가 돌아주면 아무래도 낫죠. 그러니까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낫다'고 말하는 사람을 인터뷰해서 언론에 뿌리고 이러니, 군민은 다 끝난 줄 아십니다.

근데 거리집회하고 촛불집회 하면 '왜 그래요? 방송이랑 다르네요?' 이래요. 이렇게 외면을 당하고, 언론은 호도를 하고, 어려운 싸움이더라고요. 군민들도 우리 일을 알지만, 군청 때문에 감히 나오질 못합니다. 이게 뭔가 이슈가 돼야 하는데 우리가 역할도 미미하고, 한계가 느껴지죠."

"문재인 만나러 부산까지...오죽하면 그랬겠나" 

- 민주통합당 쪽이랑 접촉을 시도하는 것 같던데요?
"전라도는 민주통합당이 깃발만 꽂으면 다 되거든요. 사람들이 한나라당(새누리당) 욕하지만, 더 해요. 한마디로 민주통합당 내에 있는 한나라당이죠. 자기네들 실익만 따지고,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신경도 안 씁니다. 저희가 문재인 상임고문님 찾아간 뒤로 부안 국회의원이 저희들 두 번 찾아오긴 했습니다. 아마 여파 때문에 억지로 온 거 같아요."

- 부안군청이 막무가내라 부산에 계시는 문재인 상임고문을 찾아간 건가요?
"그렇죠. 오죽하면 거길 갔겠습니까. 여기서는 안 된다는 답이 나오니까요."

- 문재인 상임고문은 잘해주던가요?
"그럼요. 여기서 우리는 '투명인간'입니다. 저희들의 말과 행동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아요. 그런데 거기서는 사람대접 받았습니다. 문재인 고문은 일정이 바쁜데도 선거캠프에서 전화를 드리니까 금방 오셨더라고요.

솔직히 믿지는 않지만, 자기 할 일 바쁜데도 왔더라고요. 그게 너무 감동이었어요. 그 다음 날도 우리가 출입구 왼쪽 바닥에 앉아 있었는데, 들어오시더니 다른 분들 다 제치고 우리들한테 '사람들 좀 만나고 조금 있다 오겠다'고 그랬어요. 솔직히 그냥 가실 줄 알았죠. 근데 오셨어요."

- 트위터 보면 문재인 상임고문은 적극적으로 도우려고 하신 것 같던데요?
"예. 저희한테 '신규사업자 선정 과정을 공개해서 문제가 있다면 철회를 하고 노동자가 면허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게 첫 번째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차선으로 신규사업자가 우리를 고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거죠?'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한번 노력해 볼 테니까 믿고 기다려 보십시오. 내가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요청하고 실시간으로 알려 드리겠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얘기도 잘 들으시고 스스로 약속까지 해주시는 모습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사람대접을 먼 타지에서 받는구나' 그런 생각이 절실히 들더라고요."

"나를 죽이려고 올려 보냈겠나... 살기 위한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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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루를 내려오던 기자를 향해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외치던 양이식씨. ⓒ 김혜승


- <부안저널>은 21일에 보도했는데,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반응이 있다고 볼 수 있나요?
"그렇죠. 정동영 의원한테도 갔다 왔고, 문재인 고문님한테도 갔다 왔고, 집회도 해봤고, 그래도 너무나 억울해서 그만둘 순 없었죠. 그래서 '내가 이걸(고공농성을) 한번 해 보겠다 밑에서 도와주기만 해라' 그랬죠. '꼭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분들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송전탑으로 올라가려고 했는데 너무 외진 곳이라 여기가 잘 보이겠다 싶어서 여기서 하는 거죠."

- 가족들은 뭐라고 하나요? 망루에 올라온 걸 알고 있나요?
"어제 아버지는 아신 거 같고요. 어머니는 아직 모르셔요. 4일째에 제가 아들한테 문자를 보냈는데 아들한테 답장이 안 오고 애기엄마가 아들 전화로 문자를 했더라고요. 기분이 쎄해서 전화를 해봤더니 굉장히 격앙돼 있더라고요. 제가 말을 안 하고 왔거든요. 근데 지역 언론에서 사진도 나가고 이름도 나와 있는데 안 봤겠습니까. 애들은 아직 모르는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요?
"잘 됐으면 좋겠죠. 저를 죽이려고 동지들이 올려 보냈겠습니까? 살기 위한 몸부림이죠. 근데 우리가 투명인간이다 보니까 대화도 단절되고 안타까워요. 여기 남아 있는 우리 동지들 고용보장만 해주면 우리는 바로 철거해서 (운행 할) 준비가 될 거예요. 지금까지 버스 해왔던 사람들이라 견습이나 이런 거 없이 바로 투입해서 정상운행할 수도 있어요. 이런 사연을 안다면, 고용보장 좀 해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게 간절한 바람이죠."

철파이프를 얼기설기 엮어 세워 놓은 18m짜리 망루는 인터뷰를 하는 내내 제 몸을 가누지 못해 흔들거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양이식씨는 망루 꼭대기에서 곡기를 끊은 채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그가 망루에 오른 지 9일, 여전히 부안군청은 그들을 외면하고 있다. 그는 "동료들이 나를 죽이려고 올려보냈겠냐"면서도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죽기 전엔 못 내려간다"는 다짐을 되새기고 있다.
#부안 #새만금교통 #해직 #노동자 #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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